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韓 스튜어드십 코드, 압박 아닌 ‘대화의 언어’ 돼야 [대신경제연구소 ESG인사이트]
- 경영개입 논쟁 속에서 흐려진 제도의 본질
평가보다 중요한 건 ‘장기 가치 위한 대화’
[최수연 대신경제연구소 ESG리서치센터 팀장] 스튜어드십 코드는 원래부터 강한 도구가 아니었다. 기업을 압박하거나 길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그 출발점은 단순하다. 기관투자자가 맡겨진 자본을 책임 있게 운용하고, 그 과정에서 기업과의 대화를 통해 더 나은 가치를 만들어내자는 약속이다. 그런데 최근 국내 스튜어드십 코드를 둘러싼 논의를 보면, 이 약속이 점점 다른 방향으로 읽히고 있는 듯하다. 누군가는 이를 ‘경영 개입의 수단’으로, 또 누군가는 ‘방어해야 할 외부 압력’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되면 스튜어드십 코드는 가장 중요한 기능을 잃게 된다.
지금 다시 붙들어야 할 질문은 하나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답은 이미 여러 나라의 코드에 분명히 적혀 있다. 영국은 자본을 책임 있게 배분·관리해 장기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일본은 기업과의 ‘건설적 대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책임을 강조한다. 한국 역시 투자대상기업의 중장기 가치 향상과 수익자 이익을 도모하는 데 목적을 둔다. 표현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투자자의 장기적 이익과 기업의 지속가능한 가치다.
제도 안착을 위해 기억해야 할 세 가지
이 점에서 분명히 해야 할 첫 번째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결코 ‘압박의 기술’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관투자자의 역할은 기업을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놓치고 있는 위험과 기회를 함께 점검하는 데 있다. 대화를 통해 투자자와 기업이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문제를 드러내고, 그 해법을 같이 찾는 과정이 핵심이다. 공격적인 주주권 행사가 주목을 받을 때가 있지만, 그것이 코드의 본질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단기적 충돌이 반복될수록 장기적 신뢰는 무너질 것이다.
두 번째로, 기업 역시 스튜어드십 코드를 ‘방어의 대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일부 기업은 투자자의 질의를 리스크로 간주하고, 형식적인 대응에 그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투자자는 기업의 외부자가 아니라 장기적인 동반자다. 특히 연기금과 같은 자산소유자는 단기 차익보다 지속적인 성장에 더 큰 이해관계를 갖는다. 이들과의 대화를 닫아버리는 것은 결국 스스로 성장의 기회를 줄이는 일이다. 기업이 투자자에게 정보를 공유하고, 전략을 설명할 때 스튜어드십 코드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이행점검과 평가의 방향이다. 최근 제도 개선 논의는 이 지점에 집중돼 있다. 금융회사의 수탁자 책임 활동을 매년 평가하고 공표하도록 하거나 위탁운용사 선정과 평가, 계약해지에 스튜어드십 활동의 질을 반영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경우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심의 범위를 기금의 수탁자책임 이행평가 등으로 확대하고 회의록 공개까지 포함하는 등 투명성을 높이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분명 필요하다. 다만 중요한 것은 ‘누가 평가하느냐’보다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하느냐’다. 평가의 기준은 명확해야 한다. 고객과 수익자의 장기적 이익에 기여했는가, 그리고 기업의 장기적 가치와 지속가능성을 높였는가. 이 두 질문을 벗어난 평가는 쉽게 형식으로 흐른다. 보고서의 분량이나 회의 횟수 같은 지표가 늘어날수록, 정작 중요한 변화는 보이지 않게 된다. 스튜어드십 활동은 문서가 아니라 결과로 증명돼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평가’는 수단…‘소통’이 목적
이 점에서 일본의 경험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코드 이행점검을 통제 수단이 아니라 신뢰 구축의 과정으로 본다. 자산소유자가 중심이 돼 위탁운용사를 점검하고, 기업의 의견까지 반영해 활동의 질을 평가한다. 투자자와 기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해 우수 사례와 미흡 사례를 공개해 시장 전체의 소통을 유도하는 방식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건설적 대화’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는 점이다.
일본 공적연금(GPIF)의 사례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GPIF는 명문화된 정책과 원칙 아래 운용사를 평가한다. 또한 기업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인게이지먼트의 실질적 효과를 검증하며, 인게이지먼트 성과와 연계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이는 단순한 점검을 넘어 스튜어드십 활동을 바꾸는 구조다. 스튜어드십을 잘하는 운용사가 보상을 받고, 그렇지 못한 운용사는 자연스럽게 개선 압력을 받는다. 규제가 아니라 유인으로 작동하는 체계다.
한국의 논의도 이제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평가 권한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기업과 투자자 간의 대화를 어떻게 촉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자산소유자와 운용사·기업이 함께 접근할 수 있는 공통의 플랫폼을 만들고, 서로의 목소리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또한 보고 부담을 줄이면서 핵심 정보는 더욱 잘 공개돼야 한다.
결국 스튜어드십 코드는 ‘관계’를 다루는 제도다. 투자자와 기업 간의 관계, 그리고 수익과 책임 간의 관계를 연결한다. 이 연결이 끊어질 때 코드는 형식으로 남고, 연결이 살아 있을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규제가 아니라 더 나은 대화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그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촉매여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누군가를 압박하는 도구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장치로서 그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때, 스튜어드십은 시장을 바꾸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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