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내 것은 맞지만 내 마음대로 못 하는 저작권도 있다 [백세희의 컬처&로(LAW)]
- 성명표시권·동일성유지권 침해 사례로 본 '저작인격권'
내 자식 같은 작품...침해로 인한 상처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저작권은 주로 ‘돈’이 되는 권리의 측면이다. 과거 히트곡 하나로 저작권 수입이 짭짤해 살만한 가수, 소프트웨어 저작권침해를 이유로 내용증명을 날려 합의금 장사를 했다는 사람 등등 주로 재산권적인 측면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저작권이 독립된 두 개의 권리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저작권은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이라는 별개의 권리로 이뤄져 있으며 저작권은 이들 권리의 복합권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별개인지 하나인지 왜 중요할까? 소송물 이론이라는 법논리를 빼고 우리에게 와닿게 핵심만 말하자면, 돈이 이중으로 움직이는 게 중요해서다. 저작재산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과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위자료는 따로 받거나 따로 물어줘야만 한다.
작품은 곧 ‘작가의 인격적 발현’
불법 다운로드는 저작재산권 침해의 문제다. 그렇다면 저작인격권은 무엇일까. 저작인격권은 창작물과 창작자 사이에 발생하는 특별한 ‘인격적 이익’의 보호다. 작품의 소유권자와는 별개로 오로지 창작자에게만 인정된다.
특별한 인격적 이익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일까. 이러한 권리의 모호함이 저작인격권의 본질이다. 그래서 이른바 ‘소유권 절대의 원칙’에 입각한 영미법계에서는 애당초 저작인격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다가 차차 받아들이게 됐다.
반대로 유럽의 대륙법계 국가들의 경우 저작인격권은 창작자 자신조차도 포기할 수 없는 ‘자연법적 권리’라는 상반된 견해를 갖고 있다. 태생적으로 알쏭달쏭한 권리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일본은 독일의 영향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대륙법 체계를 따르고 있지만, 발전 과정에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 영미법계의 논리나 제도도 많이 수용하고 있다.
이제 우리 저작권법이 인정하는 저작인격권을 알아보자. 저작인격권은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으로 구성된다.
먼저 공표권은 미공표 저작물의 공표 여부를 결정하는 권리다. 공표할 경우 어떠한 형태나 방법으로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권리 및 공표 시기를 결정하는 권리가 포함돼 있다. 이들은 저작자의 명성이나 지위, 권익 및 저작물의 상업적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판단을 전적으로 저작자에게 맡긴 것이다.
성명표시권은 자신의 성명 또는 이명 등을 표기해 자신이 저작자임을 주장할 권리와 저작자명을 표시하지 않고 무명으로 공표할 권리를 포함한다. 저작자명을 표시하는 것은 창작물의 내용에 대한 책임과 평가가 귀속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밝힐 뿐만 아니라 저작물과 저작자를 연결하는 명예권과도 관련이 있다.
동일성유지권은 창작자의 의사에 반하는 변형을 통한 작품의 왜곡을 금지하는 원상유지권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저작물은 저작자의 인격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변경을 자유롭게 허용한다면 저작자의 감정을 해치는 동시에 창작의욕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무단 변경행위를 금하는 것이다. 현재 작품을 소유하고 있는 소유자라 하더라도 함부로 작품을 변형할 수 없는 근거가 바로 동일성유지권이다. 내 것이지만 내 맘대로 바꿀 수는 없다는 뜻이다.
동일성유지권이 문제된 실제 사례들
동일성유지권과 관련해서는 흥미로운 사례들이 다수 있다. ‘지하철 벽화 사건’은 성명표시권과 동일성유지권이 모두 문제가 된 사례다. 서울시 도시철도공사는 2001년 원화 작가의 허락을 받지 않고 원화를 이용해 지하철 ▲약수역 ▲한강진역 ▲학동역 역사 내부에 벽화를 제작했다.
당연히 작가의 항의가 있었다. 하지만 벽화들은 계속 전시됐고 결국 작가는 2004년 손해배상 등의 소를 제기했다. 2006년 법원은 원화 작가의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 모두의 침해를 인정했다(서울중앙지법 2006. 5. 10. 선고, 2004가합67627 판결).
법원은 저작인격권 중 동일성유지권과 관련하여 “원고의 연작 작품 중 일부만을 벽화화했거나 제작방식이 원고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됐으며(테라코타 방식에서 타일방식으로), 작품의 위·아래를 거꾸로 설계·시공함으로써 작가의 작품의도를 훼손해 설치되거나 전시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 설계업체와 도시철도공사는 원화에 대한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약수역과 한강진역에 설치된 벽화의 작가란에는 ‘작가미상’이라고 표시돼 있고, 학동역의 벽화는 아예 작가표시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저작인격권 중 성명표시권을 침해한 것이라고도 판단했다.
위 지하철 벽화 사건처럼 소송으로까지 비화되지 않았지만, 서울 대치동 포스코(posco) 본사 앞의 ‘꽃이 피는 구조물 – 아마벨’(이하 아마벨)이라는 조형물도 논란의 중심이 된 적이 있다.
아마벨은 가로·세로·높이 각 9미터, 무게 30톤의 거대한 철제 조형물로서 현대예술의 거장이라 불리는 프랭크 스텔라의 작품이다. 비행기 잔해와 스테인레스스틸을 이용해 ‘폐기된 문명의 이기로 피어난 꽃’을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고철을 이용한 조형물이 난해하고 흉물스럽다는 비난을 받게 되자, 포스코 측에서는 작품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계획이 알려지자 작가와 그를 옹호하는 이들이 주장한 권리가 바로 저작인격권 중에서도 동일성유지권이었다.
일반적으로 작품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만으로 작품이 변형된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 사건에서 왜 동일성유지권이 문제 되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아마벨은 철강기업인 포스코 본사에 설치되어 포스코라는 기업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작가가 처음부터 그곳에 설치할 것을 전제로 구상한 후, 현장에서 직접 고철과 준비된 철 조각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제작했으므로 작품과 그 장소와의 밀접한 상관성이 인정될 여지가 많다.
저작권법 제13조 제2항은 불가피한 변경은 허용하면서도 저작물의 ‘본질적인 내용의 변경’은 어떠한 경우라도 허용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우리 저작권법에 의할 때, 아마벨처럼 설치될 특정 장소를 전제했다면 그 장소의 변경이 ‘본질적인 내용의 변경’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포스코가 작품의 소유권을 갖고 있다고 해도 작가가 허락하지 않는 한 장소를 옮기기 어려운 것이다.
논란 끝에 포스코는 아마벨을 원래의 자리에 두는 대신 주변에 나무를 심고 아름다운 색 조명을 덧입히는 방법을 선택했다. 아마벨은 그 후로 한 신문사가 주최한 공공미술 기업문화 부분에서 대상을 수상했지만, 해외 미술 분야의 유명 매체인 ‘아트넷 뉴스’가 발표한 ‘가장 미움받는 조형물 10선’에 선정되는 등 엇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가에게 작품이란 ‘자식’ 같은 존재
작가에게 이런 일은 단순한 소송거리, 뉴스거리를 넘어 심한 상처로 남는다. 대부분의 작품은 구상 단계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예술가의 정신과 체력을 쏙 뽑아내기 때문에 ‘자식’과도 진배없다. 그런데 그런 자식이 위아래가 뒤집히고 부모가 누군지 모른다고 공표되고 전혀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어딘가 엉뚱한 곳에 가 있는 모습을 본다면…. 뒤늦게 소송에서 일부 승소해 금전적인 보상을 약간 받는다고 해도 그 상처가 전부 나을 리 만무하다.
수년 전만 해도 주변 예술인들에게 이러 저러한 사례를 말해 주면 “어머, 그건 아니지. 당연히 안되는거 아냐?”라는 정도의 반응이 나올 뿐, 구체적으로 자신의 창작물에 대하여 어떤 권리를 갖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10년 사이에 창작자들의 권리 의식이 함양되어 부당한 저작인격권 침해를 묵과하는 일은 점점 줄어드는 듯하다. 저작인격권이 침해됐다며 상담을 요청받는 빈도도 늘고 있다. 일이 많아진다는 것, 변호사로서는 참 다행인 일이다.
백세희 법률사무소 아트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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