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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폭탄’ 두려운 기업들…단기로 돈 빌리고 지분 팔기까지

[빚내서 빚 갚는다]①
기업들 단기차입금 올해 600조 넘어서
부채비율·차입금 의존도 7년 만 ‘최고’
“은행 대출 의존도 높아지면서 유동성 위기”

고금리 장기화에 단기로 돈을 빌리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이코노미스트 마켓in 홍다원 기자] 600조. 올해 상반기 기준 기업들이 단기로 빌린 돈이다. 회사 운영에 쓸 돈이 부족해 만기가 1년도 안 되는 돈을 빌리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내는 기업들까지 생기면서 유동성 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

13일 한국은행의 자금순환표에 따르면 기업(비금융법인)의 단기차입금은 올해 6월 말 기준 601조8310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564조2279억원보다 40조원가량 늘었다. 1년 전 534조2301억원에 비해 12.6% 늘었고 코로나19 전인 2019년 말보다는 54.7% 증가했다.

전체 차입금(2561조9924억원) 대비 단기차입금 비중은 23.49%에 달했다. 1년 전보다 1%포인트 이상 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말(23.89%) 수준에 육박했다.

단기차입금은 말 그대로 ‘단기로 빌린 돈’이다. 특히 만기가 1년 이내로,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돈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단기차입금이 늘어났다는 것은 기업들이 새로 빌린 돈이 늘어난 것이다. 기업들은 통상 회사 운영비로 사용할 급전이 필요할 때 단기차입금을 빌린다. 투자나 자금 조달이 아닌 기업이 영업해서 벌어들이는 돈만으로는 운영이 어려워 돈을 빌리는 셈이다. 

기업이 단기 대출에 나서게 된 건 고금리 상황이 오래 이어지면서다. 금리 불확실성 속 기업 및 투자자 수요에 맞춰 자금 조달 구조가 단기화됐다. 금리가 계속 올라 회사채는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지면서 은행 대출 의존도가 높아진 것이다.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시장의 고금리가 지속되면 기업들 중 유동성 위기에 빠지는 곳이 줄줄이 나올 수 있다. 

지분 팔고 단기로 돈 빌리고 유동성 마른 기업들

위기에 처한 기업들은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먼저 SK그룹은 지난해 말부터 SK 계열사 합산 총 차입금 규모가 100조를 돌파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말 연결 기준 SK그룹의 총차입금 규모는 104조7700억원에 달한다. 주력 계열사들 위주로 반도체, 배터리, 소재 등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면서 생겨난 빚이다. 연간 20조원이 넘는 투자를 지속해 온 만큼 그룹 부채 부담이 치솟고 있다.

업종 관련 없이 기업들은 단기로 돈을 빌리거나 차입금을 상환하기 위해 보유 지분을 팔아치우고 있다. 태영건설은 지난달 금융권에서 1900억원을 단기차입하면서 운영자금 조달과 유동성 확보 목적으로 사용하겠다고 공시했다. 이는 태영건설의 자기자본(7408억원) 대비 25.65% 수준이다. 태영건설이 금융기관으로부터 단기 차입한 금액은 2519억원에서 4419억원으로 늘었다.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재무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자금 조달에 나선 것이다. 

호텔신라는 지난 7월 보증금 등 인천공항 면세점 운영 자금 확보를 위해 1500억원 규모의 단기차입금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이는 호텔신라 자기자본의 27.8% 수준으로 단기차입금 총액은 3100억원으로 늘어났다.

넷마블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보유 지분을 팔 예정이다. 적자가 이어지면서 하이브에 투자한지 5년 반 만에 시간외 매매(블록딜)을 추진한다. 넷마블이 미국 소셜카지노 전문기업 스핀엑스 인수 과정에서 발생한 차입금을 상환하기 위해서다. 넷마블은 하이브 주식 250만주(약 6%)를 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한다. 처분 금액은 지난 6일 종가(22만7500원) 기준 5688억원으로, 넷마블 자기자본(5조6218억원)에 10.12%에 해당한다.

‘좀비기업’도 등장…고개 드는 기업 유동성 위기

게다가 번 돈으로 이자를 못 갚는 ‘좀비기업’도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10월 발표한 ‘2022년 연간 기업경영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좀비기업’ 비중은 42.3%였다. 이자보상비율은 기업의 수익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100% 미만이라는 것은 기업이 한 해 동안 번 돈으로 대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올해 역시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기업들의 어려움은 올해에도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국내 기업들의 부채비율과 차입금 의존도는 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제 전반의 유동성이 쪼그라드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제 전반의 신용 위험이 높아지면서 흑자도산까지 일어날 수 있다. 흑자도산은 영업실적이 좋고 재무가 탄탄한 기업임에도 도산하는 것이다. 기업이 단기 부채를 변제하기 위해 충분한 현금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정혜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 전반의 체력이 저하된 가운데 유동성이 위축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면서 “기업들이 직접조달 시장에서 소화가 어려워 은행 대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24년에도 4~5%의 높은 금리 수준이 지속되며 유동성 저하로 인한 금융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짚었다.

박경민 DB금융투자 연구원은 “2024년은 신용 리스크 경계감이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누적된 금리 인상으로 기업들의 차환 부담과 취약 차주의 가계대출 부실화로 경제 전반의 신용 위험이 높아지면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기”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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