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코리아 디스카운트’ 틈새 파고든 주주행동주의 [스페셜리스트뷰]
- 메기 효과 넘어서 수익률 게임으로
펀드 만기, 성과보수가 만든 단기주의
주주행동주의의 그늘도 직시해야
[송태원 볍무법인(유한) 해광 파트너 변호사] 2025년이 저물어가는 지금, 한국 자본시장은 거대한 지각 변동의 한가운데 서 있다. 한때 엘리엇·소버린 등 일부 외국계 헤지펀드만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는 이제 한국 시장에서 사실상 상수가 됐다. 지난 2023년 상반기 기준 국내 행동주의 캠페인 건수가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했다는 통계는, 단순한 숫자를 넘어 시장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가 추진해 온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정책과 맞물리면서 행동주의의 저변은 빠르게 넓어졌다. 연기금·자산운용사 같은 기관투자자는 물론 개인투자자, 사모펀드, 심지어 일반 ETF까지 이 흐름에 합류하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국회를 통과해 시행 4개월째에 접어든 ‘주주 충실의무’ 관련 상법 개정은 행동주의 펀드에 강력한 법적 수단을 쥐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부수익률 게임 ‘주주행동주의’
시장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기폭제”라는 기대와 “경영권 침해·소송 남발의 출발점”이라는 우려가 팽팽히 맞선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 논의는 여전히 “행동주의 펀드는 시장을 깨우는 ‘메기’인가, 기업을 갉아먹는 ‘포식자’인가”라는 낡은 도덕적 이분법에 머무르는 측면이 있다.
이 같은 선악 구도에 기댄 논쟁은 사안의 본질을 흐리기 쉽다. 냉혹한 자본시장에서 주주행동주의는 정의 구현의 문제가 아니다. 철저히 계산된 ‘금융공학적 투자 전략’이자, 투자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치열한 ‘IRR(내부수익률) 게임’으로 봐야 한다. 이들의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진정성’ 같은 모호한 단어가 아니라, 그들이 들여다보고 있는 ‘계산기’에 주목해야 한다.
주주행동주의의 뿌리는 1930년대 소액주주의 발언권 강화를 주장했던 루이스 길버트 형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1980년대에는 칼 아이칸(Carl Icahn) 등 이른바 ‘기업 사냥꾼’(corporate raider)이 등장해 적대적 M&A, 자산 분할 등의 공격적 전략으로 자본시장을 뒤흔들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헤지펀드들이 경영진 교체, 배당 확대 등 보다 정교한 방식으로 경영에 개입했고, 최근에는 ESG 이슈와 결합한 3세대 행동주의가 주류로 자리 잡았다.
한국의 행동주의 역시 초창기에는 외국계 펀드의 거친 경영권 간섭으로 시작됐지만, 최근에는 국내 사정을 잘 아는 토종 펀드가 주도하는 ‘거버넌스 교정형 행동주의’(governance-correction activism)로 방향을 틀었다. 과거에는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등 단순한 주주환원 요구에 그쳤다면, 이제는 이사회 재편, 감사위원 분리 선출, 불투명한 계열사 지원 구조 개편 등 지배구조의 핵심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다만 이들이 내세우는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명분 뒤에는 훨씬 냉정한 논리가 깔려 있다. 연구 결과를 보면, 행동주의 펀드는 기업 경영의 감시자라기보다 투자자(LP)와 운용사(GP)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고수준의 투자 수단으로 보는 것이 현실에 가깝다.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다수 펀드는 단순히 지수를 따라가는 패시브(passive) 전략이 아니라,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이벤트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액티브(active) 전략의 최전선에 서 있다.
행동주의 펀드가 ‘먹튀(eat and run)’ 비판을 자주 받는 이유는 이들의 도덕성이 유난히 모자라서가 아니다. 펀드 만기 구조와 성과보수 체계라는 설계 자체가 그런 행동을 유도한다.
우선 펀드 만기가 만들어내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대부분의 행동주의 펀드는 사모집합투자기구(PEF) 형태로 운용된다. 이들은 특정 기업과 영구히 동행할 수 없다. 통상 3~5년, 길어도 7년이라는 제한된 기간 안에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고 투자금을 회수(엑시트)해야 한다.
투자 기간이 길어질수록, 즉 분모인 시간이 늘어날수록 연 환산 내부수익률(IRR)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단기 차익 추구’와 ‘조기 엑시트’는 탐욕이 아니라 생존 조건에 가깝다.
또 하나의 핵심은 운용사의 수익 구조인 성과보수(carried interest)다. 운용사는 기본 관리보수 외에 약정된 기준수익률(hurdle rate, 통상 IRR 7~8%)을 넘는 초과 수익에 대해서만 약 20% 안팎의 성과보수를 받는다. 펀드 매니저 입장에서 기준수익률을 넘기지 못하면 보너스는 ‘제로’다. 자연히 단기간에 주가를 끌어올려 기준선을 돌파하려는 유인이 강해진다.
금융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인식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주주행동주의의 최종 목표로 ‘기업가치 제고(70.2%)’와 함께 ‘펀드 투자자 수익 제고(58.3%)’가 압도적으로 꼽혔다. 이들이 내세우는 ‘지배구조 개선’ 캠페인은 펀드 수익 실현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레버리지 수단일 뿐, 그 자체가 궁극적 목적이라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을 상대로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이유를 “주주로서 정당한 이익을 돌려 달라”는 차원에만 두고 보면 핵심을 놓치게 된다. 그 이면에는 일반 투자자가 쉽게 체감하기 어려운 금융공학, 즉 ‘레버리지’(leverage) 전략이 작동한다.
기관투자자는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기자본만으로 투자하지 않는다. 보유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키는 레버리지 구조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기업이 지급하는 현금 배당은 펀드가 빌린 자금의 이자를 충당하는 핵심 재원이 된다. 배당이 없다면, 펀드는 이자 상환을 위해 추가 자금을 조달하거나 보유 주식을 매도해야 하고, 이는 전체 수익률을 떨어뜨린다.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상황에서 배당으로 현금 흐름을 조기에 회수하면, 추가 자금 모집 없이도 레버리지 효과를 유지하며 IRR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강석민 박사(서강대, 2024)의 연구에 따른 시뮬레이션 결과도 이를 보여준다.
단순히 3년 뒤 주가가 30% 오르기를 기다리는 경우(IRR 9.1%)보다, 매년 10%씩 배당받으며 중간에 투자금을 회수하는 경우(IRR 10.0%)가 최종 수익률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레버리지를 동원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IRR 19.2% vs 23.3%). 행동주의 펀드가 외치는 ‘소액주주를 위한 배당 확대’ 요구가 실제로는 자신의 금융 비용 조달과 수익률 방어를 위한 전략적 수단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현금 곳간이 그들의 대출 이자를 메우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역설적 활용
한국형 주주행동주의가 급증한 배경에는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모순,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자리한다. 역설적으로 행동주의 펀드에게 한국의 후진적 지배구조와 비효율적 세제는 고쳐야 할 대상인 동시에 최고의 기회 요인이기도 하다. 이들은 제도의 ‘개혁자’라기보다, 제도적 왜곡이 만들어낸 가격 괴리(arbitrage)를 포착하는 ‘차익거래자’에 가깝다.
세계 최고 수준인 상속세율(최고 60%)은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 대주주는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하거나, 자녀가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줘 승계 재원을 마련하려고 유인하기 쉽다. 행동주의 펀드는 바로 이 약점을 파고든다.
대주주의 ‘사익 편취’ 이슈를 정면으로 제기해 여론전을 펼치고, 이를 통해 주가를 끌어올린 뒤 변동성을 활용해 차익을 실현한다. 대주주가 세 부담을 줄이려 한 행위가 오히려 펀드의 수익 기회로 돌아가는 구조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돼 기업 가치가 이중 계산되는 구조, 그로 인해 지주사가 저평가되는 현상 역시 행동주의에는 분명한 ‘업사이드(upside)’, 즉 주가 상승 여력으로 읽힌다. 이들은 자회사 지분 가치만큼이라도 모회사 주가가 반영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압박하거나, 자사주 소각을 요구하며 저평가 해소를 밀어붙인다.
이처럼 금융공학적 성격이 짙음에도 주주행동주의가 한국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명암이 뚜렷하다. 우선 가장 큰 순기능은 ‘대리인 비용(agency cost)’을 줄이는 역할이다. 한국 기업의 고질병으로 지적돼 온 지배주주 중심의 전횡, 일감 몰아주기, 낮은 배당 성향 등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이었다.
행동주의 펀드는 소수 지분으로도 이사회를 압박해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건다. 사외이사 선임을 통해 이사회의 독립성을 높이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 제도를 활용해 지배주주를 견제할 감시자를 이사회에 들여보낸다.
SM엔터테인먼트 사례는 소수 지분으로도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행동주의 펀드는 1.1%라는 낮은 지분으로도 창업주의 개인회사로 수익이 빠져나가는 사익 편취 구조를 공론화해, 관련 계약의 조기 종료를 끌어냈다.
행동주의는 돈을 쌓아두기만 하는 기업의 관성도 흔든다. 낮은 주주환원율, 과도한 유보금 문제를 이슈화하며 배당 성향 상향과 자사주 소각을 요구한다. 최근 은행 지주사들을 상대로 한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행동주의 펀드는 만성적인 저평가에 시달리는 금융 지주사들에게 ‘당기순이익의 50% 주주환원’을 요구했고, 이는 단순 배당 요구를 넘어 잉여 현금을 내부에 묵혀두는 관행을 깨고 주주가치 제고에 쓰도록 압박하는 장치로 작동했다.
실제로 행동주의 캠페인이 집중된 기업 상당수가 이후 주주 친화 정책을 발표하고 배당을 높였다는 통계도 존재한다. 시장의 감시를 의식한 기업이 비로소 재무 정책을 주주 친화적으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펀드의 ‘수익률 지상주의’는 주주행동주의가 기업가치 제고가 아닌 단기 시세차익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을 내포한다. 실질적인 지배구조 개선 의지도, 이를 실행할 역량도 부족한 상태에서 ‘지배구조 개선 이벤트’만 부각해 단기에 주가를 끌어올리고 빠져나간다면, 이는 전형적인 주가조작과 다를 바 없다.
행동주의 펀드 대부분이 사모형 구조로 투자자·전략 정보 공개 의무가 거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의도의 순수성을 검증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법망의 빈틈을 노린 전술도 등장했다. 이른바 ‘늑대 떼’(wolf pack) 전략이다. 여러 펀드가 사전 명시적 합의 없이 각자 5% 미만으로 지분을 나눠 사들이고, 5% 이상 보유 시 발생하는 대량 보유 공시 의무를 피한 채 사실상 공조해 경영진을 압박하는 방식이다. 자본시장법상 공동 보유자 개념이 있긴 하지만, 명시적 합의 증거가 없는 한 공동보유자로 판단해 공시 의무를 부과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또 펀드 만기에 쫓기는 이들은 장기 R&D나 설비투자보다 당장의 현금 배당, 자사주 소각을 선호하기 쉽다. 이는 기업의 중장기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 실제 행동주의 공격을 받은 기업들의 R&D 지출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된 바 있다.
행동주의 펀드는 공익을 위한 자선단체가 아니다. 철저히 수익을 좇는 경제 주체다. 이들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만으로는 실질적 변화를 끌어내기 어렵다. 오히려 이들의 ‘수익 추구 본능’이 자본시장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제도적 인센티브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법에 가깝다.
우선 상속세·세제 개편을 통해 ‘사익 편취 유인’을 줄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행동주의 펀드가 파고드는 가장 큰 약점은 대주주의 일감 몰아주기, 주가 눌러 앉히기 같은 승계 편법에서 비롯된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 상속세율과 맞닿아 있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유산취득세 전환(전체 유산이 아닌 실제 취득분에 과세)’과 세율 합리화 방안을 서둘러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대주주가 편법 대신 주가 부양을 통해 정당하게 세금을 내고 승계하는 편이 유리한 구조를 만들어야, 행동주의 펀드의 약탈적 공격 유인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다음으로 개정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요구된다. 지난 7월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가 명시되면서, 이는 행동주의 펀드에게 강력한 무기가 됐지만 이사회 입장에서는 소송 부담으로 인해 과도한 보신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향후 판례와 실무 지침을 통해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을 구체화해 정당한 경영 활동은 보호하되, 명백한 사익 편취는 강하게 제재하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무차별적인 ‘단기 차익형 행동주의’를 견제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일정 기간 지분 보유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이나, 일본식 스튜어드십 코드에 담긴 ‘지속적 관여 원칙’을 도입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단기 이벤트 드라이브형 행동주의를 제한하고, 장기 관여형 행동주의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26년 스튜어드십 코드 개편을 앞두고 한국형 행동주의의 ‘룰’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주주행동주의가 어떤 형태로 자리를 잡느냐에 따라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 수준과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메기’가 흙탕물을 일으킨 뒤에도 건강한 생태계가 남을지, 아니면 황폐한 바닥만 드러날지는 펀드의 선의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설계할 제도 틀에 달려 있다.
주주행동주의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자 고도화된 ‘수익률 게임’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게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규칙을 보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다시 짜는 일이다. 기업은 투명한 지배구조와 책임 경영으로 공격의 빌미를 줄이고, 투자자는 행동주의 펀드의 수익 구조와 전략을 냉정하게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국회와 정부는 공정한 운동장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래야만 ‘수익률 게임’이 일부의 잔치가 아니라 시장 전체의 번영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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