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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도 韓 ETF '직구' 시대…코스피 새 자금줄 될까 [‘서양개미’가 온다]①
- [‘서양개미’가 온다]①
한국 익스포저’ 넘어 반도체·AI 투자로
기관 중심서 글로벌 리테일 시장 재편 예고
[이코노미스트 송현주 기자] “한국 반도체 상장지수펀드(ETF)는 어디서 살 수 있나요.”
최근 해외 투자자 커뮤니티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질문이다. 엔비디아와 TSMC에 이어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을 주도하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그리고 국내 반도체 밸류체인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지만, 해외 투자자들이 이를 직접 담을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었다. 상당수 투자자들은 미국 증시에 상장된 ‘아이셰어스 MSCI 사우스 코리아 ETF’(EWY)를 통해 한국 시장에 투자하는 데 그치고 있다.
특정 산업에 투자하고 싶어도 사실상 ‘한국’이라는 국가 전체를 사야 했던 셈이다. 코스피가 사상 첫 9000선을 돌파하면서 시장의 관심도 달라지고 있다. 추가 상승 기대가 커지는 동시에 단기 급등에 따른 조정 우려도 함께 제기되는 가운데 증시의 화두는 ‘얼마나 더 오를 것인가’에서 ‘누가 더 들어올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그동안 외국인 수급이 글로벌 기관투자가의 자산배분 전략에 크게 의존해 왔다면 앞으로는 해외 개인투자자와 글로벌 패시브 자금까지 투자자 저변을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출발점은 ‘외국인 통합계좌’(옴니버스 계좌) 규제 완화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5월 외국인 통합계좌 거래 대상에 ETF·상장지수증권(ETN)을 추가하는 내용을 담은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을 예고했다. 의견 수렴은 7월 1일까지 진행되며 올해 하반기 시행이 목표다.
외국인 통합계좌는해외 증권사가 국내 증권사에 자사 명의 계좌를 개설한 뒤 다수 고객의 주문을 취합해 일괄 처리하는 방식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일반적인 거래 관행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개별 주식 거래만 허용됐다.개정안이 시행되면 외국인 투자자도 통합계좌를 통해 국내 ETF와 ETN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금융당국은 시장 변동성 확대 우려를 고려해 레버리지·인버스 ETF·ETN은 허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를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의 투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혁으로 보고 있다. 미국 모건스탠리의 자회사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는 그동안 한국 시장에 대해 외국인 투자 절차와 외환시장 접근성, 거래 편의성 부족 등을 주요 개선 과제로 지적해 왔다. 글로벌 투자자 상당수가 국가별 자산배분 과정에서 ETF를 핵심 투자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ETF 투자 제한은 대표적인 투자 장벽으로 꼽혀왔다.
실제로 외국인 통합계좌 활용도는 빠르게 늘고 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5월 26일부터 지난 6월 15일까지 외국인 통합계좌를 통한 거래대금은 약 5조8000억원, 순매수 규모는 약 2조2000억원에 달했다. 업계에서는 ETF 거래까지 허용될 경우 글로벌 패시브 자금뿐 아니라 해외 개인투자자 유입 경로도 한층 넓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 ETF에서 산업 ETF로…달라지는 투자 방식
이번 조치의 핵심은 외국인 자금 규모 확대보다 투자 방식 변화에 있다. EWY 순자산 규모만 약 70억달러(약 9조5000억원)에 달하는 대표적인 한국 투자 ETF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대형주 중심의 국가 ETF가 대부분이다. 특정 산업에 투자하려는 수요를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글로벌 투자 흐름은 국가 투자에서 산업 투자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 ETF 시장 규모는 이미 11조~12조달러를 넘어섰다. 최근 자금 유입 역시 국가 ETF보다 인공지능(AI) 인프라와 반도체·전력망·방산·원전·로봇 등 특정 산업과 테마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국내 ETF 시장 역시 빠르게 성장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ETF 순자산총액은 250조원을 넘어섰고 상장 종목 수도 1000개를 웃돈다. 반도체와 AI·방산·전력기기·바이오·2차전지 등 산업별 상품군도 크게 확대됐다. ETF·ETN 거래가 허용되면 해외 투자자들은 더 이상 한국 시장 전체를 통째로 사지 않아도 된다. 엔비디아와 TSMC를 담던 투자자가 국내 반도체 ETF를 통해 SK하이닉스와 장비·소재 기업까지 함께 편입할 수 있게 된다. 미국 방산주 투자자가 국내 방산 ETF를 추가로 담는 것도 가능해진다.
시장에서는 ETF 허용의 진짜 의미를 외국인 투자자 구성 변화에서 찾고 있다. 현재 국내 증시 외국인 자금의 상당 부분은 글로벌 연기금과 국부펀드·자산운용사·헤지펀드 등 기관투자의 자금이다. 이들은 MSCI 신흥국지수(EM) 등 글로벌 벤치마크를 기준으로 국가별 투자 비중을 조정한다.
기관 중심 수급 구조에서는 미국 금리와 달러 가치, 지정학적 변수에 따라 대규모 자금 유출입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반면 ETF를 활용하는 글로벌 리테일 자금과 패시브 자금은 특정 국가보다 산업과 테마의 성장성에 투자하는 비중이 높고 자금 이동 속도도 상대적으로 완만하다. 시장에서는 ETF 거래 허용이 외국인 투자자 기반 확대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금까지 외국인 자금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 중심으로 유입됐다면 앞으로는 반도체와 방산·전력기기·바이오 등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외국인 자금을 더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 풀(pool)을 넓히겠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기관 중심 수급 구조에서 글로벌 리테일과 패시브 자금까지 참여하는 구조로 바뀌면 한국 증시의 체질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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