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에서 산업으로…캐나다 잠수함 수주전, 중심으로 떠오른 현대차
- 캐나다 “자동차 공장 원한다” 직설 메시지
현대차, 완성차 대신 수소 생태계 제안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캐나다 차세대 초계 잠수함 프로젝트(CPSP)가 최대 60조원 규모의 국가급 거래로 부상했다. 12척 도입 사업이지만, 협상의 무게중심은 성능이 아닌 ‘경제적 기여’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캐나다는 한국과 독일을 상대로 자동차 공장 설립 등 대규모 투자 카드를 요구하며 실질적 산업 효과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업계는 이번 수주전이 전통적인 방산 경쟁의 공식을 이미 벗어났다고 본다. 기업 간 기술 대결을 넘어 정부 대 정부(G2G) 협상으로 확장됐고, 계약의 성격도 방산을 넘어 제조업·공급망 재편과 맞물린 국가 단위 산업 거래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달라진 수주전 성격
현대차그룹도 캐나다 수주전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1월 정부·재계 특사단에 동행한 바 있다. 잠수한 수주 총력전에 힘을 보탠 것인데, 이번 캐나다 정부의 직접적인 자동차 투자 요구에 현대차그룹에 부담감도 커지게 됐다.
캐나다 정부는 오는 3월 2일 최종 사업제안서를 접수할 예정이다. 한국(한화오션·HD현대중공업 컨소시엄)과 독일(TKMS)을 상대로 산업·투자 측면에서 최대한의 실익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CPSP는 디젤 잠수함 최대 12척과 장기 운용·정비(MRO)를 포함한 방산 프로젝트지만, 협상의 무게중심은 이미 기술 경쟁을 넘어 경제 가치로 이동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캐나다 측 인사들의 발언도 직설적이다. 멜라니 졸리 캐나다 산업장관은 최근 토론토 연설에서 “근본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자동차 공장”이라며 “한국·독일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최근 폴란드의 ‘오르카(Orka) 프로젝트’에서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약 8조 원 규모의 잠수함 도입 사업에서 스웨덴 방산업체 사브가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당시에도 기술력 차이보다는 산업·경제적 기여도가 더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방산 수주 방식이 과거와 달라졌다”며 “오르카 사례 역시 잠수함 성능만으로 결론이 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스웨덴이 제시한 산업·경제적 가치가 더 크게 작용했고, 이런 흐름이 하나의 트렌드로 굳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CPSP 역시 단순한 기술 경쟁만으로 결론 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관건은 캐나다가 요구한 자동차를 포함한 산업·투자 패키지에 얼마나 부합하는 제안을 내놓느냐다.
캐나다가 자동차를 전면에 내세운 배경에는 북미 통상 질서의 변화가 있다. ‘느슨한 무관세’에서 ‘조건부 무관세’로의 전환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미국·멕시코·캐나다는 2020년 7월 발효한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의 일몰 조항에 따라 2026년 7월 1일 연장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공동 검토를 앞두고 있다.
USMCA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대비 자동차 원산지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승용차 기준 역내 부가가치(RVC) 비율을 단계적으로 75%까지 높였고, 노동 부가가치(LVC) 요건과 철강·알루미늄의 역내산 비율(70%) 조건도 신설했다.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무관세 적용이 어렵다.
이 같은 환경에서 자동차 공장은 단순한 조립시설을 넘어 공급망 전략의 핵심 거점이 된다. 완성차 공장은 부품·철강·알루미늄·배터리까지 밸류체인을 묶는다. 역내 조달 비중을 높여야 관세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잠수함 계약을 계기로 완성차 공장을 포함한 제조 생태계 구축을 사실상 조건으로 내건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와 폭스바겐이라는 카드를 쥔 한국과 독일을 상대로, 별도의 대규모 산업 투자를 연계하라는 요구다.
현대차는 완성차 공장 대신 수소 연료전지 인프라 구축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바겐 역시 배터리 자회사 파워코의 온타리오주 세인트토마스 투자와 연계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문 교수는 “캐나다가 자동차를 사실상 1순위 조건처럼 내세우는 배경에는 최근 북미 통상 환경 변화가 있다”며 “미국과의 관계가 불안정해지고 공급망·관세 리스크가 커지면서 자국 자동차 산업이 타격을 받았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됐다”고 말했다. 이어 “자동차는 철강·배터리·반도체·물류까지 연쇄적으로 연결돼 산업 전반의 일자리를 크게 늘릴 수 있는 핵심 산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지 완성차 공장 건립은 한국 입장에선 쉽지 않은 카드”라며 “현대차가 이미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 상황에서 캐나다에 추가 공장을 짓는 선택은 부담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같은 맥락에서 제시된 대안이 수소”라며 “완성차 조립공장 대신 수소 인프라와 모빌리티 생태계를 제안한 것은 캐나다가 요구하는 산업 기여를 다른 방식으로 충족하려는 전략적 접근”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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