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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1.6건씩 해외 유출, 누적 피해 규모 25조원…삼성도 위험하다

[경제 안보 위협하는 산업스파이]①
기술 유출 피해 심각한데, 산업스파이 5명 중 1명만 징역형
산업스파이 처벌 위한 법·제도 강화해야

산업스파이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이데일리TV 문다애 기업팀장] #지난 6월 검찰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자료를 빼돌려 중국에 '복제공장'을 지으려 한 혐의로 삼성전자 상무, SK하이닉스 부사장을 지낸 최모(65) 씨 등 7명을 재판에 넘겼다. 이번 기술 유출로 인해 피해는 최소 3000억원, 많게는 수조원에 달할 것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최 전 상무가 실형을 살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은 최 전 상무를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산업기술보호법)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문제는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은 '내부자'가 주요 ’산업기술'을 빼돌릴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재판에서 변호인은 최 전 상무가 자료를 빼돌린 직원들에게 이를 지시하지 않았고, 직원들이 빼돌린 자료 또한 산업기술보호법상 보호 대상인 국가핵심기술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은 '기술'만 보호한다" 며 "최 전 상무 변호인 측은 이들이 빼돌린 공장설계도가 기술에 해당하지 않는 '도면'인 만큼 산업기술보호법상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5월 한국 정보당국은 서울 한복판에서 운영 중인 중식당 ‘동방명주(東方明珠)’가 사실상 중국 정부의 비밀경찰 거점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들을 ‘식품위생법’과 ‘옥외광고물법’ 위반 혐의로만 검찰에 송치했다. 우리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정보 수집 활동은 ‘영사 관계에 관한 빈 협약’ 위반이자, 대한민국 주권을 노골적으로 침해한 행위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들이 ‘외국인’이기에 간첩죄 적용 대상 국가를 '적국'(북한)으로 제한한 현행법 아래서는 간첩죄로 처벌이 불가능하다.

기술이 안보인 시대다.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패권전쟁 속에서 미·중 양국이 한국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애쓰는 이유는 세계 6위의 군사력이 아닌 반도체, 2차전지 등 첨단산업 기술 보유국이어서다. 

첨단산업 기술은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경쟁력이지만 이를 보호하기 위한 법과 제도는 곳곳이 구멍이다. 국가에 위해를 가하는 '간첩'을 규정하고 처벌조항을 담고 있는 '형법 제98조'를 개정하기 위해 여야가 힘을 모은 이유다.

형법 98조는 '적국(북한)'을 위해 일한 자만 처벌하도록 돼 있어 북한 외 다른 나라에서 보낸 간첩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여야는 북한뿐 아니라 외국 정부나 외국인 단체 등이 국가 핵심기술과 방위산업기술을 빼돌릴 경우에도 간첩죄로 처벌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적 이익을 목적으로 기술을 해외에 유출하는 경우와 외국 정부의 사주를 받아 유출하는 행위가 모두 단순 기술 유출로 처벌되고 있다”며 “외국 정부를 위해 기술을 유출하는 행위는 타국을 이롭게 한 행위로 ‘간첩죄’로 처벌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여야 정치권뿐 아니라 대기업, 행정부 등 모두가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며 “산업 기술 확보가 앞으로의 경제 패권을 가를 것인 만큼 형법 개정안은 꼭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원행정처는 국가안보를 목적으로 제정한 형법 98조를 개정해 산업스파이에도 적용하는 것은 과잉 입법이란 입장이다. 또한 우방국과 비우방국을 구분해 간첩죄 처벌 수위를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해 법 개정 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국가기밀 빼돌려도 '징역 1년' 솜방망이 

법원은 형법 98조 개정에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군사기밀보호법’ 및 ‘산업기술보호법'으로 처벌이 가능한 만큼 형법까지 개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기존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데 형법을 고쳐 무거운 처벌 규정을 두는 것은 법체계에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법원의 주장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형법 98조가 전쟁 중인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제정된 탓에 현재는 사실상 사문화한 만큼 법체계 정비 차원에서라도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호정 법무법인 태하 고문 변호사(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가 안보를 침해한 간첩행위가 발생해도 현행 간첩죄는 적국만 적용할 수 있는 탓에 군사기밀보호법으로만 처벌할 수 있다"며 "이번 형법 개정안은 사문화한 간첩죄 규정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3년 일본 후지TV 서울지국장이 군사기밀을 빼내 일본 정부에 전달한 사건, 2016년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해군 장교가 해외연수 중 중국 정보기관에 포섭돼 구축함 관련 군사기밀을 유출한 사건이 있었지만, 범인이 일본인과 자국민인 탓에 간첩죄 적용이 불가능해 군사기밀보호법으로 처벌했다.

간첩죄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최고 사형까지 가능하다. 반면 군사기밀보호법은 '군사기밀을 탐지하거나 수집한 사람이 이를 타인에게 누설한 경우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등 상대적으로 처벌 수위가 낮다. 

김호정 교수는 "군사기밀보호법과 산업기술보호법은 형법상 간첩죄와 달리 적을 이롭게 하거나, 국가의 안전을 해할 목적이 아니어도 처벌을 할 수 있게 한 탓에 상대적으로 법정형이 간첩죄보다 낮다"며 "각각의 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대상과 범죄가 성립하는 요건이 다른 만큼 법체계에 혼란을 일으킨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두식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는 “현대사회에서의 ‘전쟁’은 군사적 우위보다 ‘경제적 우위’를 확보하는 형태로 변화했다”며 “기술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일반적인 시장 정보도 국가기밀이 될 수 있고, 이런 부분을 포괄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상헌 의원은 “우방국과 비우방국에 차등을 두고 형량을 정할 경우, 이를 명확히 구분지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외교 문제로 비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두식(사진)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는 “기술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일반적인 시장 정보도 국가기밀이 될 수 있고, 이런 부분을 포괄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사진 세종]

우방국 간첩은 봐주자?…처벌 수위 차등 논란 
 
법원행정처는 만일 형법 98조를 개정하더라도 ‘적국·비우방국·우방국·동맹국’이냐에 따라 처벌 수위를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영재 법원행정처 차장은 지난 6월 국회 법사위원회 형법 개정안 회의에서 “우방국, 동맹국 또는 이에 준하는 외국에 제공할 수 있는 정보와 적국, 준적국 또는 이에 준하는 외국에 제공할 수 있는 정보의 종류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률적으로 높은 법정형으로 처벌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우방국이라고 해도 친소 여부에 따라 법정형을 달리 적용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냈다. 범죄 ‘행위’가 아닌, 범죄 ’행위자’에 따라 처벌을 차등하자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국제 정세가 수시로 바뀌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적국과 우방국을 구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반박한다.

아울러 외국을 동맹국과 비우방국으로 구분해 법정형을 달리하는 국가는 없다며 법원행정처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은 자국에 해가 되거나 타국을 이롭게 하는 행위에 대해 모두 ‘간첩죄’를 적용해 중형에 처하고 있다.

김호정 교수는 “급변하는 오늘날의 국제정세에 비춰 적국과 우방국을 구분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며 “외국을 다시 동맹국과 비우방국으로 구분해 법정형을 달리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타당하지도 않고, 이런 국가는 찾아볼 수도 없다”고 했다.

김두식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또한 “경제와 안보냐 등 적용 기준에 따라 우방국이 달라질 수 있는데 국가간 친소 여부에 따라 간첩죄를 규율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다”며 “실제로 대부분 국가는 ‘외국’이라는 개념을 일괄적으로 적용해 처벌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맹국에 저지른 범죄도 대한민국에 대한 범죄와 동일하게 처벌하도록 한 형법 104조의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교수는 "동맹국의 국가기밀을 침해했다고 자국의 형법으로 처벌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형법 104조 조항은 삭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동맹국인 미국은 1996년 발생한 미 해군정보국 분석관 로버트 김 기밀유출 사건 때 한국 정부에 미국 국가기밀을 제공했다며 간첩죄 위반으로 김 씨에게 징역 9년형을 선고한 바 있다. 현행법대로라면 한국의 이익을 위해 미국의 국가기밀을 제공한 로버트 김을 한국 정부 또한 처벌해야 한다. 



간첩죄 개정에 기업들 목메는 이유 

기업들,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LG전자·포스코 등 전 세계 산업스파이의 표적이 된 첨단기술 보유기업들은 형법 98조 개정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23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대한민국의 과학 인프라 국가경쟁력은 전 세계 2위, 국제 특허출원은 세계 4위, 세계 시장점유율 1위 제품도 4위를 기록하는 등 산업스파이들이 군침을 흘리는 기술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솜방망이 처벌 탓에 '한탕'을 노리는 내부자들의 기술 유출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5년간 적발된 산업기술 해외 유출 사건은 총 93건에 달한다. 한 달에 1.6건씩 해외로 유출된 셈이다. 대부분 반도체(24건)와 디스플레이(20건), 이차전지(7건) 등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인 첨단 산업이다. 누적 피해 금액은 25조원에 달한다. 

그러나 이중 징역형을 산 비율은 20%에 그친다. 대부분 초범인 데다 전과가 없다는 이유로 법원이 관대한 처벌을 내렸기 때문이다.

산업기술 유출사건의 무죄율은 34.6%로, 형사 사건의 무죄율 3.0%와 비교해 10배나 높다. 게다가 1심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365명 중 집행유예가 80%(292명)에 달했고, 실제 실형은 20%(73명)에 불과했다. 국외로 기술 유출 시 법정형은 15년 이하의 징역형이지만, 실제 양형은 1년~3년 6개월에 그쳤다. 

재계에선 최근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전쟁이 심화하면서 어느 때보다 산업스파이 근절을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은 미국의 기술 봉쇄로 반도체·청정에너지·로봇 공학·항공 등 국가 전략 산업에서 고급 기술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한국·일본·대만 등 동북아 지역에서 웃돈을 주고 인재를 영입해 첨단산업을 육성하면서 산업스파이 또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 주요 국가들은 스파이 방지에 적극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적으로 기술 탈취 국가로 악명높은 중국은 자국 기술 유출을 차단하기 위해 강력한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중국 정부는 자국의 이념과 체제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반간첩법(방첩법)’ 제정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간첩 행위의 정의를 ‘국가 안보와 이익을 위협하는 활동’으로 확대했고, 이어 간첩 행위에 기존 규정한 국가기밀 제공 외에 국가의 안전이나 이익과 관련된 문건, 데이터, 자료의 제공·절취도 포함했다. 스파이 행위 적발을 위해 당국 권한을 강화하고, 스파이 행위에 대한 벌칙도 크게 높여 사형도 가능하게 했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경제 스파이법을 개정해 국가의 전략기술을 해외로 유출한 경우 간첩죄로 가중 처벌해 징역 30년형 이상도 가능하다. 대만은 지난해 국가안전법을 개정했다. 정치·군사 영역뿐 아니라 경제산업 분야의 기술 유출도 간첩행위로 포함해, 5년 이상 12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하고 있으며 사형도 가능하다. 일본은 지난해 첨단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경제안전보장법을 제정했다. 첨단기술 보호에 국가가 발 벗고 나서는 세계적 추세 속에서 한국만 손을 놓고 있다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재계에서는 기술 유출에 대한 법정형을 상향하는 것만으로도 시도 자체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동호 한국산업보안한림원 회장(포스코인터내셔날 상무)은 “글로벌 기술패권 시대에서 대한민국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우리도 경쟁국에 의한 조직적인 산업기술 유출 행위를 ‘간첩’에 준해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사진)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5년간 적발된 산업기술 해외 유출 사건은 총 93건에 달한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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