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공룡들, 쿠팡에 '이커머스 선두' 빼앗긴 결정적 실수들[스페셜리스트 뷰]
급성장한 커머스 스타트업...유통 대기업은 왜 밀렸을까
유통 대기업들에게 제안하는 대응 방안
[프로덕트 오너(PO) 이미준] ‘1세대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들이 생존 경쟁에 휘말렸다. 11번가는 강제 매각 절차를 밟으며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비용감축을 위해 광명으로 본사를 이전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롯데온을 운영하는 롯데쇼핑 이커머스사업본부는 권고사직에 이어 희망퇴직까지 진행했다. 신세계그룹의 SSG닷컴도 상황은 비슷하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겪으며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큰 폭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쿠팡과 네이버가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양강체제를 구축했다. 패션·인테리어·장보기·뷰티와 같이 특정 카테고리만을 노리는 버티컬 플랫폼들도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오프라인 유통공룡이라고 불린 신세계·롯데·현대백화점그룹은 온라인에서 큰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오프라인 시장의 위기가 야기되며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발 C-커머스의 공격이 거세지는 이 시점에 한 번쯤 회고할 필요가 있다. 왜 유통공룡들은 막대한 인프라와 인원, 자금력을 갖췄음에도 현 상황에 처했는지 말이다.
유통공룡들은 ‘이커머스 후발주자’가 아니다
‘쿠팡’이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성공하면서 신세계, 롯데 등을 ‘이커머스 후발주자’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후발주자란 사전적으로 남보다 뒤늦게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길을 떠나는 사람을 의미한다. 사실 신세계, 롯데 등은 쿠팡보다 먼저 이커머스 사업을 펼친 곳이다.
롯데는 1996년 ‘롯데닷컴’을 시작으로 국내에서 인터파크와 함께 가장 먼저 B2C 이커머스 사업을 시작했다. 신세계가 품은 옥션과 지마켓도 각각 1998년, 1999년에 문을 열었다. 국내에 스마트폰이 출시되고 모바일 앱을 개발하는 스타트업들이 쏟아져 나온 2013년까지 PC 기반으로 성장한 1세대 이커머스 플랫폼은 이커머스 관련 국내 법규에 적응하며 나란히 성장해왔다.
모바일 시대에도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모바일과 PC의 차이가 크게 느껴질 수 있지만 스타트업보다 앞서 정교화된 시스템을 갖춘 상태였기 때문이다. 1세대 이커머스 플랫폼들이 PC 기반으로 성장했다고 해도 단기간에 모바일 서비스 구현이 가능했다. 기본적으로 이커머스 플랫폼이 가져야 할 시스템적 기능과 많은 상품 수, 숙련된 이커머스 운영 경험을 각 사가 이미 보유하고 있었다.
1세대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쿠팡의 성공 이후 이커머스 시장을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물류경쟁력도 갖췄다. 이들은 오프라인 유통매장을 통해 자체 매입 재고를 다량 보유했다. 홈쇼핑계열사를 통해 자사 물류창고에서 익일배송을 할 수 있는 인프라도 갖췄다. 유통공룡들은 뒤늦게 쿠팡을 보고 출발한 후발주자가 아니다. 1세대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쿠팡보다 먼저 출발했고 긴 시간 시스템을 갖춰온 개척자다. 그러나 현재 쿠팡에게 선두자리를 내줬다.
유통공룡들이 선두를 빼앗긴 역사적 실수 3가지
유통공룡들은 가진 것이 많았다. 그럼에도 선두그룹에서 계속 밀려났다. 돌이켜 보면 몇 가지 결정적인 이유들이 존재했다. 첫째는 오프라인 유통을 통한 강력한 소싱능력을 플랫폼 파워로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2006년 오픈한 네이버 가격비교는 온라인상에 널리 퍼진 이커머스들의 동일 상품을 쉽게 비교할 수 있게 하는 메타 플랫폼의 형태였다. 당시 인터넷 첫 화면 점유율이 높았던 네이버는 이 서비스로 쇼핑을 위해 소비자들이 자사 포털을 찾게 만들었다. 가격비교를 통한 이커머스 진입 트래픽이 증가하면서 각 플랫폼사들은 앞다퉈 네이버로 진입 시 쓸 수 있는 쿠폰을 만들어 경쟁했다. 이용자들이 ‘네이버 가격비교로 진입 시 더 싸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이후 2015년 스토어팜, 2016년 간편결제 서비스 네이버페이가 연이어 론칭됐다. 네이버 가격비교에 올라오는 모든 상품을 네이버의 결제수단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 유통공룡들이 상품을 판매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네이버만 기억하고 쇼핑을 했다. 이로 인해 유통공룡들은 점점 더 막대한 유입 비용을 네이버에 지불해야 했다.
재연동판매는 타 플랫폼에서 결제가 일어나 보유 상품의 희소성을 낮췄다. 2011년 롯데닷컴이 지마켓에 롯데백화점의 상품을 연동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G마켓(지마켓)은 이를 시작으로 신세계, 현대백화점의 상품들을 흡수하며 짝퉁이 많다는 오픈마켓 상품에 대한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었다. 현재 쿠팡에서도 대부분의 백화점 상품이 유통공룡 플랫폼에 의해 재연동돼 판매되고 있다. 1세대 이커머스 플랫폼 입장에서는 오프라인 상품의 경쟁력이 자사 플랫폼의 트래픽과 재방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믿을 수 있는 백화점 상품, 대형마트 상품’을 온라인에서 사려고 할 때 꼭 유통공룡이 직접 운영하는 이커머스로 가야 할 이유가 줄어든 것이다.
둘째는 이익화에 몰두한 유통공룡들이 국내 시장 확장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국내 이커머스 역사를 돌아보면 시장 확장에 대한 중요 시점이 여럿 존재했다. ‘뽐뿌’라는 신조어가 등장, 충동적 구매가 유행하면서 가격비교를 통해 인기 플랫폼이 정해지던 2006년의 시기, 그리고 사용자 환경이 바뀐 2010년의 모바일 전환기다. 유통공룡들은 빠른 거래량 성장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여야 했던 두 시점에 이익화만 추구했다.
2006년은 많은 상품 수와 낮은 가격의 오픈마켓 성장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유통공룡들은 오픈마켓과의 가격대결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업간거래(B2B)를 시작했다. 이커머스의 B2B 서비스란 ‘복지몰’ 형태로 기업과 계약해 오픈하는 폐쇄몰 서비스를 뜻한다. 기업과 소비자간 거래(B2C)를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을 복제해 고객사에 맞게 일부 수정한 뒤 운영하는 형태다. 유통공룡들이 오픈마켓과의 정면 싸움을 하지 않은 이유는 오프라인처럼 유통형태간 경계가 분명하다는 믿음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매입판매를 하거나 위탁판매를 하는 유통공룡의 종합몰은 중개수수료를 받는 오픈마켓과 비즈니스 모델이 다르다. 그래서 사업분야가 다르다고 판단해 동종업계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2011년까지도 롯데닷컴에서는 ‘종합몰 업계 1위’라는 키워드를 대내외적으로 사용했다. 이는 동일한 백화점 기반의 종합몰만을 대상으로 판단한 등수에 해당한다. 오프라인 유통은 백화점과 마트, 편의점의 판매상품의 경계가 뚜렷해 장소의 한계가 있다. 상품군에서도 차별성을 갖게 되지만 온라인의 경우 업태가 분명히 다르다. 상품판매의 제약이 없기에 구매자에게 종합몰과 오픈마켓의 구분에 의미가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모바일이 등장한 2010년은 새로운 디바이스인 스마트폰을 통한 사용자 경험이 축적된 시기다. 모바일 전환 초기 유통공룡들은 각종 법적 리스크를 줄이며 해외진출로 눈을 돌렸다.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이 커지면서 정부의 규제가 구체화된 시기다. 다양한 정부사업의 영향을 받으면서 상품정보제공고시, 도로명 주소 개편, 정보통신망법 개정에 의한 ISMS 인증,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마크업 설명의 적용 등 중요한 권고사항들에 대한 기업 내 리소스 투자가 많이 이뤄졌다. 모바일 시장의 가능성에 대해 파악해야 할 시점에 PC 기반 시스템의 법적 리스크를 줄이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소모한 것이다.
또한 네이버 위주의 검색 헤게모니가 고착화되면서 각 사 트래픽의 네이버 의존도가 높아졌다. 국내 이커머스의 점유율은 팽팽한 긴장상태로 유지됐다. 이때 유통공룡들은 할인경쟁에 뛰어들기 보다 이미 완성된 PC 기반의 이커머스 역량을 바탕으로 시장을 해외로 옮겨 역직구몰을 만드는 전략을 시도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시점에 시작된 역직구몰은 2018년 전후로 대부분 문을 닫았다. 해외 역시 모바일 기반의 커머스가 성장하는 시점에 PC 기반 외국인 사용자에게 낯선 국내 형태의 서비스가 만들어졌기에 지금의 중국발 C커머스처럼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
셋째는 오프라인 계열사간 흩어진 온라인 역량을 물리적으로만 통합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2014년 신세계의 SSG닷컴과 2020년 롯데의 롯데온은 6년의 시간차가 있지만 사실 완전히 동일한 통합 전략을 가져갔다. 여러 오프라인 유통계열사로 흩어진 온라인 역량을 엮어 하나의 큰 플랫폼으로서 통합 시너지를 보여준다는 모토다. 개별 서비스로 흩어진 트래픽과 회원을 모으고 상품을 모으면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여러 개의 앱과 URL로 분리된 온라인 서비스가 물리적으로 합쳐지는 것만으로는 ‘옴니채널’(온·온프라인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검색 및 구매하는 서비스)이 지향하는 화학적 통합을 이루지 못했다. 통합 브랜드 서비스와 함께 각각 유통계열사의 브랜딩과 상품표기, 별도 진입경로 제공을 포기하지 못하면서 ‘따로 또 같이’의 형태가 됐다.
각 서비스 ‘지점’에 대한 인식도 그대로였다. 통합된 서비스 내에서 각 계열사간 경쟁이 일어나고, 내부 시스템에서는 업태가 같아도 지점간 경쟁이 일어나야 한다. 온라인 단독 판매라는 형태로 오프라인과 판매경쟁해 차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점이 부족했다. SSG닷컴 내 이마트몰에만 들어가도 그냥 마트와 트레이더스를 구분하는 정도다. 신세계백화점도 존재하고 신세계몰도 존재한다. 통합을 통해 강력한 상품 소싱력와 오프라인 매장을 통한 플랫폼 시너지를 내고 싶었겠지만 오히려 복잡도만 높였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현대홈쇼핑을 기반으로 한 Hmall과 현대백화점을 기반으로 한 더현대닷컴을 하나의 통합 사이트로 구축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사용자들은 온라인 내에서 단일화된 이커머스 브랜드와 일관된 경험을 기대한다. 그러나 Hmall과 더현대닷컴에서 백화점 상품이 모두 이중전시 및 판매됐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Hmall에서 구매하고도 더현대닷컴에서 구매했다고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커머스 스타트업들이 유통공룡보다 잘했던 것
지금까지는 유통공룡들의 패착을 살펴봤다. 이제는 이커머스 스타트업들이 유통공룡보다 잘한 점을 짚어보려고 한다. IT 기반의 이커머스 스타트업들이 지속적인 성장을 마련한 것 중 하나가 조직 구조적 차이다. IT 기반의 커머스 스타트업들은 IT 역량 내재화, 적정개발, 집중도 면에서 조직적인 흐름을 잘 만들었다. 유통공룡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유통공룡들은 그룹사 내 제조업이 많아 아웃소싱 형태로 IT를 전담하는 계열사들이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스템의 개선에 대한 비용은 외주 비용으로 처리한다. 그래서 차세대 리뉴얼과 같이 시스템 기반을 바꾸는 프로젝트를 자주하기 어렵다. 비용 처리도 몇 년간의 감가상각을 기반으로 투자하는 경우가 있다. 아웃소싱된 개발 인원과 몇 년 단위 투자 비용의 감가상각은 긴 시간 IT 시스템에 큰 투자를 한 것처럼 착시 효과를 준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추가적인 큰 개선을 필요로 할 경우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로 인해 쉽게 추진하기 어렵다.
스타트업으로 출발해 성장한 쿠팡 등 이커머스 사업자는 대체로 내재화된 IT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내재화된 IT 인력이 많은 경우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추가 비용 예산을 집행할 필요가 없다. 고정된 인건비 내에서 처리가 가능하다. 비용 집행에 대한 변동성이 작아지므로 사이즈를 작게, 잦은 횟수로 다양한 기술 투자를 할 수 있다.
신기술 활용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AI나 메타버스와 같은 유행 기술이 떠오르면 이 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부터 솔루션을 받아 빠르게 적용하고자 한다. 하지만 완벽하게 해당 기업의 형태에 맞는 커스터마이징이나 고도화가 쉽지 않다. 경쟁사에 레퍼런스로 사용돼 유사한 기능이 퍼져 기업간 차별화를 저해한다. 내재화된 기술력이 있다면 솔루션 형태로 기술을 쓰지 않거나 솔루션을 쓰더라도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형태를 선택해 맞춤형으로 개선할 수 있다.
내재화된 IT 역량이 있다면, 비즈니스 상황에 맞는 적정 개발도 가능하다.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요구사항을 모두 수집해 반영한 서비스는 과잉개발로 이어져 변화의 속도가 느려진다. 실제 달성 가능한 성과에 비해서 시간을 낭비하게 될 수도 있다. 적정 범위의 개발이란 필요한 양만큼을 정확하게 구분해 같은 시간 내 효과를 극대화하는 개발양으로 개발된 경우를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IT기반의 이커머스 스타트업은 버티컬이나 오픈 시점 특정 소수의 시장에 집중했다. 쿠팡의 경우 초기에는 익일배달이 꼭 필요한 육아용품에 집중해서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성장시켰다 이후 카테고리를 확장했다. 버티컬 커머스의 경우 집중된 대상의 니즈와 사용자 루틴에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기존 유통공룡은 이미 처음부터 오프라인에서 카테고리의 다양성이 높아진 상품을 모두 포괄해 만들기 때문에 상품 상세 페이지에서 정보를 제공하거나 매장에서 상품을 전시할 때 표준적으로 다양한 상품군을 포괄할 수 있도록 복잡도를 갖고 설계한다. ‘모든 것이 의미 있으면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 있듯이 유통공룡의 서비스에서 집중된 사용자나 상품군을 정의하기 어렵다는 점도 상대적인 한계지점이 된다.
유통공룡이 다시 선두로 가려면
CJ 올리브영의 온라인 서비스 성공은 현재 대기업형 유통기업들 중에서는 눈에 띄는 사례다. 올리브영 자체의 강력한 소싱 파워를 바탕으로 확보된 매입 상품의 정보와 재고 정보를 온라인 매장과 정확하게 일치시키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물류업계에서는 ‘정물일치’라고 표현한다. 구매자의 온라인 주문 실패 경험을 없애고 오프라인과 온라인간 경험 연결을 위해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개념상으로는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만들기 쉽지 않다. 앞에서 이야기한 유통공룡들의 전략실패 순간들은 결국 온오프라인간 분리된 시스템과 분리된 전략을 추구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올리브영 역시 오랜기간 오프라인에서 H&B스토어로서 높은 선호도를 만들어왔지만 초기에는 ‘화해’와 같은 스타트업에서 시작한 서비스들에서 선호도가 떨어졌었다. 내부적으로도 외주사를 통해 시스템을 개발하고 오프라인 비즈니스 조직과 온라인 운영, 개발 조직이 완전 분리된 형태로 일했기에 여타 유통공룡들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새 올리브영의 온라인 파워 성장이 오프라인 매출을 뒷받침했다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언론보도와 내부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올리브영의 성공은 개발 및 서비스 기획 직무자들의 업무에 대한 전사적 이해도를 높이며 최적화를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로덕트오너(PO)라고 불리는 IT 서비스 기획자 조직을 모든 비즈니스 조직에 배치시켜 사업적 요구사항을 섬세하게 잘 정리했다. 또 개발 요구사항으로 수용될 수 있게 연결고리를 강화했다. 이를 통해 스타트업에서 잘했던 IT 조직의 적정 개발을 판단할 수 있는 조직에 가까워졌다. 오프라인에서 가진 강한 소싱능력이나 오프라인 시스템의 레거시가 온라인 시스템에 더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이 부분에서 시너지가 발생한 것이다.
올리브영의 성장을 단순하게 ‘버티컬 서비스의 힘’으로 읽으면 오판하기 쉽다. 기존 유통공룡들이 모든 카테고리의 상품을 다루는 이커머스인 ‘종합몰’의 형태를 추구했기에 각 카테고리별로 특화된 시스템 구조도 만들지 못하고 평준화되며 핵심 상품군도 정하지 못했다.
과거 나영호 대표 체제의 롯데온은 ‘버티컬’ 전략을 구사한 적이 있다. 하지만 외부적으로만 버티컬처럼 카테고리를 모았을 뿐 실제 버티컬이 되기 어려웠다. 복수의 카테고리별 버티컬을 병렬적으로 만들어야 했기에 역시나 종합몰과 마찬가지로 코어 상품군을 지정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떤 상품군이 코어 상품군으로 지정돼야 할까. 올리브영이 큰 힌트를 준다. 바로 기존 오프라인에서 강력한 소싱 역량으로 상품 장악력을 갖고 있던 부분에서 시작해야한다. 코어 상품군이 명확하면 간편결제·익일배송·새벽배송·AI추천·통합멤버십 등 유행하는 기술과 서비스 기능의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코어 상품군에 훨씬 더 밀착된 서비스 형태를 판단하기도 쉬워진다. 이미 많은 개발과 철수를 해보면서 새로운 기능이 상품 판매의 본질을 바꿔주지 못한다는 것이 학습됐을 것이다. 코어 상품군을 강화하려는 목표가 명확해야 기술과 서비스의 정책이 탄탄해질 수 있다.
물론 큰 규모의 목표를 가진 유통공룡 입장에서 마음이 조급해질 수 있다. 이미 후행주자가 된 상황에서 과거 오프라인 유통을 성장시킬 때처럼 신규로 만드는 카테고리마다 최초와 처음을 차지하며 성장할 수는 없다. 종합몰로서의 온라인 경쟁은 이미 쿠팡과 네이버 양강체제로 고정돼 승산이 없다. 이를 한 번에 뒤집을 묘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코어 상품군에 집중한 서비스로의 전환은 사용자에게는 “왜 가야하는가”를 제시해준다. 서비스를 만드는 내부 인력들에게는 집중해야할 대상을 명확히 인지하게 한다. 모두가 잊고 있겠지만 쿠팡은 육아 생필품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지금도 생필품, 식재료 등 생활에 밀접한 상품들을 중심으로 판매된다. 반면에 의류의 경우 쿠팡에서는 계속 성장시키려고 노력 중인 상품군일 뿐이다.
답은 나왔다. 유통공룡들이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기존 오프라인 소싱 능력을 통해 코어 상품군을 발굴하고 비즈니스와 온라인 시스템 역량을 일관성 있게 일치시키는 조직 형태와 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 물론 이들은 지금까지 다른 방향성을 갖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비즈니스를 시스템으로 잘 구현하는 과정에서 양쪽을 다 이해할 수 있는 인재들을 집중적으로 성장시키고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통공룡들이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는 역설적이게도 기업의 무게를 줄이고 있는 지금이다. 사회적으로 인력과 조직의 축소는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다. 하지만 이 시기를 겪으면서도 현재를 새로운 시작점으로 잡지 못한다면 온라인 시대에서 유통공룡의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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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겪으며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큰 폭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쿠팡과 네이버가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양강체제를 구축했다. 패션·인테리어·장보기·뷰티와 같이 특정 카테고리만을 노리는 버티컬 플랫폼들도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오프라인 유통공룡이라고 불린 신세계·롯데·현대백화점그룹은 온라인에서 큰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오프라인 시장의 위기가 야기되며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발 C-커머스의 공격이 거세지는 이 시점에 한 번쯤 회고할 필요가 있다. 왜 유통공룡들은 막대한 인프라와 인원, 자금력을 갖췄음에도 현 상황에 처했는지 말이다.
유통공룡들은 ‘이커머스 후발주자’가 아니다
‘쿠팡’이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성공하면서 신세계, 롯데 등을 ‘이커머스 후발주자’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후발주자란 사전적으로 남보다 뒤늦게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길을 떠나는 사람을 의미한다. 사실 신세계, 롯데 등은 쿠팡보다 먼저 이커머스 사업을 펼친 곳이다.
롯데는 1996년 ‘롯데닷컴’을 시작으로 국내에서 인터파크와 함께 가장 먼저 B2C 이커머스 사업을 시작했다. 신세계가 품은 옥션과 지마켓도 각각 1998년, 1999년에 문을 열었다. 국내에 스마트폰이 출시되고 모바일 앱을 개발하는 스타트업들이 쏟아져 나온 2013년까지 PC 기반으로 성장한 1세대 이커머스 플랫폼은 이커머스 관련 국내 법규에 적응하며 나란히 성장해왔다.
모바일 시대에도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모바일과 PC의 차이가 크게 느껴질 수 있지만 스타트업보다 앞서 정교화된 시스템을 갖춘 상태였기 때문이다. 1세대 이커머스 플랫폼들이 PC 기반으로 성장했다고 해도 단기간에 모바일 서비스 구현이 가능했다. 기본적으로 이커머스 플랫폼이 가져야 할 시스템적 기능과 많은 상품 수, 숙련된 이커머스 운영 경험을 각 사가 이미 보유하고 있었다.
1세대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쿠팡의 성공 이후 이커머스 시장을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물류경쟁력도 갖췄다. 이들은 오프라인 유통매장을 통해 자체 매입 재고를 다량 보유했다. 홈쇼핑계열사를 통해 자사 물류창고에서 익일배송을 할 수 있는 인프라도 갖췄다. 유통공룡들은 뒤늦게 쿠팡을 보고 출발한 후발주자가 아니다. 1세대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쿠팡보다 먼저 출발했고 긴 시간 시스템을 갖춰온 개척자다. 그러나 현재 쿠팡에게 선두자리를 내줬다.
유통공룡들이 선두를 빼앗긴 역사적 실수 3가지
유통공룡들은 가진 것이 많았다. 그럼에도 선두그룹에서 계속 밀려났다. 돌이켜 보면 몇 가지 결정적인 이유들이 존재했다. 첫째는 오프라인 유통을 통한 강력한 소싱능력을 플랫폼 파워로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2006년 오픈한 네이버 가격비교는 온라인상에 널리 퍼진 이커머스들의 동일 상품을 쉽게 비교할 수 있게 하는 메타 플랫폼의 형태였다. 당시 인터넷 첫 화면 점유율이 높았던 네이버는 이 서비스로 쇼핑을 위해 소비자들이 자사 포털을 찾게 만들었다. 가격비교를 통한 이커머스 진입 트래픽이 증가하면서 각 플랫폼사들은 앞다퉈 네이버로 진입 시 쓸 수 있는 쿠폰을 만들어 경쟁했다. 이용자들이 ‘네이버 가격비교로 진입 시 더 싸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이후 2015년 스토어팜, 2016년 간편결제 서비스 네이버페이가 연이어 론칭됐다. 네이버 가격비교에 올라오는 모든 상품을 네이버의 결제수단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 유통공룡들이 상품을 판매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네이버만 기억하고 쇼핑을 했다. 이로 인해 유통공룡들은 점점 더 막대한 유입 비용을 네이버에 지불해야 했다.
재연동판매는 타 플랫폼에서 결제가 일어나 보유 상품의 희소성을 낮췄다. 2011년 롯데닷컴이 지마켓에 롯데백화점의 상품을 연동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G마켓(지마켓)은 이를 시작으로 신세계, 현대백화점의 상품들을 흡수하며 짝퉁이 많다는 오픈마켓 상품에 대한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었다. 현재 쿠팡에서도 대부분의 백화점 상품이 유통공룡 플랫폼에 의해 재연동돼 판매되고 있다. 1세대 이커머스 플랫폼 입장에서는 오프라인 상품의 경쟁력이 자사 플랫폼의 트래픽과 재방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믿을 수 있는 백화점 상품, 대형마트 상품’을 온라인에서 사려고 할 때 꼭 유통공룡이 직접 운영하는 이커머스로 가야 할 이유가 줄어든 것이다.
둘째는 이익화에 몰두한 유통공룡들이 국내 시장 확장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국내 이커머스 역사를 돌아보면 시장 확장에 대한 중요 시점이 여럿 존재했다. ‘뽐뿌’라는 신조어가 등장, 충동적 구매가 유행하면서 가격비교를 통해 인기 플랫폼이 정해지던 2006년의 시기, 그리고 사용자 환경이 바뀐 2010년의 모바일 전환기다. 유통공룡들은 빠른 거래량 성장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여야 했던 두 시점에 이익화만 추구했다.
2006년은 많은 상품 수와 낮은 가격의 오픈마켓 성장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유통공룡들은 오픈마켓과의 가격대결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업간거래(B2B)를 시작했다. 이커머스의 B2B 서비스란 ‘복지몰’ 형태로 기업과 계약해 오픈하는 폐쇄몰 서비스를 뜻한다. 기업과 소비자간 거래(B2C)를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을 복제해 고객사에 맞게 일부 수정한 뒤 운영하는 형태다. 유통공룡들이 오픈마켓과의 정면 싸움을 하지 않은 이유는 오프라인처럼 유통형태간 경계가 분명하다는 믿음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매입판매를 하거나 위탁판매를 하는 유통공룡의 종합몰은 중개수수료를 받는 오픈마켓과 비즈니스 모델이 다르다. 그래서 사업분야가 다르다고 판단해 동종업계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2011년까지도 롯데닷컴에서는 ‘종합몰 업계 1위’라는 키워드를 대내외적으로 사용했다. 이는 동일한 백화점 기반의 종합몰만을 대상으로 판단한 등수에 해당한다. 오프라인 유통은 백화점과 마트, 편의점의 판매상품의 경계가 뚜렷해 장소의 한계가 있다. 상품군에서도 차별성을 갖게 되지만 온라인의 경우 업태가 분명히 다르다. 상품판매의 제약이 없기에 구매자에게 종합몰과 오픈마켓의 구분에 의미가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모바일이 등장한 2010년은 새로운 디바이스인 스마트폰을 통한 사용자 경험이 축적된 시기다. 모바일 전환 초기 유통공룡들은 각종 법적 리스크를 줄이며 해외진출로 눈을 돌렸다.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이 커지면서 정부의 규제가 구체화된 시기다. 다양한 정부사업의 영향을 받으면서 상품정보제공고시, 도로명 주소 개편, 정보통신망법 개정에 의한 ISMS 인증,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마크업 설명의 적용 등 중요한 권고사항들에 대한 기업 내 리소스 투자가 많이 이뤄졌다. 모바일 시장의 가능성에 대해 파악해야 할 시점에 PC 기반 시스템의 법적 리스크를 줄이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소모한 것이다.
또한 네이버 위주의 검색 헤게모니가 고착화되면서 각 사 트래픽의 네이버 의존도가 높아졌다. 국내 이커머스의 점유율은 팽팽한 긴장상태로 유지됐다. 이때 유통공룡들은 할인경쟁에 뛰어들기 보다 이미 완성된 PC 기반의 이커머스 역량을 바탕으로 시장을 해외로 옮겨 역직구몰을 만드는 전략을 시도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시점에 시작된 역직구몰은 2018년 전후로 대부분 문을 닫았다. 해외 역시 모바일 기반의 커머스가 성장하는 시점에 PC 기반 외국인 사용자에게 낯선 국내 형태의 서비스가 만들어졌기에 지금의 중국발 C커머스처럼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
셋째는 오프라인 계열사간 흩어진 온라인 역량을 물리적으로만 통합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2014년 신세계의 SSG닷컴과 2020년 롯데의 롯데온은 6년의 시간차가 있지만 사실 완전히 동일한 통합 전략을 가져갔다. 여러 오프라인 유통계열사로 흩어진 온라인 역량을 엮어 하나의 큰 플랫폼으로서 통합 시너지를 보여준다는 모토다. 개별 서비스로 흩어진 트래픽과 회원을 모으고 상품을 모으면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여러 개의 앱과 URL로 분리된 온라인 서비스가 물리적으로 합쳐지는 것만으로는 ‘옴니채널’(온·온프라인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검색 및 구매하는 서비스)이 지향하는 화학적 통합을 이루지 못했다. 통합 브랜드 서비스와 함께 각각 유통계열사의 브랜딩과 상품표기, 별도 진입경로 제공을 포기하지 못하면서 ‘따로 또 같이’의 형태가 됐다.
각 서비스 ‘지점’에 대한 인식도 그대로였다. 통합된 서비스 내에서 각 계열사간 경쟁이 일어나고, 내부 시스템에서는 업태가 같아도 지점간 경쟁이 일어나야 한다. 온라인 단독 판매라는 형태로 오프라인과 판매경쟁해 차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점이 부족했다. SSG닷컴 내 이마트몰에만 들어가도 그냥 마트와 트레이더스를 구분하는 정도다. 신세계백화점도 존재하고 신세계몰도 존재한다. 통합을 통해 강력한 상품 소싱력와 오프라인 매장을 통한 플랫폼 시너지를 내고 싶었겠지만 오히려 복잡도만 높였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현대홈쇼핑을 기반으로 한 Hmall과 현대백화점을 기반으로 한 더현대닷컴을 하나의 통합 사이트로 구축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사용자들은 온라인 내에서 단일화된 이커머스 브랜드와 일관된 경험을 기대한다. 그러나 Hmall과 더현대닷컴에서 백화점 상품이 모두 이중전시 및 판매됐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Hmall에서 구매하고도 더현대닷컴에서 구매했다고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커머스 스타트업들이 유통공룡보다 잘했던 것
지금까지는 유통공룡들의 패착을 살펴봤다. 이제는 이커머스 스타트업들이 유통공룡보다 잘한 점을 짚어보려고 한다. IT 기반의 이커머스 스타트업들이 지속적인 성장을 마련한 것 중 하나가 조직 구조적 차이다. IT 기반의 커머스 스타트업들은 IT 역량 내재화, 적정개발, 집중도 면에서 조직적인 흐름을 잘 만들었다. 유통공룡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유통공룡들은 그룹사 내 제조업이 많아 아웃소싱 형태로 IT를 전담하는 계열사들이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스템의 개선에 대한 비용은 외주 비용으로 처리한다. 그래서 차세대 리뉴얼과 같이 시스템 기반을 바꾸는 프로젝트를 자주하기 어렵다. 비용 처리도 몇 년간의 감가상각을 기반으로 투자하는 경우가 있다. 아웃소싱된 개발 인원과 몇 년 단위 투자 비용의 감가상각은 긴 시간 IT 시스템에 큰 투자를 한 것처럼 착시 효과를 준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추가적인 큰 개선을 필요로 할 경우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로 인해 쉽게 추진하기 어렵다.
스타트업으로 출발해 성장한 쿠팡 등 이커머스 사업자는 대체로 내재화된 IT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내재화된 IT 인력이 많은 경우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추가 비용 예산을 집행할 필요가 없다. 고정된 인건비 내에서 처리가 가능하다. 비용 집행에 대한 변동성이 작아지므로 사이즈를 작게, 잦은 횟수로 다양한 기술 투자를 할 수 있다.
신기술 활용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AI나 메타버스와 같은 유행 기술이 떠오르면 이 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부터 솔루션을 받아 빠르게 적용하고자 한다. 하지만 완벽하게 해당 기업의 형태에 맞는 커스터마이징이나 고도화가 쉽지 않다. 경쟁사에 레퍼런스로 사용돼 유사한 기능이 퍼져 기업간 차별화를 저해한다. 내재화된 기술력이 있다면 솔루션 형태로 기술을 쓰지 않거나 솔루션을 쓰더라도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형태를 선택해 맞춤형으로 개선할 수 있다.
내재화된 IT 역량이 있다면, 비즈니스 상황에 맞는 적정 개발도 가능하다.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요구사항을 모두 수집해 반영한 서비스는 과잉개발로 이어져 변화의 속도가 느려진다. 실제 달성 가능한 성과에 비해서 시간을 낭비하게 될 수도 있다. 적정 범위의 개발이란 필요한 양만큼을 정확하게 구분해 같은 시간 내 효과를 극대화하는 개발양으로 개발된 경우를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IT기반의 이커머스 스타트업은 버티컬이나 오픈 시점 특정 소수의 시장에 집중했다. 쿠팡의 경우 초기에는 익일배달이 꼭 필요한 육아용품에 집중해서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성장시켰다 이후 카테고리를 확장했다. 버티컬 커머스의 경우 집중된 대상의 니즈와 사용자 루틴에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기존 유통공룡은 이미 처음부터 오프라인에서 카테고리의 다양성이 높아진 상품을 모두 포괄해 만들기 때문에 상품 상세 페이지에서 정보를 제공하거나 매장에서 상품을 전시할 때 표준적으로 다양한 상품군을 포괄할 수 있도록 복잡도를 갖고 설계한다. ‘모든 것이 의미 있으면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 있듯이 유통공룡의 서비스에서 집중된 사용자나 상품군을 정의하기 어렵다는 점도 상대적인 한계지점이 된다.
유통공룡이 다시 선두로 가려면
CJ 올리브영의 온라인 서비스 성공은 현재 대기업형 유통기업들 중에서는 눈에 띄는 사례다. 올리브영 자체의 강력한 소싱 파워를 바탕으로 확보된 매입 상품의 정보와 재고 정보를 온라인 매장과 정확하게 일치시키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물류업계에서는 ‘정물일치’라고 표현한다. 구매자의 온라인 주문 실패 경험을 없애고 오프라인과 온라인간 경험 연결을 위해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개념상으로는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만들기 쉽지 않다. 앞에서 이야기한 유통공룡들의 전략실패 순간들은 결국 온오프라인간 분리된 시스템과 분리된 전략을 추구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올리브영 역시 오랜기간 오프라인에서 H&B스토어로서 높은 선호도를 만들어왔지만 초기에는 ‘화해’와 같은 스타트업에서 시작한 서비스들에서 선호도가 떨어졌었다. 내부적으로도 외주사를 통해 시스템을 개발하고 오프라인 비즈니스 조직과 온라인 운영, 개발 조직이 완전 분리된 형태로 일했기에 여타 유통공룡들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새 올리브영의 온라인 파워 성장이 오프라인 매출을 뒷받침했다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언론보도와 내부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올리브영의 성공은 개발 및 서비스 기획 직무자들의 업무에 대한 전사적 이해도를 높이며 최적화를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로덕트오너(PO)라고 불리는 IT 서비스 기획자 조직을 모든 비즈니스 조직에 배치시켜 사업적 요구사항을 섬세하게 잘 정리했다. 또 개발 요구사항으로 수용될 수 있게 연결고리를 강화했다. 이를 통해 스타트업에서 잘했던 IT 조직의 적정 개발을 판단할 수 있는 조직에 가까워졌다. 오프라인에서 가진 강한 소싱능력이나 오프라인 시스템의 레거시가 온라인 시스템에 더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이 부분에서 시너지가 발생한 것이다.
올리브영의 성장을 단순하게 ‘버티컬 서비스의 힘’으로 읽으면 오판하기 쉽다. 기존 유통공룡들이 모든 카테고리의 상품을 다루는 이커머스인 ‘종합몰’의 형태를 추구했기에 각 카테고리별로 특화된 시스템 구조도 만들지 못하고 평준화되며 핵심 상품군도 정하지 못했다.
과거 나영호 대표 체제의 롯데온은 ‘버티컬’ 전략을 구사한 적이 있다. 하지만 외부적으로만 버티컬처럼 카테고리를 모았을 뿐 실제 버티컬이 되기 어려웠다. 복수의 카테고리별 버티컬을 병렬적으로 만들어야 했기에 역시나 종합몰과 마찬가지로 코어 상품군을 지정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떤 상품군이 코어 상품군으로 지정돼야 할까. 올리브영이 큰 힌트를 준다. 바로 기존 오프라인에서 강력한 소싱 역량으로 상품 장악력을 갖고 있던 부분에서 시작해야한다. 코어 상품군이 명확하면 간편결제·익일배송·새벽배송·AI추천·통합멤버십 등 유행하는 기술과 서비스 기능의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코어 상품군에 훨씬 더 밀착된 서비스 형태를 판단하기도 쉬워진다. 이미 많은 개발과 철수를 해보면서 새로운 기능이 상품 판매의 본질을 바꿔주지 못한다는 것이 학습됐을 것이다. 코어 상품군을 강화하려는 목표가 명확해야 기술과 서비스의 정책이 탄탄해질 수 있다.
물론 큰 규모의 목표를 가진 유통공룡 입장에서 마음이 조급해질 수 있다. 이미 후행주자가 된 상황에서 과거 오프라인 유통을 성장시킬 때처럼 신규로 만드는 카테고리마다 최초와 처음을 차지하며 성장할 수는 없다. 종합몰로서의 온라인 경쟁은 이미 쿠팡과 네이버 양강체제로 고정돼 승산이 없다. 이를 한 번에 뒤집을 묘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코어 상품군에 집중한 서비스로의 전환은 사용자에게는 “왜 가야하는가”를 제시해준다. 서비스를 만드는 내부 인력들에게는 집중해야할 대상을 명확히 인지하게 한다. 모두가 잊고 있겠지만 쿠팡은 육아 생필품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지금도 생필품, 식재료 등 생활에 밀접한 상품들을 중심으로 판매된다. 반면에 의류의 경우 쿠팡에서는 계속 성장시키려고 노력 중인 상품군일 뿐이다.
답은 나왔다. 유통공룡들이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기존 오프라인 소싱 능력을 통해 코어 상품군을 발굴하고 비즈니스와 온라인 시스템 역량을 일관성 있게 일치시키는 조직 형태와 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 물론 이들은 지금까지 다른 방향성을 갖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비즈니스를 시스템으로 잘 구현하는 과정에서 양쪽을 다 이해할 수 있는 인재들을 집중적으로 성장시키고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통공룡들이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는 역설적이게도 기업의 무게를 줄이고 있는 지금이다. 사회적으로 인력과 조직의 축소는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다. 하지만 이 시기를 겪으면서도 현재를 새로운 시작점으로 잡지 못한다면 온라인 시대에서 유통공룡의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이미준 프로덕트 오너(PO)/서비스기획자는_성균관대 사학 및 경영학을 전공하고 고려사이버대 융합정보대학원 석사를 취득했다. 카카오스타일과 롯데온 등에서 이커머스 서비스 기획 업무를 맡았다. 2020년부터는 <현업 기획자 도그냥이 알려주는 서비스 기획 스쿨>, <대한민국 이커머스의 역사>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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