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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세계 석학’ 리프킨 “당장 행동해야”

[세계 석학과의 대화]②
기록 갈아치운 ‘역대급’ 여름 더위…기후 위기 체감한 韓
이례적 현상 아닌 일상?…기상청, 사계 구분 기준 변경 논의

챗GPT를 통해 생성한 이미지.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길고 뜨거웠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그랬다. 앞으로 더 뜨거워질 일만 남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가 어쩌면 앞으로의 여름 중 가장 시원했던 때였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100년 뒤엔 음력 8월 15일, 가을의 한가운데란 의미에서 ‘중추절’이라고도 부르는 추석을 여름 정중앙에 맞이하리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기상청은 실제로 ‘한국의 계절별 시기·길이 재조정’ 논의를 시작했다. 탄소 배출 증대에 따라 지구 온난화가 전개되면서 기후 환경이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어서다. 사계가 뚜렷한 한반도가 이제는 긴 여름과 짧은 겨울로 변화하고 있다.

온난화와 역대급 여름

올해 여름은 ‘역대급’이었다. 비유가 아니다. 문자 그대로 기록적인 불볕더위가 이어졌다. 기상청 ‘2024년 여름철(6~8월) 기후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 기간 전국 평균기온은 25.6℃로 평년(23.7℃)보다 1.9℃ 높았다. 이는 전국 기상관측망이 갖춰진 1973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이런 무더위는 바다도 데웠다. 올해 여름철 해수면 온도는 23.9℃로 최근 10년(2015~2024년) 평균(22.8℃)보다 1.1℃ 높았다. 최근 10년 중 가장 뜨거운 바다로 기록됐다.

열대야 일수(18시 1분부터 다음날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 이상인 날의 수)도 평년(6.5일) 대비 3.1배 긴 20.2일로 집계됐다. 이 역시 역대 1위다. 전국 주요 기상 관측지점 66곳 중 36곳에서 열대야 일수 역대 1위를 경신했다. 제주의 경우 열대야가 56일이나 발생했다.

폭염 일수(일 최고기온이 33℃ 이상인 날의 수)는 평년(10.6일)보다 2.3배 많은 24.0일로 역대 3위다. 전국 주요 기상 관측지점 66곳 중 총 10곳에서 올 여름철 폭염 일수 역대 1위를 경신했다. 서울의 경우 27일을 기록해 역대 세 번째로 폭염이 잦았다.

비는 적게 내렸다. 그러나 장마철에는 더 많이 쏟아졌다. 올해 여름철 전국 평균 강수량은 602.7mm로 평년(727.3mm)의 82.5% 수준에 그쳤다. 통상 여름철 강수량의 50% 정도가 장마철에 내리는 데, 올해는 78.8%(474.8mm)로 집계됐다. 1973년 이래 가장 큰 비율이다. 올해 장맛비는 특히 좁은 영역에서 강하게 내리는 특징을 보였다. 1시간 최다 강수량이 100mm를 넘는 사례가 9개 지점에서 관측되기도 했다.

‘무더위에 적은 강수량’은 특히 올해 8월 두드러졌다. 평균기온은 27.9℃로 평년(25.1℃)과 견줘 2.8℃ 높았다. 평균 최고기온은 33.0℃(평년 29.8℃), 평균 최저기온은 24.1℃(평년 21.6℃)를 기록했다. 평균기온·최고기온·최저기온 모두 역대 8월 중 가장 수치가 높다. 폭염 일수(16.9일)·열대야 일수(11.3일)도 가장 많았다. 그러나 전국 강수량은 87.3mm로 평년(225.3~346.7mm)보다 적었다. 강수 일수 역시 8.4일(평년 13.8일)에 그쳤다. 강수량은 역대 최저 2위, 강수 일수는 역대 최저 3위다.

더위의 강도 만큼이나 기간도 ‘역대급’이었다. 8월이 끝났음에도 불볕더위는 계속됐다. ‘더위가 한풀 꺾인다’는 처서(8월 22일)는 물론 ‘이슬이 맺히는 날’이라는 백로(9월 7일)가 지났음에도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9월 1일부터 18일까지 전국 평균 폭염 일수는 5.5일을 기록했다. 서울에선 지난 10일 사상 첫 ‘9월 폭염경보’가 발령된 데 이어 18일에도 재차 발효됐다. 9월 첫 주에만 온열질환자가 83명 발생했다.

문제는 이런 뜨겁고 긴 여름이 점차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만 ‘이례적’이라거나 ‘역대급’으로 치부할 현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실제로 지난해 9월 평균기온도 평년 대비 2.1℃ 높은 22.6℃를 기록하며 역대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이런 ‘가을 폭염’이 올해는 더 기승을 부린 셈이다.

기상청이 3개월 단위로 구분 짓던 전통적인 사계의 기준을 들여다보는 이유다. 1912년부터 1940년까지, 그리고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여름에 해당하는 평균 일수를 비교하면 98일에서 127일로 늘었다. 이런 변화를 고려해 여름철 기간을 늘리고 가을·겨울은 줄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사계의 구분 기준을 논의하는 건 한국 근대 기상 관측이 시작된 후 117년 만에 처음이다.

제러미 리프킨 미국 워싱턴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 [사진 민음사]

‘물’의 경고

미래학자이자 경제·사회 사상가인 제러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은 50년 연구 끝에 최근 집필을 끝낸 책 ‘플래닛 아쿠아’를 통해 이런 변화의 중심에 ‘물’이 있다고 역설했다. 인류가 가둬두고 지배하려 시도했던 ‘물’이 기후변화에 따라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견해다. 숱한 과학자들이 경고하고 있는 ‘지구 생명체의 여섯 번째 멸종’이 초기 단계에 접어든 이유 역시 리프킨은 물을 지목했다.

‘세계 석학’으로 꼽히는 그는 인류의 6000년 역사를 ‘물의 지배’ 관점에서 설명했다. 그는 “우리 조상들은 지구의 물을 인류 전용인 양 사용했다. 물을 사용하기 쉽도록 격리하고 사유화하고 상품화했다”며 “(이 과정에서) 지역의 자연 생태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시작했고 ‘도시-수력 문명’이라 부르는 현상을 낳았다. 물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계속돼 21세기에 최고 수위에 다다랐다”고 했다.

문제는 이렇게 가둬둔 물이 인류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의 온도가 1℃ 상승하면 구름의 강수량 농도는 7% 증가한다. 이는 강추위·홍수·가뭄·폭염·산불·태풍의 원인이 되고 있다. 리프킨은 “화석연료 기반의 물-에너지-식량 연계 구조가 불러온 지구온난화로 인해 도시 수력 문명이 실시간으로 붕괴하고 있다”고 썼다.

일각에선 인류 기술 발전으로 야기된 지구 온난화의 해결책으로 다시 ‘기술’을 꼽기도 한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같이 ‘기후 위기’ 자체를 부정하지 않더라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나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등 다수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탄소 포집·인공지능(AI) 분석 기술 등을 통해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단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리프킨은 ‘이코노미스트’를 통해 이뤄진 최화준 아산나눔재단 AER지식연구소 연구원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런 시각에 대해 “낙관·비관을 구분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행동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래에 대해 희망을 품고 있지만, 문제에 대해 순진하게 접근하고 싶지 않다. 홍수·가뭄·폭염 등을 겪는 지구 생명체는 가장 큰 존립의 위기를 맞고 있다”면서도 “우리는 적응력·공감 능력이 뛰어난 종이다. 현재 마주한 큰 위기는 가장 큰 기회이기도 하다. 해야 할 일을 적극 찾아 나서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책 ‘플래닛 아쿠아’를 통해서도 “앞으로 몇 세대에 걸쳐 내리는 선택이 지구 생명체와 우리 종 생명의 연장을 결정할 것”이라며 “우리의 의제는 단 하나다. 야생으로 돌아가는 수권과 평화를 이루고 동료 생물들과 함께 번영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은 방해가 될 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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