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약 만든다…신약 개발 판 바꿀 변수는 ‘중력’ [이코노 인터뷰]
- 윤학순 스페이스린텍 대표 인터뷰
미세중력 환경, 단백질 구조 변화 이끌며 치료 방식 전환 가능성
실험 넘어 생산까지 확장…우주 기반 제약 산업화 본격 시동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우주가 더 이상 탐사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신약 개발의 새로운 실험실로 주목받으며 제약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지구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미세중력’ 환경이 있다. 중력이라는 절대적 조건이 사라질 때 물질과 생명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연구가 산업적 가능성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윤학순 스페이스린텍 대표가 우주로 눈을 돌린 것도 이 지점에서다. 그의 선택은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기존 환경에서 풀리지 않던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한 결단이었다. 윤 대표는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창업을 목표로 했던 건 아니다"며 "연구를 계속하다 보니 지구에서는 바꿀 수 없는 변수, 중력이 보였다”고 말했다.
반도체 엔지니어로 출발한 그는 우주공학 박사 과정과 뇌과학 연구를 거치며 미국 항공우주국(NASA)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서로 다른 분야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환경이 바뀌면 인체와 물질은 어떻게 달라지는가’라는 질문이 축적됐다.
그는 “우주 방사선이나 미세중력은 대부분 위험 요소로만 인식된다"며 "하지만 나는 그 환경을 보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리스크(위험)를 줄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를 활용하면 전혀 다른 치료 접근법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그때부터 우주를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미 글로벌 제약사들이 우주에서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건 미래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시장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단백질 구조 바꾸는 환경…치료 방식까지 달라진다
미세중력 환경은 단백질 의약품의 구조를 바꾸는 핵심 변수다. 지상에서는 단백질이 중력의 영향을 받아 가라앉고 뭉치면서 불균일한 구조를 형성한다. 이로 인해 점도가 높아지고 약물 설계와 투여 방식에도 제약이 생긴다.
윤 대표는 “점도가 높다는 건 결국 투여 방식의 한계로 이어진다”며 “대표적으로 항암제 ‘키트루다’처럼 장시간 정맥 주사가 필요한 경우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우주에서는 중력 영향이 거의 없어 단백질이 보다 균일하게 성장한다. 구조적 안정성이 높아지고, 고농도에서도 점도가 낮게 유지되는 특성이 나타난다. 그는 “같은 물질이라도 환경이 바뀌면 전혀 다른 특성을 갖게 된다”며 “이 차이가 의약품의 형태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투여 방식 개선으로 직결된다. 정맥 주사 중심이던 치료가 피하 주사 등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환자 입장에서는 치료 시간이 줄고 부담이 낮아진다”며 “의료 시스템 측면에서도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용량 감소와 부작용 저감 가능성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동일한 효과를 더 적은 용량으로 구현할 수 있다면 치료 비용 구조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특성은 신약 개발 초기 단계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단백질 구조를 보다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어 표적 치료제 개발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결국 신약 개발은 구조를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느냐의 문제”라며 “우주 환경은 그 정확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데이터에서 생산으로…우주 제약 산업화 본격화
응용 분야도 확대되는 추세다. 인슐린을 비롯해 줄기세포, 인공 장기 등 다양한 바이오 영역에서 활용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표는 “인슐린의 경우 서서히 방출되는 형태로 설계가 가능하다”며 “투여 주기를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 모델 역시 이러한 특성을 기반으로 설계됐다. 스페이스린텍은 우주에서 단백질 데이터를 생산하고, 이를 개발과 생산 단계까지 연결하는 위탁연구(CRO)·위탁개발생산(CDMO)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그는 “데이터 확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생산으로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주 환경에서는 불순물이 줄어들어 정제 공정이 단순화되는 특징도 있다. 이는 제조 비용 절감뿐 아니라 산업 구조 변화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윤 대표는 “대규모 설비 중심의 기존 생산 방식이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기술 검증도 진행 중이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단백질 결정 생성 실험과 자동화 시스템을 구현하며 실행력을 확보했다. 그는 “우주에서 실험을 자동으로 수행하고, 지상에서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제어하는 기술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단백질 결정화 실험 모듈 실증에도 성공했다. 회수된 시료는 해외 연구기관과 공동 분석이 진행 중이다. 윤 대표는 “결국 경쟁력은 데이터”라며 “이를 어떻게 확보하고 활용하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머크는 2017년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첫 실험을 시작했으며, 아스트라제네카·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일라이 릴리 등 주요 기업들도 잇따라 우주 연구에 뛰어들고 있다. 다만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다. 그는 “지금은 시장을 정의하는 단계”라며 “누가 먼저 기준을 만들 것이냐의 경쟁”이라고 진단했다.
창업 초기에는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탓이다. 윤 대표는 “시장성이 없다는 평가도 많았지만, 연구 성과를 통해 하나씩 증명해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확신은 있었지만 이를 입증할 데이터가 부족했던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현재는 기술 실증과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주 제약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윤 대표는 “개발 비용이 낮아지면 그동안 포기됐던 희귀질환 치료제도 다시 시도할 수 있다”며 “우주 제약은 새로운 시장을 여는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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