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창사 이래 첫 총파업’ 마주한 삼성전자…운명의 공은 정부로
- 중앙노동위원회 2차 사후조정 최종 결렬…21일 총파업 예고
성과급 제도화는 좁혔으나 ‘적자 사업부 성과 배분’ 놓고 사측 유보
국가 경제 타격 우려 속 고용노동부 ‘긴급조정권’ 발동 카드 만지작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국가 전략산업의 전초기지인 삼성전자가 창사 이래 가장 거대한 노사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사상 첫 총파업’이라는 파국을 막기 위해 정부와 경영진, 노동조합이 머리를 맞댔던 마지막 보루,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의 사후조정마저 결국 무산됐다. 노조가 예고한 총파업 시한을 단 하루 앞두고 협상이 결렬되면서 이제 시선은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여부라는 초유의 카드로 쏠리고 있다.
마지막 밤샘 협상마저 깨진 이유
중앙노동위원회는 20일 오전, 삼성전자 노사의 2차 사후조정이 최종적으로 ‘불성립’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난 18일부터 사흘간 세종정부청사에서 이어진 마라톤협상은 당초 기한이었던 19일 자정을 넘겨 20일 오전까지 연장되는 등 긴박하게 돌아갔으나, 끝내 노사 양측의 도장은 한 서류에 찍히지 못했다.
중노위가 제시한 최종 중재안에 대해 노동조합(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측은 찬성표를 던졌으나, 사용자(사측) 측이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있다”며 사실상 거부(유보) 의사를 밝히면서 협상은 종료됐다.
당초 가장 큰 걸림돌로 예상됐던 초과이익성과급(OPI) 재원 기준(영업이익 반영 비율)과 성과급의 제도화 방안에 대해서는 사흘간의 사후조정을 통해 상당 부분 이견이 좁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막판에 발목을 잡은 것은 ‘적자 사업부에 대한 보상 규모’였다.
노조는 반도체(DS) 부문 내 적자 사업부인 시스템LSI·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사업부에 대해서도 성과급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 측은 “사측은 의사결정이 되지 않았다는 입장만 반복했다”며 “경영진의 의사결정 지연으로 사후조정 절차가 종료된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입장문을 통해 “사후조정이 종료된 것에 대해 삼성전자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며 “회사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대화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측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파업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사후조정에서 막판까지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것은 노동조합의 과도한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회사 경영의 기본 원칙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조는 회사가 성과급 규모와 내용 대부분을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자 사업부에도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규모의 보상을 하라는 요구를 굽히지 않았다”며 “이는 ‘성과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회사 경영의 기본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성과가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신상필벌의 경영 원칙을 고수하려는 사측과, 사업부의 적자가 노동자 개인의 책임이 아니므로 최소한의 형평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노조의 입장이 정면충돌하며 파국을 맞이한 셈이다.
이재용 회장의 조기 귀국도 막지 못한 파업
이번 사후조정 기간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해외 출장 일정을 급히 변경하고 귀국하는 등 사태의 심각성을 반영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평소 강조해 온 ‘동행’(同行) 철학을 바탕으로 노사 간의 원만한 타결을 도모하기 위해 협상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청와대와 정부 역시 지난 17일부터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양측에 원만한 타협을 당부하는 등 전방위 압박을 가했다. 반도체 공급망 전쟁이 격화되는 시점에서 삼성전자의 가동 중단은 곧 대한민국 경제의 엔진이 멈추는 것과 다름없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반도체(DS) 부문 내 일부 사업부의 적자 상황에서 예외적인 보상 선례를 남길 수 없다는 경영진의 판단과 법원의 ‘평상시 인력 유지’ 가처분 판단 속에서도 배수진을 친 노조의 강경한 흐름은 ‘타결’이라는 기적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사후조정이 결렬됨에 따라 노조는 당초 예고한 대로 오는 21일부터 즉각적인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증권가와 업계에서는 실제로 파업이 강행돼 반도체 라인이 일시적으로라도 멈춰설 경우, 최대 40조원대의 천문학적인 손실과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삼성전자 주가 역시 협상 결렬 소식과 함께 요동치고 있어 주주들의 불안감도 극에 달한 상태다.
이제 공은 고용노동부로 넘어갔다.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정부가 꺼내 들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긴급조정권’이다. 긴급조정권이란 노동조합법 제76조에 의거, 파업 등 노동쟁의 행위가 국민경제에 현저한 해를 끼치거나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을 때 고용노동부 장관이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의 의견을 들어 발동하는 법적 제도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노동조합은 즉시 파업을 중단해야 하며, 30일간 일체의 쟁의행위가 금지된다. 동시에 중노위가 조정 절차에 착수하게 된다.
남은 카드는 긴급조정권?
우리 노동 역사상 긴급조정권이 발동된 사례는 단 네 차례뿐이며, 가장 최근 사례는 21년 전인 2005년 아시아나항공 및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사태 당시였다. 국가 기간산업의 마비가 우려될 때만 극약처방으로 쓰였던 카드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사후조정 불성립 직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아직 완전한 결렬이라기보다는 대화의 시간이 남아있다. 노사 간 자율 교섭을 최대한 지원하겠다”며 일단 신중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노조가 21일 파업의 수위를 높여 생산 라인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기 시작하면, 정부는 경제적 파국을 막기 위해 전격적으로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이 경우 파업은 법적으로 중단되지만, 노동계의 강한 반발로 사태가 장기 공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총 파업에 앞서 막판에 극적으로 자율 교섭이 재개될 수도 있다. 중노위 위원장이 “노사가 합의하에 다시 요청한다면 언제든 조정을 재개하겠다”고 밝힌 만큼, 파업 돌입 직전이나 직후에 사측이 진전된 보상안을 제시하거나 노조가 요구 수위를 낮춰 극적으로 대화의 물꼬를 다시 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가 전략자산인 반도체를 둘러싼 노사 갈등이 파업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와 긴급조정권이라는 국가 권력의 개입 직전까지 도달했다. 삼성전자가 이 초유의 위기를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따라 향후 대한민국 제조업 전반의 노사 관계 패러다임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신뢰도가 결정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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