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 전세’ 계약 한 건이면 중개수수료 300만원…“직장인 한 달 월급 수준”
[신뢰 잃은 공인중개사②]
정확한 상한요율 설명 없이 ‘협의’ 생략도 빈번
물건 분석·가격 협상 등 “역할 적지 않다” 의견도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A씨는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에서 전셋집을 구했다. 강서구에서 보증금 2억원 수준의 투룸 빌라를 찾아 ‘직거래’한 결과 중개수수료 60만원을 아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포털 부동산 사이트에서 매물을 보고 부동산(공인중개사무소)에 가면 특별히 하는 일 없이 계약서만 작성해 주는데, 수수료를 수십만원이나 내야 하는 게 아까웠다”며 “다음에도 직거래를 이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A씨 사례처럼 공인중개사를 통하는 대신 집을 직접 거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부동산 거래 건수(42만6445건) 가운데 직거래 비중은 11.5%(4만8998건)으로 집계됐다. 10건 중 1건은 공인중개사를 거치지 않고 계약이 이뤄졌다는 뜻이다. 당근에서도 상가 전월세부터 원룸과 오피스텔·아파트 매매까지 다양한 매물을 지역별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족‧지인 거래 등 부동산 시장에서 직거래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장 큰 배경으로는 중개수수료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설명한다. 공인중개사를 통할 경우 적게는 수 십 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지급해야 하는 중개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주택의 매매‧교환 시 공인중개사에게 지급해야 할 중개수수료 ‘상한요율’은 0.4~0.7% 수준이다. 5000만원 미만 매물을 거래할 경우 0.6%(한도액 25만원), 5000만원~2억원 미만 0.5%(한도액 80만원), 2억원~9억원 미만 0.4%, 9억원~12억원 미만 0.5%, 12억원~15억원 미만 0.6%, 15억원 이상 0.7%에 해당한다. 실제 당근에 직거래 매매 물건으로 올라온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60억원)를 보면 직거래로 아낄 수 있는 비용이 최대 4620만원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법정 최대 중개수수료 4200만원에 부가가치세(10%) 420만원을 더한 금액이다.
임대차 거래 시 상한수수료율은 5000만원 미만 0.5%(20만원), 5000만원~1억원 미만 0.4%(30만원), 1억원~6억원 미만 0.3%, 6억원~12억원 미만 0.4%, 12억원~15억원 미만 0.5%, 15억원 이상 0.6% 수준이다. 만약 전세 보증금 5억원 수준의 집을 계약할 경우 수수료를 최대로 책정하면 임대인과 임차인이 지불할 금액은 각각 150만원에 달한다. 공인중개사는 계약 한건으로 300만원을 버는 셈이다.
문제는 일부 공인중개사들이 ‘상한요율’을 부동산 거래자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고정된 가격인 것처럼 받고 있다는 뜻이다. 중개수수료는 거래금액과 상한요율을 곱한 가격 이내에서 공인중개사와 중개 의뢰인과 협의해 결정해야 하지만, 이런 설명조차 듣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보증금 2억5000만원 수준의 빌라 전세를 구했다는 B씨는 “계약을 체결할 때 공인중개사가 ‘중개수수료는 법정 한도인 0.3%로 한다’며 어물쩍 넘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현금으로 계산하면 부과세를 안 내도 된다는 말에 75만원을 계좌이체로 보냈는데, 수수료율을 협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늦게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도 제대로 협의하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부동산 임대 사업을 하는 C씨는 “임대사업자와는 달리 개인의 경우 부동산 거래를 하는 일이 많지 않아 공인중개사가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하고 우기면 대부분 넘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공인중개사가 중간에서 할 일이 적은 단순한 거래도 많은데, 수수료율이 과하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해야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 역할 적지 않다”…폐‧휴업 증가
부동산 거래에서 공인중개사의 역할이 적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물건을 분석하고 이를 근거로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서 가격을 협의하는 일 등이 공인중개사의 몫이라는 것이다. 부동산 관련 법률과 세무 분석‧담보 등 변동 사항 확인 등 여러 과정을 신경 써야 하는 측면도 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몇몇 위법 행위를 저지른 공인중개사들과 중개 수수료 때문에 성실하게 일하는 공인중개사들이 악인처럼 매도당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계약 한 건을 성사하기 위해 수십 명에게 집을 보여주고 설명 한다. 한 달에 한 건도 계약을 맺지 못하는 일이 있는데, 중개사고가 터지면 과태료와 소송 부담도 져야 한다”며 “수수료는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책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공인중개사가 10만명이 넘는 상황에서 서로 경쟁하고, 수수료율은 점차 낮아지는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공인중개사 업계는 정체기를 맞고 있다. 개업 공인중개사 수는 2022년 6월 11만8952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점차 감소하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전국의 개업 공인중개사 수는 11만3142명으로 한 달 전보다 307명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8월 한 달간 새로 개업한 공인중개사는 753명이었지만, 폐업(961건)‧휴업(94건)한 공인중개사는 1055명에 달했다. 2022년 8월 중개사무소 휴·폐업 건수가 신규 개업 건수를 넘어선 이후 2023년 1월을 제외하고 18개월째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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