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정부 규제 풀자 벤처투자 숨통…‘투자 양극화’ 우려도 확대
- [VC업계가 웃는다]②
모태펀드 존속기간 10년 단위 연장 등 규제 손질
지난해 AI 투자 1.5조원…AI 상위 2곳에 33% 집중
[이코노미스트 이용우 기자] 정부가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규제 완화와 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증권업계를 중심으로 모험자본 공급 기능을 강화하고, 모태펀드를 비롯한 정책자금 역할을 확대해 자본시장이 혁신 기업 성장의 자금 통로가 되도록 유도하겠다는 방향이다. 다만 자금이 특정 산업과 기업으로 집중되는 투자 양극화 현상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지목된다.
모태펀드 확대에 민간 자본 결합…VC 시장 기대감 커져
최근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서는 정부의 벤처기업 지원과 관련한 규제 완화가 스타트업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상생금융 기조를 강조해 온 정부가 모태펀드 공급 확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위축됐던 벤처투자 환경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책자금이 확대되고 자연스럽게 증권업계 등 민간 자본과 결합하는 식의 자본 투입 확대가 올해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 VC 업계가 주목하는 점이다.
모태펀드는 정부 자금이 벤처투자로 연결되는 핵심 통로 역할을 한다. 정부가 벤처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모태펀드를 통해 자금 출자를 확대하면, 모태펀드로 투입된 자금을 운용할 VC 시장도 자연스럽게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자금 운용을 하게 될 VC는 정부 출자금을 기반으로 민간 출자자(LP)를 추가로 유치해 펀드를 조성하고, 해당 펀드의 목적에 맞춰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에 투자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모태펀드 출자는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모태펀드 출자 비중은 통상 펀드 규모의 절반 내외로 설정되는데 예를 들어 정부가 1000억원을 출자하면 LP 확보를 통해 2000억원 규모의 펀드가 조성되는 구조”라며 “모태펀드 출자 확대가 곧 벤처투자 재원 확대 효과로 이어지는 이유”라고 말했다.
증권업계의 역할 확대 역시 이러한 구조와 맞물려 있다. VC가 펀드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정부 출자금 외에 민간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데, 최근 증권사들이 모험자본 투자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있어 투자 확대가 용이해졌다. 금리 상승기 동안 위험자본 투자에 소극적이었던 금융권이 정부 정책 기조 변화와 함께 다시 벤처펀드 출자와 투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VC 업계의 설명이다.
존속기간 연장·의무 완화…벤처투자 규제 전방위 손질
정부는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부터 제도 개선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을 비롯한 관련 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2005년 도입돼 2035년 종료 예정이던 모태펀드는 조합원 총회 승인을 거쳐 10년 단위로 존속 기간을 연장할 수 있게 됐다. 인공지능(AI)과 딥테크 등 회수 기간이 긴 전략 산업에 보다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여기에다 벤처투자에 참여할 수 있는 법정 기금의 범위를 연기금·공적기금 등 다양한 주체로 넓혔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 1월 ‘2026년부터 달라지는 벤처투자 제도’를 발표하며 벤처투자 규제 완화와 세제 지원 확대 방침을 공식화했다. 벤처투자회사 등의 투자 의무 이행 기간을 기존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시장 상황과 투자 환경을 고려해 자금 집행 시기를 보다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다.
연도별 투자 의무도 조정돼 벤처투자회사 등록 후 1년 단위이던 기한을 3년까지 1건, 5년까지 추가 1건 이상 투자하도록 하면서 초기 부담을 대폭 낮췄다. 특히 벤처투자회사 등이 예외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금융사 범위에 비상장 주식 및 조각투자 유통플랫폼을 추가했다. 이를 통해 혁신금융 스타트업 성장 기반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부터 AI 투자 쏠림 시작
투자업계에서는 자금 공급 확대가 곧바로 균형 잡힌 투자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VC 업계 관계자는 “자금이 늘어날수록 성장성이 명확한 산업과 이미 검증된 기업으로 투자금이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이미 소수의 AI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투자가 확대됐다. 반면 투자 건수는 감소하는 추세가 나타나 투자금 ‘쏠림 현상’이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시장연구원의 ‘모험자본의 AI 투자 양극화 심화와 향후 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AI 부문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에 대한 총 투자 금액은 1조5479억원으로, 전년 대비 27.1% 증가했다. 반면 AI 부문에 대한 투자 건수는 지난해 263건을 기록하며 전년(353건) 대비 25.5% 감소했다.
지난해 11월 투자유치 금액 상위 10개 기업 중 절반이 AI 부문으로 나타나 AI 스타트업 투자 강세가 관찰됐다. 특히 지난 한 해 동안 투자된 상위 2개사가 전체 AI 투자 금액의 약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투자 양극화가 나타났다.
다만 업계에서는 정부 주도의 모태펀드 자금은 투자 저변을 넓히는 역할을 하고, 펀드가 투자 목적별로 세분화돼 설계되는 경우가 많아 투자가 어려웠던 영역에도 자금이 공급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펀드 종류가 다양해질수록 벤처 생태계 전반의 투자 기회도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VC 업계 관계자는 “규제 완화와 모태펀드 출자 확대, 증권업계의 참여가 맞물리면서 벤처투자 시장의 ‘파이’ 자체가 커질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며 “자금 쏠림과 투자 양극화라는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도록 향후 제도 운용이 중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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