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반도체 자국 우선주의 심화…K-반도체 대응 방안 찾아야
[반도체 살아야 한국 경제 산다] ④ 이규복 반도체공학회 회장 제언
반도체 육성에 수백조원 쏟아붓는 미국
시스템 반도체 강자 도약 ‘관건’
[이규복 반도체공학회 회장] 최근 들어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은 포스트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경기침체와 상관없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 간의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무역분쟁은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과 함께 향후 미래 핵심 산업 분야에 대한 패권 경쟁으로 발전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무역기술이사회(US-EU TTC) 2차 회의 공동성명을 통해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망의 재편에 대해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각국의 보조금 제한 및 칩법(Chip’s Law) 투명성, 각국의 연구개발 및 인력 투자 공동 노력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일본·대만·한국을 포함한 ‘Chip4 동맹’을 추진해 중국에 대한 반도체 무역규제를 강화했다. 이 Chip4 동맹 나라들은 전 세계 반도체 장비의 73%,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의 87%, 설계 및 생산의 91%를 차지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의 장악력이 가장 큰 동맹이 됐다.
반도체 관련 제품 및 기술에 대한 국가별 전략 자산화는 더욱 강화돼 소자·소재를 포함한 반도체 관련 제품에 대한 엄격한 수출 통제가 시작됐다. 미국·일본·유럽을 중심으로 반도체의 자국 내 생산을 원칙으로 하는 등 국가 간의 핵심 기술 보호를 위한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반도체 패권 차지하기 위한 보조금 경쟁 ‘심화’
미국은 2022년 7월 미국 내 반도체 산업 지원에 520억 달러와 세액공제 25%를 포함해 총 2800억 달러 규모의 칩법의 보조금 법안을 통과시켜 미국 내 반도체 생산공정 구축을 독려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해외 반도체 업체의 미국 내 유치를 유도해 한국·대만·네덜란드 등의 반도체 업체에서 미국 내에 추가적인 반도체 생산 공장 및 연구시설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 반도체 기업에 전방위적으로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는데, 자국 반도체 구매 시 대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 내 상위 20개 기업이 2019년에 받은 정부 보조금이 총 18억9642만 위안(약 3280억원, 기업당 160억원 규모)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이보다 훨씬 큰 최소 1000억 달러(130조원) 규모로 지원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은 구마모토현에 대만의 TSMC와 합작해 20㎚ 반도체 공정 팹(공장) 건설에 4조원을 지원하기로 했으며, 마이크론 유치에 3억2000만 달러를 지원한다. 또한, 토요타와 소프트뱅크 등 일본의 주요 대기업 8사가 공동으로 2㎚급 차세대 반도체 개발 및 생산을 위한 합작회사 ‘라피더스’ 설립에 6500억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대만의 TSMC와 소니, 덴소 등과 공동 투자로 12~28㎚ 파운드리를 구축해 자동차·제조 장비·로봇·소재 산업 등 일본의 주력 산업용 반도체 부품의 안정적인 공급망을 통한 산업 전반의 성장을 꾀한다.
유럽은 반도체 공급망 내재화를 위한 수조원 규모의 보조금 법안을 추진해 해외업체들의 반도체 관련 공장 신설을 추진되고 있다. 특히 TSMC는 독일에 14조원 규모의 반도체 생산 라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도 유럽 현지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인도·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 등 아시아권 국가의 반도체 산업 육성에 대한 정책들도 추진되고 있다. 반도체 관련 주요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법안 및 보조금 등의 경쟁적인 정책 추진으로 반도체의 전략 산업화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 되고 있다.
HBM 중심 반도체 공급 안정
2023년 메모리 중심의 반도체 수요 감소로 반도체 산업이 전반적인 약세를 보였으나, 2024년부터는 인공지능(AI) 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중심으로 전반적인 반도체 공급은 다소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챗GPT 등 생성 AI 서비스의 본격화로 인한 데이터센터의 증설, 자율주행 솔루션 장착 차량 증가 등을 고려하면 AI 프로세서와 차량용 반도체의 수요는 증가세를 보일 전망이다.
반면 반도체의 전략 자산화와 우크라이나·이스라엘 전쟁 등으로 전략물자로 관리되는 항공·우주·방산 및 AI 등 특정 반도체 품목은 지속적인 공급 부족이 전망되고 있다. 이렇게 전략물자로 분류되는 반도체의 경우 미래 시장성이 지속 증가할 것으로 보여 선제적인 기술개발과 함께 시스템 업체와 반도체 업체 간의 긴밀한 협력이 성공의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다양한 산업 분야에 반도체 기술이 적용되면서 응용 분야 중심의 소량 다품종의 설계 기술 중심으로 시스템 반도체 시장이 새롭게 재편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중소𐩐중견기업에는 새로운 시장 진출의 기회가 될 것이다.
소재‧장비‧시스템 반도체 핵심 설계 역량 강화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의 반도체 패권 경쟁은 심화되고 있다. 데이터 중심의 산업구조 개편과 AI의 전 산업 분야 융합이라는 산업 디지털화에 따라 반도체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쟁은 핵심 반도체 칩뿐만이 아니라 반도체 소재와 장비의 수출 규제 및 제재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첨단 반도체 핵심 장비 수출 규제가 일차적인 제재였다면 엔비디아의 그래픽 처리장치(GPU)에 대한 중국 수출 규제는 반도체 제품에 대한 규제라는 측면에서 그 파급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엔비디아는 중국 수출용 GPU를 추가 개발해 수출을 모색하고 있으나, 자율주행차나 AI 데이터센터에는 영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및 관련국의 장비 및 반도체 칩에 대한 수출 규제에 따라 중국은 2023년 8월부터 반도체 산업의 핵심 소재인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규제에 돌입했다. 이 두 소재를 수출하려면 중국 정부의 특별 면허가 필요하게 됐다. 중국은 전 세계 갈륨의 80%와 게르마늄의 60%를 생산한다. 이러한 상호 무역규제는 미국, 중국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러한 핵심 소재와 장비를 확보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핵심 설계 역량을 키우고 관련 팹리스 기업(설계 전문기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도 중요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우선 현재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국 대비 초(超)격차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과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를 지정해 지원에 나서고 있다. 또한,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 정책에서도 초격차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특히 지능형 반도체(PIM) 등 차세대 반도체와 첨단 패키징 개발 관련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지원과 함께 관련 대기업 중심의 산학연 협력 등으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설계, 패키징 및 공정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차세대 패키지로 떠오르고 있는 칩렛(Chiplet) 기술은 미세공정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단가와 사이즈를 줄일 수 있어, 다양한 솔루션이 발표 및 적용되고 있다. 정부의 차세대 패키징 관련 예비타당성 사업 추진도 이러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메모리 반도체의 초격차를 위해서는 차세대 메모리 구조에 대한 개발, 초미세 공정 개발, 차세대 패키징 개발 등 다양한 선제적 개발이 있어야 한다.
최근 챗GPT 등 생성 AI의 등장으로 AI 반도체와 HBM의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국내업체에서 생산하는 HBM의 수요는 급속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엔비디아의 GPU의 수요와 가격도 크게 늘고 있다. 오픈 AI는 AI 학습모델에 필요한 컴퓨팅 자원은 3~4개월마다 2배씩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GPT-3 모델을 중앙처리장치(CPU)-GPU 기반 서버에서 한 번 학습시키는데 약 1.3기가 와트시(GWh)를 소비하는데, 이는 2021년 기준 한국 전체에서 약 1분간 소비하는 전력량과 같은 수준이다. 엔비디아의 GPU 제품 독점으로, 이 회사의 H100칩 제품의 경우 개당 2만 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올해 기준 GPT-3‧4 모델 서비스를 위해서는 1만개 이상의 칩이 필요하다. 저전력, 고성능의 효율적인 시스템 및 차세대 반도체 기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초저전력의 메모리와 초고성능, 초저전력 소모의 AI 프로세서 개발이 향후 우리 생활과 산업의 디지털화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래 자동차의 경우 완전 자율주행차를 지향하고 있다. 다양한 기능구현의 한계와 배선‧제어의 복잡도 상승으로 새로운 개념의 반도체 아키텍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중심의 차량(SDV) 컴퓨팅 아키텍처가 제안되고 있으며, 다임러와 엔비디아가 해당 솔루션을 공동개발하고 있다. BMW와 퀄컴도 차세대 자율주행 솔루션 개발을 위해 협업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 입지를 강화하고 새로운 미래 자동차 시장에 지속 진출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솔루션 및 반도체 개발이 필요하다.
초저전력의 메모리와 초고성능, 초저전력 소모의 AI 프로세서나 차세대 자율주행 반도체는 반도체 기술 패권 시대의 미래를 볼 때, 필연적으로 도래한다. 이 기술을 국내에서 양산할 수 있도록 기술의 국내 내재화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반도체는 미래 산업의 핵심 요소다. 자동차·로봇·미디어·가전·농수산업·항공우주·방산 등 모든 산업에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의 지원과 산학연의 협력을 통한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시장적용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구감소에 따른 인력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어 ▲반도체 설계 인력 ▲생산 인력 ▲소재 개발 인력 ▲후공정 및 신뢰성 검증 인력 등 다양한 인력양성이 병행돼야 한다. 반도체 전문고등학교 학생부터 박사급의 인력까지 다양한 인력이 함께 양성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초격차는 국가적인 정책 방향 설정과 함께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를 통해 확보된 우리의 강점인 설계 능력, 초미세 공정 운용 능력 등을 활용해 미래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강자로 설 수 있도록 정부와 산학연의 협력이 더욱 절실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시스템 반도체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지원을 통해 국내 시스템 반도체의 글로벌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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