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죽어서 자라?”…‘수면’ 필요한 건 ‘지금’ [이코노 헬스]
잘 자야 부정적인 기억 떨쳐
불면증이 ‘질환’ 일으키기도
충분한 잠 권하는 사회 돼야
[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상욱 원장] 넷플릭스의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가 화제다. 많은 내담자가 같은 방송 프로그램을 입에 올린 것은 ‘오징어게임’ 이후 처음이다. 직업병 탓인지, 흑백요리사를 정주행하며 ‘요리’가 가장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다만 한 참가자의 말이 비수처럼 꽂혔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요리사 ‘트리플 스타’가 레스토랑 과제를 수행하며 언급한 “자면 뭐 해요. 죽으면 평생 자는데”다. 저녁 없이 일하는 삶, 잠 없는 사회의 단상을 보는 것 같아 마냥 개운치는 않다.
내담자를 상담하면 저녁을 온전히, 그리고 편안히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을 실감한다. 이른바 ‘K-직장인’이라면 저녁 없는 삶이 당연한듯하다. ‘고학력 전문직’ 직종으로 분류되는 직업의 A씨가 특히 그랬다. A씨는 불면증 탓에 병원을 찾았다. 업무 특성상 ‘시즌’에는 잠을 거의 자지 못하는 A씨는 시즌이 끝나도 관성 탓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그래서인지 흑백요리사를 시청한 이후 A씨의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A씨는 “저녁이 있는 삶은 바라지도 않는다”라며 “수면이 있는 삶이라도 누렸으면 좋겠다”라고 한탄했다.
잠이 ‘뇌’ 청소…노폐물 씻어
통상 한국 사람 3명 중 1명은 잠으로 고생한다. 한국 사람 10명 중 1명은 질병으로서의 불면증을 겪은 것으로 추산된다. 불면증 자체가 한국에서 흔한 질병인 셈이다. 실제 불면증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2020년 100만명을 돌파했다. 불면증으로 진료받은 사람은 꾸준히 늘어, 지난해 124만명에 달했다. 전체 인구가 지난해 5132만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40명 중 1명은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셈이다.
‘잠이 보약’이라는 옛말이 있다. 불면은 만병의 근원이 될 수 있고, ‘뇌’의 기능이 기준이라면 수면은 보약이고 불면은 독약이다. 실제 잠을 자면 안정 상태에 접어든 신체는 빠르게 회복한다. 또, 잠은 호르몬을 일정하게 분비하게 만들고 면역체계를 공고히 해준다. 잠은 뇌에 ‘물청소’ 시간이기도 하다. 낮에는 우리 몸의 혈액이 돌며 신경세포에 산소를 공급하지만, 밤에는 뇌척수액이 맥박의 리듬을 타고 들어와 노폐물을 씻어내서다.
앞서 미국 보스턴대 로라 루이스 생물의학공학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2019년 이런 내용을 담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연구 결과를 활용하면 수면 교란과 연관된 알츠하이머병과 자폐증 등 질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뇌의 노폐물로 잘 알려진 것이 베타 아밀로이드(Amyloid-β)이다. 베타 아밀로이드가 쌓이면 중합체인 올리고머(oligomer)를 형성하는데, 독성이 한층 강한 올리고머는 알츠하이머병, 이른바 ‘치매’를 유발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잘 자야 행복한 기억 늘어
잠은 정신건강에도 특히 중요하다. 자는 동안 뇌의 해마에서 ‘기억 응고’(memory consolidation)가 일어나서다. 기억 응고는 사람이 낮에 학습한 정보를 재구성하고 기억으로 저장하는 일이다. 유념해야 할 점은 뇌가 모든 정보를 기억으로 저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기억에 감정이 묻어있을 때 더 잘 기억하곤 한다. 감정이 묻은 기억 중에서는 ‘부정적인’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한다. 만약 잠을 자지 못한다면 이 ‘부정적 편향’이 심해질 수 있다.
미국 UC버클리대 매튜 워커 연구팀은 참가자에게 부정·중립·긍정의 정서를 담은 사진들을 보여주고 38시간이 지난 뒤 기억 검사를 진행했다. 그동안 일부 참가자는 평소대로 잠을 잤고 나머지는 잠을 자지 않도록 조치했다. 그러자 잠을 자지 않고 기억 검사를 수행한 집단은 긍정 정서를 담은 사진에 대해 기억 저하가 발생했다. 잠을 잘 자야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억들 사이에 행복한 추억들을 끼워 넣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잠들기 전 스마트폰 멀리 둬야
치료를 꾸준히 받은 A씨는 현재 불면증에서 상당히 벗어났다. A씨는 일차성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일차성 불면증은 별다른 원인 없이 나타나는 불면증이나 심리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불면증을 말한다. A씨는 꾸준함으로 불면증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약물 치료, 인지행동 치료와 더불어 수면 습관을 개선하려고 지속해서 노력했다. ‘스마트폰’으로부터 ‘도피’ 혹은 ‘탈출’한 점도 A씨가 불면증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됐다. A씨는 업무 탓에 스마트폰을 항상 켜뒀고 잠들기 직전까지 유튜브 등을 즐겨봤다. 항상 불면 혹은 각성 상태에 있던 셈이다.
A씨는 스마트폰에서 멀어지기 위해 침대를 잠만 자는 장소로 만들었다. 약물 치료도 병행해 침대에 누워 곧바로 잠들 수 있게 했다. A씨 나름의 경험도 이런 치료에 도움이 됐다. A씨는 스마트폰을 최대한 침대에서 먼 곳에서 충전했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활용해 시사교양 영상을 최소 음량으로 라디오처럼 들었다. 또, 영상을 연속으로 재생하지 않고 방송이 1시간 이상 이어지지 않도록 했다. 침대의 위치 옮긴 점도 효과가 있었다고 A씨는 이야기했다.
제대로 잠을 자야 뇌를 말끔히 청소할 수 있다. 그래야 맑은 정신도 유지할 수 있다. 수면 시간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잘 잘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죽으면 잔다’지만 죽은 사람은 잠을 잘 수 없다. 죽은 사람의 뇌에는 뇌척수액이 돌지 못한다. 뇌의 입장에서 수면과 죽음은 전혀 다르다. 우리 사회가 ‘충분한 잠을 권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죽어서야 잘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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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를 상담하면 저녁을 온전히, 그리고 편안히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을 실감한다. 이른바 ‘K-직장인’이라면 저녁 없는 삶이 당연한듯하다. ‘고학력 전문직’ 직종으로 분류되는 직업의 A씨가 특히 그랬다. A씨는 불면증 탓에 병원을 찾았다. 업무 특성상 ‘시즌’에는 잠을 거의 자지 못하는 A씨는 시즌이 끝나도 관성 탓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그래서인지 흑백요리사를 시청한 이후 A씨의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A씨는 “저녁이 있는 삶은 바라지도 않는다”라며 “수면이 있는 삶이라도 누렸으면 좋겠다”라고 한탄했다.
잠이 ‘뇌’ 청소…노폐물 씻어
통상 한국 사람 3명 중 1명은 잠으로 고생한다. 한국 사람 10명 중 1명은 질병으로서의 불면증을 겪은 것으로 추산된다. 불면증 자체가 한국에서 흔한 질병인 셈이다. 실제 불면증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2020년 100만명을 돌파했다. 불면증으로 진료받은 사람은 꾸준히 늘어, 지난해 124만명에 달했다. 전체 인구가 지난해 5132만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40명 중 1명은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셈이다.
‘잠이 보약’이라는 옛말이 있다. 불면은 만병의 근원이 될 수 있고, ‘뇌’의 기능이 기준이라면 수면은 보약이고 불면은 독약이다. 실제 잠을 자면 안정 상태에 접어든 신체는 빠르게 회복한다. 또, 잠은 호르몬을 일정하게 분비하게 만들고 면역체계를 공고히 해준다. 잠은 뇌에 ‘물청소’ 시간이기도 하다. 낮에는 우리 몸의 혈액이 돌며 신경세포에 산소를 공급하지만, 밤에는 뇌척수액이 맥박의 리듬을 타고 들어와 노폐물을 씻어내서다.
앞서 미국 보스턴대 로라 루이스 생물의학공학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2019년 이런 내용을 담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연구 결과를 활용하면 수면 교란과 연관된 알츠하이머병과 자폐증 등 질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뇌의 노폐물로 잘 알려진 것이 베타 아밀로이드(Amyloid-β)이다. 베타 아밀로이드가 쌓이면 중합체인 올리고머(oligomer)를 형성하는데, 독성이 한층 강한 올리고머는 알츠하이머병, 이른바 ‘치매’를 유발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잘 자야 행복한 기억 늘어
잠은 정신건강에도 특히 중요하다. 자는 동안 뇌의 해마에서 ‘기억 응고’(memory consolidation)가 일어나서다. 기억 응고는 사람이 낮에 학습한 정보를 재구성하고 기억으로 저장하는 일이다. 유념해야 할 점은 뇌가 모든 정보를 기억으로 저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기억에 감정이 묻어있을 때 더 잘 기억하곤 한다. 감정이 묻은 기억 중에서는 ‘부정적인’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한다. 만약 잠을 자지 못한다면 이 ‘부정적 편향’이 심해질 수 있다.
미국 UC버클리대 매튜 워커 연구팀은 참가자에게 부정·중립·긍정의 정서를 담은 사진들을 보여주고 38시간이 지난 뒤 기억 검사를 진행했다. 그동안 일부 참가자는 평소대로 잠을 잤고 나머지는 잠을 자지 않도록 조치했다. 그러자 잠을 자지 않고 기억 검사를 수행한 집단은 긍정 정서를 담은 사진에 대해 기억 저하가 발생했다. 잠을 잘 자야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억들 사이에 행복한 추억들을 끼워 넣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잠들기 전 스마트폰 멀리 둬야
치료를 꾸준히 받은 A씨는 현재 불면증에서 상당히 벗어났다. A씨는 일차성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일차성 불면증은 별다른 원인 없이 나타나는 불면증이나 심리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불면증을 말한다. A씨는 꾸준함으로 불면증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약물 치료, 인지행동 치료와 더불어 수면 습관을 개선하려고 지속해서 노력했다. ‘스마트폰’으로부터 ‘도피’ 혹은 ‘탈출’한 점도 A씨가 불면증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됐다. A씨는 업무 탓에 스마트폰을 항상 켜뒀고 잠들기 직전까지 유튜브 등을 즐겨봤다. 항상 불면 혹은 각성 상태에 있던 셈이다.
A씨는 스마트폰에서 멀어지기 위해 침대를 잠만 자는 장소로 만들었다. 약물 치료도 병행해 침대에 누워 곧바로 잠들 수 있게 했다. A씨 나름의 경험도 이런 치료에 도움이 됐다. A씨는 스마트폰을 최대한 침대에서 먼 곳에서 충전했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활용해 시사교양 영상을 최소 음량으로 라디오처럼 들었다. 또, 영상을 연속으로 재생하지 않고 방송이 1시간 이상 이어지지 않도록 했다. 침대의 위치 옮긴 점도 효과가 있었다고 A씨는 이야기했다.
제대로 잠을 자야 뇌를 말끔히 청소할 수 있다. 그래야 맑은 정신도 유지할 수 있다. 수면 시간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잘 잘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죽으면 잔다’지만 죽은 사람은 잠을 잘 수 없다. 죽은 사람의 뇌에는 뇌척수액이 돌지 못한다. 뇌의 입장에서 수면과 죽음은 전혀 다르다. 우리 사회가 ‘충분한 잠을 권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죽어서야 잘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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