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양자 칩 ‘윌로우’가 보여준 양자 컴퓨터의 미래 [한세희 테크&라이프]
윌로우의 빠른 속도는 문제를 위한 문제 풀이 덕분
양자 컴퓨터 현실화 위한 다양한 노력 이어져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10의 25제곱년은 얼마나 긴 시간일지 짐작이 가는가? 우주 역사 138억년도 11자리 숫자에 불과하니, 0이 25개 붙은 이 숫자는 인간의 감각으로 이해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최근 구글이 현존 최고 성능의 슈퍼 컴퓨터를 써도 10의 25제곱년이 걸리는 복잡한 문제를 불과 5분 만에 풀 수 있는 새 양자 컴퓨터 프로세서 ‘윌로우’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발표가 기폭제가 되어 양자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미국 증시에서 양자 기업들 주가가 덩달아 폭등했다. 양자 컴퓨터 발전으로 암호화폐 보안이 깨질 우려가 제기되면서 비트코인 가격은 하락세로 돌아서기도 했다.
드디어 양자 컴퓨터가 현실에 더 가까워진 것일까? 이제 인류 과학 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기대해도 되는 것일까?
구글의 이번 성과는 확실히 쓸만한 양자 컴퓨터 개발을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이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고, 우리는 앞으로도 이 같은 중요한 걸음을 몇 번이고 더 내디뎌야 한다.
양자 컴퓨터 최대 과제 ‘오류 수정’
연산 속도가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윌로우의 가장 큰 성과는 양자 컴퓨터의 오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큐비트 수를 늘여도 오류는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실증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기존 컴퓨터가 0과 1 두 비트로 논리 연산을 수행하는 반면, 양자 컴퓨터는 0과 1이 중첩된 상태를 활용하는 양자 큐비트, 즉 큐비트가 연산의 기반이 된다. 큐비트는 아직 주도적 기술이 확립되지 않았다. 초전도체 회로, 이온, 중성원자, 광자 등 다양한 물리적 실체가 큐비트로 쓰이고 있다.
이들 큐비트는 각기 장단점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외부 환경에 극히 민감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주 미세한 온도나 열, 자기장의 변화, 우주에서 항상 쏟아지는 우주선 등에 의해서도 쉽게 중첩과 얽힘 같은 양자 상태가 깨져 연산에 오류가 생긴다. 현재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초전도체 방식 양자 컴퓨터에 절대 0도에 가까운 극저온 냉각 장치가 필요한 것도 이런 조건에서 양자의 움직임이 최소화돼 오류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오류를 해결하기 위해 같은 양자 정보를 여러 개의 큐비트에 담아 '논리 큐비트'를 만든다. 아주 단순히 설명하자면, 큐비트가 3개 있다면 하나가 오류를 일으켜도 나머지 2개를 보고 여전히 바른 값을 알 수 있다는 원리이다. 물리 큐비트 3개가 1개 논리 큐비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논리 큐비트를 만들려면 많은 물리 큐비트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잖아도 예민한 큐비트의 숫자를 늘이면 오류가 일어날 가능성도 더 커진다. 큐비트 간 의도치 않는 상호작용이 일어나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한다. 오류를 고치려 큐비트를 늘렸는데, 늘어난 큐비트들이 일으킨 오류로 오히려 더 연산을 망치는 결과가 나온다.
양자 오류 정정은 실용적 양자 컴퓨터 첫걸음
따라서 큐비트가 늘어나도 연산을 망치지 않도록 오류를 억제하는 것이 과제다. 오류율을 연산이 잘못되지 않을 수준, 즉 임계값 이하로 낮춰야 한다. 구글은 큐비트 숫자를 늘려도 오류는 임계값 이하로 일어나 도리어 연산 실패가 지수적으로 감소하게 하는데 성공했다.
양자 오류를 정정할 수 있는, 즉 실제 활용 가능한 대규모 양자 컴퓨터 개발의 중요한 단계에 도달했다는 평가다. 큐비트 품질도 높여서 양자 상태가 유지되는 결맞음 시간을 5배 높였다.
이렇게 만든 새 양자 칩 윌로우로 어려운 문제를 돌려 '슈퍼컴퓨터로 10의 25제곱년 걸릴' 것을 5분 안에 풀 수 있음을 보였다.
윌로우가 푼 문제는 '무작위 회로 샘플링'(RCS) 이다. 2019년 구글이 ‘시커모어’로 양자 우월성을 달성했다고 발표했을 때도 이 문제로 테스트한 결과를 근거로 했다. 당시 슈퍼 컴퓨터로 1만년 걸릴 것을 3분에 풀었는데, 이번엔 10의 25제곱년 걸릴 것을 5분에 풀었다.
이런 놀랄만한 속도는 아마도 양자 컴퓨터의 연산이 다중 우주에서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일 수 있다고 구글 연구진은 보고 있다.
다만 RCS는 아직 실용 가능성이 없는, 문제를 위한 문제이다. RCS는 난수를 무작위 생성하듯 큐비트에 대해 양자 회로를 무작위로 생성하는 것으로, 이로 인해 나타나는 분포는 일반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하기 매우 어려워 양자 컴퓨터 성능을 보이기 위한 벤치마크로 활용된다. 즉 구글은 매우 빠른 연산을 할 수 있음을 보이긴 했는데, 그 문제가 실제 쓸모가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말이다.
양자 컴퓨터가 신약을 개발하거나, 금융 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해 리스크를 줄이거나, 기후 변화를 모델링하게 하는 효과적 알고리즘은 앞으로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할 상황이다.
그러니 양자 컴퓨터 기업들이 빠른 시일 안에 과학과 산업에 이전엔 불가능했을 혁신을 가져오리라는 주식 시장의 기대는 아직 때이르다 할 수 있다. 비트코인 가격 하락을 불러온 암호화폐 보안 위협 역시 아직은 너무 이르다.
그러나 세계 각지의 기업과 대학, 연구소에서 활발한 양자 기술 개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오류 정정 기술을 확대하고, 큐비트 품질을 높이고, 유용한 사용 사례를 찾고 있다. 주요국 정부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술이라며 적극 지원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양자 컴퓨팅의 공격에서 자유로운 새 암호 표준을 최근 발표했다.
챗GPT를 통해 AI가 그랬듯, 어느 날 갑자기 양자 기술이 현실이 되어 우리 곁에 올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 누군가 초거대 언어모델을 훈련시키고 있었던 것처럼, 지금 빅테크나 스타트업, 대학 연구실에서 양자 기술 실용화의 비전을 향해 달려가는 노력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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