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AI 1년 농사’ 결실…빅테크 진격 또 막아낸 ‘기술력’ [기승전-플랫폼]
“韓 ICT 생태계 지켜라” 특명…AI 개발에 전사적 역량 투입
R&D 투자 10년 내공, 예상치 못한 ‘AI 시대’ 대응한 원동력
B2C·B2B·B2G 전 영역서 성과…AI MOU만 1년간 32건 ‘쾌거’
‘사람 모인 곳에 돈이 돈다.’ 예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시장 원칙’ 중 하나입니다. 숱한 사례와 경험으로 증명된 이 명료한 문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지금에도 유효한 듯합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스마트폰 등장과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으로 현실 공간에서 온라인으로 옮겨 갔고, 여전히 돈을 돌게하고 있죠. 기차를 타고 내리는 정거장을 의미하는 ‘플랫폼’은 ICT 시대를 마주하며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서비스가 도달하는 ‘종착역’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매력을 높여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으려는 플랫폼 기업의 생리를 ‘경제적 관점’에서 들여다보겠습니다. 당신이 머무는 종착역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위기·상실·고비·난관·곤경….
2023년 한 해 동안 네이버 내부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온 단어들이다. 한국시간으로 2022년 12월 1일, 미국 기업 오픈AI(Open AI)가 챗GPT(Chat GPT)를 내놓으면서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 기술 경쟁 촉발되자, 네이버는 위기감을 느꼈다. 실제로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 등 네이버와 직접 경쟁 구도에 있는 빅테크는 자사 검색 엔진에 생성형 AI 기술을 발 빠르게 접목하기도 했다. 구글·MS·오픈AI가 ‘한글 서비스 강화’를 내걸었을 땐 네이버 내부에서 “큰일 났다”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오기도 했다.
일각에선 최근 1년을 열강이 이 땅의 주권을 짓밟았던 ‘구한말 시기’로 빗대기도 한다. 한국은 구글·MS·아마존 등 거대 플랫폼 기업이 점령하지 못한 이례적인 국가다. 외산 플랫폼의 종속 없이 자체적인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를 구축해 왔다. 실제로 한국은 세계 검색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한 구글이 힘을 못 쓰는 유일한 곳이다. ‘국가적 특색’으로 진출이 제한된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면, 자체적으로 전 국민이 사용하는 검색 포털을 지닌 나라는 매우 드물다.
프랑스에서 중소기업 디지털경제부 장관과 문화부 장관 등을 지낸 플뢰르 펠르랭 코렐리아 캐피털 사장은 최근 네이버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위치는 아주 독특하다”며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지배적인 자국 서비스 개발’에 성공하지 못했다. 프랑스 디지털경제부 장관으로 일할 때 한국의 성공을 보고 낙담하면서도 부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네이버는 검색 엔진으로 자국 시장 점유에 성공한 세계에서 유일한 사례”라며 “주목할 만하고 인정하고 강조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평했다.
8월 24일 ‘하이퍼클로바X’ 공개
네이버는 생성형 AI와 빅테크의 한글 서비스 강화가 한국 특유의 ICT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봤다. 곧장 생성형 AI 개발 비전을 대외에 발표하고, 서비스 마련에 전사적 역량을 쏟아부었던 이유다. 네이버는 위기를 솔직하게 인정함과 동시에 자신감도 내비쳤다. 그간 구글·야후 등 글로벌 검색 포털의 국내 시장 진출에 ‘한국 특화’ 기능으로 대응하며 성과를 냈던 경험을 근거로 “시장 방어에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 구글과의 경쟁에서 지식iN·쇼핑·길 찾기·정책 정보 등을 한국적 특색을 입힌 서비스를 무기로 승리했다면, 이제는 기술력 측면에서도 밀리지 않으리란 배짱을 부리기도 했다.
네이버는 연초 대외에 내비쳤던 자신감을 최근 1년간 성과로 증명했다. 지난 8월 24일 생성형 AI 서비스를 구현하는 기반인 초대규모 AI 모델 ‘하이퍼클로바X’ 공개가 시작이다. 하이퍼클로바X는 초기 챗GPT에 접목된 GPT-3.5 모델보다 한국어 데이터를 6500배 더 많이 학습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다.
하이퍼클로바X 공개 이후엔 이용자를 계속 플랫폼에 붙잡아 둘 생성형 AI 서비스를 대거 공개하며 경쟁력을 지속해 끌어올렸다. 특히 기업 간 거래(B2B) 영역에서 다수의 솔루션을 출시했다. 생성형 AI 기술로 ‘돈’을 벌고 있단 뜻이다. 현재 초대규모 AI 모델을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은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매우 드물다. IT업계에선 이에 따라 “네이버는 국내 AI 분야에서 맏형과 같은 역할을 하는 중”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 서비스 가장 잘하는 기업”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를 활용해 구체적으로 ▲‘네이버판 챗GPT’로 불리는 대화형 AI 서비스 ‘클로바X’(8월) ▲생성형 AI 검색 ‘큐:’(9월) ▲블로그 등에서 창작자가 활용할 수 있는 생산 도구 ‘클로바 포 라이팅’(10월) 등을 시험 버전으로 순차 공개했다. 12월엔 큐:와 통합검색을 결합, 본격적으로 생성형 AI 서비스를 플랫폼 전면에 내세웠다. 네이버 관계자는 “그간 플랫폼 내 확보한 방대한 콘텐츠와 다양한 서비스를 검색으로 묶어 제공하는 기능”이라며 “사용자의 복잡 의도와 긴 질의도 이해하는 검색 서비스를 구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큐:는 네이버 내 쌓여있는 방대한 콘텐츠와 다양한 서비스를 검색으로 묶어 제공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검색으로 시작해 사용자의 목적(goal)을 달성할 수 있는 ‘흐름’을 제공한다. 상품·레시피·장소 검색 등으로 시작해 쇼핑·장보기·예약 등의 서비스가 ‘추가 검색’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편의성을 지녔다.
AI 챗봇 클로바X 역시 ‘스킬’이란 기능을 통해 차별화를 꾀했다. 스킬은 그간 생성형 AI의 한계로 지적된 ▲최신 정보 탐색 미흡 ▲장소 예약·상품 구매와 같은 서비스 연계 기능 부족 등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됐다. 스킬을 켜면 특정 영역에 적합한 답변을 내놓고, 대화를 통해 다양한 서비스도 자연스럽게 연계된다. 출시와 동시에 쇼핑·여행을 마련했다. 업로드한 문서 파일의 내용을 기반으로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커넥터’도 클로바X의 강점으로 꼽힌다.
클로바X는 서비스 출시 이후 사용자 피드백을 기반으로 모델 성능을 업데이트하며 답변 품질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네이버 측은 “지난 9월에 진행한 업데이트를 통해 전반적인 답변이 개선됐다”며 “생산성 분야의 글쓰기와 코드 작성은 물론 요약 등에서 큰 향상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네이버는 또 지난 11월 ‘쏘카’와 협력해 차량 공유 기능을 ‘스킬’에 추가했다. 외부 서비스도 클로바X를 통해 자연스럽게 연동이 가능한 셈이다. 쏘카 스킬을 활성화하고 차량 대여 관련 질의를 입력하면, 질문 의도에 적합한 차량을 추천하는 식의 기능이 구현된 상태다. 네이버는 현재 배달의민족·울프람알파·인터파크·캐치테이블 등과 스킬 시스템 도입을 논의 중이다.
성낙호 네이버클라우드 하이퍼스케일(Hyperscale) AI 기술 총괄은 “클로바X가 길고 복잡한 문서도 다룰 수 있게 되면서, 개인의 생산성에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로 발전했다”며 “질문에 대해 더 우수한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도록 모델을 지속해서 업데이트하고, 스킬 생태계를 확장해 가며 답변의 정확성과 서비스의 편의성을 향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는 현재 큐:와 클로바X 서비스를 베타 버전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이 기간 축적된 사용자 피드백을 바탕으로 답변 품질을 지속 고도화할 예정이다. 2024년에는 모바일 적용 확대 및 멀티모달 기능을 추가, 음성·이미지 입력 등을 지원하는 등 편의성을 더욱 높일 방침이다.
“한국 기업이라면 ‘쓰지 않을 이유’ 없다”
큐:와 클로바X 등 소비자향(B2C) 서비스가 ‘이용자의 이탈’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B2B 솔루션은 수익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네이버는 지난 10월 ▲기업 전용 완전 관리형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서비스 ‘뉴로클라우드 포 하이퍼클로바X’ ▲AI 개발도구 ‘클로바 스튜디오’ 등을 출시, 생성형 AI B2B 사업을 본격화했다. 두 솔루션은 공공 기관·기업이 하이퍼클로바X를 통해 저마다 자체 모델을 마련하는 데 특화돼 있다.
챗GPT나 구글의 ‘바드’ 등은 질문을 학습데이터로 활용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기업·공공에서 해당 챗봇을 업무에 활용한다면 내부 정보가 고스란히 유출될 수 있다. 네이버 솔루션을 쓰면 이 같은 데이터 유출 우려 없이 생성형 AI 기능을 업무에 활용 가능하다. 자체망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솔루션을 도입한 기업에서 제공한 정보를 학습데이터로 활용, 답변의 정확도가 높다는 점도 B2B 솔루션 확산의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하이퍼클로바X가 한국 시장에 특화해 개발된 만큼 국내 기업으로부터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실제로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 공개 이전부터 국내 기업과 다양한 협업 관계를 구축했다. 1월부터 8월까지 공공·금융·소프트웨어(SW)·게임·모빌리티·교육·유통·건설 등 다양한 산업군과 총 17개의 생성형 AI 서비스 관련 업무협약(MOU)을 맺은 바 있다. 하이퍼클로바X의 정식 공개 후에는 생태계 합류 기업이 느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12월 기준 MOU는 총 32개로 늘었다. 손을 맞잡은 기업의 면면도 화려하다. 한국은행·스마일게이트·미래에셋증권·SK C&C·한글과컴퓨터·CJ올리브네트웍스·현대백화점·호텔신라·현대건설 등이 네이버의 기술을 통해 자사 AI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있다.
현재 물밑에서 협업 논의를 진행 중인 기업들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족한 민간 주도 협력체 ‘초거대 AI 추진협의회’ 등을 고려하면 생태계 범위는 더욱 넓어진다. 네이버 AI 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네이버클라우드가 LG AI 연구원과 함께 협의회 공동 회장사로 추대됐다. 100개가 넘는 국내 기업이 협의회에 이름을 올렸다.
네이버는 여기에 더해 자체적인 생태계 마련에도 집중하고 있다. 하이퍼클로바X를 통해 사업 기회를 발굴하려는 기업과 원활한 소통을 목적으로 ‘AI 얼라이언스’를 별도로 구축했다. 고객사는 물론 데이터 파트너·클라우드관리사업자(MSP) 등 70개가 넘는 기업이 함께하고 있다.
“생성형 AI 시대 대응케 한 10년 내공”
IT업계에선 챗GPT 등장으로 ‘AI 시대가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고 본다. 네이버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세계 AI 기술 경쟁에서 비교적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던 배경으론 ‘10년 내공’이 꼽힌다. 2023년 1월 웍스·클로바CIC·파파고·웨일 등 주요 AI 부서를 ‘네이버클라우드’에 통합하는 결단을 내리는 등 의사결정의 효율화를 진행했다는 점도 빠른 성과를 올린 배경이 됐다.
네이버가 기술 분야에 주목하기 시작한 시점은 2013년이다. 당시 네이버랩스를 사내 기술 연구조직으로 출범하고, 연구개발(R&D)에 꾸준히 투자해 왔다. 네이버의 매출 대비 연간 R&D 투자 금액은 22~25% 수준이다. 지난해에만 2조원 정도를 R&D에 지출했다. 네이버랩스에 출자한 누적 금액만 3600억원에 달한다. 네이버가 지난 10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로부터 수주한 1억 달러(약 1350억원) 규모의 도시 디지털 트윈 플랫폼 구축 사업도 네이버랩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올린 성과다.
네이버는 이 같은 기술 투자를 바탕으로 AI 분야에서 꾸준히 성과를 내왔다. 실제로 네이버가 최근 5년간 발표한 AI 관련 논문 347편은 세계 최고 권위 학회에서 채택되기도 했다. 네이버와 네이버클라우드가 발표한 AI 연구 논문은 구체적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학회들에서 ▲2019년 29편 ▲2020년 46편 ▲2021년 72편 ▲2022년 107편 ▲2023년 93편이 채택됐다. 채택된 논문 수의 증가뿐 아니라 각 연구의 영향력도 크다. 네이버클라우드와 네이버가 발표한 AI 논문들은 현재까지 구글 스칼라(Google Scholar) 기준 2023년에만 1만회 이상, 총 3만회 이상의 피인용 수를 기록하고 있다.
AI 연구 동향 분석 플랫폼 ‘제타알파’(Zeta Alpha)가 한 기업의 피인용 상위 100건에 해당하는 논문 비율(2022년 연구 영향력 상위 100대 논문 비율)을 조사한 자료에서 네이버는 세계 6위에 올랐다. 인텔(7위)·구글(10위)보다 순위가 높다. 최근 5년간 네이버 그룹의 AI 기술 역량이 가파르게 성장했다는 방증이다.
선행 투자로 마련한 인프라 역시 AI 시대에 대응을 가능케 한 무기가 됐다. 네이버는 지난 11월 두 번째 자체 데이터센터 ‘각 세종’의 본격적 운영을 시작했다. 네이버의 첫 자체 데이터센터 ‘각 춘천’ 개소가 이뤄진 후 꼬박 10년 만에 문을 연 ‘각 세종’은 아시아 최대 규모 데이터센터다. 대지면적만 29만4000㎡(축구장 41개)이고 서버 수용량 역시 단일 기업 기준 국내 최대치인 60만 유닛(Unit·서버의 높이 단위 규격)이다.
‘하이퍼클로바X’는 현재 각 세종에 들어선 서버를 통해 학습·운영되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학습 데이터의 질·양에 따라 생성형 AI의 성능이 결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각 세종의 운영 시점은 내부에서도 ‘천만다행’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시의적절했다”며 “R&D에 선제적 투자를 지속한 점이 AI 시대에 적절한 대응이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는 ‘각 세종’ 공개 행사에서 “각 춘천 사실 설립 당시 15년 운영을 염두에 뒀지만, 예상보다 서비스 운영에 필요한 데이터양이 빠르게 증가했다”며 “각 세종 설립을 기획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각 춘천으로도 충분히 여유가 있으리라고 예상했다. ‘선제적 투자’ 차원에서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를 추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네이버는 초대규모 AI와같이 높은 연산 처리에 최적화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로 운영하고 있다. 슈퍼컴퓨터가 클러스터 형태로 대량 구축된 사례도 네이버가 유일하다”며 “하이퍼클로바X 출시와 함께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네이버의 클라우드·AI 비즈니스는 ‘각 세종’ 오픈을 계기로 다양한 산업·국가로의 확장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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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위기·상실·고비·난관·곤경….
2023년 한 해 동안 네이버 내부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온 단어들이다. 한국시간으로 2022년 12월 1일, 미국 기업 오픈AI(Open AI)가 챗GPT(Chat GPT)를 내놓으면서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 기술 경쟁 촉발되자, 네이버는 위기감을 느꼈다. 실제로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 등 네이버와 직접 경쟁 구도에 있는 빅테크는 자사 검색 엔진에 생성형 AI 기술을 발 빠르게 접목하기도 했다. 구글·MS·오픈AI가 ‘한글 서비스 강화’를 내걸었을 땐 네이버 내부에서 “큰일 났다”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오기도 했다.
일각에선 최근 1년을 열강이 이 땅의 주권을 짓밟았던 ‘구한말 시기’로 빗대기도 한다. 한국은 구글·MS·아마존 등 거대 플랫폼 기업이 점령하지 못한 이례적인 국가다. 외산 플랫폼의 종속 없이 자체적인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를 구축해 왔다. 실제로 한국은 세계 검색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한 구글이 힘을 못 쓰는 유일한 곳이다. ‘국가적 특색’으로 진출이 제한된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면, 자체적으로 전 국민이 사용하는 검색 포털을 지닌 나라는 매우 드물다.
프랑스에서 중소기업 디지털경제부 장관과 문화부 장관 등을 지낸 플뢰르 펠르랭 코렐리아 캐피털 사장은 최근 네이버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위치는 아주 독특하다”며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지배적인 자국 서비스 개발’에 성공하지 못했다. 프랑스 디지털경제부 장관으로 일할 때 한국의 성공을 보고 낙담하면서도 부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네이버는 검색 엔진으로 자국 시장 점유에 성공한 세계에서 유일한 사례”라며 “주목할 만하고 인정하고 강조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평했다.
8월 24일 ‘하이퍼클로바X’ 공개
네이버는 생성형 AI와 빅테크의 한글 서비스 강화가 한국 특유의 ICT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봤다. 곧장 생성형 AI 개발 비전을 대외에 발표하고, 서비스 마련에 전사적 역량을 쏟아부었던 이유다. 네이버는 위기를 솔직하게 인정함과 동시에 자신감도 내비쳤다. 그간 구글·야후 등 글로벌 검색 포털의 국내 시장 진출에 ‘한국 특화’ 기능으로 대응하며 성과를 냈던 경험을 근거로 “시장 방어에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 구글과의 경쟁에서 지식iN·쇼핑·길 찾기·정책 정보 등을 한국적 특색을 입힌 서비스를 무기로 승리했다면, 이제는 기술력 측면에서도 밀리지 않으리란 배짱을 부리기도 했다.
네이버는 연초 대외에 내비쳤던 자신감을 최근 1년간 성과로 증명했다. 지난 8월 24일 생성형 AI 서비스를 구현하는 기반인 초대규모 AI 모델 ‘하이퍼클로바X’ 공개가 시작이다. 하이퍼클로바X는 초기 챗GPT에 접목된 GPT-3.5 모델보다 한국어 데이터를 6500배 더 많이 학습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다.
하이퍼클로바X 공개 이후엔 이용자를 계속 플랫폼에 붙잡아 둘 생성형 AI 서비스를 대거 공개하며 경쟁력을 지속해 끌어올렸다. 특히 기업 간 거래(B2B) 영역에서 다수의 솔루션을 출시했다. 생성형 AI 기술로 ‘돈’을 벌고 있단 뜻이다. 현재 초대규모 AI 모델을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은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매우 드물다. IT업계에선 이에 따라 “네이버는 국내 AI 분야에서 맏형과 같은 역할을 하는 중”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 서비스 가장 잘하는 기업”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를 활용해 구체적으로 ▲‘네이버판 챗GPT’로 불리는 대화형 AI 서비스 ‘클로바X’(8월) ▲생성형 AI 검색 ‘큐:’(9월) ▲블로그 등에서 창작자가 활용할 수 있는 생산 도구 ‘클로바 포 라이팅’(10월) 등을 시험 버전으로 순차 공개했다. 12월엔 큐:와 통합검색을 결합, 본격적으로 생성형 AI 서비스를 플랫폼 전면에 내세웠다. 네이버 관계자는 “그간 플랫폼 내 확보한 방대한 콘텐츠와 다양한 서비스를 검색으로 묶어 제공하는 기능”이라며 “사용자의 복잡 의도와 긴 질의도 이해하는 검색 서비스를 구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큐:는 네이버 내 쌓여있는 방대한 콘텐츠와 다양한 서비스를 검색으로 묶어 제공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검색으로 시작해 사용자의 목적(goal)을 달성할 수 있는 ‘흐름’을 제공한다. 상품·레시피·장소 검색 등으로 시작해 쇼핑·장보기·예약 등의 서비스가 ‘추가 검색’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편의성을 지녔다.
AI 챗봇 클로바X 역시 ‘스킬’이란 기능을 통해 차별화를 꾀했다. 스킬은 그간 생성형 AI의 한계로 지적된 ▲최신 정보 탐색 미흡 ▲장소 예약·상품 구매와 같은 서비스 연계 기능 부족 등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됐다. 스킬을 켜면 특정 영역에 적합한 답변을 내놓고, 대화를 통해 다양한 서비스도 자연스럽게 연계된다. 출시와 동시에 쇼핑·여행을 마련했다. 업로드한 문서 파일의 내용을 기반으로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커넥터’도 클로바X의 강점으로 꼽힌다.
클로바X는 서비스 출시 이후 사용자 피드백을 기반으로 모델 성능을 업데이트하며 답변 품질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네이버 측은 “지난 9월에 진행한 업데이트를 통해 전반적인 답변이 개선됐다”며 “생산성 분야의 글쓰기와 코드 작성은 물론 요약 등에서 큰 향상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네이버는 또 지난 11월 ‘쏘카’와 협력해 차량 공유 기능을 ‘스킬’에 추가했다. 외부 서비스도 클로바X를 통해 자연스럽게 연동이 가능한 셈이다. 쏘카 스킬을 활성화하고 차량 대여 관련 질의를 입력하면, 질문 의도에 적합한 차량을 추천하는 식의 기능이 구현된 상태다. 네이버는 현재 배달의민족·울프람알파·인터파크·캐치테이블 등과 스킬 시스템 도입을 논의 중이다.
성낙호 네이버클라우드 하이퍼스케일(Hyperscale) AI 기술 총괄은 “클로바X가 길고 복잡한 문서도 다룰 수 있게 되면서, 개인의 생산성에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로 발전했다”며 “질문에 대해 더 우수한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도록 모델을 지속해서 업데이트하고, 스킬 생태계를 확장해 가며 답변의 정확성과 서비스의 편의성을 향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는 현재 큐:와 클로바X 서비스를 베타 버전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이 기간 축적된 사용자 피드백을 바탕으로 답변 품질을 지속 고도화할 예정이다. 2024년에는 모바일 적용 확대 및 멀티모달 기능을 추가, 음성·이미지 입력 등을 지원하는 등 편의성을 더욱 높일 방침이다.
“한국 기업이라면 ‘쓰지 않을 이유’ 없다”
큐:와 클로바X 등 소비자향(B2C) 서비스가 ‘이용자의 이탈’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B2B 솔루션은 수익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네이버는 지난 10월 ▲기업 전용 완전 관리형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서비스 ‘뉴로클라우드 포 하이퍼클로바X’ ▲AI 개발도구 ‘클로바 스튜디오’ 등을 출시, 생성형 AI B2B 사업을 본격화했다. 두 솔루션은 공공 기관·기업이 하이퍼클로바X를 통해 저마다 자체 모델을 마련하는 데 특화돼 있다.
챗GPT나 구글의 ‘바드’ 등은 질문을 학습데이터로 활용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기업·공공에서 해당 챗봇을 업무에 활용한다면 내부 정보가 고스란히 유출될 수 있다. 네이버 솔루션을 쓰면 이 같은 데이터 유출 우려 없이 생성형 AI 기능을 업무에 활용 가능하다. 자체망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솔루션을 도입한 기업에서 제공한 정보를 학습데이터로 활용, 답변의 정확도가 높다는 점도 B2B 솔루션 확산의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하이퍼클로바X가 한국 시장에 특화해 개발된 만큼 국내 기업으로부터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실제로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 공개 이전부터 국내 기업과 다양한 협업 관계를 구축했다. 1월부터 8월까지 공공·금융·소프트웨어(SW)·게임·모빌리티·교육·유통·건설 등 다양한 산업군과 총 17개의 생성형 AI 서비스 관련 업무협약(MOU)을 맺은 바 있다. 하이퍼클로바X의 정식 공개 후에는 생태계 합류 기업이 느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12월 기준 MOU는 총 32개로 늘었다. 손을 맞잡은 기업의 면면도 화려하다. 한국은행·스마일게이트·미래에셋증권·SK C&C·한글과컴퓨터·CJ올리브네트웍스·현대백화점·호텔신라·현대건설 등이 네이버의 기술을 통해 자사 AI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있다.
현재 물밑에서 협업 논의를 진행 중인 기업들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족한 민간 주도 협력체 ‘초거대 AI 추진협의회’ 등을 고려하면 생태계 범위는 더욱 넓어진다. 네이버 AI 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네이버클라우드가 LG AI 연구원과 함께 협의회 공동 회장사로 추대됐다. 100개가 넘는 국내 기업이 협의회에 이름을 올렸다.
네이버는 여기에 더해 자체적인 생태계 마련에도 집중하고 있다. 하이퍼클로바X를 통해 사업 기회를 발굴하려는 기업과 원활한 소통을 목적으로 ‘AI 얼라이언스’를 별도로 구축했다. 고객사는 물론 데이터 파트너·클라우드관리사업자(MSP) 등 70개가 넘는 기업이 함께하고 있다.
“생성형 AI 시대 대응케 한 10년 내공”
IT업계에선 챗GPT 등장으로 ‘AI 시대가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고 본다. 네이버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세계 AI 기술 경쟁에서 비교적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던 배경으론 ‘10년 내공’이 꼽힌다. 2023년 1월 웍스·클로바CIC·파파고·웨일 등 주요 AI 부서를 ‘네이버클라우드’에 통합하는 결단을 내리는 등 의사결정의 효율화를 진행했다는 점도 빠른 성과를 올린 배경이 됐다.
네이버가 기술 분야에 주목하기 시작한 시점은 2013년이다. 당시 네이버랩스를 사내 기술 연구조직으로 출범하고, 연구개발(R&D)에 꾸준히 투자해 왔다. 네이버의 매출 대비 연간 R&D 투자 금액은 22~25% 수준이다. 지난해에만 2조원 정도를 R&D에 지출했다. 네이버랩스에 출자한 누적 금액만 3600억원에 달한다. 네이버가 지난 10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로부터 수주한 1억 달러(약 1350억원) 규모의 도시 디지털 트윈 플랫폼 구축 사업도 네이버랩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올린 성과다.
네이버는 이 같은 기술 투자를 바탕으로 AI 분야에서 꾸준히 성과를 내왔다. 실제로 네이버가 최근 5년간 발표한 AI 관련 논문 347편은 세계 최고 권위 학회에서 채택되기도 했다. 네이버와 네이버클라우드가 발표한 AI 연구 논문은 구체적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학회들에서 ▲2019년 29편 ▲2020년 46편 ▲2021년 72편 ▲2022년 107편 ▲2023년 93편이 채택됐다. 채택된 논문 수의 증가뿐 아니라 각 연구의 영향력도 크다. 네이버클라우드와 네이버가 발표한 AI 논문들은 현재까지 구글 스칼라(Google Scholar) 기준 2023년에만 1만회 이상, 총 3만회 이상의 피인용 수를 기록하고 있다.
AI 연구 동향 분석 플랫폼 ‘제타알파’(Zeta Alpha)가 한 기업의 피인용 상위 100건에 해당하는 논문 비율(2022년 연구 영향력 상위 100대 논문 비율)을 조사한 자료에서 네이버는 세계 6위에 올랐다. 인텔(7위)·구글(10위)보다 순위가 높다. 최근 5년간 네이버 그룹의 AI 기술 역량이 가파르게 성장했다는 방증이다.
선행 투자로 마련한 인프라 역시 AI 시대에 대응을 가능케 한 무기가 됐다. 네이버는 지난 11월 두 번째 자체 데이터센터 ‘각 세종’의 본격적 운영을 시작했다. 네이버의 첫 자체 데이터센터 ‘각 춘천’ 개소가 이뤄진 후 꼬박 10년 만에 문을 연 ‘각 세종’은 아시아 최대 규모 데이터센터다. 대지면적만 29만4000㎡(축구장 41개)이고 서버 수용량 역시 단일 기업 기준 국내 최대치인 60만 유닛(Unit·서버의 높이 단위 규격)이다.
‘하이퍼클로바X’는 현재 각 세종에 들어선 서버를 통해 학습·운영되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학습 데이터의 질·양에 따라 생성형 AI의 성능이 결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각 세종의 운영 시점은 내부에서도 ‘천만다행’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시의적절했다”며 “R&D에 선제적 투자를 지속한 점이 AI 시대에 적절한 대응이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는 ‘각 세종’ 공개 행사에서 “각 춘천 사실 설립 당시 15년 운영을 염두에 뒀지만, 예상보다 서비스 운영에 필요한 데이터양이 빠르게 증가했다”며 “각 세종 설립을 기획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각 춘천으로도 충분히 여유가 있으리라고 예상했다. ‘선제적 투자’ 차원에서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를 추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네이버는 초대규모 AI와같이 높은 연산 처리에 최적화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로 운영하고 있다. 슈퍼컴퓨터가 클러스터 형태로 대량 구축된 사례도 네이버가 유일하다”며 “하이퍼클로바X 출시와 함께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네이버의 클라우드·AI 비즈니스는 ‘각 세종’ 오픈을 계기로 다양한 산업·국가로의 확장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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