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홈 만드는 기술 요소…우리 일상은 어떻게 편해지나
[똑똑해진 주택, 스마트홈 시대]①
생성형 AI 스피커 활용 스마트홈 접근성↑
국내 스마트홈, 구체적인 고객 가치 제공해야
[김학용 와츠매터 대표] 미국 소비자 제품 분야 최고 권위지인 ‘파풀러 메카닉스 매거진’ 1939년 8월호에 현재 스마트홈 개념을 담은 첫 번째 글 ‘미래의 전기집’(The Electric Home of the Future)이 소개됐다. 약 10년 후인 1950년, 미국 소설가 레이 브래드버리 역시 단편소설 ‘부드러운 비가 올 거야’(There will come soft rains)에서 미래의 집을 묘사했다.
미래의 집에는 가족들이 해야 할 집안일을 대신해 주는 다양한 가전제품들로 가득 차 있다. 이 기기들은 음성 명령으로 제어되거나 자율적으로 동작한다. 아침에는 기상과 아침 식사를 준비해 준다. 외출 시에는 로봇청소기가 청소하며 불필요한 전자제품의 전원을 차단한다. 지금 봐도 매우 미래지향적인 모습이다.
스마트홈의 개념이 소개된 지 약 85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제대로 된 스마트홈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을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스마트홈 사업자들이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고객가치를 제공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기술적인 이유들이 존재한다.
스마트홈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비싼 스마트홈 기기를 구매해야 한다. 또 스마트홈 플랫폼에 등록하고 설정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절차가 기기 유형이나 제조사에 따라 제각각이라는 점이다.아울러 너무 다양한 통신 기술이 사용된다. 와이파이와 블루투스는 기본이다. ▲지그비(Zigbee) ▲지웨이브(Z-Wave) ▲쓰레드(Thread) ▲UWB(Ultra-Wideband)처럼 일반인에게 낯선 기술들도 사용된다. 일부 통신 기술은 스마트홈 기기 외에 이들을 연결하기 위해 허브나 게이트웨이 같은 추가 장치가 필요하다. 설상가상으로 제조사가 다르면 호환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다양한 제조사의 제품을 이용할 경우 이들의 플랫폼을 상호 연동해야 한다. 제조사가 많을수록 연동해야 하는 횟수도 늘어난다. 게다가 스마트홈 기기를 통한 해킹이나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우려도 빼놓을 수 없다. 정말 어디를 봐도 스마트홈이 확산 할 이유를 찾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단일 표준으로 ‘상생 해법’ 찾다
인터넷 기술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홈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스마트홈 시장은 확산되지 않았다. 영화 ‘오징어 게임’의 대사처럼 ‘정말 이러다가는 다 죽을 것 같다’는 인식이 기업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2019년 아마존·애플·구글 같은 주요 플랫폼 사업자들은 연결표준협회(CSA)를 중심으로 단일화된 스마트홈 표준인 매터(Matter)를 개발하기로 의기투합한다. 매터는 개방형 스마트홈 연동 표준이다. 스마트홈 기기가 매터 표준을 지원하면 어떤 플랫폼에도 연결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기기 제조사들은 다양한 플랫폼을 지원하는 대신 매터 표준만 지원하는 제품을 개발함으로써 개발 비용 및 시간을 줄임과 동시에 더 많은 플랫폼 사업자에게 제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된다. 사용자들 역시 자신이 이용하는 플랫폼에 상관없이 매터 표준을 지원하는 기기를 구매해서 이용할 수 있다. 기기의 유형이나 제조사에 상관없이 일관되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기기를 등록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동일한 기기를 동시에 서로 다른 플랫폼에 연결해 사용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이를 멀티 어드민(multi-admin)이라고 한다. 가족들이 서로 다른 플랫폼을 이용하는 경우 매우 유용하다. 동일한 기기를 여러 플랫폼에 등록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차별화된 서비스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스마트홈 사업자의 등장 가능성도 열어준다.
매터 표준의 등장은 플랫폼의 파편화 문제를 해결하고 디바이스의 구매 및 등록 절차를 개선해 더 많은 사용자가 쉽게 스마트홈 기기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할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홈 플랫폼에 등록된 기기는 일반적으로 스마트폰 앱이나 인공지능(AI) 스피커를 통해 제어하게 되는데 이 또한 스마트홈 확산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먼저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스마트홈 기기를 제어하려면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스마트폰 잠금을 해제한다. 이어 앱을 찾아 실행한 뒤, 제어하려는 기기가 속한 기기 유형이나 장소를 선택한다. 마지막으로 제어하려는 옵션을 선택해야 한다. 차라리 기기의 스위치를 직접 누르는 것이 더 빠를 정도다.
이런 불편으로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AI 스피커를 이용하고 있다. 음성 명령 한 마디로 기기를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AI 스피커의 인식률이 떨어져 명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스마트홈 기기의 이름을 정확히 말하지 못해 제대로 동작하지 않거나 엉뚱한 기기가 제어되기도 한다.
다행히 지난해부터 AI 스피커에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이 접목되면서 이러한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되고 있다. ‘조시 GPT’, ‘알렉사엘엘엠’(AlexaLLM) 등이 대표적이다. 스마트홈 플랫폼에 등록된 ‘거실 조명’ 대신 ‘형광등’을 켜라고 해도 사용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거실의 조명을 켜준다. 심지어‘좀 어둡네’라고 말해도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고 거실 조명을 켤 수 있다.
아울러 ‘거실의 모든 블라인드 내리고 조명 켜줘’처럼 한꺼번에 여러 기기를 제어하는 명령도 가능해졌다. ‘잠들면 안 쓰는 기기들 전원 꺼줘’처럼 음성 명령을 통해 자동화 루틴을 설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제 말만 할 줄 알면 누구나 쉽게 자신만의 스마트홈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쇼핑은 물론 음식 배달이나 택시 호출처럼 스마트폰을 통해서만 이용할 수 있었던 생활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보안·프라이버시’ 문제 해결이 스마트홈 활성화의 관건
지난 2016년 10월에는 아마존·페이스북·유튜브 등 주요 서비스의 딘(Dyn)이라는 도메인 네임 시스템(DNS) 서버가 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DDoS)을 받아 접속이 원활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 놀랍게도 이 공격의 주범은 미라이(Mirai)라는 봇넷에 감염된 26만대 이상의 CCTV와 영상저장장치(DVR)였다.
2018년에는 아마존의 인공지능 스피커인 에코(Echo)가 사용자의 대화를 녹음해 이를 다른 사용자에게 전송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2021년 700여 아파트 단지의 거실 월패드가 해킹돼 40만 가구의 사생활을 촬영한 영상이 홍콩의 다크웹을 통해 유통된 적이 있다. 이와 같은 스마트홈 관련 해킹 및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는 스마트홈 도입 및 확산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심지어 스마트홈 이용자들조차 보안 문제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팍스 어소시에이트 등의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홈 이용자의 약 60%가 스마트홈 보안 이슈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사용자들이 아무 걱정 없이 스마트홈 기기 및 서비스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보안 및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일종의 IoT 보안 인증 제도를 도입하고 있으며, 스마트홈 기기를 출시하기 전에 필수적인 사항을 검증받도록 하고 있다.
각국 정부의 보안인증제도 외에도 스마트홈의 보안 특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증된 디바이스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클라우드 플랫폼 대신 댁내의 에지 컴퓨팅(edge computing) 장치를 이용해 수집 및 처리·
가공된 데이터를 통해 기기를 제어하고 사용자 정보를 저장 및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매터 표준의 경우 매터 제품 출시를 위해서는 엄격한 테스트 및 인증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과한 제품은 기기 자격 증명(DAC)을 발급받게 된다. DAC는 출시되는 기기에 삽입되는 것과 동시에 블록체인 기반의 서버장치(DCL)에도 함께 저장된다. 기기가 스마트홈 네트워크에 등록될 때 정상적인 제품임을 검증하기 위해 사용된다.
매터 표준의 도입으로 스마트홈 기기의 연결성과 사용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뿐만 아니라 보안 및 프라이버시 특성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AI 스피커나 홈서비스 로봇 같은 스마트홈 컨트롤러(에지 허브)에 생성형 인공지능이 결합하면서 스마트홈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질 전망이다.
스마트홈 사업자들의 ‘상반된 입장’
그런데도 전통적으로 스마트홈 서비스를 제공하던 통신사 및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는 스마트홈 사업에 소극적이다. 스마트홈 기기를 유통하거나 매달 일정한 비용을 받는 구독형 서비스 모델이 더 이상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건설사와 가전 제조사는 스마트홈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보고 있다. 건설사는 지능형 스마트홈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경쟁사와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아울러 매터 표준을 기반으로 다양한 스마트홈 기기를 지원함으로써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특히 삼성물산·대우건설·GS건설 등의 대형 건설사들은 월패드나 스마트폰 앱을 통해 ▲청소 ▲세탁 ▲아이 돌봄 ▲음식배달 등의 생활 서비스를 중계하려는 노력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분양 후 3년이 지나면 스마트홈 운영 및 관리 권한을 입주민 대표에게 이관하며 더 이상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는다. 신축 아파트의 분양에만 관심 있을 뿐, 장기적인 스마트홈 서비스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는 소극적인 모습이다.
다행히도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가전 제조사는 스마트홈을 새로운 기회로 보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스마트 가전을 더 많이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객들의 스마트 기기 이용 정보를 바탕으로 생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스마트홈 서비스 생태계를 구축하길 희망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다른 플랫폼 사업자 중에서도 확인된다. 폐쇄적인 것으로 유명한 애플마저 2021년부터 자사의 스마트홈 플랫폼인 홈킷(HomeKit)과 음성인식 서비스인 시리(Siri)를 제3의 서비스 사업자에게 공개하기로 한 바 있다. 구글도 올해 상반기부터 구글 홈(Google Home)의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공개하고 있으며, LG전자도 올해 말까지 공개할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기존처럼 막연한 편리함을 제공하는 방식으로는 스마트홈 사업을 활성화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기료나 생활비 절감 같은 구체적인 고객 가치를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거나 재미나 과시 등과 같은 다른 고객가치를 발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스마트홈 기기 정보를 바탕으로 노인 혹은 1인 가구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센서 정보를 기반으로 주택 보험료를 할인해 주는 것이다. 혹은 스마트 조리 기구와 연계된 식료품 구독 서비스 혹은 음식 배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미국의 1위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사업자인 로쿠(Roku)처럼 OTT 서비스와 스마트홈 서비스를 결합하거나, 여기서 더 나아가 출동 보안 서비스를 함께 제공함으로써 고객의 생활 서비스 이용 부담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과학기술부 주도로 지능형 스마트홈 실증 사업이 전개되고 있다. 지난 2023년에는 매터 표준을 지원하는 스마트홈 기기를 개발하고 자동화 서비스를 구현하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 올해는 경량화된 생성형 인공지능(SLM) 기반의 생활 서비스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스마트홈 플랫폼 기업 ㈜와츠매터는 5종의 매터 지원 기기를 개발하고 또 다른 기업 효돌은 국산 AI 반도체가 탑재된 에지 허브와 스마트홈 환경에 특화된SLM 개발해 6종 이상의 지능형 홈 서비스를 실증할 계획이다. 이 사업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공급자보다는 수요자 중심의 성공적인 스마트홈 서비스 사업자가 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학용 와츠매터 대표는_ 국내 최고의 스마트홈 전문가로 대학교와 ICT 대기업에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주)와츠매터 대표와IoT전략연구소 소장을 겸하고 있으며 순천향대 교수를 역임했다. 지능형 사물인터넷(AIoT)가 바꾸는 비즈니스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책 9권 집필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강연 및 기업의 상품 및 비즈니스 모델 자문에 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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