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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시장 50년 지배한 벽식구조…왜 韓서 인기 끌었나

[K아파트 구조 패러다임] ① 건축비 절감 등 강점에도 한계 여전
‘아파트 공화국’ 이끌었지만 재건축·리모델링 어려운 단점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한 시민이 송파구 일대 아파트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민보름 기자] “지금 지어지는 아파트는 재건축이 사실상 어렵다. 앞으로는 선진국처럼 100년 넘게 유지될 수 있는 주택을 지어야 한다.”

서울시가 신속통합기획을 시행하고 정부 역시 1기 신도시 특별법(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하는 등 도시정비사업이 활성화되는 가운데 새로 짓는 공동주택 구조와 관련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신축 아파트 단지 대부분은 '수십년 뒤 현재처럼 재건축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이코노미스트’ 취재에 따르면 주택시장에서 채택되는 아파트 설계 상당수는 내력벽식구조(벽식구조)다. 이에 업계 전문가들은 현재 흐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내구성과 공간활용도 측면을 고려할 때 현재의 벽식구조가 국내 상황에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벽식구조가 장악한 시장 흐름을 바꾸는 등 미래세대를 위해 한국 주택설계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벽식구조 ‘대세’인 국내 아파트, 변화 필요성 

국토교통부 집계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7년 6월까지 준공된 전국 500가구 이상 아파트 중 98.5%가 벽식구조로 지어졌다. 2021년 국정감사 당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025년까지 공급을 계획한 아파트의 83.9%도 벽식구조였다. 또한 분양아파트 총 4만928호 중 97.2%인 3만9778가구 역시 벽식구조였다. 

이처럼 국내 부동산시장에서 벽식구조가 ‘대세’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벽식구조는 기둥 대신 벽체가 건물 하중을 지탱하는 건축방식이다. 기둥식구조의 대표격인 라멘구조는 수직으로 건물 하중을 지탱하는 기둥과 각 기둥 사이를 수평으로 연결하며 슬래브(바닥)을 떠받치는 보(대들보)를 골조로 한다.

하지만 벽식구조는 라멘구조와 달리 천장에 보를 설치할 필요가 없어 층고가 낮아진다. 층고가 낮아지면 동일 고도제한 지역에서도 더 많은 가구 수 공급이 가능해진다. 

또한 벽식구조는 현장에서 철근을 배근하고 콘크리트를 붓는 RC(Reinforced Concrete) 공법으로 시공된다. RC공법은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용이하고 공사기간도 짧은 편이라 건축비용 절감에 효과적이다. 

소비자들의 획일적 구조 선호와 함께 주택표준화 정책 역시 벽식구조 대중화에 한 몫 했다. 벽식구조는 여러 개의 내력벽이 세대 내부에 배치돼야 하는 특성 상 층마다 세대별 구조가 획일화 되게 설계됐다.

당시 주택 정책은 평면 설계는 물론, 자재 품질과 수치까지 동일하게 지정하던 주택표준화가 시행되고 있었다. 이때부터 거실과 식사공간, 주방공간이 일렬로 배치된 일명 ‘LDK(Living·Dining·Kitchen)’ 구조가 아파트 구조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주택소비자들은 LDK구조가 적용된 판상형 평면, 그 중에서도 4인 가구 활용도가 높은 전용면적 84㎡ 타입을 여전히 선호하고 있다. 

철거 힘든 내력벽…구조변경·리모델링 어려워

그러나 최근 인구구조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장수명 주택’ 건설 필요성도 대두되며 벽식구조 설계의 한계가 점차 드러나는 추세다.

2020년대 들어 공급되는 고급 아파트는 가구면적에 비해 거실, 주방 등 가족 공동공간이 넓고 방의 개수가 적은 특징을 보인다. 1~2인 가구가 늘고 전반적인 가족 구성원 수가 줄고 있는 경향이 반영됐다. 한 설계 전문가는 “기둥식은 기둥 사이 간격을 넓게 할 수 있지만 벽식구조는 내력벽 사이 간격이 좁아 평면을 자유롭게 설계하기 어렵다”면서 “세대 방과 거실, 방과 방 사이 등에 위치한 내력벽은 철거가 안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단점은 리모델링 시에도 문제가 된다. 현재 법정 용적률을 채워서 짓고 있는 아파트 대부분은 향후 일반분양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십년 뒤 아파트가 노후화되면 리모델링을 하거나 1대1 재건축을 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도심의 고층건물들은 대부분 기둥식으로 지어져 리모델링을 거듭하며 수십년에서 백년 이상 활용되고 있다. 기둥식 건물은 골조만을 남긴 채 모두 철거한 뒤 커튼월 등 외벽을 새로 설치하는 등 리모델링 시공이 용이하다. 또 기존 벽체 또한 모두 가벽 형태여서 필요에 따라 내부구조를 바꿀 수 있다. 

이에 비해 벽식구조는 리모델링 시에도 내력벽을 유지한 채 공간을 활용해야 해 내부 평면이 기형적 형태가 되기 쉽다. 재건축 대안으로 리모델링 사업 추진이 활발히 추진됐던 지난 정권 당시 ‘내력벽 철거’ 문제가 부상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최원철 한양대학교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내력벽 철거는 안정성 문제가 있고 향후 건축물 재활용 측면을 고려해서도 벽식이 아닌 기둥식 설계로 가야 한다”면서 “이번 지하주차장 붕괴는 설계 자체의 문제가 아닌데 기둥식의 한 형태인 무량판구조가 원인이라는 식의 여론이 조성되고 있는 것 같아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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