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정년연장에 속내 복잡한 2030…청년고용 붕괴 오나[정년연장의 역설]②
- 국민연금 공백 메워야 vs 신규 채용 문 더 좁아질 것
2030세대 찬성률 상대적으로 낮아...세대간 갈등 심화 우려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대한민국이 늙어가고 있다. 초저출생과 고령화라는 거대한 인구 구조의 변화 속에서 ‘정년연장’은 이제 선택이 아닌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행정안전부와 대구광역시 등 지자체를 중심으로 공무직 정년을 최대 65세로 연장하는 움직임이 시작된 상황속에서, 정부와 여당 주도하에 65세 정년 연장을 둘러싼 입법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 거대한 사회적 합의의 파도 아래에 2030 청년 세대의 복잡하고 불안한 시선이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점이다. 기성세대에게는 ‘노후 빈곤 탈출의 동아줄’이지만, 사회 진입을 앞둔 청년들에게는 ‘취업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년연장 논의가 속도를 내는 가장 큰 배경에는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급격한 감소가 자리 잡고 있다. 일할 사람은 줄어들고 부양해야 할 노인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숙련된 고령 인력의 활용은 국가 경쟁력 유지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여기에 '소득 크레바스' 문제도 불을 지폈다. 현재 법적 정년은 60세지만, 국민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하는 나이는 점차 늦춰(현재 63세, 향후 65세)지고 있다. 은퇴 후 연금을 받을 때까지 최대 5년 동안 소득이 '0'이 되는 죽음의 계곡이 존재하는 셈이다. 이 기간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정년연장은 시급한 민생 과제로 꼽힌다.
실제로 최근 여론은 정년연장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최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에 따르면, 정년 연장에 대해 ‘찬성한다’는 응답이 79%에 달했다. 반대(18%) 의견보다 무려 4배 이상 높은 수치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우리 사회는 이미 정년연장을 받아들일 준비가 끝난 것처럼 보인다.
찬성 79% 속에 숨겨진 '세대 간 온도차'
하지만 통계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미묘한 균열이 감지된다. 연령별 찬성률을 분석해 보면 세대 간의 입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은퇴를 목전에 두거나 은퇴 후의 삶을 고민하는 40대(85%)와 50대(80%), 70세 이상(81%)에서는 압도적인 찬성 비율이 나타났다. 이들에게 정년연장은 당장의 생계와 직결된 문제이자, 노후 빈곤을 막아줄 가장 확실한 안전장치다. 대다수의 장년 및 고령층 입장에서는 정년연장을 반대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
반면 20대(64%)와 30대(73%)의 찬성률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물론 과반이 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청년 세대가 정년연장 자체를 무조건 반대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80%를 상회하는 기성세대의 열광적인 지지에 비하면, 2030세대의 지지는 유보적이거나 조건부적인 성격이 강하다. 왜 청년들은 정년연장이라는 사회적 흐름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일까.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30대 김모씨는 “정년이 늘어나는 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장 내 밥그릇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 20대인 사촌동생만 해도 계약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은 생각도 못한다”며 “대학교 후배들 중에는 20대 후반 나이에도 집에서 쉬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단기 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2030세대가 느끼는 공포의 핵심이다. 대한민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특성상, 정년연장은 필연적으로 청년 신규 채용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인식이다. 특히 대기업과 공공기관 등 청년들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한정돼 있다. 기업 입장에선 고연봉을 받는 고령 근로자의 정년을 연장하면, 그만큼 인건비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한정된 인건비 총액 안에서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비용 절감책은 신규 채용 축소다. 즉 아버지 세대의 고용 연장이 아들 세대의 고용 절벽을 초래하는 ‘제로섬 게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여러 연구에서 지난 2017년 정년 60세 의무화를 실행한 이후 청년층 고용이 줄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0년 발표한 ‘정년 연장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 보고서를 보면 민간 사업체(10~999인)에서 정년 연장의 예상 수혜자가 1명 증가할 때 청년층 고용은 약 0.2명 줄었다.
한국은행이 지난 4월 발간한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 보고서에서도 2016~2024년 고령층(55~59세) 근로자 1명이 증가할 때 청년층 근로자는 0.4~1.5명 감소한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대기업처럼 청년층 선호도가 높은 사업장일수록 정년 연장에 따른 청년 고용 감소 효과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들 역시 난색을 표하고 있다. 경영계는 “임금 체계 개편 없는 일률적인 정년연장은 기업 경영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고임금 근로자를 강제로 더 오래 고용해야 한다면, 기업의 경쟁력 약화는 물론 신규 투자가 위축돼 결국 청년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는 악순환이 될 것이라는 논리다. 이에 기업들은 정년연장의 전제 조건으로 ‘직무급제 도입’이나 ‘임금피크제 확대’ 등 임금 유연성 확보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정년연장과 임금 삭감을 연계해서는 안 된다”며 맞서고 있다. 국민연금 수령 시기까지 소득을 온전히 보전해 주는 것이 정년연장의 취지인데, 임금을 깎는다면 그 의미가 퇴색된다는 것이다.
‘세대 상생’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 필요
전문가들은 정년연장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그 부작용을 최소화할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법적 정년을 숫자로 늘리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어느 한쪽의 희생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2030세대가 정년연장을 반대하는 기저에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깔려 있다. 이 불안을 해소하지 않은 채 밀어붙이는 정년연장은 심각한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한인상 국회입법조사처 연구원은 지난 8월 발간된 ‘정년 65세 시대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보고서를 통해 “정년연장은 고령자의 소득 공백 해소와 연금재정 안정, 숙련 인력 활용 등에 긍정적이나, 청년고용 위축과 기업 부담 증가 등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정년연장의 주요 쟁점은 정년연장의 방식, 정년과 연금 수급 연령 간의 연계, 임금체계 개편 등이며, 노사는 정년연장 방식과 임금체계 개편 등에 대해 이견이 있다. 정년연장은 기존 노사정 중심을 넘어선 확대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충분한 합의를 도출하고 사업체 규모와 업종별 특성을 고려한 단계적·점진적 시행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동시에 임금·근로시간 조정, 맞춤형 정책 지원, 청년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모니터링 등이 종합적으로 병행돼야만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연착륙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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