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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임상시험 시장을 위한 제안…“아시아 국가와 연구기구 조직해야”

[위기의 CRO 시장 진단]③ 이영작 LSK 글로벌 PS 대표
한국은 제약영토 작아…다른 국가와 연합체 구성해야
식약처 ‘파괴적 개혁’ 필요…의과대학 인재 적극 활용

이영작 LSK 글로벌 PS 대표는 “자체적인 신약 시장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태국과 싱가포르, 호주 등과 의약품 공동시장을 만들면 한국도 제약영토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이영작 LSK 글로벌 PS 대표] 서울은 세계에서 임상시험이 가장 활발한 도시 중 하나다.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한국은 임상시험 신생 국가로 신약 임상시험이 가능해진 것이 20년 정도다.

한국의 임상시험은 1995년부터 2002년을 준비 단계, 2003년부터 2011년까지를 성장 단계, 2012년부터 현재까지를 정체 단계로 볼 수 있다.

현대적 임상시험의 실질적 근간은 임상시험관리기준(GCP)에서 시작한다. 한국은 1987년 KGCP를 채택했지만, 임상시험에 대한 인식과 여건이 성숙하지 않아 전면 시행은 1995년에야 가능했다.

혁신적 변화는 임시 신약허가신청(NDA) 없이 임상시험계획승인신청(IND) 제도가 2002년 도입되며 시작됐다. 현재 국내에서 신약을 허가받으려면 IND-임상시험-NDA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당시에는 임시 NDA를 거쳐야만 IND 과정을 밟을 수 있었다.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신약은 임시 NDA 승인을 받을 수 없어, 사실상 한국에서 신약 임상시험은 불가능했다. 해외에서 승인된 의약품을 국내 도입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된 의약품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엄격한 임상시험을 거칠 필요가 없었지만, 제도는 그랬다. 

IND 제도 도입으로 임상시험 시장 확대

아래 표를 보면, 실제 1998년과 1999년 국내 임상시험의 IND 승인 건수는 각각 42건, 31건에 불과하다. 이 시기 다국가 임상시험 IND가 승인된 건 0건이다. 다국가 임상시험은 2000년 이후 시작됐다. IND 승인을 받은 다국가 임상시험은 2000년 5건, 2001년 18건, 2002년 17건을 기록했다. 국내 임상시험의 IND 승인 건수도 각각 28건, 27건, 38건에 그쳤다.

전체 IND 승인 건수는 2003년부터 급격하게 성장해 2002년 55건에서 2012년 670건으로, 10년 사이에 12배 수준 성장했다. 하지만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지난 10년간 IND 승인 건수는 정체돼 있다. 특히 국내 기업이 혁신신약 임상시험을 미국 등 선진국에서 초기 단계부터 진행해, 국내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은 참여할 수 없어 한국의 임상시험 환경은 침체한 모습이다. 이런 현실을 타개할 변화 없이는 한국 임상시험 시장의 미래는 밝아 보이지 않는다.

임상시험 시장의 전망은 제약 산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제약 산업이 활성화되면 임상시험도 활발해질 것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하겠다.

첫째, 제약영토의 확장이다. 국내 인구는 5000만명으로, 자체적인 신약 시장을 형성하기엔 부족하다. 일본은 인구 규모가 1억2600만명이며 자체적으로 혁신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 스위스와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벨기에 같은 소국에도 세계적인 제약사가 있는데, 러시아와 터키를 제외해도 유럽 인구가 6억명으로 자체 제약영토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인구도 3억7000만명으로 자체적으로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

한국도 제약영토를 1억명 이상으로 확장하면 신약 강국이 될 수 있다. 태국과 싱가포르, 호주, 말레이시아 등과 의약품 공동시장을 형성하고 규제를 통합한다면, 유럽의약품청(EMA)에 상응하는 연합체로 1억3900만명의 제약영토가 형성된다. 자체적 신약 개발이 가능해지고 신약 시장을 만들 수 있다.

둘째, 한국이 주도해 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열대병 질환 연구기구를 조직하고, 감염병 공동 연구를 추진해야 한다. 기후 변화와 더불어 세계가 일일생활권이 되며 한국도 각종 감염질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통해 한국은 자체적으로 감염질환과 관련된 신약 개발과 임상시험을 진행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반드시 다국적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임상시험에서 경험했듯 긴 승인 절차를 거치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이로 인해 개발 시기를 놓쳤다.

한국이 주도해 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열대병 질환 연구기구를 조직하고 감염병 공동연구를 추진한다면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대유행(팬데믹)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 있는 국제백신연구소(IVI)와 방글라데시의 국제설사질환연구소(icddr,b)는 세계적인 감염질환 연구소다. 이들과 협조해 코로나19와 같은 사태에 대비하고 감염질환 연구를 강화한다면, 신약 연구와 함께 임상시험도 발전할 것이다.

셋째,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파괴적 개혁이 요구된다. 식약처의 기능은 과학 기능과 규제 기능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은 과학 기능이 취약하다. 정부에서 아무리 지원해도 식약처의 과학 기능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나 국내 유수한 의과대학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

식약처는 제조·품질관리기준(GMP)과 비임상시험관리기준(GLP) 등에 집중하고 첨단신약의 과학은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의사와 의과학자가 활약하고 있는 의과대학에 위탁하는 방법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호주는 인구가 한국의 절반 정도이지만, 초기 임상시험이 세계적인 수준이다. 우수한 의과대학의 인재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를 벤치마킹해 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과 임상시험의 발전을 위해 제약·바이오 회사가 CRO와 갑을관계가 아닌 협력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제약사가 임상시험 경험을 활용해 CRO를 지도한다.

14년 전 LSK 글로벌 PS는 해외 CRO와 경쟁해 미국에 본사가 있는 다국적 제약사의 초기 임상팀과 한국과 호주에서 진행되는 항암제의 첫 사람 대상 투여 개시(FIH) 임상시험을 수주했다. 당시 “왜 LSK 글로벌 PS를 선택했냐”는 필자의 질문에, 다국적 제약사는 “CRO의 임상시험 경험보다 CRO가 우리의 가이드를 따라 제대로 임상시험을 수행할지가 선택의 관건이었다”고 답했다.

현재 국내 제약·바이오 회사 중 자체적으로 국내 또는 해외에서 임상시험을 할 수 있는 회사는 1~2개 정도로 추정된다. 기업의 대다수는 CRO 지도는 말할 것도 없고, CRO의 지원 없이는 임상시험을 운영할 능력이 없다. 임상시험 경험이 CRO에 축적돼 있기 때문이다.

LSK 글로벌 PS만 하더라도 창사 이래 1500건 이상의 임상 프로젝트와 160건 이상의 다국적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현재 4개의 다국적 임상시험 전체 또는 글로벌 데이터관리(DM)·통계를 담당하고 있으며, 3개의 다국적 임상시험에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정부가 제약영토를 확장하고 신약 개발 행정을 혁신해 제약·바이오 회사들이 임상시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국내 제약 산업은 세계 시장 진출에 성공할 것이며 임상시험의 미래도 밝아질 것이다.

이영작 LSK 글로벌 PS 대표 [사진 LSK 글로벌 PS]
이영작 LSK 글로벌 PS 대표는... 미국 국립암연구소와 국립신경질환연구소, 국립모자건강연구소에서 항암임상과 독성연구를 맡았던 임상시험 및 통계 전문가다. 한국임상CRO협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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