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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선동 난무, 허구를 실재처럼 포장…과거로 퇴행하는 한국정치[이코노 인터뷰]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
왜곡된 프레임으로 골수 지지층 결집에 몰두
논리와 윤리의 아노미…사회적 소통 점점 불가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 [사진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송길호 이데일리 논설위원 겸 에디터] 논객으로서 진중권의 생명력은 진영에 갇히지 않는 유연한 사고다. 그는 스스로 진보를 표방하는 좌파로 규정하지만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다. 그러면서 특정 진영을 대변하는 어용지식인, 특정 정파의 나팔수가 되는 것을 경계한다. 특정 진영을 위해 정의가 희생되거나 왜곡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의 비평엔 힘이 있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사회과학적 문학적 언어로 분절해 현상의 본질을 명쾌하게 꿰뚫는다. 교조화된 이념에 구속되지 않고 상식에 근거해 사안을 있는 그대로 보며 시시비비를 가린다. 이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을 새롭게 조직한다.   

탈진실, 포스트 윤리의 시대. 팩트 보다 더 강렬한 허구가 지배하고 극단적 팬덤정치로 집단 광기에 휘말려 있는 한국정치. 진영논리에 갇혀 현실과는 유리된 그 이면을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의 눈을 통해 들여다봤다. 최근 서울 홍익대 근처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진 교수는 “우리 편이냐 상대편이냐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면서 사회적 소통이 불가능해졌다”며 “논리와 윤리의 아노미 상태인 지금은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럴때일수록 지식인은 공론의 장을 만들어 사회적 소통과 합의를 이룰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며 “일반 대중을 더 스마트하게 더 윤리적으로 이끌어 민주주의적 시민이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각종 가짜뉴스, 괴담 선동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선동가들이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을 창출해 허구를 실재처럼 포장하고 있어요.  지금 존재하는 사실보다 허구에 불과한 이 대안적 사실의 효과가 더 강렬할때가 많아요. 사실 대안적 사실은 미디어 이론에 나오는 개념이에요. 원래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의미합니다. 일종의 가상(virtual)의 세계죠. 그런데 가상은 가짜와 잠재성 두가지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잖아요. 가상현실(VR)을 체험할때 일시적으로나마 허구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래서 디지털시대엔 이런 미래의 잠재성을 탐구해 이를 테크놀로지로 현실화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기술의 창조적· 생산적·진보적 사용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요즘은 미래를 보지 않고 현실을 왜곡하기 위해 과거를 향해 거짓말을 하고 있죠. (허구의) 대안적 세계를 만들어 사람들을 과거로 퇴행시키고 있어요. 미래의 잠재된 가상의 세계가 아닌 이미 벌어진 사건을 비틀어 그걸 현실에 등록시키는 작업을 하는 셈입니다. 각종 괴담 선동이 난무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죠. 

 
▶선동가들이 반동적 목적으로 허구를 실재로 둔갑시키고 있다는 거군요.
디지털시대의 대중은 오지 않은 미래의 비전을 기술로 실현시키는 기술적 상상에 대한 욕망이 있어요. 그런데 선동가들은 이 욕망을 과거로 돌려 반동적인 목적에 사용하는 겁니다. 그들의 준동이 너무도 심해 지금 우리 사회에선 이들이 제작한 대안적 사실이 현실 행세를 하고 있어요. 많은 대중은 그들이 지어낸 허구를 실제 세계로 알고 살아갑니다. 물론 일부는 허구인줄 알면서도 믿는 척 하는 경우가 많죠. 모든 사람들이 믿어야 리얼리티가 되기 때문이에요. 이들은 사실에 대한 이해가 달라요. 원래 팩트(fact)는 라틴어 팍툼(factum) 즉 ‘만들어진’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잖아요. 그들에게 애초에 사실이란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을 조작하는 일은 거짓말이 아니라 대안적 사실을 창조하는 행위로 생각하는 겁니다. 오히려 미학적 창조로 봅니다. 윤리적으로 부끄러워할 줄 모르죠.    

▶유튜브 같은 대안매체들에서 이런 현상이 더 심하죠.
일부 레거시 매체(전통 매체)도 마찬가지예요. 보도해야 될 것을 보도 안 하고 보도할 가치 없는 것을 키우고 있죠. 가장 세련된 거짓말은 꼭 말해야 할 나머지 절반에 대해 말을 안 하는 겁니다. 그래놓고 나중에 사실만 얘기했다고 하죠. 그런 면에서 요즘 상당수 저널리즘은 당파적이에요. 문제는 보도가 당파적일수록 대중들의 호감도가 올라간다는 거예요.  객관적 보도보다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는 착시현상을 유발하는 거죠. 특히 지금 유튜브 같은 대안매체는 레거시 매체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어요. 유튜브의 영향력이 조회수에서 나타나듯, 디지털 시대 모든 것은 복제되는 횟수만큼 존재감을 가져요. 유튜브가 허구를 창작해도 조회수가 높으면 현실의 사건이 되는 거예요. 대안적 사실이 실제 사실보다 더 실재가 됐어요.

진영별로 그들만의 세계에 갇힌 종족화 현상 심화

▶대안세계의 창출은 프레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우리는 프레임을 설정한다라는 걸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트랩(trap·덫)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프레임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위해 그리고 새로운 의제 설정을 위해 만들어져야 해요. 즉 우리 사회가 주목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키워드로 제시하는 게 프레임 만들기예요. 그런데 지금은 프레임 만든다는 말이 욕이 됐어요. 민주당이 그릇된 가치를 관철하는데에 프레임 전략을 잘 사용해요. 예전 조국 인사청문회때 보세요. 원래 인사청문회는 후보자의 도덕성을 검증하는 자리인데 민주당에선 처음부터 사안을 합법 불법의 문제로 프레이밍해 들어갔어요. 그러니 전략은 빗나갔고 결과는 참혹했죠. 불법만 아니면 모든 게 허용된다는 왜곡된 윤리의식을 당이 내면화하게 됐어요. 지금 김남국 코인사태도 마찬가지예요. 도덕적 가치와 원칙을 버리고 왜곡된 프레임으로 골수 지지층 결집에만 전념하는 거예요.    

▶민주당에서 프레임전쟁을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미디어 친화성 때문으로 보여요. 노인세대보다는 아무래도 (민주당 지지세가 상대적으로 높은) 40∼50대가 미디어에 친숙하죠. 디지털 미디어라는 성격 자체는 가상과 현실의 중첩이에요. AI를 생각해보세요. 일단은 가짜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태도, 가짜도 한동안은 진짜로 받아들이는 즉 일정 기간 불신을 유예하는 태도, 이를 파타피지컬(patphysical)이라고 해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순간엔 진짜라고 인정을 해주고 밖에 나와선 그건 허구야라며 불신을 하는 거죠. 이런 파타피지컬한 인터페이스를 일상적으로 사용해온 세대는 당연히 현실에 대한 관념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어요. 그들은 가상에 실재의 지위를 부여해 가짜를 진짜처럼 대우해주고, 실재에 가상의 지위를 부여해 현실을 거대한 게임으로 바꿔놓는데 익숙합니다. 아이들이 스파이더맨 영화를 보고 나와 바깥에서 벽에 막 붙으려고 하는 것과 비슷해요. 이런 아이들의 태도가 성인들에게도 나타나는거죠.  불신의 시한이 없어지고 있는 겁니다.  

▶민주화를 표방했던 586세대에 전체주의 문화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당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586세력이 민주주의를 학습한 적이 없어요. 학창시절 국가주의 교육을 받고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민족주의 색채의 또 다른 전체주의 이념으로 무장했어요. 한번도 경험해 본 적도 없고 이론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한국식 민주주의 하다가 반정부 투쟁하면서 인민민주의를 받아들인 겁니다. 자유주의가 뭔지 민주주의가 뭔지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이견을 해소하는 게 정치에 대한 자유주의적 관념이에요. 하지만 586세대에게 정치는 이런 습속이 남아 있어 여전히 내편과 네편을 갈라 싸우는 전쟁이에요. 지지자를 설득하는데도 운동권 시절의 전체주의 선동을 사용하죠. 승리를 위해 적에게 이로운 진실은 은폐하고 우리편의 범죄는 감추고. 더욱이 운동권 시절엔 비공식적 통로가 진실을 말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래서 아직도 그걸 믿고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이야기가 진짜일 가능성이 크다며 음모론을 즐겨 사용하죠. 이런 586의 운동권 문화가 공당의 운영원리까지 왜곡하고 있어요.

▶586세대의 언론관은 저널리즘의 본령과도 차이가 많습니다. 불리할땐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죠. 
언론 자유, 저널리즘의 본령이 뭔가라는 관점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 항상 정략적으로 때리려는 생각만 해요. 언론을 장악해서 우리 것으로 만들어 써야 한다는 사고 방식인데 예전 독재정권과 똑같아요. 최근 방송법 논란 보세요. 방송사 중립을 제도화할 수 있는 기회는 문재인정부 시절 있었잖아요.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때 방송법 통과시킬 수 있었는데 그땐 외면했어요. 그러다 정권 뺏기니 이제서야 언론 자유의 투사처럼 방송 중립 운운하며 방송법 통과시키려고 해요. 사실이제는 언론 장악은 어려워요. 지금은 매체들이 워낙 다양해 크로스 체킹이 되잖아요. 

▶정치진영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도 이런 전체주의 이념의 연장선이죠.  
정치 진영별로 종족화(tribalization)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우리나라 특히 민주당이 심해요. 이들은 다른 진영의 세계를 공유 못 해요. 그러면서 계속 고립되고 급진화되는 거예요. 내부에서 쓴소리하는 사람 또는 자기들의 믿음 체계에 반하는 팩트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공격을 받게되죠. 그럼 점점 순수한 사람들만 남아 극단화되고 현실에서 더욱 멀어지면서 또 자기들만의 세계에 갇히게 되죠. 정치 팬덤이 그래요. 특정 정치인에 대한 적극적 지지를 넘어 정치 아이돌을 토템으로 숭배하는 부족주의 수준으로 전락했어요. 일종의 정치적 흥분상태, 집단적 광기에 빠진 거죠. 그러면 정치인들도 딜레마에 빠집니다. 중도층을 공략하기 위해선 이들과 거리를 둬야 하지만 기본적인 지지율 관리를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잡아야 하는거죠. 

지식인, 공론의 장 통해 사회적 합의 기반 마련

▶진영내 집단사고로 정치지형이 더욱 극단화되고 있어요.   
문제는 이데올리기로 무장한 사람들이에요. 이들은 이념적으로 접근합니다. 외교문제든 노동문제든 정책을 항상 자신들의 이념 틀에 맞추려고 합니다. 그럼 망가지는 거예요. 보수든 진보든 이념화되면 교조화되고 그렇게 되면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자유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정치인데 그럴 능력이 없는 거예요. 그러다보면 지지율 관리를 위해 뭔가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해요. 지지층의 공격적인 본능을 자극하고 그 수요를 만족시켜주려고 하죠. 그럴수록 개혁은 힘들어집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양보를 얻어내고 타협을 끌어내는 게 개혁인데 정책이 이념화 교조화되면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 거죠. 

▶ 공론의 장이 무너졌다는 거군요. 
상식이라는 말이 영어로 커먼센스(common sense) 잖아요.  이런 공통의 부분을 많이 늘려놔야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이 효율적으로 변해요. 최소한 1+1=2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수학적 게임이 가능한데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합의조차 안 되고 있죠. 팩트를 공유 못 하잖아요. 틀려도 사과를 안 하고 옳다 그르다는 판단 없이 우리 편이냐 성대편이냐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는 거죠. 그러면 사회적 소통이 불가능해지는 거예요. 이를 민주주의의 위기로 봐야 하는데 지금 정치권은 불감증에 걸렸죠. 공천받을 생각, 우리 사람 내려 꽂을 생각만 하고 있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 못하고 있어요. 정치가 언제부턴가 공적 사안(Res Publica)이 아닌 사적 용무(Res Privata)를 위해 존재하는 나라가 됐어요. 공화국의 위기예요. 헌법 정신이 무너지고 있어요.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비리가 비리가 아니고 부패가 부패가 아니며 범죄가 범죄가 아니라고 강변하다가 사실과 도덕의 기본마저 무너뜨리고 있어요. 우리 사회는 지금 논리와 윤리의 아노미상태에 빠진 셈이죠.
유권자들도 모두 피해자인데 어느 한쪽 편을 들어 대리 전쟁을 하고 있어요. 잘한 거는 칭찬하고 못한 거는 비판하는 게 당연한데 우리편이냐 상대편이냐에 따라 무조건 옹호하고 무조건 질타하는 거죠. 정치권의 책임이 큽니다. 이럴 때일수록 지식인은 공론의 장을 만들어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해요. 그러면서 대중들을 항상 더 스마트하게,  더 윤리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대중들이 민주주의적 시민으로 거듭납니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 [사진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진중권 교수는_ △1963년 서울 출생 △서울대 미학과 △서울대 석사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겸직교수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광운대 정보과학교육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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