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에이피알이 쏘아 올린 작은 공[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 K뷰티 시가총액 1위 기록한 에이피알

[허태윤 칼럼니스트] 2025년 8월 6일. 한국 뷰티업계에 혁명이 일어났다. 창업 10년 남짓한 신생 뷰티 기업 에이피알(APR)이 시가총액 7조9322억원으로 아모레퍼시픽(7조5339억원)을 제치고 업계 1위에 올랐다.
이것은 그저 기업 순위(시가총액 기준) 변화가 아니다. 1945년 창업 이래 80년간 한국 화장품 산업을 이끌어온 아모레퍼시픽, 세계 7위권 글로벌 뷰티 공룡이 창업 10년 갓 넘긴 신생 기업에게 왕좌를 내준 것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21세기 비즈니스 버전이다. 숫자는 더욱 충격적이다. APR의 2분기 영업이익 846억원은 아모레퍼시픽(737억원)과 LG생활건강(548억원)을 합친 것보다 크다. 영업이익률 25.8%는 기존 화장품 기업들의 5% 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것은 단순한 기업 순위 변화가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혁신이 구시대 거인들을 무너뜨린 혁명이다.
역발상의 시작점-D2C마케팅
김병훈은 2014년 온라인 광고업을 하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봤다. 네이버 중심의 광고 모델이 소셜미디어로 넘어가는 전환점, 그리고 유통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순간을.
혁명의 첫 번째 성공은 유통에서 시작됐다. 모든 화장품 회사가 백화점과 면세점 입점을 꿈꿀 때, APR은 정반대 길을 택했다. ▲자사몰 우선 ▲고객과의 직접 접촉 ▲데이터 수집과 분석 등 ‘선 플랫폼 구축 후 아이템 선정’에 힘을 쏟았다. 한마디로 D2C(소비자 직접거래)집중 전략이 APR DNA의 핵심이다. 제품부터 만들고 판로를 찾는 기존 방식이 아니라, 플랫폼을 먼저 구축해 고객을 모으고 그들의 반응을 보며 제품을 개발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APR 은 D2C라는 개념이 업계에 명확하지 않았을 때부터 이 방식으로 제품을 판매했다.
그 결과, APR 의 패션브랜드 널디(Nerdy)는 자사몰에서 매출의 50%를 창출하며 중간 유통 마진을 모두 회사가 가져갔다. 경쟁사들이 유통업체 눈치를 보며 가격 통제권을 잃어갈 때, APR은 모든 것을 직접 컨트롤했다.
밸류 체인의 내재화
김병훈 대표의 광고회사 출신 DNA는 APR 혁명의 결정적 무기가 됐다. 다른 화장품 회사들이 광고비를 외부에 지출할 때, APR은 그 역량을 내재화 했다. 자체 스튜디오 전문 인력을 갖춘 ‘D2C 마케팅 본부’에서 수십, 수백 개의 광고 콘텐츠를 빠르게 제작한다. 실시간 성과 분석으로 가장 효율적인 광고에 예산을 집중하는 데이터 드리븐 마케팅(Data Driven Marketing)을 도입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다. 광고와 제품 개발, 판매가 하나로 연결된 완전 통합 시스템이다. 고객 반응 데이터가 즉시 제품 기획에 반영되고, 마케팅 메시지가 실제 판매로 직결되는 구조다. 전통적인 화장품 회사들의 분절된 밸류체인과는 차원이 다른 무기였다.

디바이스라는 게임 체인저
APR의 세번째 성공요인은 전략 제품 카테고리 자체를 바꾼 것이다. 화장품이 아닌 뷰티 디바이스를 전면에 내세웠다. 100만원대가 당연시되던 뷰티 디바이스 시장에 20-30만원대 제품을 투입했다. '1가구 1디바이스'라는 비전 하에 대중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메디큐브 AGE-R'은 출시 3년 만에 누적 판매량 300만 대를 돌파했다. 2024년 뷰티 디바이스 부문에서만 31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발견이다. 디바이스와 함께 사용하는 전용 젤, 크림을 연달아 출시하며 '면도기-면도날' 방식의 지속적 매출 구조를 만들었다. 일회성 판매가 아닌 장기간에 걸친 고객 생애가치 확보에 성공한 것이다.
탈중국, 미국 퍼스트
네번째 번째 성공 요인은 글로벌 시장에 대한 판단이었다. 모든 K-뷰티 기업이 중국 관광객과 면세점에 목을 맬 때, APR은 처음부터 미국을 겨냥했다. 결과는 극명했다. 2025년 2분기 전체 매출의 78%가 해외에서 발생했고, 미국 시장 비중만 29%로 국내를 앞질렀다. 변동성 큰 중국 시장 대신 안정적이고 프리미엄을 인정받는 서구 시장을 선택한 전략적 혜안이 빛났다. 아마존 프라임데이에서 AGE-R 제품들이 완판되고, 미국 현지에서 직접 유통망을 구축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단순 수출이 아닌 현지화 전략의 성공이다.
35세 김병훈이 만든 새로운 희망들
25세의 김병훈이 시작한 도전이 10년만에 바꿔 놓은 것은 한국 뷰티업계의 패러다임 뿐이 아니다. 광고업계 전체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인공지능(AI)이 광고를 제작하고, 광고주들이 직접 미디어와 거래하기 시작하면서, 전통적인 광고 대행사 모델이 붕괴되고 있는 와중에 APR이 보여준 것은 한 줄기 빛이다.
유사한 사례로 에코마케팅과 FSN을 들 수 있다. 에코마케팅은 D2C 기업 데일리앤코를 인수해 연 매출 50억에서 1000억으로 성장시켰고, 글루가 투자로 10배 수익을 실현했다. FSN이 ‘링티’와 ‘르무통’이라는 브랜드를 직접 키워내며 브랜드 액셀러레이팅 모델을 완성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광고산업에서 출발한 산업의 새로운 종(種)들이 탄생하고 있다.
데이터로 고객을 이해하고, 기술로 제품을 차별화하며, 직접 소통으로 브랜드를 키우는 21세기형 뷰티 테크 기업 APR의 혁명은 철저한 준비와 혁신적 사고, 시장 변화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만들어낸 필연의 결과다. APR이 써 내려간 것은 단순한 한 청년의 성공 스토리로 들리지 않는다. ‘개천용’이 나오기 힘든 팍팍한 현실 속, 이 시대 청년들에게 주는 작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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