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억 코인 부자, 증명의 시간]➃
가상자산 투자에서 자산관리로…코인 부자들의 달라진 상담 풍경
인컴형 코어자산·‘4대 기둥’ 분산 전략…“공격 투자보다 안정적인 현금흐름”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예전에는 ‘비트코인을 더 사야 할까요’, ‘어떤 코인이 오를까요’ 같은 질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서울 강남 조선팰리스 인근 하나증권 더(THE)센터필드W 골드(Gold)센터에서 만난 김세한 프라이빗뱅커(PB)는 최근 상담실 풍경이 크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찾던 고객들이 이제는 ▲세금과 자산배분 ▲부동산 ▲증여까지 함께 고민하는 단계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가상자산으로 수십억원대 자산을 형성한 고객들이 제도권 금융으로 유입되면서 PB센터의 상담 내용도 달라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무엇을 살까요”보다 “어떻게 관리할까요”
김 PB는 최근 빗썸 투자자를 대상으로 자산관리 세미나를 진행하며 이전과 다른 분위기를 체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가상자산 안에서 어떤 종목을 사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 많았다”며 “지금은 코인을 현금화한 뒤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지, 국내외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묻는 분들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특히 인공지능(AI) 산업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반도체와 AI 관련 주식, ETF를 장기적으로 보유하려는 상담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투자법인 설립이나 절세 방안을 함께 문의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 PB는 “가상자산으로 큰 수익을 거둔 고객일수록 오히려 자산관리의 필요성을 크게 느낀다”며 “자산이 갑자기 커지면 그때부터는 투자보다 관리가 더 어려워진다”고 짚었다.
그는 실제 상담 과정에서도 “무엇을 더 살까요”보다 “이 자산을 어떻게 나눠 관리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이 더 많다고 했다.
그는 주식과 가상자산은 비슷해 보여도 자산관리 측면에서는 활용도가 크게 다르다고 강조했다. 김 PB는 “가상자산은 가격 상승 외에는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다”며 “반면 주식이나 ETF는 장기 보유뿐 아니라 담보 활용 등 다양한 자산관리 전략을 세울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생각보다 가상자산 부자들은 보수적”이라며 일반적인 이미지와 달리 가상자산으로 자산을 형성한 투자자들이 무조건 공격적인 성향만 보이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높은 변동성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오히려 일정 부분은 안정적으로 운용하려는 성향도 강하다는 것이다.
AI와 기술주에는 꾸준히 관심을 갖지만, 자산 전체를 한곳에 집중하기보다는 위험을 분산하려는 상담이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특히 해외 자산과 국내 자산을 함께 보유하거나, 현금성 자산 비중을 일정 수준 유지하려는 문의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증시에 대해서는 여전히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했다. 김 PB는 “AI 산업을 중심으로 한 성장 스토리는 아직 끝났다고 보지 않는다”며 “야구로 치면 지금은 6회 말에서 7회 초 정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특정 종목에 집중하기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산을 배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래 버는 포트폴리오’…인컴형 코어자산이 핵심
김 PB는 실제 상담 과정에서 단기 수익률보다 장기적인 자산 보전을 위한 포트폴리오 구성을 가장 많이 제안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해외 고액자산가들에게 적용한 자산관리 원칙을 소개하며 “자산관리의 핵심은 단기 수익률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자산을 보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PB는 포트폴리오의 중심이 되는 핵심 자산을 고를 때 ‘얼마나 많이 버느냐’보다 ‘얼마나 안정적으로 오래 버느냐’를 우선한다. 목표는 연 5~6% 수준의 배당·분배 수익과 연 2~3% 수준의 완만한 자본 성장을 결합해 변동성을 낮추는 것이다.
가상자산으로 거둔 수익을 다시 고위험 성장주나 테마주에 집중하기보다 인컴형 코어 자산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전략을 제안한다. 가치주와 배당주, 멀티에셋, 인프라 등 꾸준한 배당·분배금을 지급하는 자산으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WM센터를 찾는 자산가들 가운데는 여러 상품에 투자하고 있으니 충분히 분산됐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실제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특정 국가(미국)나 특정 통화(달러), 특정 운용사 상품에 위험이 집중된 사례가 많다.
해외 패밀리오피스 고객에게 제안한 포트폴리오 역시 단일 국가나 통화 충격이 전체 자산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미국 외 유럽·일본·스위스 등으로 투자 지역을 분산하고 통화도 다변화했다. 국내 상장지수펀드(ETF)를 활용할 경우에도 동일한 지수를 추종하더라도 운용사를 분산해 시스템 리스크를 낮추는 전략을 제시했다.
장기 자산관리는 시장이 급락하더라도 회복 가능한 수준에서 손실을 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포트폴리오는 ▲저변동성 배당주 중심의 주식 ▲금리 변동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단기·고신용 채권 ▲금과 인프라 등 인플레이션 및 지정학적 리스크를 방어할 실물자산 ▲3~12개월치 유동성을 다양한 통화로 분산 보유하는 현금성 자산 등 네 개의 축으로 균형 있게 구성한다.
여기에 금 현물 ETF나 경기 방어 성격의 자산 등 ‘위기 방어 전용 자산’(Sleeve)을 일부 편입하고, 시장이 급락하면 사전에 마련한 기준에 따라 리밸런싱을 실시하는 등 위기 대응 원칙도 함께 마련한다.
김 PB는 “가상자산으로 자산을 형성한 고객들의 관심은 이제 무엇을 더 살 것인가보다 자산을 어떻게 오래 지키고 관리할 것인가에 있다”며 “장기적인 자산관리 체계를 갖추고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점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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