빠르게 성장한 웹툰 시장…무너지는 네이버·카카오 ‘상생 생태계’
[웹툰 시장으로 번지는 '검정 고무신' 그림자]③
출판물 아성 넘은 웹툰, 국내 시장 규모 1조원 돌파
플랫폼 간 경쟁 치열…스스로 착취하는 웹툰 작가
직계약 작가만 해당되는 상생 구조…“그들만의 축제”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대한민국은 웹툰 종주국이다. 세계 웹툰 시장은 네이버·카카오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사는 만화를 종이에서 PC·모바일 화면으로 옮겼고, 가로형에서 세로형으로 바꿨다. 새로운 형태의 만화엔 ‘웹툰’이란 이름이 붙었고, 이 단어는 양사의 글로벌 확장 전략에 따라 세계로 퍼져갔다.
웹툰은 현재 K-콘텐츠 중심에 섰다. 웹툰이 세계 만화 시장에서 특별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형태의 독특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네이버·카카오가 상생이란 기조로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점은 웹툰을 더욱 빛나게 했다.
외신도 주목하는 ‘상생 생태계’…국내선 “무너진다” 비판
실제로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최근 ‘네이버웹툰은 어떻게 창작자들이 온라인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했나’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작가 친화적인 창작 환경을 주목했다. ▲아마추어 창작자에게도 광고 수익을 분배한다는 점 ▲플랫폼이 작가가 2차 창작물을 통해 별도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는 점 등을 소개했다. ‘포브스’는 “2021년 기준 네이버웹툰을 통해 가장 높은 수익을 낸 창작자는 100억원 이상을 벌었다”며 “많은 창작자가 연 1억원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다”고 했다. 해당 매체는 지난해 7월 수익 분배가 관대하지 않은 산업인데, 네이버웹툰은 작가를 챙기는 곳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포브스 외에도 ‘뉴욕타임스’(미국)·‘르몽드’(프랑스) 등 다양한 외신이 네이버·카카오가 구축한 웹툰 생태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정작 국내에선 네이버·카카오가 유지해 온 상생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웹툰 시장이 빠르게 커지면서 플랫폼 간 경쟁이 치열해졌고, 이에 따라 웹툰 작가에게 요구하는 노동 강도가 높아지고 있단 지적이다. 콘텐츠 제작사(CP)를 통한 작품 수급이 늘어나며 작가에게 돌아가는 수익 분배 비율이 많이 낮아졌단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선 작가를 착취했던 과거 출판물 만화 시장보다 웹툰 플랫폼이 작가를 더 압박하고 있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웹툰 제작업계 관계자는 “네이버·카카오가 강조하는 상생 구조는 직계약을 체결한 작가에게만 해당하는 ‘그들만의 축제’와 같다”며 “CP를 통해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다수의 작가는 높은 강도의 노동을 요구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CP를 통한 작품 수급은 플랫폼 입장에선 ‘쉬운 길’이다. 작가를 일일이 관리하지 않아도 일정 수준의 웹툰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며 “작가의 열악한 환경과 수익 분배 문제에 대한 책임도 CP에게 전가할 수 있는 구조다. 입으론 상생을 외치면서 정작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선 눈을 감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네이버·카카오
웹툰이 국내 시장에 처음으로 등장한 시점은 2000년대 초반이다. 다음웹툰(현 카카오웹툰)이 2003년 2월, 네이버웹툰이 2004년 6월에 각각 서비스를 시작하며 시장을 키워왔다. 웹툰이란 단어도 이때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양사는 2010년대 중반 시선을 글로벌로 돌렸다. 네이버웹툰은 2014년, 다음웹툰은 2016년 세계 시장에 진출했다.
양사는 웹툰 서비스 초기 만화 시장을 지배하던 출판사와 직접 경쟁을 벌였다. 만화 형태를 막론하고 이 시장의 경쟁력은 ‘누가 무엇을 그리느냐’에 달려있다. 네이버·카카오는 웹툰 서비스 초기 경쟁력 있는 기성 작가와 가능성 있는 신진 작가를 모집하기 위해 파격적인 선택을 한다. 당시 출판 만화 시장에서 통용됐던 신진 작가 수익 분배 비율은 9대 1(작가)이었다. 웹툰 플랫폼 기업은 출판사의 아성을 깨기 위해 7(작가)대 3의 수익 분배 모델을 적용한다. 이는 작가의 대거 모집으로 이어졌고 네이버·카카오는 만화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게 된다. 플랫폼 경쟁력 확대를 위해 도입한 수익 분배 모델은 지금에 이르러선 ‘상생 생태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네이버·카카오의 이 같은 전략은 만화 시장 전반을 바꾼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지난 2월 발표한 ‘2021년 기준 콘텐츠산업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웹툰 플랫폼이 이끄는 ‘온라인 만화 제작·유통업’ 매출은 1조832억원을 기록했다. 이 기간 만화 출판업 매출은 약 5712억원으로 집계됐다. 온라인 만화 시장이 출판물보다 약 2배 큰 규모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온라인 만화 제작·유통업 매출이 출판업 매출을 처음으로 앞지른 시점은 지난 2020년이다. 당시 약 2%로 근소한 차이를 보였으나, 1년 만에 이 격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문체부 측은 “온라인 만화 제작·유통업이 전체 만화 시장 매출액의 50.8%를 차지했다”며 “국내 만화산업이 온라인 만화 제작·유통업 중심으로 체질 전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이버·카카오가 주도하고 있는 세계 웹툰 시장도 그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 기관 스페리컬 인사이트 앤드 컨설팅은 2021년 세계 웹툰 시장 규모가 47억 달러(약 6조2000억원)이고, 연평균 40.8%씩 성장해 2030년 601억 달러(약 8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작가 ‘자기 착취’로 성장한 웹툰 시장
문제는 빠른 시장 성장에 따라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웹툰 플랫폼 관계자는 “출판물을 통해 만화를 보던 소비자가 웹툰으로 유입되면서 독자들이 눈도 높아졌고, 시장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일정 수준의 작품을 지속 확보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한화에 100컷 남짓의 분량과 모든 그림에 채색을 입히는 등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이제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단 설명이다.
이는 웹툰 작가가 CP를 찾고, 스스로를 착취하는 원인이 됐다. 업계에선 네이버·카카오에서 최근 연재를 시작한 대다수의 작품이 CP를 통해 제작됐다고 본다. 네이버웹툰은 신규 작품의 약 80%가, 카카오페이지·카카오웹툰에선 90% 이상이 CP를 통해 제작된다는 인식이다.
플랫폼이 요구하는 수준의 웹툰 한화를 일주일 만에 그리기 위해선 ‘협업’이 필수다. 최근에는 웹소설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웹툰 제작 사례도 많아지고 있어 각색·콘티 작가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증가하는 추세다. 배경·인물 등을 전문으로 그리는 서브 작가를 두지 않곤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없는 구조다. 플랫폼 내 유통 작품이 많아지면서 광고·프로모션을 진행하지 않으면 작품의 성공을 담보하기 어렵다. 작가 협업이나 플랫폼과의 협상 등의 업무 모두 CP가 담당한다.
작가는 이 때문에 CP가 제시하는 공동저작권 요구나 낮은 수익 분배 비율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한 웹툰 작가는 “최근 웹툰 시장은 과거 출판물 시장에서 데뷔를 위해 10%란 인세를 울며 삼켜야 했던 구조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2 웹툰 사업체·작가·불공정 계약 실태조사’에 따르면 웹툰 작가 58.9%가 불공정 계약이나 행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네이버·카카오도 CP와 작가 사이 발생하는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이 때문에 작가가 원하면 별도의 인증 절차를 거쳐 플랫폼이 CP에 제공한 수익 규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자회사로 두고 있는 CP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작가 복지와 건강권 강화를 위한 계약서 개정안도 내놨다.
네이버·카카오가 상생 생태계의 근거로 내건 7대 3, 혹은 6대 4 수익 분배 비율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작품당 발생하는 수익의 60~70%를 CP에 제공하며 ‘작가 친화적 기업’을 표방한다. CP가 이 수익을 작가에게 어떻게 분배하는지는 관심 밖이다. ‘월권’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권창호 웹툰협회 사무국장은 “웹툰 시장이 형성되면서 ‘무한 경쟁’이 고착됐고, 이는 작가가 자기 착취에 빠지는 원인이 됐다”며 “플랫폼이 운동장을 만들면서 작가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는 상황이 조성된 측면이 있는 만큼,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기보다 작가의 창작 생태계 문제에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지희 한양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전임의 연구팀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지원으로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웹툰 작가는 하루 평균 9.9시간을 일한다. 마감 전날엔 평균 11.8시간을 창작 활동에 매진하고 주 5.7일을 근무한다. 노동 자율성이 없다고 느낀 비율은 68.78%이고,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 봤다는 비율도 17.35%로 조사됐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전청조, 항소심서 감형..."끝까지 용서 구하겠다"
2'한국판 마블' 무빙, 시즌2 나온다..."제작 초기 단계"
3한미사이언스, "4인 공동출연 재단은 임시주총서 중립 지켜야"
4美 법무부, 구글에 '크롬' 강제 매각 요청...왜?
5정부, 취약계층 복지·일자리에 95조 썼다
6외국인 노동자 3만명 사용 신청 받는다...제조업 2만명 '최다'
7대출 조이자 아파트값 '뚝뚝'...서울은 35주 연속 상승
8기술력 입증한 바디프랜드, ‘CES 2025 혁신상’ 3개 제품 수상
9SK스퀘어, 2000억 자사주 소각 나선다..."주주환원 나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