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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젠지세대는 이제 인플루언서를 원하지 않는다[스페셜리스트 뷰]

팬데믹 이후 급부상한 ‘요노 소비’
가치 소비, 구독 경제 등과 맞물리며 장기적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아

서울의 한 명품관 앞. [사진 연합뉴스]
[강진우 문화칼럼니스트] ‘욜로가 죽어간다.’(YOLO is dying.) 지난 6월 미국 CNN이 세상에 내보낸 한 기사의 제목이다. 지난 몇 년간 두드러진 과소비적·과시적 트렌드인 ‘욜로’(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 번뿐)가 빠른 속도로 사그라지고 있으며, 이 같은 움직임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하는 내용이 담겼다. 

욜로의 빈자리는 ‘요노’(YONO)가 대신하고 있다. ‘You Only Need One’(필요한 건 하나뿐)의 준말로, 절약을 기반으로 하는 합리적 소비 트렌드를 일컫는다. 하지만 요노는 짠내만 가득하던 과거의 절약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환경과 윤리를 생각하는 가치소비, ‘무지출 챌린지’와 같은 놀이적 성향, 소득 증대를 위한 재테크 노력 등이 그 안에 두루 녹아 있기 때문이다.

요노 소비 트렌드의 전 세계적 확산

인당 10만원이 훌쩍 넘는 ‘파인 다이닝’(Fine Dining)과 ‘오마카세’(주방특선요리), 값비싼 외제차와 각종 명품, 고급 와인과 위스키에 열광하고 이를 자랑하듯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공유하는 ‘욜로족’이 한순간 소비 트렌드의 뒤편으로 물러났다. 이제는 나만의 집밥 레시피와 편의점 간편식, 국산 중고차와 낡은 생활용품, 무알콜 맥주와 금주가 자랑거리인 ‘요노의 시대’다.

구인구직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2024년 8월, 1990년대 중반에서 201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이른바 젠지(GenZ)세대 537명에게 추구하는 소비 형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1.7%가 소비를 최소화하는 요노를 지향한다고 답했다. 욜로를 추구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25.9%에 불과했다. 앞선 2023년 소비 성향 조사에서는 57.3%가 절약 소비를, 42.7%가 당장의 행복을 위한 소비를 한다고 응답했다. 요노 소비가 확대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요노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의 증가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자신의 적은 지출을 자랑하며 검소함과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저소비 코어’(Underconsumption Core) 트렌드가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일례로 미국 젊은 층이 많이 즐기는 SNS인 틱톡(TikTok)에서는 ‘Deinfluencing’(디인플루언싱)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1억5000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디인플루언싱은 SNS 유명 인사인 인플루언서를 앞세워 진행되는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반대 개념으로, 이들이 주도하는 노골적 소비주의를 지양하고 합리적 소비문화를 지향하는 모든 활동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신조어다. 이러한 디인플루언싱을 해시태그한 게시물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는 것은 곧 미국 젠지세대가 요노로 나아가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미국과 함께 G2를 이루는 중국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시장분석기관 샤오바오가오(晓报告)가 2023년 경제·소비·생활 수준이 최상위권인 소위 ‘1선 도시’에 거주하는 1000여 명의 청년층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제품 구매 시 ‘가성비와 실용성을 가장 많이 고려한다’는 응답이 각각 68.4%와 55.9%로 1·2위를 차지했다. 요컨대 요노가 전 세계적 소비 트렌드로 떠오른 것이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침투한 요노 소비

요노 소비 확산 추세는 국가뿐만 아니라 분야도 가리지 않는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외식산업 경기동향지수에 따르면, 2023년 외식산업 매출지수는 1분기 86.91에서 4분기 73.67을 기록했다. 매출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전년 동기 대비 매출 감소 업체가 증가 업체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지수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곧 외식이 감소하고 있다는 뜻이다.
서울 한 편의점에서 직원이 도시락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반면 집밥과 간편식에 대한 선호도는 점점 높아지는 모양새다. 기업형 슈퍼마켓인 GS더프레시의 2024년 1~7월 식료품 매출은 전년 동기에 비해 18.2% 증가했으며, 롯데슈퍼도 15%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편의점 CU의 2023년 간편식 매출 성장률은 전년 대비 9.7%p 증가했으며, GS25의 간편식 매출도 2022년 41.2%에서 2023년 51%로 크게 늘었다.

미국의 경우 대형마트 매출액이 기대 이상으로 늘었다. 월마트(Walmart)는 2024년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6% 증가했으며, 순이익도 약 34억3000만달러 늘어났다. 월마트 측은 저렴한 생필품을 찾는 소비 성향의 확산과 부유층 고객 방문 증가가 성장의 핵심 원동력이라고 분석했으며, 한 발 더 나아가 7000개 품목의 가격을 더욱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미국의 또 다른 대형마트인 타깃(Target)도 요노 소비족의 발길을 사로잡기 위해 5000개 품목의 가격을 인하하겠다고 맞불을 놨다.

중고 소비도 점점 늘고 있다.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의 2024년 1분기 패션 카테고리 거래액은 전년 동기에 비해 두 배 늘어난 640억원을 기록했는데, 구매자 중 78%가 MZ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NH농협은행이 개인 고객 3200만 명의 금융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2024년 상반기 20·30대의 수입차 구매 대수는 재작년 같은 기간 대비 11% 감소했지만, 국산차와 중고차 구매 대수는 각각 34%, 29% 증가했다. 

대중교통 이용 양상도 변화했다. 서울시의 교통 이용 통계에 따르면, 버스의 하루 평균 이용 건수는 2020년 390만 건에서 2023년 440만 건으로 증가했지만, 택시는 76만 건에서 57만 건으로 약 25% 감소했다. 특히 20·30대의 택시 이용 건수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증명하듯 NH농협은행은 2024년 상반기 20·30대 택시 이용 건수가 21% 줄었다는 고객 소비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다른 연령대 평균인 3%보다 크게 높은 수치로, 요노 소비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주목받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를 선택하는 경향도 커졌다. 2024년 9월 여신금융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2분기 체크카드 발급 건수는 재작년 동기 대비 약 92만8000장 늘었다. 같은 기간 이용액 역시 4605억원가량 증가한 27조5537억원을 기록했다. 이 또한 요노 소비 트렌드 확산과 궤를 같이한다.

국내 신용카드 플랫폼 기업 카드고릴라가 지난 10월 1일부터 21일까지 3347명을 대상으로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6.8%가 ‘과소비가 우려돼서’를 꼽았으며 ‘연말정산 소득공제를 최대한 받기 위해’와 ‘계획적 소비’를 택한 응답자도 각각 17.5%, 15.8%를 차지했다. 과소비 자제, 절세 혜택 극대화, 합리적 소비 등 요노 소비의 주요 덕목을 실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짠내 나는 절약에 즐거움을 더하다

돌이켜 보면 욜로는 MZ세대의 카르페디엠(Carpe Diem·현재를 즐겨라)적 소비 행태를 대변하는 용어로서 상당 기간 큰 힘을 발휘해 왔다. 미국의 유명 래퍼 드레이크가 2011년 발표한 곡의 가사에서 처음 등장한 말이니, 이때부터 따지면 그 영향력이 10년 넘게 이어져 온 셈이다. 2020년대 들어서도 청년층의 절반 가까이가 스스로를 욜로족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불과 2~3년 사이, 그들의 생각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어떻게 이런 급선회가 가능했던 것일까.

2020년부터 장장 3년여 간 이어진 코로나19 사태가 핵심 분수령이었다. 전 세계적 어려움을 이겨 내기 위해 각국이 시장에 푼 막대한 자금은 엔데믹 국면에 접어든 뒤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나날이 높아지는 물가를 잡기 위해 당국은 높은 금리를 유지해야 했으며, 자국 우선주의 확대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환율이 치솟았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이 함께 이어지는 ‘3고’(高)가 MZ세대를 덮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려면 소비를 줄이고 여유 자금을 늘려야 했지만, 욜로 소비의 관성과 팬데믹에 따른 보복 소비(Revenge Spending)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물가 상승과 잔고 감소가 동시에 진행됐으며, 임금 인상률은 물가 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했다. 통계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3년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3.6% 증가했지만 39세 이하 가구주의 평균 소득은 1.9% 상승하는 데 그쳤다. 결국 욜로족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요노 소비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의 요노 소비가 과거의 절약 행태와는 양상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불과 10년 여 전까지만 해도 절약이라 하면 천장에 걸어 놓은 굴비 쳐다보고 밥 한술 뜨는, 그야말로 짠내 풀풀 나는 자린고비식 소비를 의미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돈을 최대한 아낀다는 지향점은 같지만, 절약을 실천하는 방식이 한결 가벼워지고 즐거워진 것이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살펴보면 이른바 ‘거지방’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해당 채팅방에 들어가면 기간을 정해 소비를 전혀 하지 않는 도전인 ‘무지출 챌린지’를 실천하는 불특정 다수가 한데 모여 있다. 이들은 점심 도시락을 싸서 다니거나 탕비실에 비치된 커피를 적절히 활용하는 모습을 인증하며 절약을 하나의 놀이처럼 즐긴다.

매일 특정 앱에 들어가 출석 체크를 하고, 스마트폰 잠금 화면을 광고로 바꾸고, 하루 몇 걸음 걷기 같은 지정된 운동을 하며 작은 포인트를 차곡차곡 모아 현금화하거나 기프티콘으로 교환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기성세대에게는 ‘몇 원도 못 건지는 궁상’일 수 있으며, 요노 소비족 사이에서도 ‘디지털 폐지 줍기’라고 불릴 만큼 실제로도 보상이 크지 않다. 하지만 비교적 풍족한 시대를 살아온 MZ세대에게 이 같은 행위는 참신한 경험인 동시에, 절약을 실천한다는 자기만족을 실감할 수 있는 ‘즐거운 절약 미션’이다.

일시적 유행 넘어 장기적 소비 패턴으로

아무리 즐거운 마음으로 요노 소비를 실천한다고 하더라도, 진심이 깃들지 않는다면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MZ세대의 요노 소비에는 여러 모양의 진심이 존재한다.

MZ세대 특유의 성향은 그들이 요노 소비를 꾸준히 실행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큰 에너지다. MZ세대는 개개인의 개성과 새로운 경험을 중시하며, 이를 자기계발로 연결시키려는 경향이 짙다. 이런 측면에서 요노 소비는 절약이라는 덕목과, 부의 축적을 위한 재테크 학습 및 도전을 내재화하는 데 있어 큰 힘이 되는 발판으로 작용한다.

또 요노 소비는 자원 고갈·환경오염·기후위기라는 전 세계적 공통 과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태기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욜로 시절처럼 원하는 물건을 모두 구매하는 맥시멀리즘을 추구하는 대신 꼭 필요한 물건을 신중하게 고르고 구매하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행위 자체가 곧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가치소비이기 때문이다. MZ세대가 요노 소비를 외부에 자랑스럽게 공유하는 또 하나의 배경이다.

경기 침체는 장기화되고 있고, 미래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 여기에 대비하지 않으면 미래를 향한 불안감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현재의 행복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여기에 더해 제품의 고품질화와 다기능화·구독 경제의 성장·미니멀 라이프의 확산·친환경 소비의 확대 등이 갈수록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있기에 요노 소비는 일시적 유행을 넘어선 장기적 소비 패턴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부·기업·소비자 모두가 요노 소비의 보편화에 대비한 각자의 경제 전략을 심도 있게 궁리해야 하는 이유다.

강진우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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