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폴리페놀의 대가' 이해신 KAIST 교수, 천연 소재로 바이오소재 한계 넘었다
- 조류 기반 하이드로겔 강도·접착성 향상
상처 드레싱·약물 패치·화장품 활용 기대
[이코노미스트 서지영 기자]
폴리페놀을 연구실 밖 산업 현장으로 끌어낸 과학자 이해신 KAIST 교수가 또 한 번 새로운 응용 분야를 제시했다.
차와 과일에 풍부한 천연 성분을 활용해 해조류 기반 하이드로겔의 성능을 크게 높이는 기술을 개발한 것. 복잡한 화학 공정 없이 천연 소재만으로 하이드로겔의 강도와 접착성, 분해 속도를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KAIST는 화학과 이해신 교수 연구팀이 식물 유래 폴리페놀의 일종인 탄닌산(Tannic Acid)을 활용해 해조류 유래 하이드로겔의 기계적 강도와 접착성을 높이고 분해 속도까지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소재 설계 전략을 개발했다고 9일 밝혔다.
하이드로겔은 다량의 물을 함유하면서도 형태를 유지하는 젤 형태 소재다. 콘택트렌즈와 여드름 패치, 마스크팩은 물론 상처 치료용 드레싱, 약물 전달 패치, 조직 재생용 바이오 소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피부에 밀착되면서 약물이나 유효 성분을 저장할 수 있어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의 핵심 소재로 주목받는다.
연구팀이 주목한 소재는 붉은 해조류에서 추출한 천연 고분자 '카파-카라기난(κ-Carrageenan)'이다. 카파-카라기난은 식품 산업에서 젤리나 소스의 점도를 높이는 원료로 널리 사용되지만, 하이드로겔로 활용할 경우 강도와 접착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원인은 카파-카라기난에 포함된 황산기 구조다. 황산기는 분자 간 반발력을 만들어 촘촘한 구조 형성을 방해한다. 이 때문에 하이드로겔의 강도를 높이거나 분해 속도를 원하는 수준으로 조절하기 쉽지 않았다.
연구팀은 해결책으로 차와 과일 등에 풍부한 천연 항산화 성분인 탄닌산에 주목했다. 탄닌산은 여러 분자와 동시에 결합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어 카파-카라기난 분자들을 효과적으로 연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실험 결과 기존에는 하이드로겔 형성을 방해하는 요소로 여겨졌던 황산기가 오히려 탄닌산과 결합하는 핵심 부위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점으로 여겨졌던 구조가 새로운 결합 지점이 되면서 하이드로겔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 것이다.
실제로 탄닌산을 첨가한 카파-카라기난 하이드로겔의 저장탄성률은 약 1632Pa로, 기존 카파-카라기난 하이드로겔(약 294Pa)보다 5배 이상 향상됐다. 외부 압력이나 변형에도 형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탄닌산이 이미 형성된 하이드로겔 내부 구조까지 효과적으로 강화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제조 과정의 특정 단계에만 의존하지 않고 하이드로겔의 물성을 개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강도 향상과 함께 접착성과 분해 특성까지 동시에 확보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탄닌산이 포함된 하이드로겔은 피부와 거친 표면에 강하게 부착됐으며, 인체의 위·장 환경을 모사한 실험에서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분해됐다.
이는 상처 치료용 드레싱이 사용 중에는 쉽게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역할을 마친 뒤 자연스럽게 제거될 수 있고, 약물 전달 패치 역시 필요한 기간 동안 약물을 안정적으로 전달한 뒤 분해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이번 기술이 상처 치료용 드레싱과 약물 전달 패치뿐 아니라 피부 밀착형 화장품, 기능성 식품 캡슐, 조직공학용 지지체 등 다양한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해신 교수는 "이번 연구는 자연 유래 소재만으로도 하이드로겔의 기계적 강도와 접착성, 분해 거동을 함께 설계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며 "식품, 화장품, 바이오소재 분야에서 보다 안전하고 단순한 방식의 천연 고분자 겔 플랫폼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바이오·헬스케어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는 하이드로겔의 강도와 분해성, 접착성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어려웠다"며 "이번 연구는 천연 소재만으로 소재 성능을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KAIST 화학과 양한열 박사과정 학생이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연구 결과는 생체모사 분야 국제학술지 'Biomimetics'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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