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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조용한 소비’가 오고 있어 [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고요함 갈망하는 소비자들, '내향형 경제'의 등장
기업들, '소리 없는 성장' 고려...새 마케팅 패러다임 되다

서울 시내의 한 푸드코트에서 시민들이 밥을 먹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허태윤 칼럼니스트] 양극단의 정치 논쟁과 세대 갈등 및 젠더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런 숨 가쁜 일상 속에서 소비자들은 역설적으로 ‘고요함’을 갈망하고 있다.

신촌 거리에 있는 ‘카페 침묵’은 이런 시대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대화가 금지돼 있다. 하지만 독서실처럼 딱딱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가운데, MZ세대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침묵을 선택하며 각자의 시간에 몰입한다.

이러한 공간들은 2030세대들의 조용한 선택을 받으며 꾸준히 늘고 있다. 소셜미디어의 소음과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진정한 휴식’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이러한 ‘고요함의 가치’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자리잡는 모양새다.

‘내향형 경제’의 시대가 왔다

이런 소비현상은 개인의 사생활과 조용한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현상으로 ‘내향형 경제’(Introvert Economy)라 한다. 과거에는 경제가 사회적 관계와 외향적 소비를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이제는 개인의 내면적 만족과 고요한 사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맨해튼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자 블룸버그의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인 앨리슨 슈라거는 "내향적 성향의 소비자들이 경제의 새로운 주역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에서도 럭셔리 시장부터 일상적 소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럭셔리 시장에는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와 ‘스텔스 웰스’(Stealth Wealth)가 새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과시적이고 화려한 소비가 아닌, 절제되고 은은한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조용한 럭셔리’나 부를 과시하지 않고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소비 형태인 ‘스텔스 웰스’도 내향형 경제의 한 현상이다.

‘에르메스’는 이러한 트렌드를 선도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다. 로고를 최소화하고 장인정신과 품질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2023년 매출이 전년 대비 21% 증가했다.

‘보테가 베네타’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2021년 로고를 완전히 제거한 ‘The Point’ 백을 출시하며 럭셔리 시장에 새로운 미학을 제시했다. 이태리 명품패션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캐시미어와 같은 최고급 소재에 집중하면서도 과도한 브랜딩을 지양하는 전략으로, 조용한 럭셔리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소비 패턴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역대 최고인 243조원을 기록했다. 특히 모바일 쇼핑은 전체 온라인 쇼핑의 76.4%를 차지했다.(통계청·2024년 1월 온라인쇼핑 동향)

성인 음주율의 지속적인 하락세도 내향형 경제와 무관하지 않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음주율은 2019년 62.1%에서 2024년 60.5%%로 감소했다. 또한 ‘혼술’이나 ‘홈술’의 비율도 2018년 36.4%에서 2024년 43.6%(앰브레인리서치)로 크게 증가했다. 이는 사회적 모임의 감소와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를 방증한다.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독일의 제과브랜드 ‘하리보’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다. 그리고 MBTI(성격유형검사) 개념을 접목해 내향형 ‘I’ 성향을 겨냥한 ‘픽 I’ 선불카드와 외향형인 ‘E’ 성향의 소비자를 겨냥한 ‘픽 E’ 선불카드를 선보인 바 있다.

특히 편의점이나 커피숍, 디지털 구독 서비스 등 1인 소비에 특화된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픽I’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유통업계도 변화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2023년 하반기부터 ‘나를 위한 소비’ 캠페인을 전개하며, 1인 고객을 위한 프리미엄 상품군을 확대했다. 그 결과 해당 부문 매출이 전년 대비 증가했다

식품업계에서는 유명 레스토랑의 메뉴를 간편식으로 재해석하거나, 프리미엄 식자재를 활용한 고급 도시락 상품으로 ‘프리미엄 혼밥’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새 패러다임이 가져올 변화

내향형 경제의 부상은 마케팅 전반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첫째, 마케팅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마케팅보다는 제품과 서비스의 본질적 가치를 섬세하게 전달하는 방식이 중요해질 것이다.

둘째, 고객 경험 디자인의 변화다. 과도한 접객이나 푸시 알림 같은 적극적인 마케팅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고객이 원할 때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조용한 서비스’ 설계가 중요해질 것이다.

셋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의 연계다. 내향형 소비자들은 대체로 환경과 사회적 가치에 민감하며, 기업의 진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화려한 CSR(사회공헌) 활동보다는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영 활동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내향형 경제의 부상은 단순한 소비 트렌드의 변화가 아닌, 사회 전반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의 진화를 의미한다. 이제 기업들은 ‘소리 없는 성장’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제품과 서비스의 본질적 가치를 높이고 고객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을 추구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다.

허태윤 칼럼니스트(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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