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하늘 가르는 군용기...뒷단의 ‘조용한 거인’ 대한항공
- [K방산의 조력자들]②
군용기 정비 40년 장인 대한항공
드론 포트폴리오 확장으로 사업 다각화

정비에 처음 손을 댄 당시만 해도 대한항공의 본업은 민항이었다. 하지만 이 정비 사업은 반 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점점 덩치를 키웠다. 그 결과, 지금 대한항공은 아시아 최대 군용기 정비(MRO) 전문기업이 됐다.
군용기 수리 장인 ‘대한항공’
글로벌 방산시장에서 대한항공이 차지하는 위상은 여전히 ‘조용한 기술자’에 가깝다. 록히드마틴이나 레이시온처럼 무기를 직접 생산하거나, KAI처럼 기체를 통째로 만드는 회사는 아니다. 하지만 대형 헬기 정비, 고정익 전투기 성능 개량, 그리고 무인기 설계까지 모두 한 손에 쥔 기업은 많지 않다. 특히 MRO 영역에서 군·민 양쪽을 아우르는 기술력은 아시아권에서도 드물다.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반에 걸친 MRO 시장은 꾸준한 성장곡선을 그릴 것으로 전망됐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그랜드 뷰 리서치(Grand View Research)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해당 시장이 올해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5.6%(CAGR)의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며 2030년경 약 1888억 달러(260조 원)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상황 속 대한항공이 그간 정비해온 목록을 들여다보면 규모보다 내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F-4, F-15, F-16, A-10, C-130 등 미 공군의 주력 전투기와 수송기, CH-53, CH-47, HH-60 같은 대형 헬기, UH-60 블랙호크까지. 단순한 엔진 오버홀을 넘어서 수명 연장(SLEP), 항전장비 업그레이드, 구조보강까지 포함된 ‘전투력 재생산’을 수행하는 수준이다.
지난 2020년 미국 공군과 약 2900억원 규모의 F-16 수명 연장 계약을 체결하며, 대한항공은 비로소 국제 방산 MRO 업계의 핵심 플레이어로 이름을 올렸다. ‘정비만 하는 회사’라는 편견은 이 계약에서 무너졌다. 부품 교체가 아니라 기체 피로 해석부터 설계 수정, 구조물 재가공, 재도장, 재조립, 성능시험까지 ‘토탈 리빌드’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대한항공은 F-16 외에도 미 해병대의 CH-53E, 해군의 P-3C, 신호정보(SIGINT) 항공기 정비까지 맡고 있다. 이미 2014년 기준 4000대 이상의 군용기를 정비했고, 현재 누적 6000대를 넘겼다. 미국 본토 외에서 이 정도 수준의 정비를 수행할 수 있는 업체는 손에 꼽힌다.
대한항공의 ‘조용한 기술력’은 수출 시장에서도 움직이고 있다. 미국산 항공기를 운용하지만 정비 인프라가 부족한 동남아, 중동, 중남미 국가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다. 이미 미국 공군·해병대 기종을 정비한 실적이 있어 인증 장벽이 낮고, 플랫폼 호환성도 검증된 상태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UAE, 페루 등이 잠재 고객군으로 평가받는다.

무기를 만들지 않으면서도 방산 생태계의 깊숙한 곳에 침투한 이 민간 항공사의 다음 행보는 의외로 ‘무인기’다. 대한항공은 2000년대 중반부터 자사 연구개발 역량을 투입해 자체 드론을 개발해왔다.
대한항공의 드론 포트폴리오는 생각보다 다채롭다. 수직이착륙(VTOL) 하이브리드 드론(KUS-HD), 틸트로터형(KUS-VT), 전술형(KUS-FT), 전략 감시형(MALE급 KUS-FS), 스텔스(KUS-FC), 그리고 '로열 윙맨' 개념의 차세대 무인 편대기(KUS-LW)까지 갖췄다.
이 중에서도 KUS-HD는 가장 상용화에 가까운 모델이다.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혼용해 약 2시간 이상 비행이 가능하며, 수직이착륙으로 선박이나 도서 지역에서도 운용할 수 있다. 2019년 부산시에 납품된 바 있고, 2023년엔 태국과 고흥군에도 공급됐다. 정찰·경계 임무를 염두에 둔 이 드론은 국방부 및 해안경비당국과의 실증 협의도 병행 중이다.
드론 개발과 함께 대한항공이 추진 중인 전략은 단순한 플랫폼 납품이 아니다. 무인기와 MRO, 임무분석이 결합된 통합 운영 모델이다. 즉, 무인기를 팔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행 데이터 분석, 유지보수, 작전 시나리오 설계까지 포함한 ‘운용 서비스’를 패키지로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대한항공이 민항기 정비에서 축적한 MRO 노하우와, IT·항공전자·시뮬레이션 역량을 결합한 새로운 유형의 방산 서비스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군용 시뮬레이터(KT-1, P-3C 등), 항법 시스템, 비행 안전 시스템, UAV 훈련 체계 등도 병행 개발하고 있다.
시장 전망도 밝다. 전 세계 군용 드론(Military UAV) 시장은 올해 158억 달러(약 21조 원) 규모에서 2030년에는 228억 달러(약 30조 원)로 확대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켓츠앤마켓츠(Markets&Markets)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올해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7.6%(CAGR)의 안정적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방산업계는 정비와 무인기의 교차지점에 주목하고 있다. 전투기와 헬기를 잘 정비하는 회사가 반드시 드론을 잘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비행 안정성·데이터 통제·구조 해석 등 항공기술의 본질은 겹친다. 대한항공은 이 교차점에서 가능성을 보이는 기업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무인기나 드론 분야는 중국이 워낙 시장 지배력이 크고 기술적으로도 앞서 있기 때문에,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엄밀히 말해 핵심 사업이라기보다는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며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도모하며 새로운 영역에 진출하려는 시도인 셈인데, 고부가가치 사업이라는 점에서는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그는 “MRO 분야는 대한항공이 기존 역량을 바탕으로 충분히 키워나갈 수 있는 영역”이라며 “물론 대한항공이 글로벌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다만, 성장 가능성이 충분한 것은 사실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사업의 초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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