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불볕더위 피해 장쾌한 ‘폭포’ 속으로 [E-트래블]
수도권에 있는 각양각색의 폭포 찾기 좋은 계절
[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자연도, 풍경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다. 화려한 봄날에는 꽃을, 한여름에는 진초록 숲을,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을, 겨울에는 하얀 설원과 눈꽃이 기다린다. 폭포를 기다렸다면 여름으로 접어드는 지금이 가장 좋다. 이번에 소개할 곳은 수도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장쾌한 폭포들이다. 경기 북부의 연천과 포천, 가평, 그 윗동네인 강원도 철원과 홍천에는 시원한 폭포가 여럿 있다.
물줄기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재인 폭포’
경기도 연천은 발길 닿는 곳이 모두 자연과 역사 유적이고 눈길 닿는 곳 어디서나 절경을 만날 수 있는 고장이다. 한탄강과 임진강이라는 큰 강길도 있다. 이 강들은 약 27만년 전 용암 분출로 만들어진 용암길이 강길이 된 곳. 그래서인지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진 지형이 이국적이고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낸다. 그중에서 현무암 주상절리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특히나 아름다운 재인폭포는 제주의 천지포연 폭포와 비견될 정도로 웅장함을 자랑한다.
예전에는 차를 타고 재인 폭포 앞까지 갈수 있었는데 지금은 제법 걸어 들어가야 한다. 주차장에서 폭포까지 이어진 협곡 위로 덱을 깔아 두었기에 그나마 걷기에는 편하다. 이 덱을 따라 들어가면 신비롭고 경이로운 자태의 재인폭포가 자리하고 있다. 이 폭포를 감상하는 법은 총 3가지. 첫 번째는 폭포 앞 출렁다리 위에 올라 폭포를 정면으로 보는 방법이다. 출렁다리 위에 올라서면 거대한 협곡과 폭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두 번째 방법은 협곡 아래로 내려가서 폭포를 올려 보는 것이다. 재인폭포의 웅장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세 번째 방법은 폭포 바로 옆 유리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것이다. 거대한 물줄기가 20m 아래로 떨어지는 커다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디가 됐던 폭포가 소 위로 떨어지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다이아몬드 기둥처럼 떨어져 내리는 하얀 물줄기와 에메랄드빛 소가 빚어내는 색의 조화는 거대한 동굴처럼 파인 현무암 주상절리와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좁은 바위 사이를 지나 곧은 기둥이 되어 쏟아지는 물소리 또한 그 모습만큼이나 경쾌하면서도 시원스럽다. 재인폭포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협곡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협곡 아래서 폭포를 올려다보는 것이야말로 재인폭포를 제대로 보는 법이다. 지금은 협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막혔다. 6월부터 9월까지는 낙석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숲속 은밀하게 숨은 ‘비둘기낭 폭포’
경기도 포천에도 폭포가 여럿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폭포는 영북면 대회산리의 비둘기낭 폭포. 비둘기낭이라는 독특한 이름이 붙은 이유에는 두 가지 사연이 숨어 있다. 예부터 비둘기들이 폭포 협곡의 하식 동굴과 수직 절벽에 서식했다는 이야기와 동굴 지형이 비둘기 둥지처럼 움푹 들어간 주머니 모양이라는 데서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이곳에서 비둘기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대신 곳곳에 비둘기 조형물을 배치해 두었다..
은밀하게 숨어 있는 폭포지만, 그렇다고 산자락 깊은 계곡 사이에 자리하지 않았다. 길을 걷다가 숲속 절벽 아래로 내려서면 폭포가 불현듯 모습을 드러내고 협곡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현무암 침식으로 만들어진 이 폭포는 독특한 지형과 함께 청량한 비경을 보여준다.
특히 비가 내리면 폭포는 굵직한 아우성을 만들어 더 신비롭게 느껴진다. 폭포는 현무암 절벽과 동굴에 휩싸여 밖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서면 거대한 목욕탕처럼 보이는 소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폭포 주변으로 하식 동굴과 절리 등 수직 절벽이 채워져 있어 운치를 더한다.
한국전쟁 당시 수풀이 우거지고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아 마을 주민들이 대피 시설로 이용했을 정도로 은밀하다. 이후 한탄·임진강 지질공원이 정착되면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드라마의 명장면을 촬영한 포인트인 점도 한몫했다. ‘추노’ ‘선덕여왕’ ‘괜찮아, 사랑이야’ 등을 이곳에서 촬영했는데, 폭포 초입에 관련 포스터를 전시해 놓았다.
조선 천재화가도 반한 ‘삼부연 폭포’
포천의 위쪽 동네인 철원(강원도)에는 삼부연 폭포가 있다. 비둘기낭 폭포처럼 삼부연 폭포도 정말 편하게 만나는 폭포다. 찾는 길도 수월하다.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의 군청에서 그리 멀지도 않다. 읍내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나가면 바로 폭포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만난다. 보통 산 중턱에 있는 폭포와 달리 길가에 있어 산을 오르는 수고를 덜어준다. 편하다고 해서 폭포의 감동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20여m의 암벽을 타고 거대한 물줄기가 수직 낙하하는 모습이다. 마치 수묵화를 제 몸으로 그려내고 있는 듯하다. 거대한 폭포를 가까이 가서 볼 수는 없지만, 그 장쾌함은 멀리서도 그대로 전해져온다.
삼부연은 가마솥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물이 층암으로 된 바위벽을 세 번 걸쳐 내려와 물이 모이는 못이 마치 가마솥을 닮았기 때문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는 도를 닦던 네 마리의 이무기가 있었는데 세 마리가 폭포의 기암을 각각 하나씩 뚫고 용으로 승천했다고 한다. 그때 생긴 세 곳의 구멍에 물이 고인 것이 삼부연이라는 것이다. 상단의 못을 ‘노귀탕’, 중간 못을 ‘솥탕’, 하단의 가장 큰 못을 ‘가마탕’이라 부른다. 이 모습에 반한 조선의 천재 화가 겸재 정선도 금강산을 그리러 가다 이곳에서 삼부연 폭포를 화폭에 담았다고 전해진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 간직한 ‘매월대 폭포’
철원 근남면 잠곡리 복계산(1057m). 과거 휴전선과 가까운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는 이유로 출입을 통제했던 산이다. 이 산 중턱에 아직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매월대 폭포가 있다. 훼손되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청정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폭포다. 폭포가 쏟아지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점도 매월대 폭포의 장점이다. 폭포의 높이나 물줄기는 근처의 삼부연처럼 웅장하지도, 그리 넉넉하지도 않다. 하지만 주위를 감싼 청량한 기운에 몸은 싱그러운 초록에 흠뻑 물들어 버린다.
찾는 길도 그리 어렵지 않다. 복계산 등산로 입구에서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천천히 걸어도 10여 분이면 닿는다. 이 폭포의 원래 이름은 ‘선암’(仙巖) 폭포. 폭포에서 약 200m 더 오르면 산을 뚝 잘라놓은 듯한 40m의 층암절벽이 있는데, 이 바위를 ‘선암바위’라고 불렀다. 이후 ‘생육신’ 중 한 사람이었던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에 은거하면서 선암바위 대신 ‘매월대’라는 이름을 얻었고, 폭포도 매월대 폭포로 불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김시습은 조선 전기 문학의 백미로 평가되는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의 작가이자,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다. 그가 21세가 되던 세조 1년(1455년).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들은 김시습은 대성통곡하며 보던 책을 모두 불태우고 산으로 숨어들었다. 이후 그는 조씨 성을 가진 여섯 형제와 두 조카를 데리고 복계산 매월대에 은거했다고 전해진다.
50m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거대한 물줄기 ‘가령폭포’
강원도 홍천 내촌면으로 향하는 길. 홍천에서 국도 44호선으로 원통 방면으로 가다 철정검문소에서 우회전해 인제 상남 방면으로 지방도 451호선으로 접어든다. 여기서 15분쯤 가다 보면 왼쪽에 가령폭포 입구표시가 나타난다. 도로 옆 주차장에다 차를 대고 폭포로 향한다. 도로에서 계곡 밑까지는 아기자기한 산길을 따라 1시간 정도 올라야 한다. 산길이 비탈지지 않은 만큼 산림욕 삼아 쉬엄쉬엄 걸어가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연화사라는 작은 암자를 지나면 숲길이다. 여기서부터 약 500m 정도 산길인데 길옆으로 계곡물이 동행해 길을 안내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폭포 소리가 발길을 이끈다. 그 소리를 따라가면 거대한 기암절벽에서 쉼 없이 물줄기가 쏟아지는 모습의 폭포를 만날 수 있다. 백암산(1099m) 서남쪽 기슭에 숨어 있는 가령폭포다. 58m 낭떠러지에서 흩뿌리듯 쏟아져 내리는 자태가 자못 웅장하다. 등산 동호인들이 찾으며 알려지기 시작한 폭포로 아직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폭포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웅장하다. 낭떠러지를 뒤흔드는 우렁찬 굉음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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