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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소재 애매한 신탁방식 재건축, 제도 개편 필요

[신탁 재건축 딜레마] ② 조합장 비리에 적용되는 특가법, 정사위는 피해가
업체 선정 권한 조합원에 없어…비교 없이 투표해야

건설 현장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이코노미스트 민보름 기자] 지난해 9월 서울행정법원은 “정비사업위원회(정사위)는 비법인사단으로서의 단체성이나 소송의 당사자 능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해당 소송은 2021년 한 무허가 건물 상가주가 조합원 자격을 인정해달라는 취지에서 재개발구역 소유주들의 대표성을 갖는 정비사업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사업시행자는 주식회사 G(신탁사)”라면서 “정비사업위원회는 이 사건 정비구역 토지 등 소유자의 의견을 수렴하여 사업시행자에게 전달하고 협의를 진행하기 위해 설치된 토지 등 소유자 전체회의의 기구에 불과하다”며 소송을 각하했다. 사실상 재개발 사업에 대한 정비사업위원회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최근 정비업계에선 판례와 현행법에 따라 신탁방식 정비사업에서 신탁사를 견제하고 소유주 의견을 반영해야 할 정비사업위원회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신탁사와 정사위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허술한 제도로 인해 신탁사는 아무 권한이 없는 정사위를 명목 상 세워두고 거수기로 활용할 수 있고, 정비사업위원들은 뚜렷한 업무나 책임 없이 보수를 받을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권한·책임 없는 정사위원장, 보수는 조합장 수준

지난해 말 서울 소재 A 재건축 단지 정비사업위원장 연봉이 기존의 3분의 1 수준으로 삭감됐다. 인근에 다른 신탁방식 정사위 보수와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부 소유주들이 “주변 신탁사업 정비사업위원장은 물론, 직접 사업을 진행하는 조합방식 재건축의 조합장보다 보수가 높다”고 지적하자 당사자는 결국 연봉을 자진삭감하게 됐다.

A 단지는 신탁사와 정사위원장의 업무 진행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시공사가 사업 수주 당시 약속했던 부분과 시공 가계약 내용이 일부 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각 정비사업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공사비 협상에 대한 내용도 공개되지 않으면서 이에 대한 불만이 터졌다.

일부 소유주들은 자칫 의사결정에 소유주들이 소외될 수 있는 신탁방식 재건축에서 소유주 의견을 반영하고 소통 창구 역할을 해야 하는 정사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사위원장에 대한 해임 동의서를 받고 있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정사위 자체 설립 근거가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에 없고 신탁사가 단독 사업시행자 역할을 하는 경우 개입할 권한이 전혀 없다”면서 “이 같은 점을 모르던 정사위원들도 사업이 진행되면서 점차 개입할 의지를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재건축 사업 초기에 신탁사와 양해각서(MOU)를 맺으면 바로 10억원 정도 신탁사로부터 활동비를 받을 수 있다”면서 “이 때문에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부터 사업을 이끌었던 인물들이 정사위를 구성해 신탁사의 업무를 견제하기보다 방임하는 경우도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서울 시내 아파트 재건축 현장 모습. [사진 연합뉴스]

신탁방식, 소유주 선택권·비리 처벌 축소 필연적

현 제도가 신탁방식 재건축의 투명한 업체선정 과정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신탁사의 공정성에 기대는 것 빼고는 다른 방안이 없다는 의미다. 

도시정비법 제45조에 따르면 조합은 총회를 통해 시공사와 설계사, 감정평가사 등 주요 업체를 선정할 수 있다. 조합이 아닌 신탁업자가 사업시행자일 경우 도시정비법 제48조에 따라 조합원 총회 격인 토지 등 소유자의 전체회의에는 주요 업체 중 시공사 선정 권한만 있다. 나머지 업체에 대해선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와의 계약 등 토지등소유자의 부담이 될 계약’에 대한 의결권만 명시돼 있을 뿐이다. 

즉 조합원이나 조합 임원들이 여러 업체를 비교하며 업체를 선정하는 조합방식과 달리, 신탁방식에선 소유주들이 신탁사가 선정한 업체와 계약 사항에 대해 찬성, 반대 여부만 결정하는 셈이다. 때문에 비 전문가인 아파트 소유주들이 비교대상 없이 계약의 적절성을 판단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정사위가 특정 업체와 결탁했을 때 처벌 역시 조합방식보다 약하다. 조합방식에서 조합장은 공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취급되어 뇌물수수 등의 범죄가 드러났을 때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을 적용 받는다. 해당 법 상 3000만원 이상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밝혀지면 바로 구속되며 최소 5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하게 된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실제로 정사위가 신탁사의 묵인 하에 업체 선정에 관여할 가능성은 낮은 편”이라며 “그러나 신탁사를 견제한다는 정사위의 존재 자체가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방패막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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