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리더는 어떻게 혁신기업을 만드는가 [스페셜리스트 뷰]
- 문화·시스템·리더 결합된 결과물 ‘혁신’
고정관념 깨고 건강한 구조 설계해야
그들의 성공은 단순히 탁월한 기술력이나 운 좋은 시장 타이밍 때문만은 아니다. 혁신기업은 리더가 만들어낸 방향성과 문화, 실행 시스템, 그리고 리더 자신의 내면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성과와 건강한 조직, 둘 다 가능한가?"와 같은 질문이 놓여 있다.
성과 중심 조직과 건강한 조직은 흔히 상충하는 가치로 여겨진다. 강한 압박과 성과 중심 문화가 결국 구성원을 소진시키고 조직을 망가뜨린다는 비판도 많다. 그러나 실제로 혁신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기업들을 보면 이 둘 간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독특한 조직 역학이 존재한다. 이들은 성과를 내려면 문화를 희생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건강과 성과가 서로를 강화하는 구조를 설계해냈다.
조직 건강을 단순히 '좋은 분위기'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맥킨지(McKinsey)는 건강한 조직을 “전략을 일관되게 실행하고,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며,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에너지를 발휘하는 상태”로 정의한다. 다시 말해 건강한 조직은 단순히 구성원이 편안한 곳이 아니라 성과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근육이 잘 발달된 상태다.
실제로 맥킨지의 전 세계 1000개 기업 분석에 따르면 조직 건강 점수가 상위 25%에 속하는 기업의 총주주수익률(TSR)은 하위 25% 기업보다 평균 3배 이상 높았다. 분위기가 좋아서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성과를 낼 수 있는 구조와 문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건강한 것이다.
물론 문화에 정답은 없다. 산업의 특성·인재 구성·기업의 역사와 맥락에 따라 조직마다 성공 방정식은 다르다.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과 한국의 반도체 기업, 금융회사와 스타트업이 같은 방식으로 혁신을 이룰 수는 없다.
하지만 산업과 국가, 규모를 불문하고 혁신기업의 리더십에는 공통된 축이 존재한다. 그것은 ▲방향성을 끊임없이 소통하는 리더십 ▲성과와 문화의 균형을 유지하는 감각 ▲조직의 틀과 리더십 기준을 세우는 역량 ▲리더 자신의 내면을 관리하는 힘이다.
방향성을 끊임없이 소통하는 리더
혁신기업의 리더는 무엇보다 조직의 나침반이다. 인공지능(AI) 시대를 견인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최고경영자)는 그 대표적 사례다. 1993년 설립된 엔비디아는 오랫동안 게임용 GPU(그래픽처리장치) 전문기업이었다. 하지만 젠슨 황은 10년 넘게 GPU가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라는 비전을 흔들림 없이 제시해왔다.
그의 리더십은 기술에 대한 집착과 선구적 투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 그리고 독특한 조직 문화에 기반한다. 초기 GPU 시장의 성공을 넘어 그는 병렬 컴퓨팅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인지하고 쿠다(CUDA)라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엔비디아는 단순한 하드웨어 기업을 넘어 과학자와 개발자들이 GPU를 활용해 병렬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했다. 신경망 기술의 부상 또한 예견하고 GPU를 AI 시대의 핵심 플랫폼으로 전환했으며, 이 전략은 AI 칩 시장에서 엔비디아를 독보적 위치에 올려놓았다.
그의 리더십 스타일도 주목할 만하다. ‘30년 된 스타트업’이라는 표현이 상징하듯, 그는 안일함에 젖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하는 조직 정체성을 강조했다. 실패를 숨기지 않고 솔직히 공유하는 ‘지적 정직성’(Intellectual Honesty)을 중시했으며, ‘T5T 이메일 문화’(Today’s Top 5 Things)를 통해 전 직원이 매일 핵심 업무와 통찰을 공유하는 소통 구조를 만들었다.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소통 문화는 혁신의 속도를 높였다.
그는 주주 서한과 사내 미팅, 그리고 언론 인터뷰를 가리지 않고 같은 메시지를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의 말은 단순한 기술적 설명이 아니라 회사 전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그리는 서사였다. 덕분에 엔비디아는 전환점마다 조직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AI 가속기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이런 ‘방향성의 소통’은 생각보다 어렵다. 최고경영자가 100이라 생각하고 전달한 메시지는 중간관리층에서 약 30%씩 희석돼 최종 현장 구성원에게는 40% 수준만 전달된다. 실제로 다수의 조직 진단에서 경영진의 전략 방향성을 직원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비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최근에 코칭을 수행했던 한 고객사 임원의 경우 “배경을 자세히 설명해주면 모두 이해할 것”이라 믿고 긴 설명을 반복했지만, 구성원들은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배경만 길게 나열하면 메시지는 오히려 흐려진다. 혁신 리더는 방향성을 두괄식으로 명확히 전달하고, 구조화된 스토리텔링으로 끊임없이 반복 소통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성과와 문화의 균형, 자전거 타기처럼
혁신 과정에서 성과는 조직의 생명줄이다. 작은 성과가 없다면 구성원들의 열정은 쉽게 식고, 변화에 대한 불안은 증폭된다. 리더는 전략만 제시할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변화의 성공 가능성을 체감할 수 있는 작은 마일스톤을 만들어내고, 이를 조직 전체가 함께 축하하며 학습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경험은 구성원들에게 “이 길이 실제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다.
SK하이닉스는 이런 방식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대표적 사례다. SK하이닉스는 2023년 메모리 업황 급랭으로 10여 년 만의 분기 적자를 기록했지만, 감산·투자조정과 동시에 고대역폭메모리(HBM) 중심의 제품 믹스로 전환하며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2025년에는 동적 RAM(DRAM) 매출 기준 분기 1위를 차지하거나 역전이 가시화될 정도로 경쟁구도가 흔들렸고, HBM 시장에선 일부 분기 70% 안팎의 점유율로 AI 메모리 리더십을 굳혔다.
세밀한 실행관리와 현장 리더십이 반복 가능한 ‘작은 승리’를 축적하며 조직의 속도를 끌어올린 결과다. 혁신은 거대한 한 번의 도약이 아니라 리더가 만들어낸 작고 반복되는 성취의 축적이다.
물론 문화적 토대 없이 성과만 강조하는 조직은 오래 가지 못한다. 구글의 유명한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 연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창의적 문제 해결과 혁신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지난 2016년 이후 조직문화를 강조해온 기업들의 사례에서는 최근 반대의 경우도 관찰된다. 심리적 안전감과 수평 문화를 잘못 이해하고 절대선처럼 추구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과도하게 ‘편안함’을 강조하는 문화에서는 의사결정이 느려지고 성과 기준이 흐려진다. 'Raising the bar'(더 높은 성과와 품질을 목표로 설정하기)의 문화가 사라지고 조직은 점점 평균에 안주하게 된다.
심리적 안전감은 편안함이 아니라 도전이 가능한 환경이다.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의 몰입 이론(flow theory)도 이를 뒷받침한다. 익숙한 영역을 살짝 벗어난 과제가 주어질 때 인간은 몰입하고 성장한다.
조직문화는 전염성이 강하다. 성과 기준이 한 번 낮아지면 회복은 쉽지 않다. 혁신 조직은 심리적 안전감과 성과 압력이라는 두 축의 균형 위에서 유지된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자전거가 넘어지듯 조직은 균형을 잃는다.
혁신기업의 리더는 자유와 실험만 강조하지 않는다. 조직 전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틀’을 세운다. 최근 카카오와 네이버의 대비된 상황은 이를 잘 보여준다. 카카오는 성장기에 가장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문화를 자랑했다. 김범수 의장은 젊은 리더들의 성공욕구를 자극하고, 산하 조직들이 자율적으로 실험하도록 독려했다.
그러나 그 성공욕구가 조직 공동체의 성취로 전환되는 구조는 부재했다. 명확한 윤리 기준과 리더십의 공통 규범이 없었고, 각 조직은 개인의 성취에 치우치거나 비윤리적 행동을 견제하기 어려웠다. 자유로움은 통합적 리더십의 부재 속에서 혼란의 씨앗이 됐다.
반면 네이버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에 비해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내부 거버넌스와 의사결정 체계를 차근차근 구축했다. 외부에서 다양한 리더를 영입하면서도 네이버의 조직적 바운더리 안에서 움직이도록 했다. 사내독립기업(CIC) 체계 역시 이런 철저한 틀 위에 세워졌다.
2015년 도입된 CIC 제도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조직에 자율성을 부여하되, 일정 수준에 이르면 독립시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모델이다. 네이버웹툰과 네이버파이낸셜이 대표적 성공 사례다. 최근 네이버는 5개의 CIC를 12개로 확대하고, AI 중심의 기술 패러다임 전환에 대응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이런 변화는 이전의 성공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네이버만의 조직 방정식을 만들어 가고 있는 사례로 보여진다.
리더의 내면이 조직의 한계다
혁신 조직은 자율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리더가 불안하거나 확신이 없으면, 본능적으로 사람과 상황을 통제하게 된다. 이런 통제적 분위기는 빠르게 조직 전반에 전이돼 경직된 문화로 변한다.
한 고객사 사례에서 새로 부임한 CEO는 조직을 전면적으로 혁신하고자 했다. 혁신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이해했지만, 조직의 변화는 머리로서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단숨에 찾아오지 못했다. CEO는 옳은 방향성을 제시했지만, 구성원과의 정서적 연대와 신뢰를 충분히 구축하지 못한 채 변화를 밀어붙였다.
CEO의 의견과 대치되거나 거스르는 의견에 대해 질책이 심해지자 구성원들은 침묵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리더는 누구보다 뛰어나기에 리더가 됐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자신과 같은 이해 수준에 있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방향성에 대해 확신을 가지면서도, 독단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할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그것을 통해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가 조직 신뢰의 출발점이다.
혁신기업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명확하고 반복적인 방향성의 소통 ▲성과와 문화의 균형 ▲조직의 틀과 기준을 세우는 리더십 ▲리더 자신의 내면 관리라는 네 가지 축이 함께 작동할 때 가능하다. 혁신기업들은 서로 다른 맥락 속에서 이 요소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구현해왔다. 문화에 정답은 없지만, 리더가 이 네 가지 축을 통해 자신만의 방정식을 세울 때 혁신기업은 탄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 단 한가지만 꼽아달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오랫동안 다양한 기업들의 조직 혁신을 지원해온 경험상 여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CEO의 끊임없고 일관된 방향성 제시와 꾸준한 추진력이다.
혁신은 우연히 ‘아래에서’ 솟아오르지 않는다. 강력한 톱-다운(Top-down) 리더십이 명확한 방향성과 ‘어디로 가야 하는지’(Where to go)를 일관되고 건강한 메시지로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그 뜻을 함께하는 리더십이 조직 내에서 재생산될 때 비로소 건강한 보텀-업(Bottom-up) 문화가 자생적으로 형성된다. 리더는 혁신기업의 방향을 제시할 뿐 아니라, 그 조직을 만들어내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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