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체 기능 막는 자본시장법]①
대표시장 멈추면 ATS도 동반 정지…안정성 명분과 거래 연속성 취지 충돌
해외 시장은 독립 운영으로 연속성 확보…한국식 일괄 연동 구조 재검토 필요

[이코노미스트 정동진 기자]한국 자본시장에 첫 다자간매매체결회사(ATS)인 넥스트레이드가 출범하며 70년 독점 구조에 균열을 냈지만, 제도 설계의 뼈대는 여전히 한국거래소(KRX) 중심에 묶여 있다. 특히 정규장이 멈추면 넥스트레이드도 함께 중단되는 현재 구조는 복수시장이 지향한 거래 연속성과 위험 분산 취지와 어긋난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다자간매매체결회사는 제도 안에서 일정한 업무 기준을 따라야 한다. 제78조 제1항은 그 중 핵심으로, ‘매매정지 및 해제에 관한 사항(제2호)’과 ‘시장 개폐·정지 및 중단에 관한 사항(제7호)’을 반드시 업무규정에 포함하도록 명시했다. 이는 단순히 거래 기능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상황까지 관리 대상에 포함하라는 취지다. ATS 역시 거래소와 마찬가지로 거래 중단이나 재개와 같은 중대한 결정을 책임 있게 다룰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후 구체적인 운영 요건은 시행령에 따른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78조 제1항 제3호는 ‘거래소가 매매체결대상 상품의 거래를 정지하거나 해제한 경우 다자간매매체결회사는 이를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항 제4호에서는 가격제한폭 등 가격안정 장치 역시 거래소 기준에 맞추도록 했다. 자본시장법이 큰 틀에서 거래 중단을 포함하라고 요구했다면, 시행령은 이를 구체화하며 거래소와 ATS의 운영을 일치시키는 방향으로 설계한 것이다.
거래소 거래 중단되면 NXT도 즉시 정지
넥스트레이드의 업무규정 시행세칙은 시행령 조항을 사실상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세칙에 따르면 종목별 매매거래 정지 사유를 규정하며 한국거래소가 특정 종목의 거래를 정지하면 넥스트레이드도 동일하게 해당 종목의 매매를 멈추도록 했다. 재개 시점 역시 거래소의 호가 접수 개시와 연동돼, 거래소가 종일 정지를 유지하면 ATS도 같은 날 종료하도록 명시됐다.
또 넥스트레이드의 세칙에는 시스템 장애 발생 시 미체결 호가를 취소하고, 복구 전까지 매매를 정지하거나 불가피할 경우 당일 거래를 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담겨 있다. 이 같은 조치는 한국거래소에도 동일하게 마련된 기본 안전장치다. 다만 차이는 한국거래소에서 장애가 발생해 거래가 멈출 경우, 현행 규정상 넥스트레이드도 자동으로 같은 조치를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ATS가 독립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자율성은 제한된 구조다.
이 같은 설계는 제도 도입 당시 나름의 명분을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거래소가 대표시장의 지위를 유지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고, 공시와 감시 체계가 분리될 경우 투자자에게 불필요한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고려됐다. 청산과 결제 인프라가 거래소에 집중돼 있다는 현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기준이 일괄적으로 적용되면 넥스트레이드의 대체거래소로서의 기능이 제약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불성실공시나 관리종목 지정처럼 정보 불확실성이 본질적인 사안에서는 대체거래소 역시 거래를 멈추는 것이 마땅하지만, 전산장애나 네트워크 오류처럼 기술적 요인으로 정규장이 닫히는 상황까지 ATS가 함께 멈추도록 한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거래 연속성을 보완하는 대체거래소의 기능이 저해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실제로 지난 3월 한국거래소 전산장애로 정규장이 멈췄을 때 넥스트레이드는 정상적으로 가동됐으나, 만약 전산장애를 근거로 거래 정지가 선포됐다면 현행 규정상 넥스트레이드 역시 동일하게 멈춰야 했다. 그렇게 됐다면 투자자들은 대체거래소를 통한 매매 기회를 잃고, 복수시장 제도가 애초에 강조했던 거래 연속성 보완 효과는 발휘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해외는 각 거래소 독립 운영…안정성·연속성 중시
해외 주요 시장과 비교해도 한국식 일괄 연동 구조는 특이하다. 미국의 다크풀이나 유럽 다자간거래시설(MTF)은 각 거래소가 독립적으로 운영돼, 특정 시장에서 장애가 발생하더라도 다른 시장이 개방된 상태를 유지한다. 이는 투자자에게 선택지를 제공하고 시장 기능을 이어가려는 구조적 장치다. 반면 한국은 모든 시장이 동시에 멈추는 형태를 취하고 있어, 안정성을 우선시한 나머지 거래 연속성 측면에서는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접근은 금융 업계의 현실과도 간극이 있다. 최근 전산 인프라는 분산 처리와 이중화 시스템을 통해 복원력을 높이고 있는데, 만약 ATS를 일괄 중단시킨다면 기술적 안전망을 활용하지 못하는 셈이다. 증권사 입장에서도 모든 채널이 동시에 닫히면 리스크가 집중되는 측면이 있다. 거래 중단 시 대체거래소가 가동 중이라면 일부 주문을 ATS로 이관해 충격을 완화할 수 있지만, 현 제도에서는 고객 불만과 주문 지연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다만 ATS만 단독으로 개장할 경우 증권사들이 고객 주문을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체결해야 하는 최선집행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선집행의무는 투자자가 낸 주문을 합리적이고 유리한 가격에 체결하도록 증권사에 부과된 기본 원칙인데, 대표시장이 닫힌 상황에서는 기준 가격이 사라져 어떤 체결이 최선인지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청산·결제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향후 논의는 단순히 연동 여부만을 따지기보다 사건의 성격에 따라 적용 기준을 달리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공시나 감시 체계와 직접 맞닿은 중단 사유는 한국거래소와의 연동이 불가피하지만, 전산장애나 네트워크 오류와 같은 기술적 사유에 대해서는 일정한 자율성을 허용하는 방안이 논의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이와 관련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는 않은 상황으로, 넥스트레이드의 의견을 청취해봐야 할 것 같다”며 “만약 논의하게 된다면 여러가지 사안들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콜마家 남매분쟁' 승리 거둔 윤상현…입지 좁아진 윤여원(종합)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팜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오승환 "마무리 투수, 자부심 큰 보직" [창간56]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무역협상 왜 늦어지나 했더니…“美, 韓에 투자 증액 요구”(종합)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스테이블 코인 쓰려면…'발행·유통·기술력' 3박자 맞아야"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큐리언트, 론자와 빅딜…'ADC로 난치암 정조준'[바이오맥짚기]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