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K브랜드에 기회의 땅 ‘동남아시아’는 더 이상 없다 [동남아시아 투자 나침반]
- ‘한류 프리미엄’만 믿기엔 너무 강해진 경쟁자들
제품이 아닌 ‘경험’과 ‘가치’ 팔아야 할 때

[김상수 리겔캐피탈 상무] 젊음은 언제나 시장의 변화를 이끈다. 동남아시아 인구의 절반 이상이 30세 이하라는 사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산업과 소비 구조를 재편하는 거대한 동력이다. 특히 Z세대(199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출생)는 태어나면서부터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다. 이들은 제품 검색부터 구매와 결제까지 모든 과정을 온라인에서 해결하며, 브랜드 선택 기준에서도 단순한 가격 경쟁력을 넘어 정체성, 가치, 경험을 요구한다.
동남아시아는 이러한 변화를 관찰하기에 가장 역동적인 무대다. 약 6억 7천만 명에 달하는 아세안(ASEAN) 인구 중 절반 이상이 30세 이하이며, 동남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는 젊은 노동력과 신흥 중산층 소비층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이 거대한 Z세대 집단은 한국의 K-뷰티·K-콘텐츠·K-푸드 등 K-브랜드에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제시한다.
Z세대 소비 패턴의 여러모로 다르다. 첫째, 디지털 중심성이다. 동남아 Z세대의 70%는 제품 탐색과 구매를 소셜 미디어에서 시작한다. 인도네시아와 태국에서는 Z세대의 90% 이상이 유튜브 정보를 기반으로 구매를 결정한다는 조사도 있다. 구글·틱톡·인스타그램은 사실상 쇼핑의 출발점이 되었고, 인플루언서의 추천 한마디가 소비 흐름을 바꾼다.
둘째, 가성비와 감성의 공존이다. 단순히 저렴한 제품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브랜드라면 기꺼이 프리미엄을 지급한다. 태국과 베트남에서 K-뷰티 제품이 단순한 화장품을 넘어 자기표현의 도구로 소비되는 이유다. 특정 아이돌이 사용하는 립스틱, K-드라마 속 의상은 곧바로 Z세대의 위시리스트에 오른다.
셋째, 가치소비의 확산이다. 기후변화와 사회적 불평등에 민감한 이 세대는 친환경, 공정거래, 비건·할랄 인증 등을 구매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단순한 디자인이나 기능을 넘어 ‘이 브랜드가 내 가치관과 맞는가?’가 소비의 최종 판단을 좌우한다.
K-브랜드, 프리미엄 이미지 갖춰야
한국 브랜드는 이미 강력한 문화적 자산을 지니고 있다. BTS와 블랙핑크 같은 K-팝 아티스트는 동남아 전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제품이나 협업하는 브랜드는 곧바로 소비자의 주목을 받는다. 실제로 베트남 화장품 시장에서 K-뷰티 점유율은 22%에 달하며, 인도네시아 15~25세 여성의 62%가 한국 화장품을 사용한다는 통계가 있다.
또한 K-드라마와 예능이 넷플릭스·유튜브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한국 브랜드는 단순 소비재가 아니라 문화적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한국 화장품은 피부를 관리하는 도구를 넘어, 드라마 속 주인공의 삶을 경험하는 수단으로 소비된다. 이는 Z세대의 경험 중심 소비 흐름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동남아 로컬 브랜드는 K-브랜드를 빠르게 추격 중이다. 인도네시아의 ‘와르다’(Wardah)는 할랄·비건 인증과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태국의 로컬 스낵 브랜드들도 Z세대의 기호와 문화를 반영해 K-푸드와 정면 경쟁한다.
중국 브랜드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틱톡샵, 알리익스프레스 같은 플랫폼을 앞세워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Z세대 소비자를 빠르게 끌어들이고 있다. 특히 빠른 트렌드 복제전략으로 K-뷰티나 K-패션의 인기 제품을 즉각 모방하며 시장을 잠식한다.
이런 환경에서 K-브랜드가 과거의 문화적 인기에만 기대서는 지속 성장이 어렵다. 새로운 차별화 전략이 필수적이다.

K-브랜드가 선택해야 할 세 가지 전략
첫째, 콘텐츠와 브랜드의 통합이다. K-콘텐츠는 여전히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문화적 자산이다. 브랜드가 이러한 콘텐츠와 결합할 경우, 제품은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문화적 경험과 동일시되는 상징적 가치를 얻는다. 이는 가격 경쟁을 회피하고, Z세대의 정체성 소비와 직접 연결되는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
둘째, 가치소비에 부합하는 ESG 실천이 있어야 한다. Z세대의 소비 결정에는 환경적·사회적 요인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친환경 포장재, 비건·할랄 인증 제품,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브랜드 캠페인은 브랜드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 체계를 제시한다. 이러한 ESG 기반 접근은 경쟁 제품과의 차별화뿐 아니라 장기적 신뢰 구축에도 기여한다.
셋째, 옴니채널 경험의 제도화이다. 팝업스토어와 체험형 플래그십 매장은 단순한 판촉 공간이 아니라, Z세대가 스스로 브랜드를 증폭시키는 플랫폼이 된다. 이들은 SNS를 통해 경험을 공유하고, 이는 곧바로 브랜드 충성도로 환원된다. 따라서 옴니채널 전략은 단순한 판매 채널 다변화가 아니라, Z세대를 중심으로 한 브랜드 생태계 구축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동남아시아 Z세대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다. 그들은 트렌드를 창조하고 확산시키는 참여형 소비자(prosumer)다. 이들을 사로잡는 것은 가격 경쟁이 아니라 정체성과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다.
K-브랜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K-팝과 K-드라마의 문화적 자산에 ESG와 디지털 경험을 결합해, 단순 제품을 넘어선 경험의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동남아 시장에서의 승부는 결국 누가 Z세대를 더 빠르게, 더 깊게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세계에서 가장 젊은 소비 시장인 동남아시아. 한국 기업이 문화적 매력과 지속가능한 가치를 결합한 전략으로 대응한다면, 이 시장은 앞으로도 K-브랜드의 기회의 땅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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