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청년 일자리 정책의 실종, 노동약자의 비애 [이근면의 시사라떼]
- 기득권에 막힌 청년, ‘노동 약자’로 전락하나
좋은 일자리 찾아 해외로…한국 일자리의 엑소더스

[이근면 사람들연구소 이사장] 대기업 공채는 이제 역사 속 단어로 바뀌었다. 기업 저마다 신규 채용을 줄이겠다는 이야기만이 넘쳐난다. 여기에 AI는 일자리를 줄이는 역량이 점점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 고용 정책보다 노동 정책이 시대의 담론이다. 노란봉투법이나 4.5일제 근무제도니 하며 노동 기득권에 대한 논의만 무성하다. 그 어디에도 청년 세대는 정치와 정책에서 관심이 사라진 듯하다. 내 일자리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결국 청년 일자리 정책이 실종됐다. 기득권 노조와 경직된 노동시장은 청년과 비정규직 같은 노동 약자의 기회를 빼앗고 기업의 신성장 동력마저 가로막고 있다. 좋은 일자리는 해외로 빠져나가고 남은 것은 닫힌 노동시장과 희망을 잃은 청년뿐이다. 청년 없는 일자리 정책, 그것이 오늘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비애다.
일자리 담론이 사라진다
한때 대통령이 직접 청와대 상황판을 통해 일자리 지표를 점검하던 시절이 있었다. 공공 일자리, 청년 고용 의무제, 스타트업 지원 등 성과와 한계를 떠나 청년 일자리는 정책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성장과 복지, 제도 개혁 같은 거대 담론은 여전히 강조되지만 정작 청년이 체감할 수 있는 일자리 대책은 공백 상태다.
고용노동부를 단순히 ‘노동부’로 바꾸려는 논의가 상징적이다. 이는 고용 정책을 사실상 축소하고 노동조건 관리에 치중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정부가 일자리 문제를 민간에 떠넘기고 스스로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청년 일자리 문제는 단순한 민간 의존형 정책으로 풀 수 없으며 국가의 전략적 개입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한 구조적 과제라는 점을 망각한 것이다.
대기업 노조, 기득권의 벽
청년 일자리가 줄어드는 또 다른 이유는 노동시장의 기득권 구조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높은 임금과 고용 안정을 누리지만, 그 결과 청년의 진입 기회는 좁아졌다. 신규 채용은 줄고, 기존 조합원의 기득권은 강화되는 ‘닫힌 노동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결국 청년들은 스펙을 쌓아도 대기업 문턱을 넘지 못하고,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으로 내몰린다. 더 큰 문제는 이 구조가 기업의 혁신 투자를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신산업 전환과 구조 재편에 필요한 인력 조정이 불가능해지면서 기업은 신성장 동력을 국내에서 찾기보다 해외로 옮긴다. 청년 일자리가 국내에서 줄어드는 악순환이다. 여기에 정규직 중심의 과보호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시키고, 청년과 비정규직이 ‘을 중의 을’로 남게 만드는 사회적 불평등의 구조를 고착화시킨다.좋은 일자리 해외로 빠져나가
삼성, SK, LG, 현대차 등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미국에 수백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하고 있다. 보조금과 세제 혜택이 결정적 요인이라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노사 갈등 리스크가 깔려 있다. 미국은 비교적 유연한 노동시장과 예측 가능한 규제 환경을 제공한다. 반면 한국은 고용 유연성이 낮고, 노조 갈등이 잦다.
그 결과, 좋은 일자리가 한국을 떠나고 있다. 고임금·숙련 직무가 미국 현장으로 이동하면서 한국 청년은 글로벌 기업의 본국 청년보다 불리한 출발선에 서게 된다. 더구나 생산라인만 해외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협력업체·부품사·기술 엔지니어까지 연쇄적으로 빠져나가면서 국내 고용 생태계 자체가 위축된다. 장기적으로는 산업경쟁력의 기반을 잃고, 청년의 기회는 더욱 협소해지는 구조적 위기로 이어진다.
정부의 편향된 시각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의 시각이다. 특정 정권은 ‘노동자 보호’를 명분으로 기득권 노조를 사실상 방치하고 다른 정권은 기업 편향으로 흘러 노동권을 위협한다. 어느 쪽이든 균형을 잃은 정책은 결과적으로 청년의 일자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귀결된다.
정부의 책무는 분명하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청년 고용 여력을 넓히되 동시에 청년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망을 보장하는 것이다. 세제와 인프라, 인재 양성은 기본이고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풀고 기득권 구조를 완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정책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자리 대책이 원점에서 흔들리면, 기업도 청년도 미래를 신뢰할 수 없다. 예측 가능성과 지속성이야말로 청년 일자리 정책의 기본 토대다.
노동시장 청년이 중심이 되어야
앞으로의 노동정책은 기득권 유지가 아니라 미래 세대의 기회 확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청년과 비정규직 대표가 노사 협의체에 참여하도록 제도화하고 신규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 세제 혜택과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동시에 해고와 전환배치를 합리화하되, 재취업과 직업훈련을 강화하는 ‘플렉시큐리티’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특히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은 더 유연하게 투자하고, 노조는 청년 고용 확대에 협력하며, 정부는 청년의 사회안전망을 보강해야 한다. 청년이 중심이 되는 노동시장을 설계하는 것이야말로 국가 생존의 전제 조건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위기는 일 할 곳을 못 찾는 40만 명의 청년 일자리 문제이다. 하물며 생산 가능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결국 이들에게 일자리를 찾아주는 과제만이 국가의 미래와 활력을 약속한다. 다시 국정의 중심에 놓지 않는다면, 저출산·고령화, 성장 둔화라는 거대한 파고를 막아낼 방법은 없다.
특히 오늘의 노동 환경은 기득권을 가진 대기업 노조와 정규직 중심 구조가 장벽을 세운 반면, 청년과 비정규직, 여성, 고령층 등 노동 약자는 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청년은 ‘미래의 노동력’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노동 약자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 없는 일자리 정책은 공허하다. 청년과 노동 약자를 위한 정책 없이는 국가의 미래도 없다. 기득권의 벽을 허물고 청년에게 기회를 돌려주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이 다시 살아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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