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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라인’ 겨냥한 일본 정부의 속내…수혜자는 손정의 회장?

[디지털 장벽 쌓는 세계]②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AI 강화 선언…한국으로 향한 ‘역전 공세’
‘라인야후 사태’ 본질은 ‘AI 핵심’ 2억명 사용자 데이터…불씨 여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사진 AP/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역전 공세의 시기가 왔다.”

손정의(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이 모처럼 전면에 나섰다. 2022년 11월 기자회견을 마지막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비추지 않았던 그는 2023년 6월 연례 주주총회에 올랐다. 들고나온 메시지의 핵심은 인공지능(AI)이었다. “AI 혁명이 폭발적으로 커질 것”이라며 “우리는 물밑에서 준비하고 있으며, 앞으로 혁명의 첨단을 책임지겠다”고 일갈했다.

그리고 일본 총무성은 2024년 3월 5일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손잡고 만든 일본 내 최대 정보기술(IT) 기업 ‘라인야후’에 행정지도를 내렸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대응 조치였다. 그러나 행정지도엔 보안 강화를 넘어선 ‘네이버와 라인야후의 지분 관계를 재검토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손 회장의 ‘AI 선언’ 후 불과 9개월 만에 일이다.

日 정부 업은 소뱅의 치밀한 공세?

손 회장이 1년 전 주총에서 ‘AI 강화’를 피력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소프트뱅크의 ‘역전 공세’가 한국으로 향하리라고 예측한 이는 없었다. 당시 주총은 소프트뱅크가 2021회계연도(2021년 4월~2022년 3월·약 15조5600억원 적자)와 2022회계연도(약 8조8000억원 적자) 모두 대규모 적자를 낸 후 열렸다. 이 기간 투자 위축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다시금 성장 동력 마련에 나선 손 회장이 AI를 지목한 점 역시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오픈AI의 챗GPT 등장 후 세계 빅테크를 중심으로 ‘AI 열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손 회장이 테크 업계를 주도하는 투자자에서 AI 사업가로 변신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외교 분쟁으로까지 번진, 이른바 ‘라인야후 사태’가 손 회장의 AI 선언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소프트뱅크의 치밀한 계산에 따라 ‘라인야후 경영권 탈취’ 전략이 세워졌단 견해다. 이 사안에 정통한 IT업계 고위관계자는 “기술·플랫폼 분야에 높은 이해도를 지닌 손 회장이 AI 시대 핵심이 데이터란 점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네이버의 ‘라인’은 AI 학습 데이터 중 최고로 치는 소비자 경향성을 볼 수 있는 거대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미 네이버와 피를 섞은 라인야후의 온전한 경영권 확보는 소프트뱅크 입장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AI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먹잇감으로 여겨졌을 것”이라며 “이번 라인야후 사태는 ‘IT 굴기’를 노리는 일본 정부와 소프트뱅크의 합작품으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외교적 분쟁’까지 감수하면서까지 행정지도를 내린 배경으론 “소프트뱅크 외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 후 나타난 경기침체)을 겪으면서 디지털 산업의 기초 체력이 떨어졌단 평가를 받는다. 소프트뱅크는 글로벌 빅테크와 경쟁이 가능한 일본 시장에 남은 유일한 기업이라 ‘자국 우선주의’ 측면에서 지원이 이뤄졌으리란 설명이다.

라인은 네이버 일본 법인이던 NHN재팬이 2011년 출시한 메신저다. 라인 애플리케이션(앱)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현재 ▲일본 9600만명 ▲태국 5500만명 ▲대만 2200만명 ▲인도네시아 600만명 등을 기록하고 있다. 월마다 108개국에서 약 2억명이 접속하는 앱으로, 한국 기업이 만든 가장 성공한 글로벌 플랫폼으로 불린다.

만약 소프트뱅크가 라인야후에 대한 경영권을 모두 확보하게 된다면 무려 2억명에 달하는 사용자가 만들어 내는 숱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이를 AI에 학습시키기 위해선 정보 제공 동의와 같은 법적·제도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나 경영권을 네이버와 나누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구조다. 일본인 사용자가 대다수인 라인을 통해 AI 학습데이터 수급이 이뤄진다손 치더라도 현재 틀에선 이를 네이버와 공유해야 한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IT 굴기를 원하는 일본 정부도, AI 반등을 노리는 소프트뱅크도 원치 않았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사진 대통령실]

소강상태지만…우려 지속

현재 ‘라인야후 사태’는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네이버가 일본 정부 압박에 대한 대응 전략을 일단 ‘라인야후 지분 유지’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의사를 이미 용산 대통령실에도 전달한 상태다. 국내서 반일 기조가 확산하자, 정치권은 물론 정부도 ‘네이버 지키기’에 팔을 걷어붙인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지난 5월 2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양측의 입장 정리가 어느 정도 이뤄지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내 기업인 네이버에 지분을 매각하라는 요구는 아닌 것으로 이해하고, 한일 외교 관계와 별개의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앞으로 양국 간에 불필요한 현안이 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겠다”고 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에 대해 “이번 행정지도는 이미 발생한 중대한 보안 유출 사건에 대해 어디까지나 보안 거버넌스를 재검토해 보라는 요구사항”이라며 “한일 정부 간에 초기 단계부터 이 문제를 잘 소통하면서 협력해 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긴밀히 소통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양국 정상이 나눈 대화 내용에 비춰보면 일단 네이버가 지닌 라인야후에 대한 경영권이 당장 소프트뱅크에 넘어갈 일은 없으리란 분석이 우세하다. 일본 총무성은 라인야후에 행정지도 조치 보고서를 오는 7월 1일까지 제출토록 요구한 바 있다. 이 보고서에 라인야후 지분 매각 내용이 담기지 않으리란 해석이다.

네이버는 2019년 일본 최대 포털 야후재팬을 운영하는 소프트뱅크와 협의해 라인과 야후재팬의 합병을 결정했고 2021년 A홀딩스를 세웠다. 메신저 서비스인 ‘라인’과 검색 서비스인 ‘야후재팬’을 운영하는 라인야후의 최대 주주는 지분 64.4%를 보유한 A홀딩스다. A홀딩스의 지분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50%씩 보유하고 있다. 네이버가 보유한 A홀딩스 지분 중 단 한 주라도 소프트뱅크 측에 넘어간다면 경영권을 상실하는 구조다.

네이버 협력사 PC에 심겨 있던 악성코드가 클라우드 서버를 타고 라인 시스템에 접근해 약 51만9000건의 개인정보 유출되는 사고가 2023년 11월 벌어졌다. 일본 총무성은 이를 문제 삼으며 대단히 이례적으로 한 달 사이 총 두 차례 행정지도를 내리고 ‘지분 관계 재검토’를 요구했다.

라인야후 사태가 현재 소강 국면을 보이고 있지만, 문제는 일본 총무성 개입 후 네이버의 입김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데에 있다. 라인야후 이사회 내 유일한 한국인인 신중호 대표이사 겸 최고제품책임자(CPO)가 사내이사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CPO 직위는 유지됐지만, 이사회가 전원 일본인으로 꾸려지게 됐다.

소프트뱅크의 굴기 의지도 여전히 뚜렷하다. 손 회장의 ‘AI 선언’ 후 소프트뱅크는 최근 1년간 해당 분야에 12조15000억원을 쏟아부었다. 최근에는 소프트뱅크가 AI 반도체 등의 분야에 최대 88조원을 투자하리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일본 정부의 지원사격도 이뤄지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소프트뱅크가 AI 개발을 위한 슈퍼컴퓨터를 정비하는 데 최대 3700억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소프트뱅크의 라인야후 경영권 탈취를 언제든 재개할 수 있단 우려가 국내서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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