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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도 K-라면처럼”…‘韓 최초 싱글몰트’ 기원의 비상 [이코노 인터뷰]

도정한 기원 위스키 증류소 대표
국내 최초 싱글몰트 위스키 ‘기원’, 독특한 숙성 환경과 한국적 풍미
“韓 위스키 산업 성장 가능성 확신…종량세 도입 등 규제 개선돼야”

도정한 기원 위스키 증류소 대표. [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윤형준 기자] 위스키 술 한잔에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장인의 철학이 담겨 있다. 한국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 ‘기원’(KI ONE) 또한 그렇다. 기원 위스키는 단순한 술을 넘어 한국의 기후와 문화가 스며든 하나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위스키의 창시자인 도정한 기원 위스키 증류소 대표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세계적인 위스키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이런 도전에 나섰다.

도 대표는 자신이 설립한 한국 수제맥주 브랜드 ‘핸드앤몰트’를 2018년 세계 최대 맥주 회사인 AB 인베브에 성공적으로 매각시켰다. 이후 그는 해외에서 친구들과 술을 나누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그때마다 “왜 한국 위스키는 없느냐”는 질문을 자주 들었다.

이에 도 대표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위스키를 만들 수 있지만 왜 많이들 시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주위에서도 ‘도정한 대표님이 (위스키를) 가장 잘 만들 것이다’라는 격려가 이어져 쓸데없는(?) 자부심이 생겼다”고 웃음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그는 지난 2020년 한국 최초 크래프트 싱글몰트 증류소를 설립하고 한국형 위스키 사업을 시작했다.

기원의 시그니처 라인. (왼쪽부터) ‘유니콘’ ‘독수리’ ‘호랑이’. [사진 기원 위스키 증류소]
사계절의 힘과 발효에서 찾은 차별화 

그렇다면 기원만의 차별점은 무엇일까. 위스키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숙성 환경이다. 도 대표는 한국의 사계절이 위스키 숙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증류소 부지를 남양주로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 대표는 “겨울에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가고, 여름에는 35도까지 올라가는 등 이 지역은 기온 차가 커 숙성이 빠르게 진행된다”며 “깨끗한 지하수와 서울과의 접근성도 고려해 최적의 장소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런 조건 덕분에 기원은 예상보다 빠른 숙성을 거쳐 샌프란시스코 국제주류품평회(SFWSC) 등 국제 대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오크통에서 숙성중인 기원 위스키. 오크통 사용 횟수에 따라 구분위해 흰 페인트를 칠해 뒀다. [사진 신인섭 기자]
또 기원은 한국적인 개성을 담기 위해 발효 기간을 일반적인 위스키보다 2~3배 길게 설정했다. 마치 고추장과 같다. 이를 통해 오렌지·시트러스·스파이스 등의 복합적인 풍미를 구현했다. 도 대표는 “고추장은 단순히 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단맛과 깊은 감칠맛을 함께 갖고 있다”며 “위스키에서도 이런 요소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기원은 제조뿐만 아니라 소비자 경험도 중시한다. 남양주 증류소에서 진행하는 투어 프로그램은 단순한 공장 견학이 아니라, 직접 위스키를 시음하고 숙성 과정과 원료에 대한 이해를 높일 기회의 장(場)으로 자리 잡았다.

도 대표는 “한국 소비자들이 위스키를 더욱 친숙하게 느끼고, 단순한 술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길 바란다”면서 소비자와의 소통을 강화하는 것 또한 브랜드 성장의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K-위스키, 규제 넘어 세계로 뻗어갈 것”

이 같은 기원의 노력은 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국내 위스키 소비량이 감소하는 추세에도 기원의 지난해 매출은 2023년 대비 19% 증가했으며, 특히 면세점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도 대표는 “현재 기원은 미국·일본 등 9개국에 수출되고 있으며, 해외 위스키 애호가들도 한국 위스키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며 “외국인들이 처음에는 ‘한국에서 위스키가 나온다고?’라며 의문을 품다가, 마셔보면 ‘정말 맛있다’고 놀란다”고 말했다.

기원 위스키 증류소 입구에 장식해 놓은 생산된 위스키. 왼쪽은 기원 배치 1~6 시리즈이며, 오른쪽은 ‘호랑이’ ‘독수리’ ‘유니콘’ 등 기원의 시그니처 라인이다. [사진 신인섭 기자]
나아가 기원은 한국 위스키의 맛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실험을 진행 중이다. 도 대표는 “기원은 지금까지 여섯 가지 배치(batch·한 번에 생산되는 위스키 묶음의 단위)를 출시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도수와 맛을 분석했다”며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난해 말 우리의 시그니처 라인인 ‘호랑이’와 ‘독수리’를 출시했으며, 새로운 라인 ‘유니콘’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도 대표는 위스키를 비롯한 한국의 주류 산업이 더 성장하려면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주세법이 1980년대 이후 크게 변하지 않았다”며 “맥주는 2019년 종량세 도입 이후 시장이 성장했다. 위스키도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특산주 기준이 지나치게 제한적이어서 한국산 원료를 활용한 위스키를 만들고 싶어도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무선주파수인식기술(RFID) 태그도 문제로 지적했다. RFID 기술을 활용한 주류유통정보시스템은 2000년대 불법 주류 유통을 근절하기 위해 도입돼 2012년부터는 국내외 브랜드에 전면 시행됐다. 그러나 최근 실효성 저하와 비용 부담 문제가 제기되며, 특히 소규모 브랜드와 국산 위스키 시장에 부담이 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도 대표는 “RFID 부착으로 인해 한 병당 800원의 비용이 소비자에게 그대로 전가되는 구조”라며 현실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도정한 기원 위스키 증류소 대표가 지난 1월 22일 경기 남양주 기원 위스키 증류소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그럼에도 도 대표는 한국 위스키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도 대표는 “한국 라면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듯, 한국 위스키도 충분히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앞으로는 위스키를 그저 취하려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즐기면서 음미하는 문화가 자리 잡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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