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면 될까…역전세에 부동산 ‘줄도산’ 공포 커져
[9월 부동산 위기설] ① DSR 규제 완화에도 ‘빌라 뇌관’ 여전
전세가율 높은 주택 임대인, LTV·DTI 충족 못해
[이코노미스트 민보름 기자] “이 일대는 역세권이라 전부터 빌라, 원룸 전세 수요가 많았는데 지난해 말부터 문의가 많이 줄었다. 신혼부부는 역에서 멀고 비싸더라도 아파트로 가려하고 싱글 직장인들은 전세보다 월세를 찾는다.”
영등포구 소재 H공인중개사무소 대표의 얘기다. 강남권을 비롯한 일부 주거선호지역 아파트 전세는 반등하고 있는 반면 빌라(다세대), 오피스텔 등 비(非)아파트 전세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같은 시도 내에서도 주거선호지역과 비선호지역 간 전세가격변동률 편차가 심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가을 이사철 주택 임대차 시장에 ‘보증금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완화할 계획을 밝히면서 일부 집주인들의 숨통이 트이는 모양새지만, 통상 전세가율이 높고 다주택 소유주가 많은 다세대나 연립주택은 이 같은 규제완화 혜택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세값 하락에 신규계약 늘어
부동산R114가 올해 상반기 서울 소재 주택의 전월세 거래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대비 신규계약 비중은 높아진 반면, 갱신계약 비중은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금리인상과 연이어 불거진 전세사기 사건의 영향으로 전세가격이 하락한 여파로 풀이된다.
올해 상반기 서울 아파트 전월세는 12만8821건 거래됐고 이 가운데 56.9%가 신규계약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아파트 전월세 신규계약은 47.0%로 1년 만에 10%p 가까이 높아졌다. 아파트보다 역전세 위험이 큰 다세대·연립의 신규계약 비중은 아파트보다 높았다. 올해 상반기 다세대·연립 전월세 거래량 5만9224건 중 신규계약이 61.2%로 60%를 넘겼는데 이는 지난해 54.2%보다 7%p 높아진 수치다.
반면 갱신계약 비중은 낮아졌는데 그중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전월세 계약은 33.1%로 지난해 상반기 65.3% 대비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임대차계약 2년이 종료된 뒤 임차인이 1회에 한해 2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 권리다. 다만 전세가가 하락하면서 임차인 보호를 위해 도입된 계약갱신청구권의 효용이 당장은 사라진 상태다.
지난 2분기 서울 아파트 갱신계약 중 감액갱신 비중은 45.3%로 40.2%를 기록한 상승갱신 비중을 앞질렀다. 이렇게 감액갱신을 통해 집주인이 임차인에게 돌려준 보증금은 1억1969만원이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3년 5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를 보면 주택종합전세가격지수 변동률은 2022년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1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위험도 높은 빌라, 정부지원도 빗겨가나
다만 전세가 하락폭은 지난해 말에서 올해 초 저점을 찍은 후 줄고 있다. 최근의 전세가 회복현상은 상당부분 서울 내 주거선호지역 아파트에 국한된 모양새다. 상대적으로 보증금이 비싼 아파트는 지난해 금리인상 이후 급락했으나 여전한 수요에 힘입어 몇 달 새 빠르게 반등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주간아파트 가격동향을 보면 6월 들어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와 용산구, 양천구와 영등포구, 동작구 등 교통인프라나 학군을 갖춘 서울 일부 지역 아파트 전세가격 변동률은 일제히 상승으로 돌아섰으며 상승폭도 높아지고 있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 소재 초역세권 신축 아파트인 아크로리버하임 전용면적 84㎡ 타입 전세가는 지난해 2월 25억4000만원에 신고가를 기록한 뒤 올해 상반기 17억~18억원 대 거래가 나오는 등 급락했다. 지난달부터는 다시 22억원7000만원, 22억5000만원 계약이 등장하며 2021년 수준을 회복하고 있다.
이에 비해 다세대·연립 시장은 회복이 더디다. 같은 흑석동 소재 U빌라는 지난해 5월 지하층 전용면적 55㎡타입이 보증금 3억5000만원 전세에 거래됐으나 지난 5월 이보다 넓은 전용면적 59㎡타입 2층이 보증금 2억5000만원, 월세 35만원 반전세로 신규 거래됐다. 지하층 선호도가 매우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격이 떨어진 셈이다.
직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집계된 수도권 다세대·연립 거래를 분석한 결과, 전용면적 3.3㎡ 당 평균 전세값이 2년 전보다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수요자가 감소한 상황에서 집주인이 어렵게 새 임차인을 찾아도 신규계약 보증금으로 기존 임차인 보증금 전액을 돌려주기 어렵다는 뜻이다.
정부는 본격적인 이사철을 앞두고 역전세난 방지책을 내놨지만 지원 대상은 한정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이달 말부터 전세반환 목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는 개인 임대인에게 1년간 한시적으로 DSR 40% 규제를 풀고 이보다 대출 한도가 높아질 수 있는 DTI(총부채상환비율) 60%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전세가율이 높은 빌라 임대인은 전세보증금만으로 이미 LTV(담보인정비율) 한도를 채우는 등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점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에서 다세대주택은 아파트 대체재로 여겨진 지가 오래돼 주택공급이 지속적으로 부족하고 아파트 가격이 오를 대로 올랐을 때 동반상승할 여지가 있는 정도”라면서 “현재로선 부동산 경기가 침체된 데다 전세사기 여파로 다세대 인기가 떨어져 향후 몇 년간 시세 상승은 어렵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원은 “지난 부동산 상승기에는 빌라와 오피스텔까지 매매와 전월세 가격이 함께 올라 일명 ‘갭투자’가 몰린 것”이라며 “자세한 DSR 완화 계획은 곧 금융위원회에서 밝히겠지만 이 같은 일부 갭투자자가 보유한 주택들은 수혜 대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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