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개발사 권력’ 유저에게 이양… 넷마블 ‘솔: 인챈트’가 시장에 던진 파격적 화두
- 게임사 전유물이던 BM·업데이트 선택권까지 유저 손에
’신·주신·절대신’ 3단계 신권 시스템으로 권능 차등화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국내 MMORPG 시장은 오랜 기간 '짜여진 틀' 안에서 움직였다. 개발사가 세계관과 규칙을 설계하고 비즈니스 모델(BM)을 설정하면, 유저는 그 안에서 재화와 시간을 소비하며 경쟁하는 구조가 당연시됐다. 게임사는 절대적인 운영자이자 입법·사법·행정권을 쥔 주권자였고, 유저는 플레이어에 머물렀다.
그러나 최근 넷마블이 퍼블리싱을 맡고 신생 개발사 '알트나인'이 개발 중인 신작 MMORPG '솔: 인챈트(Sol: Enchant)'가 공개되면서 업계에 거센 파문이 일고 있다. ‘게임의 절대 권한을 유저에게 양도하겠다’는 파격적인 선언 때문이다. ‘리니지M’의 핵심 개발진이 주축이 된 알트나인의 하드코어 DNA와 넷마블의 플랫폼 역량이 결합한 이 작품은 단순한 콘텐츠 추가를 넘어, 게임 생태계의 주도권을 유저에게 넘기는 이른바 '신권(神權) 시스템'을 전면에 내세웠다.
‘신권 시스템’이란 무엇인가
솔: 인챈트의 핵심 차별점은 게임사나 개발자가 보유했던 고유 권한을 유저에게 합법적으로 부여하는 ‘신권’에 있다. 기존 MMORPG에서도 공성전 승리나 랭킹 1위 달성을 통해 '성주'나 '군주'가 돼 세금을 징수하거나 특정 사냥터를 통제하는 수준의 권력은 존재했다. 하지만 이는 게임사가 허용한 시스템 내부의 자원 분배에 불과했다.
반면 솔: 인챈트가 제시하는 신권은 게임의 규칙과 환경 자체를 개조할 수 있는 초법적 권한에 가깝다. 신의 등급에 따라 관리 범위와 권능의 깊이가 차등 부여되며, 유저는 단순한 경쟁자를 넘어 서버와 월드, 나아가 게임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운영자'이자 '기획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시스템은 권력의 범위와 깊이에 따라 '신', '주신', '절대신'의 3단계 계층 구조로 설계됐다. 상위 등급으로 올라갈수록 유저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은 기하급수적으로 넓어진다. 각 서버마다 존재하는 ‘신’은 해당 서버 전체에 직접적인 물리력과 운영 개입 권한을 행사한다. 반대 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광범위한 ‘메테오 투하’를 감행하거나, 특정 유저의 '채팅 금지(묵언)' 처리를 할 수 있다. 반대로 분쟁 지역을 안전지대로 강제 변경해 아군을 보호하거나, 경험치 증가 및 능력치 향상 버프를 부여해 서버 내 생태계를 재편할 수 있으며, 아이템 드롭률에도 간섭이 가능하다.
서버의 상위 개념인 복수 서버 집합체 ‘월드’를 관장하는 ‘주신’은 시스템 기획자의 영역에 도전한다. 아직 잠겨 있는 상위 콘텐츠를 강제로 오픈하거나, 퀘스트 및 사냥터의 보상값을 조절하는 권한을 갖는다. 이는 게임 내 인플레이션과 아이템 가치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권한으로, 주신의 성향에 따라 월드 전체의 경제 구조가 요동치게 된다.
가장 파격적인 대목은 전 서버에 단 한 명만 존재하는 ‘절대신’이다. 절대신은 모든 월드를 통치하며, 게임 디렉터에 준하는 최고 의사결정권을 행사한다. 차기 업데이트의 방향성은 물론이고, 유저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BM(비즈니스 모델)의 선택권까지 쥔다. 여기에 서버 통합 여부와 시스템 설정 리셋 권한까지 부여된다.
개발사와 퍼블리셔 측은 ‘절대신이 업데이트를 거부하면, 게임사는 업데이트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극단적이면서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는 개발사가 수개월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제작한 콘텐츠라 할지라도 유저의 최고 대표자가 거부하면 사장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드코어 MMORPG의 거대한 실험, 독재냐 성군이냐
이 같은 파격적인 시스템이 시장에서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업계의 시선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유저들에게 이보다 강력한 동기부여는 없다는 점이다.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유저 간의 연합, 배신, 정치적 결탁이 고도화되면서 게임사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생생한 서사가 매일 펼쳐질 수 있다. ‘리니지M’ 흥행의 핵심 요인이 유저 간의 끈끈한 유대와 경쟁 구도였음을 감안하면, 알트나인 개발진은 유저들의 권력욕을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자극하는 메커니즘을 설계한 셈이다.
반면 권력 독점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특정 거대 혈맹이나 초고과금 유저가 절대신이나 주신을 장기 집권할 경우, 일반 유저들을 핍박하는 '독재' 체제가 굳어질 수 있다. BM 선택권이나 업데이트 거부권이 특정 세력의 이익만을 위해 남용될 경우, 게임의 수명 자체가 단축되거나 신규 유저의 진입 장벽이 극단적으로 높아지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결국 '솔: 인챈트'의 성패는 권력을 쥔 유저들이 '통제와 독재'를 선택할 것인가, 혹은 전체 생태계를 살리는 '상생과 번영'을 선택할 것인가에 달렸다. 그리고 게임사는 이러한 권력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뒤에서 정교한 견제 장치를 어떻게 작동시킬지가 관건이다.
넷마블과 알트나인의 이번 시도는 단순히 '새로운 던전'이나 '새로운 캐릭터'를 선보이는 기존의 점진적 업데이트 방식에서 벗어나, 게임의 통제권을 소비자에게 넘겨주는 일종의 '소비자 주권 시대'를 MMORPG에 이식하려는 거대한 실험이다. 정체된 국내 하드코어 MMORPG 시장에 '솔: 인챈트'가 던진 이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화두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업계와 게이머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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