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 가격보다 비싼 ‘배달용 메뉴’…배달 가격 이원화, 역풍 부나
[소상공인에게 ‘독’ 된 배달 서비스]②
배달·매장 가격 다른 ‘배달 가격 이원화’ 소비자 불만↑
배달 수수료 소비자 전가 지적…외식물가 상승 우려도
2010년 국내 배달플랫폼(배달앱)이 처음 등장한 이후 클릭 몇 번으로 음식 주문이 가능한 시대가 열렸다. 이런 편의성은 매월 수천만명이 배달앱을 이용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배달 서비스는 플랫폼과 소상공인, 소비자 모두가 만족한 서비스인 듯 보였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배달앱에 내야하는 수수료가 꾸준히 오르며 소상공인들은 “살려달라”고 호소한다. 업주들은 배달플랫폼의 수수료 인상 및 배달비 전가 등의 횡포를 견디며 오늘도 억지로 배달앱 주문을 받고 있다. 이들은 “이러다 모두가 공멸할 것”이라며 절망감을 토로한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듯 상생협의체 출범 등 지원책 마련에 나섰지만 상황을 해결할 뾰족한 대안은 보이지 않는 분위기다.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일까. 과연 배달앱과 소상공인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해법은 존재하는 것일까.[편집자주]
[이코노미스트 이혜리 기자]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자주 이용하는데, 매장에서 직접 사 먹는 것보다 가격이 비싼 것 같더라고요. 확인해 보니까 배달 앱에서 메뉴당 가격이 2000~3000원 정도 높았어요. 속는 기분이 든달까요. 배달비도 따로 받으면서 가격도 더 비싸게 판매하니까 더 이상 배달앱을 이용하지 않으려고요.”경기도에 사는 30대 박모씨는 매장용 메뉴와 배달용 메뉴 가격이 다른 ‘배달 가격 이원화’가 오히려 소비자의 반감을 산다고 지적했다. 고물가 상황에서 배달비는 물론 배달 메뉴 가격 또한 치솟아 배달 주문 자체를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배달 메뉴 가격이 오르는 것은 배달앱 시장의 무료 배달 출혈경쟁이 배달 중개수수료 인상으로 이어지면서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음식 가격을 차등 적용하는 ‘배달 가격 이원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들도 ‘속앓이’를 하는 입장이다. 배달앱 수수료율이 높아지면서 업주에게 남는 이윤이 줄어들어 배달 가격 이원화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이 수수료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배달수수료 급등에 점주들 ‘비명’
정부를 대상으로 배달수수료 정책 시정을 촉구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배달플랫폼에 입점한 사장들이 모인 ‘공정한플랫폼을위한사장모임’(공플사)와 라이더유니온 등 시민단체는 8월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정부의 배달플랫폼 자율규제를 비판하는 집회를 열었다. 공플사는 이날을 ‘배달 음식 가격 차등 적용의 날’로 지정하고 수수료 수준에 따라 음식값을 차등 설정하겠다고 선언했다.
공플사는 배달앱을 3개 등급으로 나눠 가격 인상 폭을 정하는 배달 플랫폼 입점업체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수수료가 가장 높은 배민의 배민배달·쿠팡이츠(수수료 9.8%), 요기요의 요기배달(9.7%)에선 가격을 최저가 대비 15∼25% 올리기로 했다. hy노크(5.8%) 등에선 10% 안팎, 배달 수수료가 제일 저렴한 지역공공배달앱과 배민 가게배달 등에선 기존 가격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자영업자들은 “배달앱의 수수료를 반영해 음식 가격을 현실적으로 정한 것”이라며 수수료 부담이 커져 사업 유지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번 집회를 계기로 매장과 배달 가격 차등화가 보편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일부 음식점은 매장과 배달 가격을 달리 적용하고 있다.
본사에 가격 이원화를 요구하는 프랜차이즈 점주들도 있다. 전국맘스터치가맹점주협의회는 지난달 매장 가격과 배달 가격에 차등을 두라고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본사 대표에게 발송했다. 이에 맘스터치는 배달과 매장 메뉴 가격 이원화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외식업계는 배달 서비스 비용 상승을 이유로 아예 배달 제품 가격을 올리기도 했다. 롯데리아는 이달부터 배달 서비스 부대비용 증가 등 원가 상승을 이유로 버거류 및 디저트류 가격을 일괄적으로 평균 3.3% 인상했다. 파파이스 코리아도 지난 4월 배달 메뉴의 경우 매장가보다 평균 약 5% 높은 가격을 차등 적용했다.
배달시장 지속 확대…결국 소비자만 봉?
배달앱 수수료율 인상과 배달 가격 이원화 등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배달시장은 점차 확대되는 상황이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배달플랫폼 빅3(배달의민족·요기요·쿠팡이츠)의 지난달 월간사용자 수(MAU) 합계는 3535만4352명으로, 전년 동기(3378만807명) 대비 4.7% 증가했다.
올 들어 배달앱 3사 MAU 합계는 ▲3월 3382만7078명 ▲4월 3408만9912명 ▲5월 3442만3197명 ▲6월 3501만1972명에 이어 지난달까지 꾸준히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배달 이용 가격이 크게 올랐지만 이용자 수는 오히려 상승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배달앱 사용에 따른 수수료 부담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높은 수수료와 배달비 등 손실을 메꾸기 위해 메뉴 가격을 차례로 인상하고, 외식 물가도 끌어올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문제는 이를 규제할 뾰족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이중가격 자체에 대한 명확한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단순히 같은 상품이 다른 가격에 판매된다는 것 외에 거래조건의 부당성, 경쟁사업자 배제 의도 등이 증명돼야 한다. 배달앱과 매장 가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리도록 권고할 수 있지만, 이 또한 강제성은 없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가격을 정하는 건 기본적으로 판매자가 정하는 것”이라며 “소비자에게 기망행위나 부당 표시 광고를 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으로, 가격을 달리 책정했다고 해서 위법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자영업자들의 가격 이원화 움직임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높은 수수료율을 책정한 배달 플랫폼이 일차적 책임을 지지만, 현실적으로는 배달 가격 이원화를 실시한 점주들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가격을 다르게 책정할 경우 주문량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업주들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음식 점주들은 배달 가격을 올리기보다는 매장만의 경쟁력과 차별화를 꾀하든가 배달할지 말지를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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