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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에서 AI가 쓴 특종 기사를 읽게 될까? [한세희 테크&라이프]

이미 ‘정형화된 기사’ 쓰는 AI 도입…거대 언어모델 적용 시도
“새 기술로 스스로 혁신할 상황에 놓인 언론…방향 고민할 때”

구글은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월스트리트저널 등의 언론사에 생성 AI 기반 기사 작성 보조 도구를 시연했다.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인공지능(AI)에 대체될 직업을 꼽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기자다. 이미 증권 시황·기업 실적·스포츠 경기 결과 등의 기사는 상당 부분 AI가 쓰고 있다. 미국 뉴스 통신사 AP가 기업 실적 공시 기사를 AI 프로그램에 맡긴 것이 2014년이다.

AI는 주로 기업 공시나 야구 경기 결과 같이 구조화된 데이터가 풍부한 분야에 대한 정형화된 기사를 작성할 때 쓰인다. 가치 판단이 들어갈 여지가 거의 없는 스트레이트 속보 기사에 적합하다. 이런 기사는 AI에 맡기고 기자는 남는 시간에 취재를 더 해서 풍부한 스토리와 인사이트를 담은 기사에 집중하는 것이 기자와 기술이 공존하는 방법일 터다.

하지만 AI 기술의 발달은 점점 더 언론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오픈AI의 챗GPT나 구글의 바드 같은 초거대 언어모델은 사람 기자 못지않게 그럴듯한 글을 만들어 낸다. 생성 AI의 결과물은 단순 속보 기사 수준을 넘어선다.

구글, AI 기사 작성 도구 시연

이런 가운데 구글이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월스트리트저널 등의 언론사에 생성 AI 기반 기사 작성 보조 도구를 시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구글 내부에선 ‘제네시스’라고 부르는 이 AI 도구는 사건의 세부 정보를 취합하고 관련 뉴스를 모아 기사를 작성할 수 있다. 어떤 형식의 기사를 쓸지 지정하고, 기사 제목도 뽑을 수 있다. 기사 게재 후엔 기사에 대한 소셜미디어 포스팅을 쓸 수도 있다. 자료 수집·기사 작성·제목 달기·소셜미디어 홍보 등 기사 작성의 전 부분을 자동화할 수 있다.

구글은 제네시스를 언론인을 위한 개인 비서로 소개했다고 한다. 기자들이 업무 부담을 줄이고, 취재 등 보다 중요한 일에 시간을 더 쓸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이 소식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이제 언론사 내부 시스템에 입력된 정보 보고만으로 기사를 자동으로 쓸 수 있게 되나?”라는 것이었다. 기자들 사이에서 농담처럼 도는 말이 “기자는 기사만 안 쓰면 참 좋은 직업”이라는 얘기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거나 독특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는 것은 분명 가슴 뛰는 일이다. 하지만 이를 기사로 옮기는 일은 늘 어렵고 부담스럽다. 취재하며 얻은 정보를 입력한 후 속보·해설 등의 스타일을 지정하면 AI가 기사를 써 준다면 얼마나 좋겠나? 맘에 드는 기사가 나올 때까지 프롬프트를 조정해 가며 기사를 계속 토해내게 할 수 있을까?

물론 진지한 언론인들은 기사 작성 AI에 마음이 편치 않다. 뉴욕타임스 경영진은 제네시스 시연을 보고 “불편한 느낌(unsettling)이 들었다”고 보도됐다. 기사는 여론을 일으키고 정책이나 사회 분위기의 변화를 불러오는 등 큰 영향력을 가졌고, 그만큼 책임도 크다. 다양한 사실과 이해관계를 담기 위한 미묘한 뉘앙스도 중요하다. 기사 작성 AI 활용에 부담을 느끼는 이유다. 게다가 생성 AI는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틀린 말이라도 자신 있게 내뱉는 ‘환각’ 문제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사실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언론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론은 새 기술을 받아들여 스스로를 혁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 독자들의 주목과 광고 시장 점유율을 구글과 페이스북 등에 거의 빼앗긴 상황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일하면서 독자를 설득할 만한 좋은 기사를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온라인 매체 인사이더는 최근 기사 작성에 AI를 도입하는 방안을 시험한다고 밝혔다. 베테랑 기자들을 참여시켜 혹시 모를 위험을 낮춘다는 계획이다. 버즈피드는 대표 콘텐츠인 온라인 퀴즈 제작에 AI를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기업 오픈AI가 생성형 AI 서비스 ‘챗GPT’를 출시한 후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사진 AFP/연합뉴스]

생성 AI가 온라인 지식 생태계 어지럽힐 수도

AI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현대 민주주의의 큰 기둥인 언론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 직원들에게 회람된 e-메일에는 이런 고민이 잘 담겨 있다. 여기엔 “우리는 생성 AI가 대중과 저널리즘에 갖는 힘과 잠재력,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생성 AI를 활용해 저널리즘의 임무를 더 잘 수행할 창의적 방법을 찾는 노력의 최전선에 서고자 한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AI가 기사를 작성하고, 게재 전 기자가 꼼꼼히 다시 검토한다면 AI가 업무 효율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치 구글 지메일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에서 AI가 e-메일 초안이나 보고서를 자동으로 작성하는 기능을 활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보도하고, 기사를 쓰고, 사실을 확인하는 기자의 역할을 AI가 대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이 그럴듯해 보이는 기사(처럼 보이는) 콘텐츠를 인터넷에 무분별하게 쏟아내는 데 악용될 수도 있다. 형편이 어렵거나 저널리즘의 기준이 낮은 곳에서 검색 결과 노출이나 배너 광고 수익 확대를 위한 기사를 쉽게 많이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특히 온라인 검색 광고나 디스플레이 광고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고, 기사에 포함된 상품 페이지 링크를 타고 들어온 사용자가 구매할 경우 수익을 나누는 마케팅이 활성화돼 있는 상황이라 이런 우려는 더 크다. 검색 상위 노출에 최적화된 기사가 마치 사람이 정성 들여 쓴 기사 같은 품질과 함께 웹을 휩쓸 수도 있다.

이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의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에서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게임 팬들이 모인 서브레딧(게시판)이 있다. 한 게임 정보 사이트가 이곳의 게시물을 긁어가 이를 바탕으로 AI가 작성한 기사를 올린다는 의혹이 일었다. 한 레딧 사용자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새 캐릭터가 나온다는 거짓 정보를 담은 게시물을 일부러 올렸더니, 이 내용이 문제의 사이트에서 바로 기사로 나오더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가짜 뉴스로 AI를 낚은 셈이다.

언론으로선 혁신적 기사로 독자에 다가갈 수 있으면서, 동시에 AI가 무분별하게 생성한 신뢰도 낮은 콘텐츠로 온라인 지식 생태계를 어지럽힐 수도 있는 도구를 갖게 된 것이다. 언론의 선택은 어느 쪽일까? 이것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소셜미디어나 포털 뉴스 섹션에서 클릭을 유도하기 위한 짜깁기 기사, 인기 검색어에 얹혀 가는 기생형 기사 등은 AI가 나오기 전 사람 기자들이 이미 쓰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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