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과 박지원[전형일의 세상만사]
82세 동갑내기의 서로 다른 행보
K-노익장의 모범 보여주길 기대
[전형일 칼럼니스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동갑(同甲)이다. 모두 1942년생으로 올해 82세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 해도 80세 넘어 국가를 경영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정치는 일반적인 직무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 외에도 요구되는 조건이 다양하고 까다롭다.
정치가는 무엇보다 공적 감성을 바탕으로 전문가적 지식과 경험을 정책과 연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프로네시스’(phronesis·실천적 지혜)라고 했다. 또 막스 베버는 정치인의 덕목으로 ‘열정, 균형감각, 책임감’을 꼽았다. 여기에 권력의지도 강해야 한다.
“60은 노인, 70이면 퇴직”
예전 동아시아에서는 70세를 상징적인 나이로 여겼다.
당나라 시성 두보는 시 곡강이수(曲江二首)에서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했다. 사람이 70세를 산다는 건 드물다는 뜻이다. 두보는 59세에 사망했다.
공자는 70세를 ‘종심불유구’(從心不踰矩)라고 말했다. 뜻대로 행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공자는 72세까지 살았다. 그 시대 평균수명이 35세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장수한 편이다.
예기(禮記)에 “60세는 기(耆)이며, 남에게 일을 시켜도 되는 나이(六十耆指使)이고, 70세는 노(老)이며, 자기 일을 넘겨주는 나이(七十曰老而傳)”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기로’는 나이 60이면 노인 대접을 받고, 70이면 퇴직한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조선시대에 ‘기로소’(耆老所)라는 곳을 설치했다. 당시 연로한 신하들의 예우를 위해 별도로 설치한 관청이다. 2품 이상 전·현직 관리 중에서 70세 이상이 기로소 자격 조건이었다.
물론 자격요건을 채우더라도 다 기로소 회원이 될 수 없었다. 우선 과거시험을 통하지 않은 관리는 아무리 학문이 높고 명망이 두터워도 원칙적으로 입소 자격이 안 됐다. 무관 역시 자격이 없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기로소에 든 사람은 태조(72세), 숙종(60세), 영조(81세), 고종(67세) 등 임금 4명을 포함해 700여 명에 불과했다. 정종(62세)과 광해군(67세)도 환갑을 넘겼지만, 현역 왕이 아니어서 기로소에 들지 못했다.
기로소 입소는 장수와 명예를 누리고 다양한 혜택을 입는다는 점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인지 기로소에 들어가겠다고 압력을 행사한 두 명의 임금이 있었다. 바로 숙종과 그의 아들인 영조이다.
1719년 숙종은 59세 때, 기로소에 들어가려면 10년 이상 남았지만, 앞서 태조 이성계가 70세 되기 전 60세에 들어간 전례를 따라 입소했다. 당시 숙종이 입소 행사에 참여한 관료들과 함께 만든 화첩이 ‘기사계첩’(耆社契帖)으로 이는 국보 제334호다. 영조는 이보다 더해 51세에 ‘육순을 바라보는 것은 같다’(望六旬則一)라며 입소를 강행했다.
신하가 70세가 돼도 물러나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임금에게서 궤장(几杖)을 하사받은 경우다. 임금이 내려준 지팡이(杖)를 짚고 출근해, 의자(几)에 앉아 근무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삼국사기에도 신라 문무왕이 70세가 된 김유신에게 궤장을 내린 기록이 있다.
고령에 재선 포기한 바이든…박지원 재조명
서양에서도 연륜(年輪)이 정치를 이끌었다.
로마 공화정 시대, 귀족 중에서 선발된 300명으로 이뤄진 원로원(元老院)이 그것이다. 당시 로마의 핵심 정치 기관이었다. 행정과 군사 분야의 최고 책임자인 집정관을 감시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종신직이었다. 따라서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원로원은 점차 민중의 신뢰를 얻었고 결국 실질적인 최고 의결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라틴어로 원로원인 세나투스(senatus)는 노인이라는 의미의 세낵스(senex)에서 나왔다. 원로회 의원은 세나토르(senator)였다. 현재 미국 연방의회 상원(senate)과 상원 의원(senator)은 여기서 유래했다.
이처럼 동서양 모두 경험 많은 노인을 존경하고 우대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현대에 노인을 ‘잉여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문화다.
불행히도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결국 재선(再選)을 포기했다. 29세 최연소 상원 의원, 최고령 대통령이라는 ‘나이’에 관한 기록을 보유한 그가 오히려 ‘고령 리스크’로 물러나게 됐다. 지지 여부를 떠나 은퇴 세대에게는 불행한 소식이다.
반면 바이든보다 생일(11월)이 5개월(6월)이나 빠른 박 의원은 예전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박 의원의 체력, 기억력, 순발력, 분석력, 통찰력, 유머 감각 등은 여전하다. 이는 각종 방송의 패널로 초청받는 것으로 증명된다. 더구나 그의 풍부한 경험에 의한 촌철살인 논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연장자(senior)와 망령(senile)은 모두 같은 어원에서 파생했듯이 자칫 노년의 열정은 노욕으로, 실수는 주책과 노망으로 보일 수 있다.
모쪼록 박 의원이 진영을 떠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K-노익장의 모범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조선시대 황희 정승도 87세까지 관직에 있었으며 무려 24년간 정승 자리에 있었다.
박지원 의원의 건투를 기원한다.
전형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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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100세 시대라 해도 80세 넘어 국가를 경영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정치는 일반적인 직무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 외에도 요구되는 조건이 다양하고 까다롭다.
정치가는 무엇보다 공적 감성을 바탕으로 전문가적 지식과 경험을 정책과 연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프로네시스’(phronesis·실천적 지혜)라고 했다. 또 막스 베버는 정치인의 덕목으로 ‘열정, 균형감각, 책임감’을 꼽았다. 여기에 권력의지도 강해야 한다.
“60은 노인, 70이면 퇴직”
예전 동아시아에서는 70세를 상징적인 나이로 여겼다.
당나라 시성 두보는 시 곡강이수(曲江二首)에서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했다. 사람이 70세를 산다는 건 드물다는 뜻이다. 두보는 59세에 사망했다.
공자는 70세를 ‘종심불유구’(從心不踰矩)라고 말했다. 뜻대로 행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공자는 72세까지 살았다. 그 시대 평균수명이 35세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장수한 편이다.
예기(禮記)에 “60세는 기(耆)이며, 남에게 일을 시켜도 되는 나이(六十耆指使)이고, 70세는 노(老)이며, 자기 일을 넘겨주는 나이(七十曰老而傳)”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기로’는 나이 60이면 노인 대접을 받고, 70이면 퇴직한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조선시대에 ‘기로소’(耆老所)라는 곳을 설치했다. 당시 연로한 신하들의 예우를 위해 별도로 설치한 관청이다. 2품 이상 전·현직 관리 중에서 70세 이상이 기로소 자격 조건이었다.
물론 자격요건을 채우더라도 다 기로소 회원이 될 수 없었다. 우선 과거시험을 통하지 않은 관리는 아무리 학문이 높고 명망이 두터워도 원칙적으로 입소 자격이 안 됐다. 무관 역시 자격이 없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기로소에 든 사람은 태조(72세), 숙종(60세), 영조(81세), 고종(67세) 등 임금 4명을 포함해 700여 명에 불과했다. 정종(62세)과 광해군(67세)도 환갑을 넘겼지만, 현역 왕이 아니어서 기로소에 들지 못했다.
기로소 입소는 장수와 명예를 누리고 다양한 혜택을 입는다는 점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인지 기로소에 들어가겠다고 압력을 행사한 두 명의 임금이 있었다. 바로 숙종과 그의 아들인 영조이다.
1719년 숙종은 59세 때, 기로소에 들어가려면 10년 이상 남았지만, 앞서 태조 이성계가 70세 되기 전 60세에 들어간 전례를 따라 입소했다. 당시 숙종이 입소 행사에 참여한 관료들과 함께 만든 화첩이 ‘기사계첩’(耆社契帖)으로 이는 국보 제334호다. 영조는 이보다 더해 51세에 ‘육순을 바라보는 것은 같다’(望六旬則一)라며 입소를 강행했다.
신하가 70세가 돼도 물러나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임금에게서 궤장(几杖)을 하사받은 경우다. 임금이 내려준 지팡이(杖)를 짚고 출근해, 의자(几)에 앉아 근무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삼국사기에도 신라 문무왕이 70세가 된 김유신에게 궤장을 내린 기록이 있다.
고령에 재선 포기한 바이든…박지원 재조명
서양에서도 연륜(年輪)이 정치를 이끌었다.
로마 공화정 시대, 귀족 중에서 선발된 300명으로 이뤄진 원로원(元老院)이 그것이다. 당시 로마의 핵심 정치 기관이었다. 행정과 군사 분야의 최고 책임자인 집정관을 감시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종신직이었다. 따라서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원로원은 점차 민중의 신뢰를 얻었고 결국 실질적인 최고 의결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라틴어로 원로원인 세나투스(senatus)는 노인이라는 의미의 세낵스(senex)에서 나왔다. 원로회 의원은 세나토르(senator)였다. 현재 미국 연방의회 상원(senate)과 상원 의원(senator)은 여기서 유래했다.
이처럼 동서양 모두 경험 많은 노인을 존경하고 우대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현대에 노인을 ‘잉여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문화다.
불행히도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결국 재선(再選)을 포기했다. 29세 최연소 상원 의원, 최고령 대통령이라는 ‘나이’에 관한 기록을 보유한 그가 오히려 ‘고령 리스크’로 물러나게 됐다. 지지 여부를 떠나 은퇴 세대에게는 불행한 소식이다.
반면 바이든보다 생일(11월)이 5개월(6월)이나 빠른 박 의원은 예전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박 의원의 체력, 기억력, 순발력, 분석력, 통찰력, 유머 감각 등은 여전하다. 이는 각종 방송의 패널로 초청받는 것으로 증명된다. 더구나 그의 풍부한 경험에 의한 촌철살인 논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연장자(senior)와 망령(senile)은 모두 같은 어원에서 파생했듯이 자칫 노년의 열정은 노욕으로, 실수는 주책과 노망으로 보일 수 있다.
모쪼록 박 의원이 진영을 떠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K-노익장의 모범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조선시대 황희 정승도 87세까지 관직에 있었으며 무려 24년간 정승 자리에 있었다.
박지원 의원의 건투를 기원한다.
전형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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