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산적 금융의 역설]①
5대 은행 기업대출 반년 새 25조원 증가
금융지주 “연체율·자산건전성 악화 우려”
정부 기조 맞춰…가계대출 대신 기업대출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NH 등 5대은행의 5월 말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869조8928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5조1674억원 늘었다.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된 가운데 정부가 생산적 금융 확대를 지속적으로 주문하면서 은행들도 기업금융 중심 성장 전략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가계부채 관리가 있다. 부동산 시장 과열과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가계대출 확대를 제한하는 대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혁신기업으로 자금 공급을 늘리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도 대출자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기업대출 확대가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다. 최근 주요 시중은행들이 기업금융 전담 조직을 확대하고 중소·중견기업 특화 서비스를 강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5대은행의 5월 말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684조4572억원으로, 작년 말과 비교해 10조310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증가폭(4조5121억원)의 두 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반면 5월 말까지 5대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1조7799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 증가폭 15조1981억원과 비교하면 8분의 1 수준이다.
문제는 기업대출이 주택담보대출보다 위험도가 높다는 점이다. 주택담보대출은 부동산 담보를 바탕으로 대출이 이뤄지는 만큼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자산으로 분류된다. 반면 기업대출은 경기 상황과 기업 실적에 따라 부실화 가능성이 크게 달라진다. 특히 개인사업자와 소상공인 대출은 내수 경기 침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BIS 비율 ‘뚝’…건전성 관리 부담
기업대출 확대는 실제로 은행의 건전성 지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BIS 비율은 13.41%로 지난해 말(13.50%)보다 0.09%포인트(p) 하락했다.
BIS 비율은 위험가중자산 대비 자기자본 비율로 은행의 손실흡수 능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건전성 지표다. 수치가 높을수록 예상치 못한 손실을 감내할 여력이 크다는 의미다.
금감원은 기업 익스포저 증가와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외화 위험가중자산 확대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기업대출이 늘어나면서 위험가중자산 증가 속도가 자기자본 증가 속도를 웃돌았다는 설명이다.
은행권에서는 생산적 금융 확대가 불가피한 정책 과제인 만큼 기업대출 증가세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 대출 비중이 확대될수록 건전성 관리 부담도 함께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지주도 “생산적 금융 리스크” 인정
주요 금융지주들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제출한 사업보고서에서 생산적·포용금융 확대를 주요 경영 리스크 중 하나로 언급하기도 했다.
우리금융은 해당 보고서에서 생산적 금융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우리금융은 “정부가 생산적 금융 정책을 통해 전략산업과 생산성이 높은 산업에 대한 대출·투자를 확대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며 “당사의 기업여신 익스포저 상당 부분이 중소기업에 집중된 만큼 해당 기업들의 재무상황이 악화될 경우 자산건전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정책적 목적에 따라 금융기관에 특정 산업에 대한 투자와 금융지원을 요청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원래 지원하지 않았을 분야까지 금융지원을 확대해야 할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비용이나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KB금융 또한 관련 보고서에서 “최근 들어 한국 정부는 이른바 ‘생산적 금융’을 촉진하는 정책을 강조해 왔으며, 은행들이 전통적인 가계대출을 넘어 사업 모델을 다변화하고, 전략적·생산적 산업에 대한 대출 및 투자를 확대하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향후 한국 정부는 정책적 목적에 따라 우리를 포함한 국내 금융기관들에게 한국 경제의 특정 부문에 대한 투자 또는 기타 형태의 금융지원을 요청할 수 있으며, 금융기관들은 이를 수용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면서 “우리는 이러한 금융지원을 제공한 결과 비용이나 손실을 부담하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한금융 역시 “정부는 2025년 저소득층 또는 금융 취약계층 차주에 대한 은행의 우선 대출을 장려함으로써 해당 차주에 대한 접근성을 제고하기 위한 포용적 금융 이니셔티브를 추진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정책 계획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해 고객들의 채무불이행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는 사업 관행에 대한 조정이 요구될 수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당사의 연체율 증가 및 자산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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