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상법 개정 우려, 기우로만 볼 수 없는 이유 [EDITOR’S LETTER]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권오용 기자] 최근 소액주주들이 뭉쳐 최고경영자(CEO)를 해임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달 말 코스닥 시장 상장사인 제약용 특수효소 회사 아미코젠 주주총회에서 창업주이자 대표이사인 신용철 회장이 사내이사에서 해임됐는데요, 소액주주들이 3000만주 가량(53.3%)을 모아 무리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계열사 투자 실패, 사기 혐의 피소 등으로 신뢰를 잃은 최대주주(12.6%) 신 회장의 경영권을 박탈했습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소액주주의 승리인데요, 일부에서는 주주 행동주의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액트·헤이홀더 등 주주들이 쉽게 뭉칠 수 있게 하는 주주 행동 플랫폼이 있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기존에는 주주 명부를 보고 소액주주에게 일일이 연락하고 위임장을 받아야 했지만, 주주 행동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앱에 접속해 보유 주식을 인증하고 신분 확인 및 전자서명을 하면 의결권이 위임됩니다. 

이런 편의성이 실제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데요, 아미코젠 소액주주들은 액트를 통해 2164명이 결집해 1963만6353주(지분율 35.69%)를 모았습니다. 이 같은 주주 행동 플랫폼에서의 소액주주연대는 지분가치 훼손 논란이 있는 티웨이홀딩스와 티웨이항공,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불만이 쌓이고 있는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 현대퓨처넷 등 여러 상장사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주주 행동 플랫폼들이 힘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액주주를 모아 대주주로서의 지위를 행사할 수 있는 소액주주 의결권 전문 행사 특수목적법인(SPC)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주주 행동주의 활성화를 위한 여건이 좋아지고 있는 겁니다.

국내에서 소액주주연대가 활기를 띠고 있는 요인으로는 정부가 한국 시장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 해소를 위해 작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정책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후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요, 기업의 경영 체질 개선과 주가 부양을 위해 자사주 소각과 집중투표제를 주요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 주당 순이익이 늘어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고,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임 시 의결권을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는 제도로 소액주주들이 뭉치면 원하는 이사를 선임해 대주주를 견제할 수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소액주주 권리 보호와 주식 가치 제고를 명분 삼아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전체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 입법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로 기업 가치가 상승할 수 있어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기업 경영진에게는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커지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주주 행동주의가 일부 문제의 경영진을 견제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선량한 경영진을 흔들 수 있어 마냥 환영할 수 없습니다. 기업들이 상법 개정안이 입법화되면 경영진이 각종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도 진화하는 주주 행동주의를 보면 기우로만 치부할 수 없습니다. 상법 개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말을 흘려들어선 안되겠습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카카오뱅크, ‘연 7% 금리’ 한국투자증권 특판 RP 완판

2경영권 승계 자금 논란 불식? '3.6조→2.3조' 한화에어로, 유증 줄인다

3비트코인, 블랙먼데이 딛고 소폭 반등…1억1800만원대로 올라

4신한은행, 전역장교 30여명 신규 채용한다

5어니스트AI, 금융규제 샌드박스 통한 '대출 플랫폼' 4월 출시

6금융 AI 핀테크 혜움, 105억원 규모 시리즈B 투자 유치

7 정부, 21대 대통령 선거일 6월 3일로 확정

8코스피, 블랙먼데이 이겨내고 2% 내외 반등…반도체주 상승

9유니클로, 제주·대구 매장 오픈 예정...지역사회와 사회공헌 캠페인

실시간 뉴스

1카카오뱅크, ‘연 7% 금리’ 한국투자증권 특판 RP 완판

2경영권 승계 자금 논란 불식? '3.6조→2.3조' 한화에어로, 유증 줄인다

3비트코인, 블랙먼데이 딛고 소폭 반등…1억1800만원대로 올라

4신한은행, 전역장교 30여명 신규 채용한다

5어니스트AI, 금융규제 샌드박스 통한 '대출 플랫폼' 4월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