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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살·붕괴’ 아파트입주민‧노동자 생명 담보로 한 ‘부실 감리’

[건설 시장 담합 어떻게 생각하십니까]①
뇌물·향응 등 로비 자금 이상으로 남겨야
특정 공사, 정부 직접 검사 필요성 제기

GS건설의 검단신도시 아파트 건설현장. 지난해 4월 사고가 발생한 구역이 가려져 있는 모습.[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공공 발주기관 사업장조차 설계·시공·감리의 체계가 붕괴했다는 것은 우리나라 건설산업이 심각한 수준으로 망가져 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달 31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논평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최근 감리업체들이 담합해 5700억원대 입찰 물량을 나눠 먹고 심사위원들에게 뒷돈을 뿌리며 일감을 따낸 것이 드러난 것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공공건물 감리 입찰 담합과 금품 수수 사건을 수사해 68명을 지난달 기소했다. 이 가운데 수뢰 혐의 대학교수 등 6명과 뇌물을 준 감리법인 대표 1명은 구속됐다. 검찰에 따르면 17개 감리업체와 소속 임원 19명은 2019년 10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약 5000억원에 이르는 LH 용역 79건과 740억원 상당의 조달청 발주 용역 15건에서 낙찰자를 미리 정하고 들러리를 서주는 등의 방식으로 담합(공정거래법상 부당공동행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LH가 공지하는 연간 발주계획을 기준으로 낙찰 물량을 나눴는데, 2020년에는 전체 물량의 약 70%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감리업체의 담합과 심사위원 매수 등 불법 행위가 부실시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건축업계 관계자는 “감리업체가 심사위원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는 등 로비에 자금을 쓰면 그 이상 다른 곳에서 이익을 남겨야 한다”며 “부실 공사를 눈감아주고 대가를 받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시공사나 건축주는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하도록 요구하기도 하는데, 감리업체가 문제인 줄 알면서도 대가를 받고 눈감아준다는 것이다. 실제 규모가 큰 공사일수록 공사 기간이 늘어나거나 건축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진행하도록 하면 그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는 게 건축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우리나라 건축 시스템상 감리업체가 시공에 관한 관리를 맡는데, 권한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부실 문제를 덮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감리 과정에서 감리업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배제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건설 현장 관계자는 “과거에는 타설 작업 중에도 감리가 문제를 발견하면 작업을 중지시키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실상 그런 일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폭우가 쏟아지는 등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일정대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감리업체도 건축주나 시공사에서 돈을 받는 입장인데 같은 업체에서 또 다른 용역을 수주하려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실제 지난해 철근 누락에 따른 지하 주차장 붕괴로 GS건설이 ‘순살 아파트’란 오명을 얻은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2022년 붕괴 사고가 난 HDC현산의 광주 화정아이파크 아파트의 감리업체도 앞선 검찰수사에서 담합에 가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감리업체와 심사위원의 부정부패가 부실감리‧부실시공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4월 발생한 인천 검단 아파트 붕괴 사고는 사후 조사 과정에서 지하 주차장에 적용된 무량판 구조에 보강철근이 누락된 것이 발견됐다. 문제는 시공과 설계 과정에서도 철근 누락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시공사는 물론 설계사와 발주처, 감리까지 공사의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건설사업은 크게 사업 기획‧설계‧시공‧준공 및 사용 등 4단계로 구분한다. 건축주와 발주청이 사업 기획을 하는 주체가 된다. 건축사(설계사)는 발주처의 요구대로 건물의 설계도를 제작한다. 건설업체는 시공을, 감리는 설계·시공이 관련법과 규정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확인한다. 설계단계부터 철근누락, 시공 단계 추가 누락이 생겼고. 이를 감시했어야 할 감리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셈이다.
2022년 붕괴 사고가 발생했던 광주 화정아이파크 모습.[사진 연합뉴스]

견제 없는 감리 “공공 공사, 정부가 직접 나서야”

일각에서는 ‘감리’에 막대한 권한을 몰아주고도 이를 견제할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라고 지적한다. 감리가 ‘문제없다’는 판단을 내리면 시공 과정에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감리는 ‘건설사업관리’와 혼용해 쓰이는 건축 용어 중 하나다. 건설사업관리란 건설공사의 기획·타당성 조사·분석·설계·조달·계약·시공관리·감리·평가·사후관리 등 관리 업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맡아서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건설공사는 전문적이고 복잡해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은 건축주가 모두 관리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건축주를 대신해 공사 일체를 맡아서 해주는 일이 필요한데 이를 CM(건설사업관리‧Construction Management)이라 부른다. 감리의 역할 부분이 부각돼 흔히 ‘감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정부가 감리 과정을 민간 영역으로 돌리면서 ‘감리 문제’가 더 커졌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1995년 건축법이 개정되면서 시공 중 실시하던 중간검사제도 폐지가 문제를 키웠다는 것이다. 중간검사제도란 고층 건물을 지을 때 주요 공사 시점에 공무원이 직접 검사하는 제도다. 정부는 이를 폐지하면서 공사감리자가 감리중간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도록 했는데 이후 감리업체들의 권한이 더 커졌다.

이에 대해 박인석 명지대 건축학과 교수는 “공공이 직접 중간 검사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공공 공사의 경우 미국이나 일본 등 많은 나라에서는 민감 감리와 함께 정부가 직접 검사를 수행한다”며 “우리나라도 공공이 직접 감리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이 감리업체가 건축주나 시공사에 휘둘리지 않고 제대로 일하기 위한 견제 장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실련은 “건설안전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교환하거나 타협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라며 “정부와 국회, 건설업계, 국민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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