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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제조사에서 재계 서열 6위…굴곡의 롯데 56년史

[위기와 기회 사이 롯데그룹]①
신격호 창업주, 70년 동안 한국-일본 오가며 사업 확장
신동빈 회장, 보수적이었던 아버지와 달리 M&A로 회사 키워

신격호 창업주는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며 보수적인 경영을 펼쳤지만, 2004년 경영 전면에 나선 신동빈 회장은 과감한 인수합병(M&A)을 통해 공격적인 경영을 펼쳤다. [사진 롯데그룹]
[이코노미스트 김채영 기자] 재계 6위. 자산 129조. 최근 롯데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동안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사세를 키우며 몸집을 불려온 것과 사뭇 다르다. 코로나 팬데믹과 더불어 지난해 말 건설 유동성 이슈까지 겪으면서 부진한 실적이 계속되고 있다. 상징처럼 여겨오던 재계 서열도 13년 만에 5위 밖으로 밀리게 됐다. 롯데지주, 롯데케미칼 등 핵심 계열사들의 신용등급도 내려갔다.  

표면적으로 보면 확실한 위기다. 롯데그룹의 수장인 신동빈 회장의 어깨도 무겁다. 하지만 이를 기회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새로운 성장 모멘텀이 절실한 상황에서 롯데는 체질 개선 작업에 한창이다. 지난 50여년간 롯데 성장의 핵심이던 유통군에서 그룹 중심축도 화학·배터리 등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옮겨지고 있다. 위기와 기회 사이. 기로에 서 있는 롯데는 그동안 어떤 길을 얼어왔을까.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과 아들인 신동빈 회장의 경영 방식으로 본 롯데그룹의 흥망성쇠를 짚어봤다. 

신격호 ‘무차입 경영’…IMF 파고 넘어 폭발 성장 계기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껌 사업을 시작으로 70년 가까이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오가며 사업을 확장해 롯데를 올해 자산 기준 국내 재계 6위로까지 성장시켰다. [사진 롯데물산]

(故)신격호 명예회장 :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사업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신동빈 회장 :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제때 실행해야 합니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단돈 80엔으로 일군 롯데그룹. 롯데그룹은 기업의 국적 정체성 논란과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기업 문화 등으로 ‘은둔의 왕국’이라 불리는 등 여론의 뭇매도 맞지만 껌 사업을 시작으로 한때 자산 기준 국내 재계 5위로까지 성장한 대기업이다.

신 명예회장과 현 롯데그룹의 수장인 신동빈 회장은 부자지간임에도 판이한 경영 스타일을 선보이며 롯데그룹을 이끌었다. 신격호 창업주는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며 보수적인 경영을 펼쳤지만, 2004년 경영 전면에 나선 신동빈 회장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회사를 키웠다. 부자의 경영 방식에 따라 롯데그룹의 흥망성쇠도 갈렸다.

신 명예회장은 껌 사업을 시작으로 70년 가까이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오가며 사업을 확장해 롯데를 재계 5위 기업으로까지 성장시켰다.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다양한 일을 하던 신 명예회장은 1946년 화장품, 비누제조 사업을 시작했고 오늘날 롯데그룹의 모체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 ‘히카리’라는 회사를 세워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러던 중 신 명예회장은 우연한 기회로 ‘츄잉껌’을 접하게 되고, 1947년께 당시 일본에서 손쉽게 제조가 가능했던 껌 제조에 착수했다.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얻자 1년 후 주식회사 롯데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껌 사업이 뛰어들었다. 롯데라는 사명은 신 명예회장이 즐겨 읽던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따온 것이다.

껌 제조사업을 통해 불린 자본으로 그는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1959년에 롯데상사를 설립하고, 1961년에는 초콜릿 제조업에도 도전했다. 후발주자였음에도 그는 초콜릿 시장 공략에 성공했고, 1968년 롯데는 일본 최대의 제과업체 자리에 올랐다. 

(故)신격호 명예회장은 1980년대 롯데제과 설립에 이어 당시엔 아무것도 없었던 잠실 지역에 호텔과 백화점, 실내 테마파크 건설 사업을 진행했다. [사진 롯데그룹]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뤄지고 외자를 도입해 경제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내에서 높아지자 신 명예회장도 ‘사업보국’의 꿈을 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1980년대 롯데제과 설립에 이어 당시엔 아무것도 없었던 잠실 지역에 호텔과 백화점, 실내 테마파크 건설 사업을 진행했다. 롯데월드를 중심을 한 ‘잠실 프로젝트’는 세간의 우려를 뒤엎고 문을 연 첫해인 1989년 140만명이 입장했고, 1990년에는 누적 입장객 수가 460만명을 넘는 등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에도 불구하고 롯데그룹은 큰 위기 없이 계속해서 몸집을 불려 나갔다. 당시 전 재벌이 경영 위기에 몰렸었지만, 롯데만이 위기 없이 신사업 론칭과 사세 확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신 명예회장이 무차입 원칙을 철칙으로 삼고 경영했기 때문이다. 

차입금을 기업의 경영 상태를 악화시키는 ‘병’과 같은 것으로 인식했었던 신 명예회장의 생각에 따라 IMF 사태는 오히려 롯데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때 롯데그룹은 재계 서열 10위에서 5위까지 올라서게 된다.

신동빈 회장 전면에 나서며 M&A로 급격한 사세 확장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엔 어마어마한 현금 보유량을 무기로 각종 M&A를 진행해 급격한 사세 확장을 이루었다. 신 명예회장의 지휘와 아들 신동빈 회장의 보조에 힘입어 한국 롯데그룹은 창업 첫해 8억원의 매출에서 지난해 기준 매출 84조원 규모의 그룹으로 성장했다. 

2004년 경영 전면에 나선 신 회장은 보수적이었던 아버지 신 명예회장과 달리 공격적인 경영을 펼쳤다. 국내외 인수합병, 기업공개(IPO), 글로벌 사업 확대 등을 통해 그룹을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려놓았다. 2004년 30조3000억원이었던 롯데그룹 자산규모는 올해 129조7000억원으로 4배 이상 성장했다. 

신 회장의 M&A 역사는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에 현대석유화학을, 2004년에는 KP케미칼을 인수했다. 2008년부터 2009년 사이 롯데그룹은 유통사업에서 인도네시아 대형마트 마크로(3900억원), 중국 타임스(7300억원), AK면세점(800억원)을 인수했다. 식품 사업에서는 두산주류BG(현 롯데주류, 530억원), 기린(799억원), 네덜란드계 초콜릿 회사 길리안(1700억원)을 인수했다. 

2009년 3월 신 회장은 그룹의 새로운 비전과 함께 M&A 강화 정책을 밝혔다. 당시 신 회장은 10년 뒤인 2018년까지 그룹 매출을 200조원까지 끌어올리겠다는 ‘2018 아시아 톱10 글로벌 그룹’ 비전을 선포했다. 

이후 롯데는 금융사업에도 뛰어들며 코스모투자자문(629억원), 교통카드서비스업체인 마이비(670억원) 등을 인수했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롯데그룹의 자산은 2008년 44조6000억원에서 2009년 48조8000억원으로 11% 증가했으며 2010년에는 67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7.5%나 늘었다.

2009년 이후에는 1조원 이상 규모의 ‘빅딜’을 연달아 성사했다. 2010년 2월 GS리테일 백화점의 마트부문(1조3000억원)을 인수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말레이시아 석유화학 회사인 타이탄(1조5000억원)을 사들였다. 2012년에는 롯데하이마트(1조2480억원)을 사들이며 사업을 다각화와 외형 확대에 힘썼다.

신 회장은 지난해에도 호텔롯데와 롯데제과를 통해 해외사업체를 인수하며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사업과 기존사업의 미래 성장 동력 발굴, 성장 기회 모색을 위한 투자의 일환으로 그룹 차원에서 M&A를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영권 분쟁으로 롯데쇼핑 ‘잃어버린 5년’…매출 30조→20조로 ‘뚝’

하지만 롯데그룹의 무리한 M&A로 인한 문제점도 다수 지적된다. 우선 해외업체를 과도하게 인수합병하면서 인수 차입금이 늘어났다. 실제로 롯데그룹의 차입금 부담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롯데그룹의 순차입금(총 차입금-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28조475억원으로, 전년 동기(23조2616억원)보다 20.5% 늘었다.

이와 관련해 롯데지주 관계자는 “그룹의 M&A는 중장기적 관점으로 투자한 것이고 각 사업에 따라 결실을 맺는 시기가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 초 롯데케미칼이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하면서 생산능력과 인력 등을 고스란히 갖고 왔고,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지난해 말 글로벌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 공장인 시러큐스 공장을 인수한 뒤 해외 물량 수주 활동을 하는 등 ‘스텝 바이 스텝’으로 진행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2010년대 후반에 들어 롯데그룹은 주요 사업 중 하나인 유통사업이 전례 없는 불황을 겪으며 정체기에 들어갔다. 이러한 배경에는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가 자리 잡고 있다. 사드 사태는 사드부지 선정을 둘러싼 정치 안보 리스크가 수출 기업에 큰 타격을 입힌 사건으로, 최대 피해 기업이 바로 롯데그룹이었다.

지난 2019년 중국 랴오닝성 선양(瀋陽) 롯데백화점 앞에서 한복을 입은 공연단이 풍물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사드 사태 이후 중국이 한국에 가한 각종 보복 조치는 국제 정치 리스크에 따른 산업계 충격파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롯데는 경북 성주 사드 배치 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으로부터 전 계열사 사업자 세무조사를 받기도 했다. 롯데쇼핑은 사드 사태를 기점으로 연결 기준 30조원에 육박했던 매출이 20조원 밑으로 내려왔다.

사드 사태 이전까지 롯데는 중국에서 백화점 5곳, 롯데마트 110여곳을 운영했으나, 현재는 롯데백화점 청두점 1곳만 남았다. 앞서 롯데는 2018년 4월 중국 내 롯데마트 매장을 모두 팔았고, 그해 7월 롯데백화점 철수를 결정했다. 2019년 3월에는 중국 내 제과, 음료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2015년 시작된 경영권 분쟁으로 ‘잃어버린 5년’을 보내기도 했다. 경쟁사가 미래 먹거리를 위한 체질 개선을 가속화 하는 동안 롯데는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중요한 결정들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8년엔 사법리스크가 발생하면서 총수 부재 상황을 겪었고 일본 불매운동 당시에는 일부 합작사가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타격을 입었고 유통, 호텔, 테마파크는 물론 주력사업이었던 롯데케미칼까지 실적이 좋지 않아 롯데그룹에겐 위기의 해였다. 이에 신 회장은 최근 사장단 회의(VCM)에서 “생존에만 급급하거나 과거의 성공 체험에 집착하는 기업은 미래도 존재 의의도 없다”며 “혁신적으로 변하지 못하는 회사들은 과감한 포트폴리오 조정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사업이 중요한 상황에서 롯데그룹은 유통 산업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그룹 차원의 신성장 동력 찾기에 나섰다. 유통에 집중됐던 그룹 역량을 화학 산업 등으로 분산시키며 리스크 줄이기에 돌입했다. 

2017년 4월 3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롯데그룹 50주년 창립 기념식에서 신동빈 회장이 ‘뉴롯데 램프’를 점등하고 있다. [사진 롯데그룹]
롯데는 지난해 헬스앤웰니스, 모빌리티, 지속가능성 등 3가지를 그룹의 미래를 이끌 사업으로 꼽고 ‘5년간 총 37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올해에는 여기에 뉴라이프 플랫폼을 더한 4가지 테마로 신사업을 추진 중이다. 잃어버린 5년 만회를 위해 서둘러 ‘뉴 롯데’를 가속화시키는 모습이다. 

신 명예회장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선택과 집중’에 대해 늘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잘 모르는 사업을 확장 위주로만 경영하면 결국 ‘국민에 피해를 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규사업은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고 핵심사업 역량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진행한다’는 것이 신 명예회장의 경영 철학이었다.

신 회장의 뉴롯데 청사진에는 이 같은 명예회장의 뜻이 담겨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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