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프랑스·독일이 가져간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 이유[백세희의 컬처&로(LAW)]
문화유산 환수 둘러싼 국가 간의 미묘한 긴장
"문화재는 국가 아닌 인류의 것" 주장하는 강대국
국제협약 통한 해결책 필요해

국가유산청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과 함께 위 편액의 정보를 입수해 이를 국내로 환수하는 데 성공했다. 구입대금은 게임회사 라이엇게임즈 코리아의 후원을 받아 마련했다. 라이엇게임즈는 2012년부터 국가유산청과 후원약정을 체결하여 12년째 국외소재문화유산 환수를 지원하고 있다.
‘매매’ 아닌 순수 ‘반환’…거의 없는 이유
우리나라는 문화유산 약탈에 대해 할 말이 많다. 19세기 말 문호개방을 요구하는 서구 열강을 비롯해 일본의 식민 지배에 따른 대대적인 수탈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광복 직후 미 군정기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인 1950년경에도 미군과 미국 외교관에 의한 국보급 문화유산의 반출이 ‘수집’이라는 이름 아래 공공연히 이뤄졌다. 이에 대해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분노하며 주기적인 공론화로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마땅히 돌려받아야 한다고 여긴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번 편액처럼 돈을 주고 사는 방식이 아닌, 순수한 ‘무상’ 반환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가져간 외규장각 의궤만 해도 무려 145년 만인 지난 2011년 되찾았지만, 완전한 ‘반환’이 아닌 5년 단위 갱신에 의한 ‘대여’ 형식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심지어 의궤는 박병선 박사가 1975년 발견할 때까지 프랑스 국립 도서관의 파손 도서 창고에서 중국 서적으로 잘못 알려진 채 잠자고 있었다. 그다지 귀한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도 아닌 셈이다.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던 문화재조차 그 소유권을 포기하고 모국에 돌려주는 일은 쉽지 않은가 보다.
사실 두 국가 간 약탈 문화유산 반환의 문제는 정치·경제·법리적인 문제만 살펴봐도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문화 침략국과 피침략국의 역사에서 배어나오는 분통 터지는 감정 문제는 덮어놔도 말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국가간 문화재 반환이 어려운 정치·경제적 이유
우선 정치·경제적 문제가 있다. 문화재는 자국의 관광 산업에서 매우 중요하다. 잘만 관리하면 지속적인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말 그대로 ‘보물’이다. 그러니 쉽게 내어줄 리 없다. 게다가 어느 한 나라가 전면적인 반환을 선언하면 이를 따르지 않는 다른 약탈국은 줄줄이 비난의 화살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니 약탈국끼리는 카르텔이라도 구성해서 절대 돌려주지 말자고 약속이라도 하고 싶을 테다.
카르텔이라는 표현이 좀 지나치다 싶은 감이 있지만, 실제로 이런 조직(?)이 있다. 다만 그 구성원은 국가가 아니고 ‘박물관’이다. 2002년 18개의 세계 대형 박물관들이 모여 ‘인류 보편의 박물관 선언문’(Declaration on the Importance and Value of Universal Museum)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그들은 “다른 문명과 교차하는 인류 보편의 문화재는 한 국가에 속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며, 박물관에서 다른 문명과 비교됨으로써 그 지속적 중요성이 인식된다”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들은 자신들이 ‘원(原)장소 맥락’을 상실한 문화재에 새로운 맥락을 부여했다고 자랑하며, 이제 와 그러한 문화재를 반환하는 것은 이미 부여된 새로운 맥락을 파괴하는 일이라 주장했다. 이렇게 제국주의 시대의 최대 수혜자들이 나서서 선언문까지 발표하며 강력한 연대를 과시하고 있으니…. 문화재 반환이 자발적으로 이뤄질 리 만무하다.
2018년 11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아프리카 식민지로부터 약탈한 문화재의 반환을 결정했을 때 주변국이 보인 태도도 이와 비슷하다.
하르트비히 피셔 영국박물관 관장은 “영국박물관 규정도 영국 법률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훔볼트포럼 하루트무트 도겔로 관장도 “로마 유적 대부분도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에서 훔쳐 온 것”이라며 “일부 문화재는 유럽과 세계 역사의 결과로 봐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선을 긋고 나선 바 있다. 주변국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내부에서도 반발이 터져 나왔다. 프랑스 법에 따라 문화재의 반환이 실제로 이뤄지려면 의회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데, 이 과정도 순탄치 않다.

소유권 주장, 문화유산 반출 금하는 법리적 문제들
법리적인 문제도 만만치 않다. 소유권에 기한 반환청구는 ①나에게 소유권이 있어야 하고, ②상대방이 그 물건을 점유할 권리가 없을 때 가능하다. 법리는 비교적 간단하지만, 늘 그렇듯이 문제는 ‘입증’이다.
약탈당한 문화재가 어찌어찌하여 그것이 국내에 있었고 우리나라 누군가의 소유였다는 것을 어렵게 증명하더라도, 선의취득의 법리나 시효취득 제도에 의해 약탈국의 누군가가 현재는 자신이 적법한 소유자라고 주장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골치 아픈 분쟁은 물건 하나하나 별개로 이뤄진다. 약탈은 한꺼번에 이뤄졌지만, 물건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고 점유 경위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위 요건을 모두 입증한다 해도 끝이 아니다. 각국의 문화유산 보호법률은 자국 내 문화유산의 반출을 엄격히 금지한다. 우리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약칭 문화유산법, 구 문화재보호법) 제39조도 국내 문화유산은 일체 외국으로의 반출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일시적으로나마 해외로 나가려면 정부 부처의 허가가 필요하거나, 앞서 프랑스의 예처럼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 입법례도 있다. 산 넘어 산이다.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제39조(수출 등의 금지) ①국보, 보물 또는 국가민속문화유산은 국외로 수출하거나 반출할 수 없다. 다만, 문화유산의 국외 전시, 조사·연구 등 국제적 문화교류를 목적으로 반출하되, 그 반출한 날부터 2년 이내에 다시 반입할 것을 조건으로 국가유산청장의 허가를 받으면 그러하지 아니하다.
국제 협약 통해 해결책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빼앗긴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그래서 국가들은 국제법규를 제정해 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려 했다. ▲1954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채택된 「무력 충돌시 문화재 보호에 관한 협약」 ▲1970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 ▲1995년 유네스코가 사법통일국제연구소의 검토를 거쳐 채택한 「도난 및 불법 반출 문화재에 관한 협약」 등이 그 예이다.
이는 ‘국제법적 해결’의 전형적인 예다. 국제법적 해결의 특징은 바로 강제할 수단이 변변치 않고 가입 여부가 자기 마음대로라는 점이다. 실제로 위 헤이그 협약이나 유네스코 협약에는 세계 제일의 예술품 시장을 가진 미국이 참여하지 않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그 실효성이 의문시되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협약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약탈을 주로 문제 삼고 있어서 그보다 훨씬 전에 이뤄진 문화유산 반출에 대해서는 별다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당사자가 다수인 국제협약이 아닌, 개별 국가 간 협정이 체결되기도 한다. 협정이 약탈국과 피약탈국, 단 두 나라 사이에서만 이뤄지는 것인 만큼, 합의만 성사된다면 실제 문화유산의 환수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일본과 우리나라가 1965년 6월에 체결한 「한일문화협력협정」에 따라 1966년 5월 27일 반환된 우리 문화유산 1324점이 그 예이다. 그렇지만 이런 협정들은 주로 일회성으로 이뤄지고, 그나마도 두 나라 사이의 정치적인 기류에 의해 크게 좌우될 수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일본도 위 1965년의 협정에 의한 회복 이후 별다른 반환이 이뤄지지 않다가 1990년대 이후부터 민간 차원에서 소량으로 드문드문 회복해 왔다.
지난달 이뤄진 경복궁 선원전 편액의 환수는 국가기관이 주도한 것이지만 민간기업인 라이엇게임즈의 후원을 통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필자도 이번 환수를 기회로 문화유산 반환을 둘러싼 현실적인 어려움과 해결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이번 칼럼을 통한 이해를 바탕으로 앞으로 꾸준히 이뤄질 개별 문화유산의 환수를 독자 여러분과 함께 흥미롭게 지켜보고 싶다.
백세희 법률사무소 아트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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