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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 韓 엔터 산업 새역사 썼다…연간 매출 ‘2조원 돌파’ 의미 [수(數)크릿]

시장 우려에도 ‘해외 레이블’ 인수 밀어붙인 뚝심…사업 성과 뚜렷
하이브 사업 영향력, SM·JYP·YG와 ‘비교 불가’…라이트 팬덤 구축

수는 현상을 나타내는 가장 적합한 단어입니다. 유행·변화·상태·특성 등 다소 모호한 개념에도 숫자가 붙으면 명확해지곤 하죠. 의사결정권자들이 수치를 자주 들여다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업 역시 성과·전략 따위를 수의 단위로 얘기합니다. 수는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고도화된 정보통신기술(ICT)을 만나 높은 정밀성은 물론 다양성도 갖춰가고 있습니다. 최근 나온 다양한 수치 중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를 꼽아 연재합니다. 수(數)에 감춰진 비밀(Secret), 매주 수요일 오전 뵙겠습니다. [편집자 주]
방시혁 하이브 의장. [사진 하이브]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2023년 연결 기준 연간 매출 2조1781억원.

하이브가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계에도 ‘연간 매출 2조원’의 고지를 점령한 기업이 생겼죠. 하이브가 줄기차게 추진한 ‘글로벌 확장’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K-팝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라는 표현을 흔히 접할 수 있는데요. 문화적 현상인 K-팝의 글로벌 인기를 일상에서 느끼는 건 쉽지 않습니다. 미국인이 뉴진스를 보고 열광하는 건 사실 화면 속 일에 가깝습니다.

하이브는 단연 K-팝 문화를 이끄는 기업입니다. 하이브의 연간 매출 2조원 돌파는 피부로 느끼기 어려운 K-팝 인기가 숫자로 증명된 사례로도 여겨집니다.

K-팝 확산 속도만큼 가파른 실적 성장

하이브의 실적은 K-팝 확산 속도만큼이나 가파르게 성장했습니다. 2023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2958억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년 대비 매출은 22.6%, 영업이익은 24.9% 각각 성장했죠. 매출은 물론 영업이익도 사상 최대치입니다. 최근 3년간 연평균 성장률(CAGR)도 놀라운데요. 이 기간 매출은 31.7%, 영업이익은 24.7%의 CAGR을 써냈습니다.

매출 규모 증가는 사업 외연이 확장됐다는 의미입니다. 회사의 시장 영향력이 높아졌다고도 볼 수 있죠. 외연 확대는 투자를 전제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매출이 급증하면 성장성 지표인 영업이익률이 하락하는 기조가 쉽게 나타나는 이유입니다.

하이브는 1년 사이 매출(2022년 1조7762억원)이 4019억원이나 껑충 뛰었음에도, 수익성을 ‘평년’ 수준으로 유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회사의 연결 기준 연간 영업이익률은 ▲2021년 15.15% ▲2022년 13.34% ▲2023년 13.58%로 집계됐죠. 매출 확장 속도를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입니다.

하이브의 이런 성적의 비결로는 단연 아티스트 기획 역량이 꼽힙니다. 세계적 신드롬(Syndrome·어떤 것을 좋아하는 현상이 전염병과 같이 전체를 휩쓸게 되는 현상)을 불러일으킨 방탄소년단(BTS) 이후로도 세븐틴·르세라핌·뉴진스 등 글로벌 아이돌을 선보이며 안목을 증명했죠. 이들의 인기는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됐습니다. 실제로 하이브 레이블즈 아티스트의 앨범 판매량은 2023년 전년 대비 2배 늘어난 4360만장으로 나타났죠. 하이브 아티스트 써클차트 점유율(차트 진입 앨범 기준)은 38%에 달할 정도입니다.
하이브 대표 아티스트 방탄소년단(BTS). 사진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 다큐멘터리 ‘BTS 모뉴먼트: 비욘드 더 스타’ 관련 이미지.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4대 연예기획사 중 ‘압도적 1위’

하이브의 지난해 성적은 매력적인 아티스트의 활약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매출이 2조원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수익성도 챙긴 성과는 ‘아티스트의 활약’만으로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국내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에 소속된 많은 아티스트도 K-팝 글로벌 인기를 구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이브와 함께 4대 연예기획사로 꼽히는 곳의 실적발표 자료나 컨세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를 보면 차이가 더 극명한데요. YG엔터테인먼트·JYP엔터테인먼트의 2023년 연간 매출은 5500억원 수준이죠. SM엔터테인먼트 역시 9600억원으로, 하이브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들 기업 모두 ‘간판급’ 글로벌 K-팝 아티스트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하이브와는 큰 매출 격차를 보였습니다. 하이브의 사업 전략이 탁월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자료 하이브 IR]

하이브는 사업 부문 중 특히 음반·음원 분야와 공연 영역에서 지난해 호조를 보였습니다. 음반·음원 매출은 9705억원으로 나타났죠. 이는 전년 대비 무려 75.8% 상승한 수치입니다.

하이브는 이번 실적부터 기존 앨범 사업 부문에 음원 스트리밍을 묶어 발표했습니다. 두 영역을 음반·음원 부문으로 재편한 거죠. 앨범 사업은 그간 K-팝의 전통적인 매출원으로 꼽혀왔는데요. 하이브는 최근 음원 스트리밍 매출 증가가 가파르다는 점에 주목, 이런 변화를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통적인 수익원에서 벗어나 스트리밍 시장 확장을 노리겠다는 의도가 읽힙니다.

하이브 국내 아티스트 스트리밍 횟수는 총 58억회입니다.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선 200차트 기준 연간 4.5%의 점유율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회사의 2023년 스트리밍 매출은 전년 대비 79% 성장한 약 2980억원으로 집계됐죠.

박지원 하이브 대표이사(CEO)는 연간 실적 발표 후 이어진 컨퍼런스콜(투자자 설명회)을 통해 “실물 앨범 판매량과 더불어 스트리밍 횟수와 매출이 증가했다는 점에 주목한다”며 “하이브 아티스트의 스트리밍은 비약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고, 하이브 아메리카의 빅머신레이블그룹(BMLG)·QC미디어홀딩스 소속 아티스트 또한 견고한 성적을 내며 매출에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공연의 경우, 참여 아티스트와 횟수 모두 전년 대비 높은 증가를 보였는데요. 진행한 공연은 대부분 성황리에 끝났죠. 2022년 4팀이 참여해 78회에 그쳤던 공연 진행 횟수는 2023년 7팀·125회로 증가했습니다. 공연 부문 매출은 이에 따라 전년 대비 39.1% 성장한 3391억원으로 집계됐죠.

박 대표는 이에 대해 “아티스트 투어를 콘서트로 그치지 않고 있다”며 “온라인으로 콘서트 현장을 생중계하는 ‘라이브 스트리밍’과 극장에서 팬들이 함께 관람할 수 있는 ‘라이브 뷰잉’ 등을 병행하며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자료 하이브 IR]

라이트 팬덤 글로벌 확장 ‘절실’

하이브의 음반·음원·공연 사업의 확장은 오랜 시간 집중해 온 ‘글로벌 전략’이 궤도에 오르면서 나타났단 분석이 나옵니다. 하이브는 2021년 100% 종속회사인 ‘하이브 아메리카’를 통해 미국 레이블 이타카홀딩스를 인수한 바 있는데요. 당시 인수 대금으로 1조515억원을 썼습니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해외 레이블을 처음으로 인수한 사례라 ‘위험성이 너무 크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죠.

그러나 하이브는 이 같은 시각에도 인수합병(M&A)를 통한 해외 확장 전략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타카홀딩스를 인수 주체로 2023년 8월 미국 레이블 QC미디어홀딩스를 3140억원에 품었죠. 지난해 11월에는 멕시코 소재 법인 ‘하이브 라틴 아메리카’를 설립하고 ‘엑자일 콘텐트’의 현지 음악 업체 ‘엑자일 뮤직’을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시장 우려와 달리 인수한 해외 레이블은 높은 성적을 내고 있는데요. 해외 레이블의 지난해 음원 매출은 1502억원으로, 전년 대비 58.7% 성장했습니다. 국내 아티스트의 해외 진출 교두보 역할도 하고 있죠.
[자료 하이브 IR]

하이브의 ‘코어 팬덤에서 라이트 팬덤으로’ 불리는 확장 전략도 성장 요인으로 꼽힙니다. 이경준 하이브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컨퍼런스콜을 통해 “기존 코어 팬덤의 앨범 소비를 콘서트와 다른 직간접 경험 제공을 통해 라이트 팬덤도 쉽게 음악에 접근하는 기회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코어 팬덤을 유지하면서 라이트 팬덤을 확대하겠단 전략은 스트리밍 매출 증가로 이어지면서 유효성을 입증했죠.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K팝 팬은 어떤 팬덤보다 강렬한 몰입과 소비를 보인다”며 “반대로 이야기하면 확장성의 한계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K-위기론’을 꺼내 들며 “가볍게 소비하는 라이트 팬들도 많이 붙을 수 있는 구조로 가야 한다”는 점을 해결책으로 제시했습니다.

방 의장이 제시한 ‘라이트 팬덤의 글로벌 확장’에 대한 비전은 이뤄질 수 있을까요? 분명한 건 하이브는 2023년 실적을 통해 숫자로 ‘누구도 걷지 않았던 길’이 유의미했다는 걸을 입증해 냈다는 점입니다. 하이브와 소속 아티스트가 계속해서 ‘새역사’를 써낼 수 있을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이브 사옥 전경. [사진 하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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