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성장펀드, 산업 지도 재편]⓸
첨단산업·지역성장 이끄는 인내자본 기대
혈세 낭비와 정치적 개입은 숙제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증권학회장] 단군 이래 최대 정책펀드라는 국민성장펀드가 시동을 걸었다. 이재명 정부는 경제 재도약을 위한 성장동력으로 첨단전략산업, 벤처·혁신 강화, 지역성장을 꼽았다. 생산적 금융을 통해 동력 가동 기능을 확보했고 국민성장펀드가 그 첨병 역할을 한다. 150조원 이상을 조성해 AI·로봇, 에너지·인프라, 반도체, 모빌리티, 바이오 산업 등에 투자한다. 1차로 7건의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고 조만간 본격적으로 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국민성장펀드는 이전 정책펀드들과는 완전히 차별화된다. 일회성이 아닌 5년간 진행된다. 금융위원회에 국민성장펀드추진단을 설치했으며 산업은행에 사무국도 뒀다. 투자는 전략위원회의 자문의 하에 5개 소위원회별로 투자심의위원회를 거친 후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결정하는 정교한 체계를 갖췄다. 간접투자 분야 재정모펀드 운용사 선정 작업이 진행 중이며 국민이 첨단산업 투자에 직접 참여하는 국민참여형펀드도 곧 선보인다.
5년 장기 프로젝트의 첨병, 첨단산업과 지역경제 살리는 ‘마중물’
펀드 구조는 해외에서도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독일·싱가포르 정책펀드들의 장점만을 뽑아낸 하이브리드형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 보호가 주 목적인 일본, 민간 금융이 손 닿을 수 없는 영역에 민간과 공동 투자하는 독일, 수익성을 목적으로 하는 싱가포르 정책펀드들의 역할을 절묘하게 조합했다. 새로운 산업을 모색하고 시장도 형성하며 수익도 창출하는 세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 펀드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일단 첨단전략 산업에 대규모·장기 자금이 공급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AI, 바이오, 우주·방산, 탄소중립 등 거대 자본이 소요되는 산업에는 일부 대기업 집단을 제외하고는 민간에서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가 자금을 공급하면서 동시에 후순위로 참여하면 위험 구조가 개선됨에 따라 민간 자본의 투자도 촉진될 수 있다.
또한 단기 성과 압박이 적은 인내자본 공급이 가능해 벤처·혁신기업의 성장 사다리 역할도 할 수 있다. 벤처·혁신기업이 자금과 관련해 겪는 가장 큰 애로사항은 스케일업(Scale-up·규모 확대) 단계에서의 자금 조달과 상장 이외의 자금 회수 방안이다. 국민성장펀드는 직접 및 간접 투자를 통해 이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다. 펀드 조성을 통한 간접 투자를 통해 성장 단계에서의 자금을 공급할 수 있으며 직접 투자를 통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앵커투자자 역할도 할 수 있다. 국민성장펀드의 안착은 지분이나 펀드의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세컨더리 마켓(Secondary Market·구주 거래 시장)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공헌할 수 있다. 전력망이나 발전, AI 데이터센터들은 대부분 지역 중심 시설이다. 실제로 1차로 선정된 프로젝트 가운데 지분 투자를 제외한 6건 중 4건의 조성 위치는 모두 전남·울산·충북 등 지방이다. 지역 성장 및 일자리 확대를 통해 지역 소멸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묘책이 될 수 있다.
민간 자금 유인과 수익성 확보 관건… 정치적 논리 배제한 투명성 확보해야
우려 사항도 만만치 않다. 일단 펀드 조성 과정에서 민간 자금이 목표치만큼 확보되지 않을 수 있다. 당국은 국민성장펀드에 투자 시 은행의 위험 가중치를 완화해 주고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의 모험자본 투자 대상에 포함시켜 줬다. 하지만 민간 자금은 속성상 비용보다 수익이 크지 않는 한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기존 투자처에 대한 투자를 국민성장펀드로 이관한다면 조삼모사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금융당국이 펀드 참여를 암묵적으로라도 강요한다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민간 자금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정교한 유인책이 필요하다.
운용 과정에서의 우려점은 이보다 훨씬 크다. 일단 수익성 확보가 담보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정책펀드는 수익성보다는 공공성 중심으로 투자를 한다. 수익성은 낮지만 정책적으로 필요한 사업에 투자하다 보면 수익 창출하기가 녹록지 않다. 더구나 정부가 지분 투자 시 후순위가 되는 상황에서 손실은 오롯이 정부가 떠안게 된다. 투입되는 재정이나 기금은 모두 국민 세금이다. 결국 ‘혈세 낭비’의 논란과 함께 국민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 중 사업성이 부정적으로 바뀌어도 중단하기 어렵다. 기회비용이 매몰비용이 될 수 있는 구조이다. 좀비 프로젝트가 탄생할 수도 있다. 거액이다 보니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경우 A급뿐만 아니라 B급에도 투자될 수 있다. 몸이 무거워 투자 환경 변화에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목표 수익률 하회, 민간 자본 참여율 급감, 외부 평가 ‘부적합’ 판정 시 투자를 자동으로 멈추게 하는 장치를 규정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 자금의 과도한 투자로 본질 가치와 무관하게 특정 산업 및 기업으로 자금이 쏠리는 왜곡 현상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개입 가능성이 가장 우려된다. 투자 대상 선정에 정치적 논리가 경제적 논리를 무력화시킨다면 투자는 실패로 끝날 것이다. 지역적 요구나 특정 산업의 로비는 국민성장펀드라는 투자 도구를 정치 수단으로 변질시킬 수도 있다. 시장성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외국인 투자자 시각에서 관조하기를 조언한다. 투자처와 운용 과정을 보면 이것이 한국의 성장동력 재건을 위한 투자 과정인지 아닌지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정부는 원칙만 제시하고 선정과 운용에 대한 책임은 민간이 지게 해야 한다. 과실이 생산적 영역으로 흘러 들어가게 해야 한다. 투자 과정에 대한 상당 수준의 주의 의무가 필요하다.
펀드 조성 과정의 자율성, 운용 과정의 투명성, 투자 대상 기업의 성장성, 정부 당국의 공정성, 운용 업계의 전문성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국민성장펀드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하면 국가 성장 엔진, 실패하면 최대 정책 실패 사례가 될 수 있다. 모쪼록 국민성장펀드가 신성장·혁신 위주의 산업 고도화 추진에 시금석이 되기를 바란다. 훗날 시대를 앞서간 정책펀드의 성공 사례로 기록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필자는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로 펀드, 기업지배구조, 사모자본시장 분야를 주로 연구한 재무분야 전문가다. 한국증권학회 제41대 회장을 지냈고 ▲금융위 비상임 증선위원 ▲국민연금 투자정책전문위원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자금지원위원 ▲한국파생상품 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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