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댐 아래 묻힌 고향, 댐 위를 흐르는 문화…안동 50년의 인내와 가치[김현아의 시티라이프]
- [지방의 시간을 기록한다]②
산업화의 서사, 기술과 자본이 낳은 거대한 기념비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전 국회의원]1960~70년대, 한국과 일본은 급격한 산업화를 위해 대규모 수력·치수 인프라 확보에 막대한 자본과 기술을 투입했다. 안동댐과 구로베댐(黒部ダム(Kurobe Dam))은 대표적인 사례중 하나이다. 두 댐은 국가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 이면에는 각 지역이 감당해야 했던 상처와 인내가 깊이 배어 있다. 두 지역이 치른 희생의 방식과 이를 바라보는 정신적 토대가 약간 다른데, 결국 이 차이는 이후 ‘가치 환원’ 전략과 지역 관광의 방식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구로베댐은 일본 북알프스 깊은 산중, 인간의 접근조차 쉽지 않은 오지에 세워졌다. 험난한 지형은 공사 노동자들에게 혹독한 대가를 요구했다. 건설 과정에서 총 171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기록은, 자연의 벽에 도전한 기술자들의 의지를 신화적 서사로 만들었다. 구로베댐은 높이 186m의 아시아 최대급 아치댐이었으며, 완공까지 7년과 연인원 1,000만 명 이상이 투입된 세기적인 난공사였다. 자재 운반을 위해 뚫은 ‘간덴 터널’, ‘다테야마 로프웨이’, 그리고 전 구간 지하에 건설된 ‘구로베 케이블카’등 수많은 공정 하나하나가 기술력의 한계를 시험한 거대한 모험담이었다. 이러한 시설들은 댐 준공이후에도 철거되지 않고 그대로 관광 이동로로 활용되어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 루트'가 됐다.
이에 맞서는 한국의 안동댐 역시 국가적 근대화 프로젝트의 핵심 상징으로 건설됐다. 안동댐은 높이 83미터, 길이 612미터에 달하는 대규모 사력댐으로, 낙동강 유역의 홍수 조절과 동시에 안정적인 용수 공급을 목표로 했다. 특히, 시설 용량 9만kW를 자랑하는 국내 최초의 양수 겸용 발전소를 갖춰 초기 전력 수급 불안정 해소에 기여했다. 또한, 총 건설 재원 중 일부를 아시아 개발은행(ADB) 차관으로 조달한 것은, 1970년대 국가 산업화를 위한 국제적 자본 유치 노력의 결실이었음을 증명한다.
공동체의 희생, 유교적 대의와 정적 관광으로 승화
구로베댐이 ‘자연과의 투쟁’이라는 외부적 서사를 가졌다면, 안동댐은 ‘공동체의 내면적 희생’이라는 다른 종류의 서사를 감내했다. 안동댐은 깊은 산속이 아닌 수많은 마을과 생활권 바로 위에 들어섰고, 그 결과 약 20여 개 마을이 수몰되는 비극을 겪었다. 단순한 경제적 손실을 넘어,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종가 문화, 조상의 묘역, 농지와 삶의 터전이 통째로 사라지는 문화·정신적 차원의 희생이 뒤따랐다. “국가의 물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면, 우리의 터전도 내려놓겠다”는 결단에는 조선 시대 영남 유학의 한 축을 이끌었던 안동 공동체의 ‘대의(大義)’와 ‘타인을 위한 헌신’이라는 유교적 가치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희생은 수몰로 그치지 않았다. 안동댐 건설로 상류 지역은 50년 가까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이며 장기간 개발 규제를 감내해야 했고, 이는 단순한 경제적 손실을 넘어 지역 발전의 기회를 박탈하는 기회 비용을 수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희생과 인내는 안동만의 독특한 관광 문화로 승화됐다. 호수와 월영교, 서원의 풍경은 구로베처럼 역동적이지는 않으나 고요한 기념비처럼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특히, 국내에서 가장 긴 목조 교량인 월영교는 낮에는 전통적 고요함을, 밤이 되면 아름다운 조명과 함께 환상적인 야경을 선사하며 안동 관광의 새로운 핵심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월영교는 수몰된 부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는 명소다. 안동은 고요한 수면, 복원된 유교 유산, 월영교의 고즈넉한 야경이 결합된 ‘정적 관광’을 선택하며, 사라진 공동체의 기억을 단단하게 지켜냈다.
'지방의 시간'을 되찾는 노력, 그리고 국가적 대의
1970년대 대구·구미 등 인근 도시들이 급격한 인구 증가로 식수난을 겪을 때, 안동댐은 이들 지역에 안정적인 상수원을 제공하며 국가 산업화의 후방을 굳건히 지탱했다. 안동의 희생과 수몰의 상처는 단순히 지역 차원의 손실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산업화에 기여한 기반이었음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최근 K-컬처 확산과 함께 안동의 전통 문화자산이 재평가되고 있지만, 이러한 ‘재발견’의 화려함 속에서 안동이 겪어온 긴 불편과 기회 비용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대구 취수원 이전 사업인 '맑은물 하이웨이'는 안동이 수십 년간 바라온 댐 주변 규제 완화를 위한 협상 동력을 제공하며 희생을 보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분수령이다. 이 사업은 안동댐 직하류에서 대구로 대규모 수량을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동시에 취수량 증가에 따른 잠재적인 물 이용 리스크와 신규 규제 발생 우려라는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할 수 있다. 따라서 안동이 요구하는 기존 개발 규제 해소와 상생발전 지원책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새로운 과제(취수원 이전)는 안동에게 또 다시 일방적인 희생과 인내만을 요구하는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안동댐은 단지 물을 막아 세운 시설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국가를 위해 내려놓은 삶의 기록이며, 조용하지만 단단한 인내의 시간이다. 그것은 주변 도시들의 성장을 뒷받침한 위대한 공헌이었다. 이제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할 수 없는 시대다. 거대한 토목사업이 시설 준공으로만 끝나서도 안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과 기술적 유산을 장기적인 지역 비전 속에서 문화적 자산으로 활용해야 할 때다. 일본 구로베 댐의 사례를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 봐야 하는 이유이다. 지방쇠퇴에 대한 대응은 거대한 시설 투자에만 있지 않다. 그 가치에 합당한 인정과 보상이 안동과 같은 도시들에 필요하다는 시대적 명제에 실질적인 행동으로 응답하여야 한다.
K-컬쳐가 정점을 이루는 시대를 맞아, 지방의 많은 문화유산이 빛을 발하도록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관광 서비스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지역 간-지역내 교통 접근성 개선과 국제적 수요를 담아낼 고부가가치 관광 인프라 확보가 시급하다. 진정한 국가의 미래는, 지방 도시들이 지닌 고유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중앙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해결 과제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낼 때 비로소 열릴 것이다.(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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